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치명적 배후, 성性 - 상식과 몰상식을 넘나드는 인류의 욕망
이성주 지음 / 효형출판 / 2010년 4월
평점 :
품절


역사의 치명적 배후 성
이성주 지음/효형출판

이창동 감독의 영화 ‘시’를 봤다. 아직도 너무 아름다운 여배우 윤정희의 노련한 연기와 작가가 말하는 ‘시’와 ‘삶’에 대해 오래도록 고민하게 하는 영화다. 감독은 이 책의 주제인 성에 대해서도 의미 있는 시선을 보낸다. 주인공은 예순이 훌쩍 넘은 나이에도 소녀 같은 감성을 지닌 할머니이다. 그녀는 시가 쓰고 싶어 문화원에서 시를 배우고 있다. 딸이 맡긴 중학생 손자를 돌보며 일주일에 두 번 중풍에 걸린 노인을 씻기는 일을 하며 근근이 살아가는데 어느 날 목욕시키는 할아버지가 갑자기 그녀를 붙잡는다. ‘죽기 전에 한번이라도 잠자리를 하고 싶다고...’ 너무 놀라 뛰쳐나와 다시는 그 집에 일하러 가지 않겠다고 하던 그녀는 삶에 이리저리 휘둘리며 다시 그 할아버지를 찾아 간다. 비아그라를 먹이고 목욕을 시키며 목욕탕에서 그와 섹스를 한다. 죽기 전에 한 번만 이라도 하고 싶다는 그를 불쌍히 여긴 것인지, 막다른 골목에서 그와의 섹스를 탈출구로 선택한 것인지.... 두 사람의 섹스는 슬프고 아름답다. 목욕탕 차가운 바닥에 앉아 여자를 안고 섹스를 하는 그 노인의 표정은 참 평화로웠다. 중풍으로 일그러져 있던 얼굴이 편안하게 펴지며 미소조차 짓고 있다. 아직 나는 이렇게 여자를 안을 수 있다, 아직 나는 이렇게 살아있다는 확인, 그는 중풍으로 며느리의 냉대를 받으며 3층에 감금된 노인이 아니라 그것을 할 때는 한 남자로 다시 회복된 것이다. 성을 이렇게 현실적이고 절절하게 그려 낼 수 있다니...

노인이라도 죽기 전에 한번은 근사하게 해 보고 싶은 것, 사랑과 인생의 중요한 화두인 성, 이 책은 인류의 역사 속 ‘성’에 대해 무겁지 않고 솔직하고 재미있게 접근한다. 저자는 부끄럽거나 숨겨야 할 성, 음지에서 쉬쉬하며 낄낄대는 성이 아니라 인간 삶의 중요한 문제인 성을 밝은 대낮으로 끌어내 보고자 이 책을 썼다고 말한다. 전쟁 등 위기 때의 성은 어떤 했는지, 정조대, 성을 죄악시 했던 중세의 교회 등, 억압된 성의 역사, 몸, 의학, 과학으로서의 성, 남자와 성, 각 나라의 성풍속 등 흥미진진한 읽을거리를 제공한다. 국방력 강화를 위해 전 국민의 섹스를 장려한 프로이센의 국왕, 미국 대통령의 유명한 섹스 스캔들 등 역사 속 가십거리도 다루지만 잘못된 성 풍속에 대한 오해를 바로잡을 수 있는 유용한 지식도 많다. 또 사회적 약자에 대한 성적 억압과 폭력, 여성의 성 문제 등도 진지하게 다루고 있다.

여성은 순결, 임신과 출산 등 남성보다 성적 약자 일뿐 아니라 그 문제도 복잡하다. 법으로 낙태를 금한 나라의 경우 여성들은 낙태를 위해 해외원정을 떠나기도 하는데 가난한 여성들은 어쩌란 말인가? 그런데 ‘파도 위의 여성들’이란 특별한 병원이 등장했다. 이 병원은 네덜란드 출신의 여의사들이 운영하는 선상에서 운영되는 병원이다. 목숨의 위험을 무릅쓰고 불법낙태시술을 받거나 해외 낙태 원정을 떠날 돈도 없는 여성들을 위해 국경을 넘어 바다 위에 산부인과를 차렸다. 낙태를 원하는 여성들이 인근의 바다로 나와서 시술 받을 수 있도록 어떤 날은 프랑스 해안에서 어떤 날은 아르헨티나 해상으로 출항한다. 과감히 선상병원을 차린 젊은 여의사들에게는 박수를 보내지만 죄인이 되어 조심스럽게 선상병원으로 갈 수 밖에 없는 여성들이 아직 많다는 게 안타깝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