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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림슨의 미궁
기시 유스케 지음, 김미영 옮김 / 창해 / 2009년 12월
평점 :
절판
크림슨의 미궁
기시 유스케 지음,김미영 옮김/창해/418p./2009
어느 순간 갑자기 깨어나 보니, 도무지 현실 세계라고는 믿어지지 않는 이상한 장소에 자신이 버려져 있다고 생각해 보라. 심홍색의 흙, 거대한 바위, 선명한 줄무늬가 기괴한 모습으로 온 세상이 붉은 색 천지인 여기는 도대체 어디일까? 더 이상하고 기분 나쁜 것은 자신이 여기에 무엇 때문에, 어떻게 왔는지 그 경위가 전혀 생각나지 않는 것이다. 자신이 갖고 있는 것은 게임기 하나와 약간의 식량 뿐, 그리고 게임기에서 정체불명의 존재로부터 지시가 내린다. 서서히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게임 참가자들이 모여들고, 현실의 목숨을 건 게임이 시작된다.
게임의 무대는 화성이다, 그러나 실제 서바이벌이 벌어지는 장소는 지구상의 독특한 환경과 기후를 갖고 있는 호주의 벙글벙글 국립공원 안이다. 벙글벙글 국립공원은 오스트레일리아 대륙의 북서부, 킴벌리 지구에 있다. 한 여름의 우기가 시작되면 국립공원은 관리인조차 철수하고 차량도 출입할 수 없는 사실상 폐쇄된다. 게이머들은 자신이 택한 경로로 이동해 게임의 생존을 위한 아이템을 획득하고 그것들을 이용해서 각 체크 포인트를 통과해 최종 결승점까지 도달해야 한다. 이 게임은 모두가 협력하여 윈-윈 할 수 있는 절대 게임이 아니다. 경쟁으로부터 살아남기 위해서는 다른 경쟁자를 가차 없이 없애버려야 하는 제로섬 게임이다. 게다가 게임 주최자들은 신사적이지 않다. 곳곳에 함정을 숨겨 놓았고, 사소한 선택에도 목숨이 위태로운 지뢰밭이 곳곳에 놓여있다.
참가자들은 대부분 현실 세계의 실패자들이다. 실업자, 노숙인, 애로만화작가 등 모두 어떤 삶의 새로운 계기가 필요하거나, 약속된 상당한 액수의 돈이 필요해서 게임에 지원한 사람들이이다. 컴퓨터 게임이나 어떤 가상 게임을 단순히 재미로, 가끔 하는 사람들을 제외하고, 게임에 미친 듯이 몰두하고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사람은 대부분 현실 부적응 자 일 경우가 많듯 이 게임도 마찬가지다.
게임이 진행되면서 사람들은 서서히 미쳐간다. 살아남으려면 죽이고 무엇이든 닥치는 대로 먹어라. 그것이 사람이든, 동물이든...
그런데 도대체 누가, 어떤 목적으로 이런 서바이벌 게임을 주최했을까?
서서히 밝혀지는 사건의 전말은 각박한 세상에서 인간성을 상실해 가는 현대인들의 추악한 자화상을 보듯 섬뜩하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고 실감나게 풀어가는 작가의 솜씨는 역시 ‘기시 유스케’다. 작년 여름 한신 대지진을 배경으로 다중 인격을 가진 한 소녀를 주인공으로 쓴 <13번째 인격>은 꽤 인상적이었다. 인간의 심리와 다중인격이라는 흥미로운 주제를 개성 있는 인물과 긴박한 사건 속에 멋지게 풀어냈었다. 그런데 이 책, <크림슨의 미궁>은 또 새롭다. 치열한 서바이벌 게임 같은 이 세상 에서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치는 내 모습을 보는 것 같다. 호주 벙글벙글 국립공원의 신비한 자연 속에서 도마뱀을 잡아먹으며 생의 의지를 불태우는 주인공은 심약한 심성을 가졌으면서도 마지막까지 생의 의지를 포기하지 않는 매력적인 캐릭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