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
온다 리쿠 지음, 박수지 옮김 / 노블마인 / 2009년 3월
평점 :
절판



내가 생각하는 판타지는 반지의 제왕이나 해리포터, 코로보쿠로 나라 이야기,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 야, 우리 기차에서 내려 같은 그림책들이다. 아름다운 색깔의 퍼레이드가 펼쳐지고 무한한 자유를 누리며, 현실에서 쉽게 다가가지 못하는 존재들과 친구가 되어 마음껏 소리치고 한 바탕 뛰놀다 편안한 현실로 돌아오는 동화 속 안락한 나만의 판타지는 <나비>를 만나면서 깨어졌다.  


 온다 리쿠의 단편 모음집, <나비>는 미야자와 겐지의 <주문이 많은 요리점>과 비슷한 느낌이다. 아이들 동화라기엔 참 기괴하고, 오싹해서 마치 내가 그 낯선 숲 속의 요리점에서 통째로 요리되어지기를 기다리는 먹이 감이 된 것 같은 좋지 않은 여운이 꽤 오래 갔었다. 주문이 많은 요리점이 나이어린 독자들도 읽을 수 있는 판타지라면, <나비>는 18세 이상 등급 도장이 찍힌 어른들을 위한 판타지이다. 미지의 세상을 향한 지독히 힘든 모험의 끝에 엄마의 따뜻한 보살핌이 기다리는 대신, 보다 잔혹하고 섬뜩한 세상과 정면으로 만난다. 
 

  그런 마을의 이야기를 듣는다면 무언가에 등 떠밀려 한 밤중에 짐을 꾸려 떠날 것만 같은 곳, 땅 속에서 기괴한 돌 손이 자라는 마을, 은밀히 그 마을에 갔다 오는 것이 유행이라기에 어느 날 나는 아내와 함께 관광버스에 몸을 싣고 한 밤중에 어딘지도 모를 길을 달려 그 마을에 도착한다. 그 마을에 다녀온 지 며칠 후 아내가 정성들여 가꾸는 수선화 사이로 커다란 돌 손가락 두 개가 자라고 있다는 ‘관광 여행’,
나비가 가는 길을 쫓아 죽은 자의 목소리를 듣는 ‘나비사와 봄, 그리고 여름’은
서정적인 한 편의 영화를 보듯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영혼의 슬픔이 전해진다.
‘죄와 벌’, 선과 악의 혼란으로 마음이 무거워지는 ‘당신의 선량한 제자로부터’ 와 로또 복권의 ‘당첨자’ 라는 사실이 발각되면 당첨자를 죽이고 그 복권을 빼앗아도 합법적인 일이 되는 그런 세상들이 무시무시하고 화려하게 펼쳐진다.

한두 편은 작가의 상상력이 나의 상상력의 한계를 뛰어넘어 이게 무슨 말을 하려는 거지 싶은 것도 있지만 개인적 취향과 정서, 경험이 어우러져 재미있게 다가오는 작품들이 조금씩 다를 것 이고 아무리 이야기의 정령의 속삭임(‘야상곡’)을 듣는 작가라도 그의 작품 모두가 내 맘에 쏙 들어야 한다는 것은 너무 무리한 기대이리라.
환타지, 호러, 사랑의 아름다움과 슬픔, 상상력, 선악의 가치, 예술의 근원 등... 다양한 틀과 주제로 이루어진 그의 소설 한 편 한 편은 기괴하면서도 아름답고 끔찍하면서도 순수한 나비의 우아한 날개 짓으로 이야기에 목마른 독자들을 한껏 유혹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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