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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경찰의 밤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이선희 옮김 / 바움 / 2010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교통경찰의 밤
히가시노 게이고/바움/279p./2010년
새해 첫날, 여자 친구 집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다음 날 아침에 나와 보니 갓길에 주차해놓았던 차가 찌그러져 있다. 차 후방등이 깨지고 차체가 쑥 들어가 보기 흉하게 일그러져 있다. 어젯밤 좋았던 기분도 식어버리고 드라이브를 가려고 들떴던 맘이 싹 가셔버렸다. 남의 차를 망가뜨려 놓고 메모 한 장 없이 도망쳐버린 놈이 어떤 놈일까 부글부글 끓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여자 친구의 성화에 경찰서에 신고는 했지만 갓길에 불법주차 했다고 실컷 경찰의 잔소리만 듣고 기분만 더 더러워지고 말았다.
그러던 차에 누군가에게 걸려온 전화, 차 사고를 일으킨 사람이 너무 경황이 없어 이제야 전화를 드렸다며 모든 것을 배상하겠다고 한다. 설마 범인이 나타날까 기대도 하지 않았던 터에 한눈에 보기에도 빵빵한 직장에 경제적 배경이 튼튼해 보이는 가해자를 만났으니 웬 횡재냐 싶다. 이참에 차를 싹 뜯어고치고 고액의 수리비를 청구해 전액 받아냈다.
그런데 이 사람, 자꾸 가는 곳마다 마주친다. 여자 친구와 스키를 타러 가기로 약속한 다음 날 또 다시 마주친 이 남자, 스키장 가까이에 있는 자신의 별장에 며칠만 머물러 달라고 간절히 부탁한다. 마지못한 것처럼 승낙했지만 고급 별장에 공짜로 머물며 스키를 탈 수 있다는 행운에 들떠 달려간 별장에서 예기치 않았던 일들이 일어나는데.... 불법주차와 이 사람의 초대는 어떤 사연이 숨겨져 있었던 걸까? 이것은 <불법주차>란 네 번째 이야기에 나온다.
현대인의 필수품, 자동차는 안락함, 편리함, 빠른 속도로 삶의 질을 높여주지만 교통사고로 죽거나 다쳐 한순간 평온했던 삶이 처참히 망가지는 ‘달리는 흉기’로 돌변하기도 한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교통경찰의 밤>은 제목처럼 인적이 드문 한밤중에 일어난 교통사고를 소재로 한 6편의 단편소설이다. 작가는 용의자 x헌신, 백야행 등으로 우리나라에 알려졌다. 자동차 부품회사에서 엔지니어로 일한 경험을 토대로 자동차 사고에 관한 글을 썼다고 한다. 한순간의 생사가 엇갈리는 사고를 다루는 ‘교통경찰’과 ‘밤’이라는 시간대가 주는 어둠의 미스테리함이 복합된 개성적인 글은 긴박하고 흥미진진했다.
가장 좋았던 것은 앞서 소개한 <불법주차>이고 작가의 치밀한 논리가 돋보이는 <천사의 귀>와 시간가는 줄 모르고 본 한 편의 드라마처럼 후련한 권선징악을 담고 있는 <버리지마세요>도 좋았다. 기시 유스케의 소설들처럼 장편을 기대했다가 단편들을 만나니 한 이야기에 깊이 집중할 수 없어 아쉬운 점도 있었다. 그러나 명성답게 교통사고란 흔한 소재로 다양한 사람들의 삶과 그들의 심리, 내면의 이야기를 평범하지 않게 풀어나가는 솜씨는 탁월했다. 작품을 통해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전달하려는 능력이 뛰어난 이 작가의 다른 작품들에 슬슬 구미가 당겨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