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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첫 번째 걷기 여행 - 머리를 비우고 마음을 다독이는
김연미 지음 / 나무수 / 2010년 11월
평점 :
절판
그녀의 첫 번째 걷기여행
김연미 글, 사진/나무[수:]
장 그르니에의 에세이<섬>에서 여행이란 ‘일상생활 속에서 졸고 있는 감정을 일깨우는 데 필요한 활력소이고, 우리들 내면의 노래를 충동질하는 감각들’이라고 말한다. 대관령 등 길을 걷고 있으면 내면의 졸고 있는 감정들이 소름 돋듯 깨어나는 것을 느낀다. - 본문 중
영국에서 온 투명한 회색 눈의 청년은 여행 채널을 잘 보지 않는다고 한다. 20대 청춘의 절정을 멀고 먼 이국땅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 여행을 좋아하지 않느냐고 물으니 그 반대란다. 그는 자기가 저기 있어야 하는데 질투가 나서 못 보겠다고 한다. 그럼 그렇지. 성인이 된 후 자기네 나라를 떠나 아메리카 대륙에서 공부를 하고, 중동지역과 아시아, 일본을 거쳐 현재 한국에서 살고 있는 그가 여행의 미치광이가 아니라면 이상한거지. 여행 속에서 살아가는 그도 항상 여행을 갈망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현재 한국에서 일하는 기간이 끝나면 약 1년간 세계 여러 나라를 여행하기를 희망하고 있다. 또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 자연유산 등을 순례하는 여행도 하고 싶다고 한다. 그럴 때 나는 그의 실현 가능한 희망이 엄청 부럽다. 내가 그래야 하는데 하면서 말이다. 여행서도 그렇다. 좋은 여행서는 읽는 내내 항상 언제 가면 좋을까를 고민하는 목마름이 동반된다. 이 책은 세상의 수많은 아름다운 길을 향해 적당히 낡은 스니커즈를 질끈 동여매고 혼자서 떠나는 초보 여행자를 위한 좋은 안내서이다.
봄, 여름, 가을, 겨울에 가면 좋은 국내의 잘 알려진, 또는 숨겨진 여행지들이 계절별로 소개되었다. 유용한 트레킹 정보, 추천하는 달, 함께 가면 좋을 사람들도 알려준다. 예를 들면 막 사랑을 시작한 연인들, 사랑하고 싶은 사람과 함께, 이건 아직 사랑하는 사이가 아니라는 거다. 친구 같은 엄마, 사이가 멀어진 친구 등 정말 우리에게 이런 소소한 많은 사람들이 연결되어 있는데 함께 여행할 사람들을 이렇게 분류한 여행서는 처음이다.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읽고 가면, 혹은 가져가면 좋을 책, 음악도 소개한다. 경남 하동 섬진강 매화마을 방문하기 전, 도서관에 들러 아베 야로의 <심야식당>을 빌려라. 그리고 박강수의 <꽃이 바람에게 전하는 말>이란 노래를 다운받아둔다. 원래 봄이 오기 직전이 가장 추운 법, 정말 이 날씨에 매화가 피었을까 싶은 꽁꽁 언 날, 하동 섬진강 마을로 가는 관광버스를 타고 가보자. 몇 년 전 잊지 못할 사람들과 생전처음 매화 꽃구경에 나선 적이 있었다. 관광버스에 익숙하지 않은 탓에 새벽부터 버스를 놓치지 않으려는 긴장감에 흐드러진 매화구경을 실컷 하고는 다음 날 감기몸살을 앓았지만 그 특별한 여행은 아직도 생생하다. 이 책에는 지하철로 가는 남산 산책로부터 경기도 용인의 식물원, 양평의 옛 고갯길, 인천, 강원도, 전라도, 충청도, 남해의 섬, 제주의 올레길까지 우리나라의 거의 모든 여행지가 실려 있다. 들어는 보았으나 가보지 못한 곳이 아직도 꽤 많다. 올 겨울 계획하는 여행이 끝나면 봄부터는 이 책과 함께 평화롭고 충만한 마음으로 다시 여행을 시작할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