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인사
함정임 지음 / 열림원 / 2025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제목과는 다른 선명한 핑크색의 책 표지가 강렬하다. 책을 읽기 전에는 단지 눈에 띄기 위함인가 했었다. 읽을수록 소설 속 등장인물 장이 미나의 잘 자요라는 인사의 여운을 잊지 못해 그녀를 다시 만나고 싶어 했던 간절함을 색으로 표현한 것은 아닌가 싶었다. 한편으로 멀고 먼 낯선 나라의 이미지도 풍긴다. 저자의 전작도 예술가의 발자취를 따라간 산문집이었는데 이 책도 비슷한 맥락이다. 단편 어떤 여름을 장편으로 쓴 내용은 자연스럽다. 이리저리 얽히고설킨 이야기의 본질이 소설이기 때문이리라. 화자인 를 미나로 지칭하는 의 시점으로 번갈아 소설은 진행된다. 장의 감정에 더 마음이 가는 것은 가 그의 진심을 모른다고 여겨져서 인지도 모르겠다.

작가인 파라-n’이라는 묵독 모임을 마치고 같은 모임원인 기자 윤중과 충동적으로 간절곶으로 간다. 그곳에서 등대를 보고, 마침 묵독 모임에서 읽은 보들레르를 생각하며 불현듯 프랑스 파리로 떠난다. 모든 것이 우연이고 즉흥적인 듯 보여도 사실 2년 전 프랑스의 기차안에서 낯선 이 과 열흘 동안 여행을 다녔었다. ‘를 다시 먼저 찾았던 사람은 이다. 현재 작가가 아니었다면 두 사람의 재회는 없었을 것이다. 아니, 처음 만났을 때 잘 자요라는 밤인사가 장에게 알 수 없는 감정을 느끼게 하지 않았다면, 거의 집착에 가깝게 다시 미나를 만나려고 노력하지 않았다면 두 사람에게 두 번째 만남은 없었을 것이다. 건축 디자이너인 장과 건축가의 흔적을 찾아다니며 의 미묘한 분위기는 이국의 풍경과 잘 어울린다. 간간이 주고받는 윤중과의 메시지는 긴장감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같은 공간에서 서로 눈을 바라보며 대화를 하지만, 장은 투명한 유리 막으로 미나와 차단되어 있는 느낌이었다.’ 함께 있는 사람은 장이지만 나의 눈에도 윤중과 더 가까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애초에 두 사람의 시선은 어긋나 있었고, 장이 가지고 있던 근본적인 결핍은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 전에는 채워지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저자는 자신의 분신 같은 를 통해 의미 없는 마주침은 없음을, 다정한 인사 한 마디가 한 사람의 마음에 얼마나 커다란 파문과 여운을 남기고 확장 시키게 하는지 말하고 싶어 한 듯하다. 건축가를 위시한 뭇 예술가들의 생애를 엿보며 함께 여행하는 기분이 드는 것도 좋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먹의 흔들림 - 영혼을 담은 붓글씨로 마음을 전달하는 필경사
미우라 시온 지음, 임희선 옮김 / 하빌리스 / 2025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텍스트힙이 열풍이다. 함께 책을 읽고 필사를 하고 감상평을 써서 SNS에 공유하는 문화를 말하는데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이 시발점인 것 같다. 물론 그전에도 독서 모임이나 필사 모임은 있었겠지만, 부쩍 늘어난 것 같다. 당장 지인이 필사책을 구입하는 걸 보면 실감이 난다.

와중에 좋아하는 작가의 신간이 나와서 읽어볼 참에 지금 추세와 비슷한 내용인 듯 해서 시기적절하다고까지 느껴진다. 붓글씨로 대필을 해주는 소설이라니 제목부터 흥미진진하다. 디지털 시대에 아날로그 감성이 풍긴다. 저자 대부분의 책이 그런 성향이다. 꾸준한 장인(匠人)정신과 성장이 어우러져 있다.

내가 초중학교를 다닐 때만 해도 한문 과목이 있다 보니 붓글씨를 자주 썼다. 말 그대로 벼루에 먹을 갈아서 온 얼굴과 손에 묻혀가며 집중해서 쓰던 기억이 생생하다. 책의 주인공도 서예 교실을 운영하고 있다. 도다 가오루는 전형적인 서예 선생과는 달리 젊고 느긋하고 자유분방하다. 굳이 연륜이나 권위적이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자신이 근무하는 호텔에서 여는 송별회 초대장에 써야 할 손 글씨를 부탁하러 온 스즈키 지카라는 당혹스럽다. 거기다가 첫 만남에 다짜고짜 편지 대필을 부탁하니 어이가 없다. 하지만 친하게 지내던 친구가 멀리 전학을 가게 되니 진심이 담긴 편지를 전달하고픈 초등학생의 마음을 거절하기란 쉽지 않다. 원래 하고 싶은 말이 많으면 더 말할 수 없는 법이다. 글도 마찬가지고. 문장을 잘 쓰지 못해서 대필하는 게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도다도 글씨는 비슷하게 쓸 수 있어도 그 마음까지 흉내 낼 수는 없었던 것이다.

편지 대필에서 제일 중요한 점은 의뢰한 사람의 이야기에 얼마나 열심히 귀를 기울이느냐에 달렸다.” 쉽게 말할 수 없는 과거를 가진 도다는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글씨는 쓸 수 있어도 타인의 감정에 이입한 글을 쓸 수는 없다. 따뜻한 가정에서 무난한 인생을 살아온 스즈키는 그 반대다. 연인과 헤어지고 싶어 하는 대필을 의뢰받았을 때도, 부모님께 용돈을 인상해 달라는 대필을 의뢰받았을 때도 이미 그 시절을 잘 겪어온 스즈키는 그들의 상황을 누구보다 잘 이해한다. 느닷없이 이제 찾아오지 말라는 도다의 진심까지 알아차릴 정도다.

글씨와 문장이 한 몸 같아도 사실은 그 반대인 경우도 많다. 천재는 악필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나의 경우에는 소심한 성격에 비해 글씨는 현재보다 미래의 나를 투영해서 큼직하고 날카롭게, 문장은 과거의 나를 되돌아보는 후회와 미련, 아쉬움이 짙은 글을 많이 쓰는 듯하다.

도다와 쓰즈키가 완벽한 대필 파트너로 서로의 단점을 보완해 앞으로 나아가기를 바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시간 말고 에너지를 관리하라 - 성공하는 사람들의 에너지 관리법
한선영 지음 / 라온북 / 2025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지속 가능한 성과의 핵심은 ‘쪼개 쓰는 시간’이 아닌 ‘최적화된 에너지’에 있다.”

프롤로그에 쓰인 한마디가 책이 말하고자 하는 전부다. 성실하게, 열심히 많은 시간을 들이기보다 짧은 시간이라도 집중하기 좋은 시간과 장소에서 효과적인 성과를 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매일 시간을 30분 단위로 나눠 살았던 시간 관리 전문가인 저자의 깨달음은 양보다 질이다. ‘많이’보다 ‘잘’하는 것이다. 촘촘한 계획 세우기가 아니라 쓸모 있는 행동과 유의미한 결과이다. 직장을 다닐 때 가장 고민이었던 것도 우선순위를 정하는 일이었다. 맡은 일을 먼저 하는 게 중요한지, 상사가 중간에 지시하는 일이 먼저인지 갈팡질팡하다가 어느 한쪽도 제대로 못 한 적이 많았다. 책에서도 지적하고 있듯이 멀티태스킹의 착각에 빠져서 욕심을 부린 탓이다.

둘 중 하나는 할 수 없다거나 시간이 걸릴 거라는 사실을 먼저 고지 해야 했다. 한편으로는 나의 무능이 드러날까 싶어 그런 것도 같다. 겉으로 보기에는 시간이 모자라서 못 할 것 같다고 여겼지만, 사실은 완벽하게 하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도 있었다. 두려운 기분을 안고 일을 하니 좋은 결과가 나올 리 없다. 기분이 일종의 에너지라는 뜻이 이해가 간다. 좋은 기분은 결과뿐만 아니라 좋은 사람들도 끌어당길 수 있는 매력적인 힘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즐겁거나 우울하거나 혹은 슬픈 감정들은 쉽게 타인에게 전염이 되니 그럴수록 에너지 관리는 필수다. 중요한 것은 ‘지속 가능한 리듬’이라고 강조하는데 일상을 균형 있게 유지하는 것과 같은 의미라고 생각한다. 크고 원대한 목표보다 작은 성취를 위한 작은 행동의 반복은 점진적인 발전을 가져온다. 쉽게 포기할 여지를 주지 않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불러일으킨다. 일과에 집중하고 저녁 시간에 다음 날을 위한 계획을 세우는 것만으로 변화는 시작된다.

나만이 가진 능력과 가치를 발휘하게 하는 것은 충실한 하루의 반복임을 저자는 말하고 있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서평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가 - 불안한 인생에 해답을 주는 칸트의 루틴 철학
강지은 지음 / 북다 / 2025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칸트의 규칙적인 생활루틴은 여러 일화를 통해 잘 알려져 있다. 단편적으로만 알고 있던 철학가의 일상과 줄곧 주장했던 비판주의를 좀 더 깊이 있게 알고 싶어 책을 펴 들었다.

칸트 철학을 기반으로 예술과 커뮤니케이션에 관해 지속적으로 관심을 두고 논문을 발표하고 있는 저자는 강의초빙교수로 재직하며 여전히 연구 중이다. 200페이지도 되지 않는 가벼운 책은 누구나 이해하기 쉽게 쓰여 있다. 칸트의 순수, 실천, 판단력 비판은 땅에 발을 붙이고 사는 사람들이 불안에 시달리지 않고 평온한 삶을 살 수 있는 현실적 대안을 제시한다.

그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도덕을 토대로 삼은 꾸준한 자기 실천이다. 아무리 하잖은 일이라도 끈기를 가지고 성실하게 하는 것만으로도 다른 큰일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간파한 것이다. 일본의 어느 육상부원이 그냥 무엇이든지 한 가지를 지속해 보라는 체육 교사의 말에 엄마도 도울 겸 설거지만 매일 했는데 성적이 날로 좋아졌다는 이야기가 떠오른다. 일상의 작은 단조로운 행위가 삶을 변화시킨다. 과할 정도로 원칙과 규정을 지켜야 한다는 것도 문명사회의 장단점을 꿰뚫어 본 듯하다. 책임과 처벌이 따르지 않는 자유는 사회질서를 무너뜨린다. ‘도덕을 실천하는 인간만이 진정한 인간이다.’라는 말은 오늘날에는 더 없이 유용하다. 행복에 관한 지론도 마찬가지다. 모든 사람이 물질적 가치만으로 행복을 추구하는 것처럼 보여도 실상은 다르다. 많이 가진 사람이 더 많이 가지길 원하는 걸 보면 알 수 있다. 자신이 정말 원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매순간 부족함을 느낀다. 행복을 바깥에서 찾지 말고, 내 안에서 찾아야 한다. 누굴 만나면 즐거운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하는 일이 무엇인지. 행복은 순간적이라 시시때때로 변하니 하루하루에 충실해야 하는 것이다.

인생의 전환점을 위해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일상의 반복임을 책은 칸트의 철학을 바탕으로 말하고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열여섯 번의 팔월
최문희 지음 / 문이당 / 2025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떤 일은 아무리 긴 세월이 흘러도 잊히지 않는다. 때로 의식적으로 기억하기도 한다. 그 일이 살아가는 원동력이 될 때, 인생의 목적이 될 때 쉽게 떨쳐버릴 수 없다. 어떤 방식으로든 끝을 내야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 소설의 등장인물들은 과거의 한 지점에 멈춰 서 있다. 이미 떠나왔다고 이곳은 그곳이 아니라고 부인해도 여전히 같은 자리를 맴돌고 있다. 후회와 분노, 미련 같은 부정적인 감정들은 점점 부풀기만 한다.

월간문학 돌무지로 등단한 저자는 여러 편의 장편소설로 국민일보 문학상, 작가세계 문학상, 혼불 문학상 등 유수의 상을 받은 소설가다. 오랫동안 작가로 활동한 이력이 생동감 있는 인물들을 창조했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저자와 같은 문인들의 세계가 배경이니 한층 현실감이 있다. ‘강산문방동아리의 여섯 명의 모임원은 제각기 시인, 소설가, 영문학 교수, 출판사 대표 등 글을 쓰고 글과 관계가 있는 사람들이다. 창작을 하는 사람 특유의 냉소적인 분위기가 그들을 에워싸고 있다. 서로 질투하고 선망하고 애증한다. 명예, 권력, 재력, 사랑. 그들이 원하는 것은 세속적이다. 문학을 하는 사람과 어울리지 않는 듯도 하지만 그 둘은 불가분의 관계다. 불현듯 찾아오는 영감의 세계를 유지해 주고, 자신의 불안한 영혼을 붙잡아주는 매개체이다. 어떤 예술이든 지속 가능해야 한다.

강산문방을 제공한 교수 문혁은 아버지가 그토록 싫어하는 동아리 모임원의 구심점 역할을 하며, 신춘 문예에 당선됐지만 어느새 대필작가라는 꼬리표 떼기가 목표가 되어버린 경인과 가장 친하다. 두 사람 사이에 조안이 끼어들며 균열이 생긴다. 두 사람이 동시에 조안에게 빠져든 것은 운명적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기시감이 느껴진다. 16년 전에도 그랬듯이 문혁과 경인은 시작도 끝도 함께다. 서로를 이해하고 인정해 주면서도 상처를 줄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그날, 그일에 대한 회한이다. 비밀을 먼저 발설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다.

때때로 조안은 방황하는 그들을 보며 연민하고 다음 감정으로 한발 더 나아갈 뻔하기도 하지만 여기까지 와서 그만둘 수 없다. 딱히 무슨 행동을 한 것도 아니다. 단지 존재 자체만으로 두 사람을 한꺼번에 허물어버린 것 같다. ‘육체의 도살은 잠깐이지만 영혼의 착즙은 갈기갈기 찢거나 부수뜨리기 때문이다.’ 라는 저자의 말처럼 말이다.

인생에 만약은 소용없다. 하루도 한 번이다. 실수는 할 수 있다. 그들의 진짜 잘못은 그에 따른 대가를 치르지 않았다는 것이다. 죄책감은 어떤 감정보다 강하다. 조안의 등장은 도화선에 불과하다. 독하다는 말을 듣는 조안의 긴 여정이 부질없어 보인다. 마지막도 허무하기만 하다. 온갖 종류의 차별이 존재하는 세상에서 용서와 사랑, 공평한 어떤 것에 관한 이야기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