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4대 사화 - 무오사화.갑자사화.기묘사화.을사사화
김인숙 지음 / 느낌이있는책 / 2009년 2월
평점 :
절판


열두 살 연상의 여인에게 사랑을 느껴 아내로 삼았다가, 다른 젊은 여자들에게 자신의 몸과 마음을 줘버린 남자, 집안으로 보나, 성품으로 보나 무엇 하나 마음에 들지 않는 며느리를 평소 못마땅해 하던 차에 남편의 얼굴을 할퀴어 상처를 낸 사건을 빌미로 집안에서 내 쫓고 끝내 죽여 버린 시어머니,
죽으면서 자신의 피 묻은 옷을 꼭 간직했다가 자신의 어린 아들이 성장해서 자신을 찾을 때 전해달라는 복수의 유언을 남긴 여자.
어미 없이 외롭게 자라 무언가 늘 허기진 자신의 삶 뒤에 자신이 모르던 어마어마한 집안의 비밀이 숨어 있음을 알아버린 한 사람. 그리고 예고된 세상을 향한 그의 복수... 어느 막장드라마의 파란만장한 가족사도 이처럼 기가 막히지는 않을 것 같다.
이것은 예종에 이어 왕위에 오른 성종과 그 아들 연산군의 가족사이다. 자신을 낳아준 생모가 할머니와 아버지, 그 밖에 이권에 얽힌 사람들에 의해 사약을 받아 죽은 사실을 안 후 왕위에 오른 연산군은 생모인 윤씨 폐위와 사사 사건에 관계자들인 사림세력을 제거한다. 이것이 무오사화와 갑자사화이다. 성종이 훈구세력을 견제하기 위해 대거 등용해 실권을 쥐고 있던 사림세력은 연산군 때의 이 두 사화로 수백 명이 목숨을 잃고 정치적인 큰 타격을 입게 된다.
연산군이 폐위되고 중종이 왕위에 오르면서 사림을 등용하는 등 개혁정치를 펼치지만 급진적인 개혁세력의 힘이 커지면서 중종은 이들을 또한 내치게 된다. 이것이 나뭇잎에 꿀을 발라 벌레들이 갉아먹어 생긴 글자로 신진 사림 세력의 중심인물이었던 조광조와 그를 추종하던 사림들을 역적으로 몰아 죽인 기묘사화이다.
중종에 이어 왕위에 오른 인종이 6개월도 안되어 죽고, 중종의 두 번째 부인 문정황후에 의해 첫 번째 부인의 아들인 인종의 지지 세력인 사림들이 대거 죽거나 귀양을 가게 된 사건이 을사사화이다.
조선 중기의 왕들, 예-성-연-중-인-명-선으로 외우는 이 왕들 중 연산군, 중종, 인종, 명종 4대에 50년도 채 안 되는 시기에 일어난 네 번의 사화로 사림은 엄청난 핍박을 받게 된다.
갈등과 정쟁을 효과적으로 조절하고 견제하며 인재를 적재적소에 등용하여 나라를 이끌 왕권의 부재, 정치적 이상과 명분을 현실 정치에 잘 적용하고 화합하여 나라의 발전을 이끌어야할 정치그룹의 부재, 조선 중기의 백성들의 삶이 엄청나게 고통스러웠던 것은 이러한 이유들의 뻔한 결과일 것이다.
그 시간들은 또한 남쪽으로는 왜적들이 출몰하여 백성들을 유린하고, 북쪽으로는 여진족에게 침략을 당하고, 내부적으로는 의적들이 일어나 국가체제에 대항하는 혼란의 시대였다.
인물중심으로 쉽게 풀어쓴 저자의 4대 사화 이야기는 드라마를 보듯 편안하다. 몇 년 전 구혜선이 폐비 윤씨를 맡았던 <왕과나>와 더 오래전 영화배우 강수연이 ‘정난정’으로 주연을 맡았던 <여인천하>의 사건들이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하게 전개되며, 몇 개월에 걸쳐 TV 앞에 앉아 있지 않아도 단번에 정리가 되어진다. 구혜선의 윤씨는 이미지가 너무 청순가련한 듯 해 실제 인물과는 어울리지 않는 듯하고, 강수연은 정난정이란 인물에 참 잘 어울렸었다. 중국의 여제, 측천무후나 서태후에 비유되는 ‘문정왕후’가 주인공인 드라마로 <여인천하>란 제목도 적절한 듯하다.
그런 광란의 사건을 시간을 내어 흥미진진하게 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도무지 시끄러운 것이 싫어 일부러 외면하는 사람도 있다. 집안이 시끄러우면 집에 들어가기가 싫고, 발악하는 사람들의 광기가 버거운, 후자에 가까운 내게 이 책은 그런 혼란의 시대를 치열하게 살다간 많은 옛 인물들을 새롭게 만나보는 좋은 시간이 되었다. 갈등하고, 투쟁하고, 격분하고, 죽이고 죽는 광란의 불구덩이 속에서도 후대의 평가가 어떻든 간에 거기엔 그럴 만한 이유가 있겠다는 생각도 불쑥 드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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