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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 골짜기의 단풍나무 한 그루
윤영수 지음 / 열림원 / 2018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1990년 ‘현대소설’에 단편 <생태관찰>이 당선되면서 다소 늦은 나이에 작품 활동을 시작한 윤영수 작가는 그동안 현실의 삶과 인간의 본성에 대한 깊이 있는 작품들로 한국일보문학상, 남촌문학상, 만해문학상 등을 수상하였다. 그런 작가가 뜻밖에 작품을 발표해서 만나본다. 현실의 삶속에서 인간의 내면을 바라보던 작가가 <숨은 골짜기의 단풍나무 한 그루> 에서는 현실과는 아주 먼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시간도 공간도 완전히 새로운 환상을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이 작품을 통해서 전혀 생각해보지 못했던 판타지 소설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숨은 골짜기의 단풍나무 한 그루>와의 만남은 시작부터 끝까지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평소 책을 선택할 때 책 소개를 자세하게 보지 않는 편이라서 택배를 받고나서 책의 두께에 우선 놀랐다. 그리고 7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의 책을 펼치고 처음에 작품의 배경들을 소개하는 글에 다시한번 놀랐다. 많은 등장인물들의 가계보와 지하 동굴 세계의 지도들 그리고 전혀 새로운 종족인 ‘어른이족’ 세상에 대한 설명들이 솜은 골짜기에 들어가기 전부터 상당한 부담을 갖게했다. 하지만 가장 놀라웠던 것은 작가가 그려놓은 글을 따라서 골짜기를 여행하다보면 부담으로 다가오던 책의 두께도, 많은 등장인물들의 관계도 전혀 부담되지 않는 다는 것이다. 이야기를 읽다보면 작가가 만들어 놓은 촘촘한 구성에 자연스럽게 빠져들어 별다른 노력 없이도 편안하게 읽을 수 있었다.
판타지 소설하면 요정이나 마법사들이 등장하는 귀엽고 재미난 이야기나 토르 같은 영웅이 등장하는 스케일이 크고 스펙타클 한 모험이 담긴 이야기를 떠오르게 된다. 하지만 작가가 그린 환상 속에는 주인공을 도와주는 예쁜 요정도 등장하지 않고 영웅 비슷한 캐릭터도 등장하지 않는다. 그저 작가가 만들어 놓은 지하 동굴 세계에서 펼쳐지는 일상들이 펼쳐진다. 하지만 그 일상을 펼치는 등장인물들이 예사롭지 않다. 식물과 동물의 중간 형태인 나무인간 ‘어른이족’들이 다양한 계층을 이루고 이야기를 끌고 나간다. 그런데 그들의 삶이 우리 인간사와 별반 다르지 않게 느껴진다. 그들에게도 희로애락이 존재하고 질투와 욕망이 존재한다. 작가는 ‘어른이’들의 세상을 통해서 우리 인간들의 세상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다.
이야기는 열여덟살의 주인공 연토가 검은머리짐승(인간) 준호를 만나면서 전개된다. 기다리고 있던 운명적인 만남인지 아닌지 생각할 겨를 도 없이 자신의 방에서 함께 지내게 된 준호는 주인공에게 커다란 도움을 주는 요정이 아니라 지하 동굴 세계에서는 쓰레기 취급을 받는 검은머리짐승(인간) 이다. 도움은커녕 연토에게 많은 시련을 가져오는 인물이다. 두 인물은 서로의 세계를 알고 싶어서 서로에게 끝없는 질문을 하고 답변을 한다. 그 답변들 속에서 작가는 우리 인간들이 잃어버린 본성을 찾을 수 있기를 바라고 있는 것 같았다. 연토와 준호가 만나고 겪게 되는 세상 이야기들은 마치 한 집안의 흥망성쇠를 다룬 역사 드라마 같았다.
평소 서평보다 작품의 줄거리는 적게 적고 싶었다. 이 작품은 첫 페이지에서부터 끝 페이지까지 새롭게 만나야할 것 같아서이다. 정말 이 작품의 진한 향기를 맡고 싶다면 자세한 내용은 책을 통해서 직접만나보기를 바란다. 어른이족과 인간과의 차이는 겉모습부터 속마음까지 커다란 차이가 있지만 그 차이점은 직접 접해봐야만 이 작품이 주는 울림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길가에 나무들이 말을 걸어온다면 아마도 숨은 골짜기에서 온 어른이족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