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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균 그리고 이순신
이은식 지음 / 타오름 / 2009년 10월
평점 :
원균 그리고 이순신
이은식/타오름/372p./2009년
우리 역사의 암흑기는 언제였을까? 고대의 삼국과 통일신라사, 중세의 고려사는 제쳐두고라도 근대이후는 아마 일본의 침략과 관련된 시기일 것이다. 그 중 수많은 인명과 재산, 문화유산, 국토전체가 전쟁으로 초토화된 사건을 꼽으라면 조선 중기의 임진왜란, 근대의 일제 강점기 그리고 해방 후 소련과 미국의 세력 아래 동족 간에 피를 흘린 6.25전쟁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특히 조선 중기 1592년(선조25)~98년(선조31)에 일어났던 임진왜란은 들추고 싶지 않은 뼈아픈 역사의 한 시기였다. 그러나 많은 어려운 일들을 겪고 그것들을 극복해낸 사람은 성숙하고 강인해지는 것처럼, 나라도 마찬가지다. 7년간의 임진왜란은 수많은 인명과 물질적 정신적 손해를 가져왔지만 이 사건은 백성과 국가는 자신들을 돌아보고 국내외의 상황에 어떻게 대처할지를 고민하는 등 이후의 변화의 발판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또한 무방비로 살육되어지는 백성과 짓밟혀가는 나라를 지키기 위해 자신을 던진 이순신, 의병들, 나라를 걱정하는 수많은 인물들이 일어났다.
이은식의 ‘원균과 이순신’은 임진왜란 속 두 인물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시도한다. 선조실록과 인조 때 만들어진 선조수정실록의 차이를 들어, 우리가 알고 있는 이순신과 원균의 관계, 전공, 업적 등이 후대 역사가의 잘못된 기록에 의해 상당부분 왜곡되었다고 주장한다. 선조수정실록은 1623년, 인조 때 이식과 서인들이 적극적으로 편찬을 주장하여 선조실록과 개인의 문집, 비문, 구전 등을 모아 선조실록을 수정한 것이다. 그런데 이 선조수정실록에 선조실록에는 기록되지 않은 원균에 대한 구절들이 이순신과 관계있는 문벌이나 당파에 치우친 편협한 기록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원균에 대한 재해석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원균은 이순신을 모함하지 않았고, 이순신의 투옥은 스스로 파 놓은 함정에 빠진 것이다. 이순신은 원균을 빼고 단독으로 장계를 올려 공을 가로채려 했으며, 이것을 분하게 여긴 원균의 휘하 부하들과 이순신의 부하들의 반목으로 두 진영의 사이가 점점 나빠졌다. 이순신이 선조의 거듭되는 부름에 응하지 않아 받은 벌을 원균의 탓으로 몰아간 기록도 잘못된 것이라고 적고 있다. 원균은 자신이 청했을 때 이순신이 도와주지 않고 조정으로부터의 영이 내려와서야 군대를 움직였다고 이순신을 원망한다. 그러나 무언가 이 석연찮은 기분은 왜일까?
저자의 말대로 선조수정실록을 기록한 학자들이 이순신과 혈연, 문벌로 관련된 사람들로 이순신을 영웅으로 부각시키기 위해 원균을 일방적으로 매도했을까? 그렇게 만들어진 역사가 백성들의 입에서 입으로 오늘날의 이순신의 신화를 만들 수 있을까?
에드워드 카의 말처럼 "역사란 역사가와 사실 사이의 부단한 상호작용의 과정이며, 현재와 과거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 듯 임진왜란이란 사건 속 인물들에 대한 현재의 재평가와 재해석은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이순신은 영웅인가? 원균은 간신인가? 등의 이런 접근 방법은 기분이 썩 좋지 않다. 이것은 마치 훈구파니, 사림이니, 동인이니, 서인이니, 학벌, 지연의 편 가르기 식 해석이란 느낌이 든다. 원균도 뛰어난 장수였지만, 우리에게 이순신은 영웅이었다. 우리는 왜 영웅을 가지면 안 될까? 영웅은 인간이 아니다? 인격과 삶, 모든 면에서 완벽하지 않으면 영웅이 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영웅인지 아닌지 생각하지 않고 타인과 인류를 위해 최선을 다해 살아간 사람, 이 사람을 영웅이라고 불러도 좋지 않을까? 국가의 존망이 걸린 생지옥 같은 최전방의 전장에서 무능한 조정과 힘없는 군대의 지도자로 목숨 걸고 싸운 사람들, 이 사람들이 우리의 영웅일 것이다.
임진왜란이란 초유의 전시상황과 조선 중기의 정치적 상황, 그리고 전쟁 속 여러 인물들, 그들은 지금까지처럼 앞으로도 숱한 평가를 받을 것이고 미래의 거울이 될 것이다. 이런 당혹감을 안겨주는 저자의 도발적인 발문 앞에 다수의 독자들의 평가는 어떨지 사뭇 궁금해진다.
'현대인은 자기가 지나온 어둠을 뒤돌아보고 열심히 응시한다. 그것은 거기서 흘러나오는 희미한 빛이 그가 나아가려고 하는 미래의 암흑을 밝혀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 <알기 쉽게 풀어쓴 역사란 무엇인가?>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