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헤란의 지붕
마보드 세라지 지음, 민승남 옮김 / 은행나무 / 2010년 3월
평점 :
절판


테헤란의 지붕
마보드 세라지 지음/은행나무

이 기분은 오래전에 잃어버렸던 첫사랑을 오랜 세월이 흐른 후 다시 만난 것 같다. 단아하고 아름다운 문장, 마음에서 우러나온 온화하고 따뜻한 가족애, 목숨을 건 우정과 사랑, 불멸의 사랑을 노래하는 열정, 모든 게 만족스럽다.
‘당신도 열일곱 살 일 때가 있었나?’ 책 속 누군가의 물음이 오랜 여운으로 남았다. 나에게도 열일곱의 가슴 뛰는 심장이 있었다. 연인의 집 정원에서 여름 내내 차 마시며, 웃고, 비밀스런 느낌을 나누었던 그들처럼 우리에게도 꿈결 같은 시간의 한 때가 분명 있었다. 아무리 오랜 시간을 놀아도 헤어져야 하는 시간이 늘 아쉽기만 했던 친구들이 있었다. 지금은 흘러가버린 그 시간들을 추억하게 한 오래된 영화 같은 이 책이 참 좋다.

‘그것’을 가진 열일곱 살의 청년 파샤는 전형적인 이란의 중류층 가정의 아이다. 흙먼지 이는 좁은 골목, 하얀 지붕과 벽을 가진 집이 빼곡히 들어찬 테헤란의 작은 마을에서 산다. 문학과 영화를 좋아하는 감수성 예민하고 똑똑한 파샤는 친구 이상의 친구, 소울 메이트인 아메드와 늘 함께이다. 그들은 매일 밤 ‘테헤란의 지붕’에서 고민을 나누고, 사랑과 삶에 대해 이야기한다. 지붕은 그들의 아지트며, 잠자리이며 연인을 바라보는 사랑이 싹 트는 장소이며, 삶을 마감하는 곳이기도 하다. 테헤란의 지붕은 우리의 집처럼 그들 삶의 일부에 속한다.

파샤에게 사람들은 가끔 ‘그것을 가졌다’고 말한다. ‘그것’, 사람들은 한 마디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표현할 수 없는 무한의 가치를 대명사인 ‘그것’으로 표현하는 것 같다. 그것은 고결함, 존귀함, 순수, 사랑 등, 인간이 추구하는 아름다운 모든 가치를 말하는 게 아닐까. 아무튼 ‘그것’을 가진 파샤는 모든 아름다운 것들이 영원히 지켜지기 어려운 것처럼, 자신이 결코 원치 않고, 생각지도 못한 격동의 시간들을 보내게 되는데...

마보드 세라지는 파샤가 미국 유학을 결심한 것처럼 그가 열아홉 살 때 미국으로 건너왔다. 그의 아버지는 이란의 유명한 시인이었는데 그의 문장도 시처럼 담백하고 간결하다. 그의 책은 내가 이슬람권 나라들에 대해 품었던 두렵고 어두운 이미지를 바꿔주었다. 물론 정치적, 사회적으로 더 폐쇄적이고 강경한 종교와 인습에 신음하는 곳도 있겠지만 이란의 상황은 여러 가지 면에서 비교적 나은 것 같다. 국민들은 독재정권에 대한 강한 불신과 저항의식을 품고 있고, 자신들의 삶을 바꾸기를 열망한다. 불의에 항거해 꽃 같은 청춘을 불사르는 이들이 등장하며 사람들은 두려움에 떨면서도 그들을 추모하며 존경한다. 부모 자녀간의 유대관계도 우리의 할머니, 할아버지 세대처럼 끈끈하다. 예의와 명예를 중요하게 여기며 영원한 사랑을 믿고 꿈꾸는 아름다운 사람들이 사는 곳, 이란을 이렇게 멋지게 소개해준 작가에게 뜨거운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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