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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gez-Moi (Paperback)
Desarthe, Agnes / POINTS / 2007년 8월
평점 :
날 먹어요
아녜스 드자르트/현대문학
파리의 한적한 동네에 간판도 없는 허름한 식당이 문을 열었다. 메뉴를 홍보하는 전단지 한 장 없어 지나가는 사람들은 이것이 식당인지, 커피숍인지 꽃집인지, 그냥 누가 사는 집인지 모를 수밖에 없다. 원래 그 지역 사람이었으나 갑자기 사라져 몇 년간 보이지 않던 여자가 혼자서 불쑥 식당을 차렸다. 대출을 받아 가게를 얻고, 혼자서 장을 보고, 주방을 정리하고, 저녁에는 식당 홀의 소파 한 켠에서 잠을 잔다. 그러니까 이 여자는 의지할 사람 하나 없는 아주 가난한 중년의 여자다.
이 여자, 미리암은 식당 문을 닫은 저녁에 주방의 싱크대에 들어가 목욕을 하며 이런 생각들을 한다.
‘나는 살아남는 훈련을 아주 열심히 했다. 그래, 바로 그거다, 그것이 나의 노하우, 아니면 천부적 재능이다. 내가 단지 쉽게 적응하는 것만은 아니다. 적응하는 것 자체가 날 열광시킨다. 그것은 어린 시절로부터 유래된 것일까? 예를 들어 그 개수대, 나는 거기에 몸을 담그면서 욕조가 없는 것을 아쉬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제조업자가 익살스럽게도 거기에 망원경처럼 포개어 넣고 빼는 방식의 수도꼭지와 샤워기 꼭지를 달아놓을 생각을 한 것을 기뻐한다.’ -책중
어떤 일로 삶이 한 순간에 엉망진창이 된 이 여자는 가족을 떠나 한동안 서커스단의 식당에서 일했다. 서커스단이 추방되는 날 일자리를 잃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요리를 시작하기로 한 것이다. 저녁에 돌아가 누울 작은 방 한 칸 없지만 이 여자는 극단적인 절망에서 벗어난 것 같다. 그녀의 독백에서는 희망과 사랑과 열정 같은 삶의 긍정적인 요소를 볼 수 있다. 절망과 죽음의 나락에서 겨우 살아나와 옷매무새를 가다듬는 그녀에게 한두 명 이웃이 생기고 친구가 생긴다. 그녀의 요리를 좋아하는 단골들이 늘어난다. 어느덧 식당은 문전성시를 이루는데 그녀는 아직 행복하지 않다. 그녀 삶의 가장 중요한 것들이 남았다.
이 책은 불행한 한 여인이 요리를 통해 자아를 찾고 행복해 지는 이야기가 아니다. 이 책의 매력은 겉으로 보이는 그녀의 성공과 행복 스토리가 아닌 어느 날 홀연히 가족을 떠나야 했던 그녀의 아픔과 숨겨진 이야기, 그리고 요리로 세상 사람들과 사랑을 나누는 미리암의 독백에 있다. 여성과 사랑, 인생의 근원적인 고민들을 다룬 중요한 한 편의 이야기가 ‘음식’과 버무려졌다. 마음도 몸도 쓸쓸하고 배고프고 허전할 때가 있다. 감탄이 나올 정도로 맛있고 아름다운 화려한 식탁에 초대받고 싶은 날, 그렇게 비싸지는 않지만 맛있는 음식을 배불리 먹고 다시 이 책을 읽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