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자로 하여금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1
편혜영 지음 / 현대문학 / 2018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월간'현대문학'에서 오늘을 함께 생각하며 살고 있는 현대적인 작가들을 선정해서 월간 현대문학 지면에 선보인 작품들을 단행본으로 출간한 '현대문학 핀 시리즈'의 시작을 만나보았습니다. 흥미로운 시리즈의 시작은 2000년 서울신문으로 등단한 편혜영 작가의 작품<죽은 자로 하여금>입니다. 고급스러운 표지 디자인도, 한 손에 쏙 들어오는 책 사이즈도 현대문학에서 만드는 데 공을 많이 들인 티가 팍팍 나는 책입니다. 출판사에서 공들인 시리즈의 처음을 담당한 작품이니 작품성에 대해서는 논외로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바로 오늘을 함께 느끼며 살아가고 있는 작가들의 작품들을 앞으로도 계속 만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지는 것 같습니다. 작가들이 바라보고 느끼는 세상은 어떤 색깔을 띠고 있을지 너무나 궁금합니다.

 

<죽은 자로 하여금>에서 보여주는 세상의 빛깔은 무채색의 회색인 듯합니다. 이인시라는 황폐해가는 가상의 공업도시를 배경으로 자본주의의 성쇠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산업 발전의 근간을 이루었지만 이제는 생사의 경계선에 선 조선업을 상징하는 골리앗 크레인이 등장합니다. 한때는 이인시의 랜드마크였겠지만 이제는 쇠퇴한 자본주의의 아픔으로 남아서 보는 이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경제적인 환경이 열악해지면 사회적인 환경은 경제적인 환경에 발을 맞추려 합니다. 여기에서 이인시에 있는 선도병원의 아픔이 시작된 듯합니다.

 

이야기는 선도병원의 경영 정상화라는 '선한' 이야기로부터 시작됩니다. 하지만 지역 경제와 마찬가지로 생사의 경계선에 서 있는 선도병원의 선은 그리 오래가지 못합니다. 그리고 병원에 몸담고 있는 등장인물들의 삶도 선과 악의 경계선에 위태롭게 서 있습니다. 그런데 등장인물들의 이야기를 듣고 생각을 엿보면서 '조직 내에서의 선과 악'이라는 것이 존재는 하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 생깁니다. 어느 조직에나 다 있는 '조직을 위해서' 또는 '관행'이 병원 조직에도 있었고 그 조직에 몸담은 무주이석이라는 두 인물은 온몸으로 '조직의 힘'을 맛보게 됩니다. 그리고 어떤 것이 선인지 무엇이 악인지 점점 경계선이 흐려져서 회색으로 변해갑니다.

 

병원이라는 배경이 선과 악의 경계를 조금은 뚜렷하게 해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병원도 이익을 내야만 하는 경제적인 조직이라는 점에서 버려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이 작품이 더 강한 울림을 가지고 있는 듯합니다. 경제적인 이윤과 사회적인 책임의 경계선에 있는 병원과 선한 의지를 두고 고뇌하는 등장인물들이 묘하게 오버랩되면서 울림의 크기는 더 커지는 듯합니다. 요즘 우리 사회에는 사회적인 책임을 외면한 체 경제적인 이윤만을 추구하는 병원 조직이 많이 보이기에 '선도병원'의 이야기들이 더욱 공감 가는 듯합니다. 공감의 중심에는 아픈 아들을 위해 힘들게 버티는 이석과 잠시 동안 머물다가 간 아이를 그리워하는 무주가 있습니다. 조직의 생태를 조금 더 이해하고 그 속에 융화된 삶을 사는 이석도 조직의 생태에서 밀려나 외로운 삶을 사는 무주도 주위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조직 사회의 모습이어서 공감의 깊이는 더해지는 듯합니다.

 

P.166. 왜 어떤 삶은 굴욕과 함께 지켜내야 하는 걸까.

 

선과 악으로, 흑백으로 양분될 수 있는 사회는 아마도 존재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언젠가는 선의 가치가 인정받고 악의 자리는 줄어든 세상이 오리라 믿고 싶습니다. 이 작품 속에서 그런 믿음을 찾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아이들 교육이 선과 악의 경계선을 넘나드는 기술을 배우는 교육이 아니라 악을 악이라 말할 수 있는 자존감 교육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갖게 됩니다. 이 작품을 통해서 만나 볼 수 있는 많은 사회적인 문제들은 많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꼭 해결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문제 해결은 기술이 아닌 인간의 자존감이 바탕이 되어야 것 같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