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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방랑
후지와라 신야 지음, 이윤정 옮김 / 작가정신 / 2018년 5월
평점 :
서울에서 본 것은 김이다.
김은 우리의 도시가 잃어버린 것들 중 하나다.
후지와라 신야라는 일본의 작가를 따라서 동양을 여행해봅니다. 작가는 1972년 <인도방랑>을 시작으로 <티베트 방랑>그리고 1982년 <동양 방랑>으로 동양 여행기 3부작의 대미를 장식했으며 이 책으로 제23회 마이니치 예술상을 받았다고 합니다. 처음 접하는 작가의 책이라서 더욱 흥미롭게 책장을 넘길 수 있었습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다른 여행 에세이들과는 다른 형시과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던 여행이라는 이미지와는 사뭇 달랐습니다. 책 제목에 여행이 아닌 '방랑: 정한 곳 없이 이리저리 떠돌아다님'을 사용한 까닭을 알 수 있었습니다.
작가는 이스탄불을 시작으로 고야산, 도쿄에 이르는 400여 일의 일정 동안 밝은 곳보다는 어두운 뒷골목을 방랑하고 그곳에서 만난 이들의 삶을 지극히 사실적인 사진들과 함께 보여주고 있습니다. 유명 여행지를 소개하는 여행 에세이가 밝은 빛 속의 만들어진 공간 여행을 보여주고 있다면 작가의 방랑은 어둠 속에서 인간 사는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향기로운 관광지의 맛난 향기가 아니라 악취 나는 뒷골목의 사람 사는 냄새를 고스란히 담고 있습니다. 도시의 어두운 뒷골목을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어서 더욱 공감이 가는 책입니다.
언어도 통하지 않는 오지를 가방 하나 메고 방랑할 수 있는 용기가 부럽기만 했습니다. 젊어서도 지금도 모든 걸 내려놓고 어딘가로 떠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그런 용기는 가지고 있지 못하기에 작가의 뒤를 따라 동양의 뒷골목들을 방랑하는 기분은 정말 좋았습니다. 또한 여행 에세이라는 형식이나 내용에 전혀 구애받지 않고 글을 쓰고, 전혀 새로운 느낌의 자연스러운 사진을 찍을 수 있었던 작가의 용기가 새로운 글을 만나게 해주어서 더욱 좋았습니다. 새로운 도전이라면 빼놓을 수 없는 장정일 작가의 작품 해설은 <동양 방랑>에 또 다른 매력을 더해주고 있습니다.
<동양 방랑>의 시작이 1980년 겨울이라는 점이 작가와 함께하는 방랑을 더욱 흥미롭게 해주고 있습니다. 민주화 운동이 짓밟힌 한국과 미얀마가 되기 전의 버마, 이제 막 개방된 중국에서의 경험, 그리고 중국에 반환되기 전 홍콩의 이야기들은 묘한 매력으로 다가섭니다. 어두웠던 동양의 과거 속을 거닐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가보지 못한 곳에 대한 여행의 기록만으로도 가슴속 설렘은 멈출 줄 모르는 데 하물며 과거 속으로의 여행 아니 방랑이라니 정말 멋진 경험이었습니다. 30여 년 전 동양의 사람 사는 모습을 보고 들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 책의 가치는 차고 넘치는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