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날의 파스타 - 이탈리아에서 훔쳐 온 진짜 파스타 이야기
박찬일 지음 / 나무수 / 2009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2010년 2월 1일
보통날의 파스타
박찬일 지음/나무[수:]/281p./2010년 1월

파스타 이야기를 읽으니 재작년 방송되었던 KBS 명작 다큐멘터리 <누들 로드>가 떠오른다. 고화질 TV로 약 이천 오백년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선명하게 재현해낸 인류 음식 문명의 발자취는 신비로웠다. 인류 최초의 국수는 중국 서쪽 끝 중앙아시아의 타클라마칸 사막 지대에서 발견되었다. 고대인들의 무덤에서 나온 손으로 비벼 만든 짧은 국수 가닥이 그것이다. 세월이 흐르면서 서양의 유럽과 동양의 아시아가 실크로드를 오가면서 중앙아시아에서 만났다. 작열하는 태양과 물 한 모금, 풀 한포기 귀한 황량한 사막은 동서양의 물자와 사람이 만나면서 흥청거리는 도시가 되었다. 사람이 모이는 곳에 큰 장이 서고 돈과 음식과 물건들이 넘쳐났다. 거기서 상인들은 선채로 국수를 먹었다. 가는 면발, 따끈한 국물에 야채와 고기가 어우러져 진한 맛을 내는 따끈한 국물, 후루룩 하며 부드럽게 목을 넘어가는 질감, 그 후로 국수는 전 세계 사람들을 열광시키는 핫한 음식이 되지 않았을까.

동서양을 막론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국수를 참 좋아하는 것 같다. 국수만큼 다양한 요리법으로 만들어지는 음식이 또 있을까. 쫄면, 매운 비빔국수, 두툼하게 썬 칼국수, 간장에 찍어먹는 냉 메밀국수, 얼큰한 라면 등 여름에는 시원하게, 겨울에는 따끈하게 먹는 국수 한 그릇은 열 반찬이 부럽지 않다. 어떤 재료를 넣고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요리했느냐에 따라 각기 다른 맛을 내는 국수, 밀가루 요리가 그다지 몸에 좋지 않다는 소리를 들어도 도저히 끊을 수 없는 매력이다. 팔순이 넘으신 우리 어머니가 좋아하는 국수요리는 참 특별하다. 소면을 잘 삶아 차가운 물에 투명하게 헹구어낸 국수 한 줌을 시원한 맹물에 담근다. 그리고 설탕을 두 세 숟가락 듬뿍 넣는다. 휘저어 후루룩 드신다. 내가 아무리 설탕이 몸에 좋지 않으니 멸치국물에 여러 가지 야채를 넣어 만든 잔치국수나 비빔국수를 드시라고 해도 아니라고 하신다. 우리 어머니가 또 하나 즐기는 국수는 한 여름 시원한 콩국물에 소면을 말고 설탕을 듬뿍 넣어 먹는 국수다. 어머니에게 국수는 딱 2가지 ‘설탕물 맑은 국수’이거나 ‘설탕물 콩국수’뿐이다.

현직 요리사 박찬일이 소개한 파스타는 내가 갖고 있는 파스타의 선입견을 버리게 했다. 이탈리아의 파스타는 ‘우리 어머니의 그 국수’처럼 단순하고 빠르며, 맛이 분명하고 간결하다. 여러 가지 맛이 섞이는 걸 싫어하고 다양한 재료가 한 요리에 들어가는 것도 싫어한다. 저자가 말하는 파스타 만들기 핵심 팁은 다음과 같다. 넉넉한 맑은 물에 바닷물 맛이 날 정도로 좋은 소금을 넣고 파스타를 삶는다. 올리브유에 마늘과 야채, 토마토소스, 혹은 고기 소스 등 기호에 맞는 재료를 넣고 화이트 와인을 뿌린 후, 뚜껑을 덮고 좀 익힌다. 재료가 익으면 잘 익은 파스타를 건져 소스가 면에 잘 스며들도록 비벼내면 끝이다. 처음 보는 재료나 향신료, 와인이 없다면? 안 넣으면 된다. 그의 쉽고 재미있고 명쾌한 파스타 요리법을 머리로 따라 해보니 괜히 파스타에 자신감이 생긴다. 오늘 밤 수퍼에 가서 파스타 한 봉지만 사면 당장이라도 따끈하고 감칠맛 나는 카르보나라나 홍합 스파게티 한 접시 예쁘게 식탁에 내 놓을 수 있을 것 같다.

우리나라의 김치와 국, 비빔밥이 재료에 따라 수천, 수만 가지를 만들 수 있듯, 파스타도 마찬가지다. 지역에 따라 면의 종류에 따라, 소스의 종류에 따라 그 수를 헤아리기 힘들다. 남쪽 끝 섬 지방인 시칠리아부터 부유한 이탈리아 북부의 대도시까지 저자가 소개하는 파스타는 참 다양하다. 비싸지만 냄새 고약한 치즈부터 멸치, 고등어 등 흔한 해산물, 쇠고기, 돼지고기 등 육류를 주재료로 하는 파스타, 달랑 마늘 하나와 올리브유로 맛을 내는 파스타, 우리나라의 만두 같은 파스타를 국물에 담가먹는 음식까지, 이탈리아 사람들이 먹는 파스타를 통해 이탈리아의 향과 맛이 고스란히 전해져온다.

제목이 ‘보통날의 파스타’라 ‘보통날’이 뭘까 궁금했다. 보통날에 평범한 사람들이 먹어왔고 지금도 먹는 파스타, 이탈리아의 파스타에서는 급격한 산업화, 도시화로 앞만 보고 무서운 속도로 달려가는 현대 기계 문명에 저항하며 과거와 현재를 소중히 여기는 이탈리아인들의 생각을 읽을 수 있다. 자신들의 어머니와 할머니, 그 어머니와 어머니들이 만들어온 파스타 만드는 법을 고수한다. 그들은 고기 넣고, 푹 삶아 뭉근하게 조린 진한 국물에 탱탱한 파스타를 비벼낸 그 파스타, 지중해의 강렬한 햇살을 받아 빨갛게 숙성한 토마토를 중불에 오래 끓여 갖은 재료와 섞어먹는 그런 파스타를 사랑한다. 생각해보니 이탈리아 요리와 한국 요리는 꽤 닮은 것 같다. 전통을 사랑한다는 점이나 한 가지 음식에 셀 수없이 많은 종류가 있다거나, 소박하고 정감이 넘치는 음식문화까지 비슷하다. 이탈리아와 우리는 성격도 비슷해서 화끈하고 급한 성격에 주전선수가 줄줄이 퇴장당해 우리에게 큰 기쁨을 안겨준 지난 2002 월드컵 때가 생각나 슬슬 웃음이 난다. 레몬처럼 예쁜 한 권의 책으로 이탈리아 요리의 매력과 그들의 삶을 이해하게 해 준 저자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마음 따뜻하고 열정적인 요리사가 지중해에서 가져온 싱싱하고 따끈한 파스타의 비법을 식탁에서 잘 활용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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