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 피크닉 민음 경장편 2
이홍 지음 / 민음사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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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 피크닉
이홍/민음사/226p./2009

올해 성탄절은 어땠었지? 성탄절 이브는 어땠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다른 날들과 비슷하게 보냈을 것이고, 성탄절에는 아침 예배를 드리고 가족들과 식사를 하러 갔었다. 분위기 좋고 비싼 곳은 아니었지만 오랜만에 따뜻한 구들방이 있는 아늑한 식당에서 식구들과 마주 앉아 먹는 음식은 크리스마스라 조금 더 흥분되고 맛있었다. 밥 먹은 후 시부모님을 모시고 양수리 두물머리를 산책했다. 특별하지는 않지만 편안했던 시간들. 중고등부와 청년 때만해도 성탄절 전후로는 참 바빴었다. 강추위를 아랑곳하지 않고 새벽송을 돌았고 교회 아이들과 게임(온라인 게임이 아닌 진짜 몸으로 하는 게임)하며 밤새 노느라 너무 피곤해서 성탄절 당일에는 깜박 잠이 들어버려 예배도 못 드렸던 무수한 성탄절이 떠오른다.

이 책에 등장하는 은영, 은비, 은재, 세 남매의 모습을 보니 내가 보냈던 그 옛날의 성탄절을 하루만이라도 돌려주고 싶다. 그 때도 강남은 있었겠지만 우린 강남에 관심이 없었다. 세상도 잘 몰랐다. 가난하지만 따뜻한 희망으로 새벽을 가르며 노래하고, 웃고 떠들며 놀았던 그 시절을...
은영이네도 아마 로또에 당첨되기 전에는 그랬을 것이다. 강남은 우리처럼 그냥 이 땅 어딘가에 있는 먼 동네일 뿐 나와는 별 상관없는 동네. 비교적 공부를 잘했던 은영이 때문에 같이 위장전입 해야 했던 동생들과 먼 거리를 통학하는 고생정도는 막상 강남에 입성해서 겪는 생활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아무리 열심히 공부하고, 좋은 대학을 나와도 하늘의 별따기 같은 취업의 벽 안에 갇힌 은영, 진짜 강남 사람들처럼 입고, 먹고, 살기 위해서 수많은 강남 킹카 오빠들을 사귀는 은비, 강남에 한복판, 허물어져가는 아파트의 방 한 칸, 그 방안의 컴퓨터에 갇힌 은재.

벼락에 맞을 확률보다 16배나 희박하다는 로또에 당첨된 이 가족은 강남으로 오지만 강남에서의 삶은 이전의 삶보다 행복하지 않다. 그렇다고 로또 이전의 삶으로 돌아가겠느냐고 묻는다면 이들은 뭐라고 할까? 나 같으면 뭐라고 할까? 이전으로 돌아가기는 싫고 그렇다고 강남에서 답은 안 나오고 말이다. 갑자기 돈벼락을 맞았지만 그 돈벼락으로 인해 더 궁핍해진 이 사람들. 사랑도, 마음도, 관계도, 삶의 희망도 상실해버린 살아 있지만 사는 것 같지 않은 이들 때문에 내 마음이 불편하다. 마음속으로 간절히 소망하던 어떤 일이 이루어지고 나면 모든 삶의 문제가 해결될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단지 그 문제만 해결된 것이다. 몇 억의 돈만 생겼을 뿐이지, 그 이후의 문제는 그대로 남는다. 아니 오히려 그 돈으로 인한 수많은 더 큰 문제들이 다가올 수도 있다. 간절히 원하던 대학에 들어가면 인생의 모든 문제가 해결될까? 백마 탄 왕자님과 결혼했다. 인생의 불행이 끝인가? 결혼의 현실이 곧 시작된다. 인생이 다 그런 것 같다. 은영, 은비, 은재가 꿈꾸던 튼튼하고 푸르른 소나무 성탄절 트리를 잃어버리지 않도록 정신 차리고 살아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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