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의 문 1. 2.

[세트] 살인의 문 - 전2권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이혁재 옮김 / 재인 / 2018년 8월

베스트셀러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으로 너무나 친숙하고 유명한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 <살인의 문>을 만나보았다. 작품은 두 권의 책으로 만들어졌다. 작가의 다른 작품들처럼 빠른 전개를 보이지만 결코 빠르게 읽을 수는 없었다. 사건 중심으로 전개되는 작품이 아니라 흡사 심리 게임을 보여주듯이 주인공 가즈유키의 심리 상태를 따라 사건들이 배열된다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조금 천천히 글자들을 음미하고 행간사이에서 쉬어가면서 작품을 읽었다.

인간이 인간을 심판할 수 있을까? 법에 의한 심판은 사회적 규범에 따른 사회의 심판이지 인간에 의한 심판은 아니다. 사회가 정해놓은 법이 아니라 인간의 감정과 이성을 마비시키는 행위를 하는 인간들에게는 어떤 심판을 누가해야 하는가? 사람이 사람을 죽인다는 것은 어떤 경우에도 용납될 수 없는 일이라고들 한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는 사이코패스에 의한 살인 이외에도 많은 ‘살인’들이 발생하고 있다. 어떤 감정 상태가 인간이 인간을 죽음으로 내몰게 되는 것일까? <살인의 문> 1권을 읽으면서 정말 살의(殺意)가 무엇인지 어떨 때 느끼게 되는지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악마도 싫어할 구라모치라는 인간에게서 살의를 느꼈고, 번번이 친구 구라모치에게 ‘No’라고 말하지 못하는 아니 구라모치를 친구라고 생각하는 가즈유키의 답답함에 살의를 느꼈다. 그리고 이야기를 읽는 내내 가슴속에 무엇인지 모를 울분을 계속해서 끄집어내는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에게 살의를 느꼈다. 이러다 정말 ‘살인의 문’으로 들어갈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때 쯤 1권은 끝이 난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고 한다. 아니 아마도 평생 변하지 않을 지도 모르겠다. 스쿠루지 영감처럼 지옥 구경이나 하게 되면 변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살인의 문>의 악역 구라모치는 지옥에 가서도 케르베르스를 꼬드겨 팔아치울 인간이다. 작품을 읽다보면 이 구라모치라는 인간이 정말 인간일까 싶은 생각이 문득문득 뇌리를 시친다. 구라모치가 인간이 아닌 악마보다 못한 인간으로 살게 된 까닭은 무엇일까? <살인의 문>에서 선한 역을 맡은 아니 바보 멍청이 역을 맡은 가즈유키는 지금 다시 생각해도 이해할 수도 이해하고 싶지도 않은 사람이다. 정말 열심히 살고 정직하게 사는 평범한 가즈유키를 미워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단 하나다. 구라모치의 말에 자꾸 계속해서 넘어간다는 것이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아니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라고 가즈유키에게 소리치고 싶다.

P.313. “...계기가 없으면 살인자가 되는 문을 통과하지 못하죠...”

살의 동기만 가지고는 살인의 문을 통과할 수 없다고 가즈유키에게 한 형사가 가르쳐준다. 특별한 계기가 있어야하고 여러 가지 상황들의 타이밍이 맞아야 살인의 문을 통과할 수 있다고 가즈유키에게 말해주는 장면이 나온다. 결정적인 순간에 본연의 ‘선함’으로 돌아오는 가즈유키에게 살인의 문을 통과할 ‘계기’가 찾아올까? 계기가 찾아온다면 가즈유키는 그 문을 지나갈까? 화려한 추리 쇼나 엄청난 반전을 기대한다면 이 작품은 나중에 만나 봐도 될 것 같다. 하지만 미스터리 소설들이 다루는 ‘살인’에 이르는 과정 즉 살인자의 감정을 알고 싶다면 살의가 무엇인지 느껴보고 싶다면 지금 바로 이 작품을 만나보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