랠리
박민경 지음 / 문학동네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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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최근 단편집을 읽으며 문득 든 생각이 있다. 요즘 나오는 단편 소설들은 전보다 “독특”한 것 같다는 것. 짧은 글에 기승전결을 담고 임펙트를 줘야해서일까, 가끔은 단편 특유의 자극이 부담스럽기도 했다. (내가 그런 단편만 읽었을 수도 있음)

그때 내게 찾아온 랠리. 표지부터 산뜻한 랠리. 내가 원하던 현실을 이야기하면서도 허를 찌르는, 그런 단편집이었다.

생존과 잘 살고싶다는 마음의 틈에서 각자의 삶을 버티고 이겨내는 이들. 9개의 이야기를 통용하는 주제 “살 만한 삶”. 얼마나 어려운 말인지. 어쩌면 누군가에겐 한없이 쉬운 살만하다는 말.

📖 우연은 기다리지 않는 자에게, 필연은 기다리는 자에게 오라. 117p

소설집의 제목과 같은 이름의 수록 단편 ‘랠리’ 는 스트레스를 받으면 몸이 모래가 되어 툭 떨어져 나가는 (환각이다) 병을 가진 희원의 이야기이다. 너무 지쳐서, 이제 화낼 힘도 없는 평범한 희원. 한때, 섹스보다 더 좋은 몸의 대화였던 탁구는 주현과 헤어진 후 그만뒀다. 희원의 유일한 휴식은 점심시간 공터에서 고양이를 만나는 것. 버드나무 밑에서 도시락을 먹는 것. 그곳에는 나미가 있었다. 같은 회사지만 서로에게 딱히 말을 걸지 않으며 같은 공간에서 밥만 먹는 나미. 어느 날, 버드나무가 잘렸다. 나무의 생명이 끝이 났기 때문이었다. 이제 어디서 점심을 먹어야하나 고민하던 중, 나미는 희원에게 말한다.

”희원씨, 우리 땡땡이 칠래요?“

근처에 있다는 천변으로 발을 옮긴 그들은 대화를 나눴고, 희원의 손에 닿은 나미는 순간 땡땡한 풍선이 되었다가 돌아왔다. 참고 참다가 터질 것 같다던 나미, 한없이 지쳐 모래가 되어버리는 희원. 두 사람은 물에 빠진 노오란 인형을 구하기 위해 무모하게 물에 뛰어들었다. 서로를 알아본 걸까. 그 순간만큼은 충분히 좋았다.

보통의 삶 속에서 찾는 숨구멍 하나가 또 하루를 살아가게 만든다.
”랠리“ 외에 개인적으로 좋았던 단편은 ”즐거운 나라“, ”별개의 문제“ 였다. 다른 수록들에 비해 조금 씁씁한 이야기들.

너무 무겁지 않지만 그렇다고 가볍지도 않은, 돌맹이 하나로 툭 맞는 느낌의 책이었다. 최근 읽은 단편집 중 가히 최고라고 해본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랠리] 박민경, 문학동네

#랠리 #박민경 #문학동네 #단편집추천 #소설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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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쏘다
최양선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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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이라는 큐피드 생활 동안 사랑의 화살을 쏘지 못한 큐디. 화살을 쏘는 데 망설임이 없는 큐오를 놀라워하면서도 의아해한다. 큐피드의 사명은 화살로 사랑을 이루고, 사랑의 숲에 뿌릴 씨앗을 거두는 것. 어느 날, 큐피드 수장은 사랑이라는 감정에 메마른 자의 사랑을 연결해 보라는 제안을 받는다.

큐디가 사랑을 연결해야하는 인물은 신조라는 여자였다. 신조의 곁에서 일상을 지켜보고, 인간의 생이 적인 라이프 라이브러리의 기록을 살펴보고. 신조의 감정을 흔드는 인물인 찬영과 기우에 대해 알아보며 큐디는 점점 이상한 감정을 느낀다. 자꾸만 가슴이 아리고 어딘가 답답해지는 그런 기분. 큐피드에게 깊은 감정은 독인데도. 신조와 기우의 라이프 라이브러리 기록에서 삭제되어 있던 열아홉, 스물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큐디는 알아야했다.

사랑을 어려워하는 큐피드와 사랑할 자격이 없다고 느끼는 신조의 이야기. 어린이, 청소년 책을 주로 쓰는 작가여서일까, 가슴을 어루만지는 섬세한 온기가 느껴진다. 인물들의 아픔이 현실적이여서. 그들이 왜 사랑을 힘들어하는 지 알 것 같아서. 보는 내내 마음 한구석이 욱씬 거렸다.

큐디가 어째서 그들에게 묘한 감정을 느낀 건지 밝혀지는 부분에서, 큐피드 수장이 신조를 고른 깊은 뜻을 알것 같으면서도 미웠다.

그리고 이 아련한 로맨스 청춘물의 또 다른 포인트라면, 과연 신조는 찬영과 기우 중 누구와 사랑이 연결될 지 보는 것.!.!
결이 좀 다르긴 하지만, 양귀자의 모순을 재밌게 본 사람이라면 이 책도 재밌게 읽을 것 같다. 내가 그랬으니까.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사랑을쏘다 #위즈덤하우스 #장편소설 #소설 #최양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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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메아리처럼
앤절라 미영 허 지음, 임슬애 옮김 / 열린책들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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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레종, 선녀와 나무꾼, 심청, 장화홍련, 바리데기.
무언가를 위해 희생되는 여성에 대한 설화들에 묶여 망가져버린 한 가족.

소녀들의 이야기에 집착하다 말을 잃고 스스로를 버린 엄마가 꺼낸 말 “다른 여자애는 어디있어”. 그리고 엄마는 죽어버렸다.
엄마는 자신과 같은 운명을 내어줄 수 없으니 여자아이를 낳아서는 안된다고 했다. 더구나 엘사를 낳기 전 한번의 낙태가 있었다고. 하지만 엄마가 남긴 흔적들은, 어쩌면 언니가 살아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게 했다.

지독하게 자신을 쫓아오는 집안의 저주를 피해 물리학자가 된 엘사. 그 저주는 운명이었던 걸까. 빨간 댕기를 한 소녀는 남극에서도 엘사의 눈 앞에 모습을 보였다.

결국 엘사는 엄마의 기록을 따라 희생된 여성들의 이야기를 모으고, 번역하고, 언니의 행방을 찾아나선다.

이민자, 해외 입양자, 전쟁 트라우마, 시대적 배경에 의한 가치관 등을 한국계 미국인이 바라본 설화를 중심으로 흥미롭게 풀어냈다. 아무래도 이 땅은 유교 국가였던 만큼, 전래동화에서 여성이 가족, 사랑, 집단을 위해 희생하는 이야기가 많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 역시 전래동화는 원래 그래! 라며 당연시 했다. 왜 의문을 가지지 못했을까?

책 속에서 한국인도, 외국인도 아닌 인물들(이민자, 입양자)의 정체성 문제를 다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설화를 바라보는 “외국인”의 시각이 새롭다고 느꼈다. 작가는 한국계 미국인이다. 어쩌면 책 속 인물들의 혼란이 작가의 혼란이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메인 스토리는 엘사(이민자 가족)의 이야기이지만, 나는 오스카르(입양자)의 이야기와 엘사의 오빠 크리스의 이야기 역시 매력적이었다. 스스로를 입양자라는 편견에 가두고 살아왔으나, 자신의 편협함과 잘못을 인정하고, 엘사를 도우며 자신의 정체성까지 확립해가는 어른 남자 오스카르. 한때는 엘사가 가장 존경하던 사람이었으나 스스로를 예수의 아들이라 칭하며 자신을 내버렸던 크리스의 변화. 엘사를 비롯한 모두가 한걸음씩 나아가는 모습이 대견했다.

솔직히 책 절반 넘어서까지 엘사에게 정이 안간 것도 사실이다. 과학자라는 사람이 너무 설화에 매달려있는 건 아닌가 하는..? 쵸금 답답했지만, 자라온 환경이 그러니 어쩔 수 없겠지.

아, 책에서 재밌었던 부분! 비련의 여주인공 마인드인 엘사와 냉철한(?) 문학 박사 오스카르의 대화, 그리고 오스카르의 따순 편지들.

얽메여있던 운명에서 벗어나 자신을 찾아가는 여정을 잘 풀어낸 책이다.

📖 엄마를 이해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마지막으로 얼굴을 보고 끝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러지 못해서 답답했어요. 하지만 그간 내 목소리로만 글을 썼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길 잃고, 버림 받고, 갇힌 여자아이들의 이야기에서 오직 나 자신만 봤어요. 364p

📖 네가 찾고 있는 게 무엇이든, 찾길 바란다, 엘사. 난 여기 있을 거야. 싸움에 지쳤으니까. ~ 나만의 작은 세계에서 규칙을 정하는 사람은 나니까. 486p

📖 아빠, 자신의 나약한 성정에 굴복한 아빠를 결코 용서할 수 없지만, 결코 부인하지는 않을거에요. 나는 항상 아빠의 딸일 테고 아빠가 내게 준 것들을 더 나은 목적을 위해 사용하자고 결심했어요. 531p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우리메아리처럼 #엔젤라미영허 #열린책들 #소설추천 #독서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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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발칙해도 될까 페이퍼사운드 숨·쉼·음 1
알레프 지음 / 브로북스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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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그대를 바라지 않는(Schadenfreude)> 이라는 곡이 있다. Schadenfeude는 독일어로 ”타인의 불행이나 실패를 보면서 느끼는 은밀한 기쁨“ 이라는 뜻이다. 가사의 시작은 ”슬픔을 아름답게 보는 게 문제라고 습관처럼 말하던 그대는 어디에“. 이 곡은 꼭 뮤직비디오와 함께 해야하는데, 뮤직 비디오 속 청춘의 아픔을 보며 은밀하게 기뻐하는 우리를 향한 제목일지도 모른다. 해당 뮤직 비디오와 이어지는 <자유> 라는 곡도 들어보시길.

여튼, 알레프는 가수다. 그리고 [얼마나 발칙해도 될까]는 브로북스에서 제작한 싱어송라이터 산문집 시리즈인 ’페이퍼 사운드 : 숨 • 쉼 •음‘ 의 첫 번째 책이다. 게다가 알레프라는 이름은 히브리어로 첫 번째를 뜻한다.

평소 알레프의 음악을 즐겨 듣는 나에게, 뮤지션의 솔직한 이야기 (물론 세상에 공개하는 마음이 완전히 솔직할 수는 없겠지만) 를 읽을 수 있는 기회라니. 놓칠 수 없었다. 알레프의 노래만큼 가사만큼 담담하고 차분한 책이다. 음악과 책, 모두 같은 사람의 작업물이니 당연한건가.

음악 안에서의 자신과 음악 밖에서의 자신을 나눠 이야기하지만, 결국 그 둘은 하나다. 조금은 느리고 삶을 사랑하는 사람. 알레프가 얼마나 음악에 진심인지. 본인은 뜨거운 열정이 아닌 적당한 열정으로 마감을 채운다고 말했지만 결국 그것도 사랑이니. 그 사랑이 뚜렷하게 느껴지는 책이었다.

그가 곡이 잘 나온 날에 대해 적은 문장이다.
📖 그럴 때면 이 짝사랑이 조련에 가깝다는 생각도 든다. 완전히 떠나지 못하도록 적당한 보상을 주는 사랑. 자주 주지는 않지만, 잊을 만하면 한번 씩 간식을 주는 사랑같은 것. 63p

괜히 가사가 심금을 울리는 게 아니었다. 자꾸 자신이 재능이 뛰어난 사람이 아니라고 하는데, 그럼 그 재능 저 좀 주세요. 가사 이야기를 하니까 하는 말인데, 나는 늘 알레프의 가사가 조금 더 날것이어도 좋을 것 같다 생각했었다. 개인의 취향이지만 둘러둘러 쓰다듬는 느낌보다 살짝 날 선 느낌을 좋아하거든. 하지만 알레프는

📖 사람의 감정을 불편하게 만들 수 있는 작품을 내는 것은 생각보다 많은 용기를 요구한다. ~ 작품은 오해를 사거나 의도와 전혀 다른 방향으로 해석될 가능성도 늘 열려있다. ~ 그래서 가사를 쓰다 가끔 문장들은 내 눈치를 보며 묻는다. 이 정도의 표현이 정말 필요한 거냐고, 아니면 괜히 선을 넘고 싶은 거냐고. 74p

라고 대답했다.

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알레프의 마음을 알고 싶다면, 그의 노래를 사랑한다면, 이 책은 꼭 읽어보라 그런 말이다.

[얼마나 발칙해도 될까] 알레프, 페이퍼사운드 숨쉼음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얼마나발칙해도될까 #알레프 #브로북스 #페이퍼사운드숨쉼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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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동물은 섹스 후 우울해진다
김나연 지음 / 일레븐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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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모두에게 드러낸 에세이, 누군가에게 보내지 못한 편지, 아무도 몰래 적어내려간 일기, 그게 아니면 무엇보다 솔직한 시.

제목은 자극적이지만 속에 담긴 글은 아리고 선명하고 투박하다. 그니까 이게 남의 일기를 훔쳐보는 게 아니라는 거지? 주변 사람들에게 “제목은 좀 그런데 진짜 좋아” 하고 조심스레 말을 꺼내고 싶은 책. 아무래도 제목이 조금 큰 난관이 될 것 같다. 내 가슴에 묵직하게 남은 감정은 분명 감수성 흐르는 밤에 읽어서 그런건 아닐거다.

중간중간 들어간 소소한 유머도 딱 적당하다.

사랑을 이야기하고, 미움을 이야기한다. 나를 말하고, 너를 말한다. 책 하나가 마음에 들면 저자의 다른 책에도 손대고 싶어지는데, 심지어 제목이 [가난의 명세서]. 제목부터 쏙 마음에 드는 게 조만간 꼭 읽어봐야지.

나는 인덱스를 아끼지 않게 되는 책을 사랑해.

📖 어떤 종류의 사랑이든 그 사랑의 대상이 누구든, 사랑하는 사람이 아파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무엇보다 자신의 무능력함에 가장 크게 절망한다. 72p

📖 사물이든 사람이든 저마다 익는 시간이 있다. 그리고 가치를 알아보는 안목을 키우는데도 시간이 든다. 어쩌면 우리는 서로에게 팥 같은 존재일지도 모른다. 151p

📖 사랑하는 사람이 절 똘아이라고 불러줬을 때 가장 원초적으로 기뻐했던 것 같아요. 사랑들이 떠나가자 정신이 돌아와서 행복같은 건 모르고 삽니다. 행복은 일종의 정신질환이었나 봅니다. 212p

📖 우리는 우리 안의 어린이를 돌보며 어른이 되는지도 모르겠다고. 246p

[모든 동물은 섹스 후 우울해진다] 김나연, 일레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모든동물은섹스후우울해진다 #모동섹 #에세이 #신간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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