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 도둑
마크 레비 지음, 강미란 옮김 / 열림원 / 2010년 12월
평점 :
절판


그림자 도둑
마크 레비/열림원

인류의 기원을 찾아가는 그리스 고고학자의 사랑과 모험을 담은 책 <낮>을 흥미진진하게 읽었었다. 오랜만에 담백하고 서정적이며 유머러스한 그의 글을 다시 읽으니 한 때 온 마음을 쏟아 사귀다 한동안 소식이 뜸했던 친구를 다시 만난 듯 새롭다. 여전히 그는 빛나는 깊은 눈동자, 며칠 깍지 않은 수염, 장난스런 미소로 빙그레 웃고 있다. 이 책을 쓰느라 요즘 좀 바빴어. 어때? 이 만하면 읽을 만하지 않아? 당신이 좋아하면 기쁘겠어... 내가 어떻게 그의 책을 좋아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의 가슴 뭉클한 어린 시절의 한 장면, 한 장면들을 고스란히 읽을 수 있는 일기장 같은 이 책을 말이다. 나의 어린 시절, 아련한 아픔으로 떠오르는 상실의 시간들까지 찾아와 어루만지고 치료해줄 그의 마법 같은 언어를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자기도 모르게 그림자를 훔치는 도둑이 되어버린 어린 주인공은 참 외로운 소년이다. 보통 그림자 따위를 볼 시간도 없이 살아가는 우리들, 우리가 우리의 그림자를 바라보며, 다른 사람의 그림자를 볼 시간이 있다는 것은 아마 세상의 치열한 경쟁에서 한 발 뒤로 물러난 시간일 것이다. 어른이 되려면 한참 먼 이 소년은 이미 아이 때부터 다른 사람들의 그림자가 말하는 소리를 듣는다. 그림자가 말하는 소리는 어떤 소리일까? 나만의 행복의 속삭임? 따뜻한 추억? 오랜 시간 간직한 아름다운 추억들? 이미 눈치 챘겠지만 아니다. 그림자의 외침은 슬픔이며, 눈물이며, 절규며, 애원이다. 늘 자기를 괴롭히는 덩치 큰 건달 같은 아이의 그림자, 평범하게 살아가는 학교 수위 아저씨의 그림자, 한 눈에 마음을 빼앗겨 버린 어여쁜 소녀의 그림자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이해하며 소년은 어른이 되어간다.

Memorial and Imagination, 요즘 내가 사랑하는 단어다. 요즘 읽고 있는 <마법의 시간여행> 시리즈에서 바로 오늘 아침 읽은 문장 중 나온 단어다. 아름다운 기억과 아름다운 상상력은 어두운 세상을 밝히고 두려움을 극복해 아름다운 세상을 회복시킨다. 마크 레비처럼 장난스런 미소를 짓고 있는 메리 팝 어즈번, 이 작가도 아름다운 기억들과 뛰어난 상상력으로 무장한 작가이다. 작가는 보석을 만드는 사람과 비슷한 것 같다. 다이아몬드나 금 같은 어떤 보석도 원래부터 보석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원석에 섞여 있는 그것들을 끓이고, 갈고 닦아, 정교하게 만들어 내야 값비싼 보석이 된다. 인생의 빛과 그림자, 아름다움과 슬픔, 환희와 아픔이 뒤섞인 두리 뭉실한 원석에서 빛나는 다이아몬드를 영롱하게 만들어내는 뛰어난 작가들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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