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글이 구린 건 맞춤법 때문이 아니다 - 밋밋한 글을 근사하게 만드는 100가지 글쓰기 방법
개리 프로보스트 지음, 장한라 옮김 / 행복한북클럽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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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원고지에 글을 쓰던 세대다 보니 글 쓰는 일에 자기검열이 심한 편이다.

맞춤법부터 띄어쓰기, 문장부호, 온갖 문법을 규칙대로 썼는지 신경 쓰느라 가끔 내가 뭘 쓰려고 했는지 차분히 다시 생각해봐야 할 때도 있다. 나조차도 책을 읽을 때 얼마나 술술 잘 읽히는지, 얼마나 재미있고 공감이 가는지를 중점에 두고 읽으면서 정작 내가 쓴 글은 한 마디로 사전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물론 그동안 많은 글쓰기법 책을 읽었다. 시류에 따라 글쓰기법도 매번 바뀌었다. 따라가기도 버겁고 이젠 어떤 게 정석인지도 모르겠다.

소설가이자 글쓰기 전문가인 저자의 책들이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 절판된 적이 없다는 사실이 그래서 내겐 매우 큰 의미로 다가왔다.

 

저자 역시 글을 쓰는 데는 몇 가지 규칙을 지켜야 한다고 말한다.

8장과 9장의 문장오류를 막는 방법과 문장부호실수를 막는 방법은 글쓰기의 기본이나 다름 아니다. ‘문법을 지켜라, 주어와 서술어의 호응를 맞추어라, 대명사의 단수와 복수를 바꾸지 마라, 쉼표는 언제 쓰는가, 세미콜론과 콜론의 쓰임새와 따옴표의 사용법을 알아두라.’ 등등과 같은 이야기는 굳이 글을 전문적으로 쓰는 사람이 아니라도 알아두면 좋은 팁이다.

한 눈에 보기 좋은 문장이 읽기도 좋다고 생각한다. 가독성은 책을 읽는데 많은 지분을 차지하니까. 하지만 가독성은 독자의 관점에서 중요한 한 부분이다. 글을 쓰는데 그러니까, 좋은 글을 쓰는데 는 규칙만이 전부가 아니라고 저자는 말한다.

무엇보다 글을 음악에 비유하는 대목이 마음에 와 닿았다. “글을 쓰는 것은 곡을 만들어내는 일이다. 종이에 적는 말은 소리를 내고, 그 소리가 조화로울 때 글의 틀이 잡힌다.” 갑자기 초등학교 시절 합창하듯이 국어책을 소리 내어 읽던 이유를 완벽하게 이해하게 되었다. 물론 그 이유만은 아니겠지만.

누구나 그러듯 첫 문장을 쓰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하게 되는데 저자도 도입부의 중요성을 역설한다. 다음 문단과 다음 장에 대한 흥미와 기대를 도발할 정도의 강력함과 독자의 질문을 유발할 궁금증을 던져 줘야 한다고. 그 외에도 표절과 자료조사의 한 치 차이점은 한 바탕 웃음을 내지르게 했고, ‘사람에 관해 써야 한다고, 사람이 관심을 갖는 주제는 사람이라는 말에는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 사실은 저자가 제시한 글쓰기 방법을 조금이라도 적용해보려고 노력했다. 소설도 아니고 긴 글도 아니라서 그런지 이제껏 쓴 글과 별 다른 점은 잘 못 느끼겠다.

하지만 이전과는 다른 관점과 자세로 썼다는 것을 나 자신은 알고 있다.

그것만으로도 이 책의 유용성과 소용됨이 나에게도 아주 오랫동안 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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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1 마케팅 - 1대1 맞춤형 팬덤 마케팅의 시대가 왔다
니시구치 가즈키 지음, 이주희 옮김 / 동양북스(동양문고)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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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품대리점에서 오랫동안 근무 했다. 한 달 마감 체제에, 본사에서 내려오는 목표치가 있다 보니 어떻게 하면 우리 제품을 더 많이 팔수 있을까 로 주2일 회의는 기본이었다. 고정된 거래처가 있는 건 좋았지만 경쟁해야 하는 화장품 종류가 너무 많아서 전략을 잘 짜야 했다.

고객이 어떤 제품을 지속적으로 구매하고 사용하게 만드는 활동이 마케팅이라고 한다는데 포괄적인 의미에서 전략이 곧 마케팅 이라고 생각한다. 그때의 나의 마케팅은 아주 단순했다. 평균적으로 잘 팔리는 제품을 무조건적으로 어필했다. ‘이 거래처가 잘 파니 저 거래처도 잘 팔겠지’ ‘이번 달에 이 제품이 잘 나갔으니 다음 달도 잘 나가겠지

이 책을 읽으면서 그건 마케팅도 아니었다는 생각이 여실히 들었다.

 

브랜드 매니저이자 마케터인 저자의 1:1 고객 기점 마케팅은 사실 처음엔 별로 신뢰가 가지 않았다. 어떤 제품을 만들거나 팔 때 평균에 기준을 맞추는 것은 기본상식이 아닌가. 사람들의 사고방식은 비슷하니 말이다. 하지만 저자의 생각은 달랐다.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상품이나 서비스 대부분은 따지고 보면 특정한 어느 한 사람을 기쁘게 하는 것, 행복하게 하는 것, 편리하게 하는 것이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그 특정한 누군가가 자기 자신인 경우도 있습니다.”

그 특정한 누군가가 나라고 가정해보니 저자의 의중을 조금은 알 것 같기도 했다.

평균적인 제품은 유일무이하지 않고 그렇다 보니 지속성이 떨어진다. 한 명의 고객에게 집중해야 한다는 의미는 곧 외적인 부분이 아니라 내적인 부분까지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저자는 그러기 위해서는 그 사람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무언가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무언가를 독자성과 편익성을 묶은 프로덕트 아이디어라고 명명하는데 N1마케팅의 핵심인 것 같다. 독자성에는 한 사람의 개성이, 편익성에는 모든 사람이 원하는 편리함과 이득이 포함되어 있는데 이 두 가지가 잘 어우러져야만 성공하는 마케팅을 펼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외에도 저자는 어떤 제품보다 앞서 인지도를 형성한 상품이 진짜의 자리를 차지할 수 있고 데이터만으로는 알 수 없는 인간의 심리를 잘 파악하여야만 브랜드를 알릴 수 있다고 주장한다. 록시땅의 첫 구매가 타인을 위한 선물 이라는 인식이 자리 잡은 것처럼 말이다.

모든 것이 디지털로 변환되는 시대에 마케팅도 예외는 없다. 저자 역시 마지막 장에서 신 리얼월드구 리얼월드로 세대를 나누며 마케팅의 변화를 이야기한다. 스마트폰을 6,7시간을 쓰는 젊은이들과 연락수단만으로 사용하는 45세 이상의 세대가 공존하는 시대에 마케팅도 이제 온라인으로 옮겨가야만 하는 것이다.

하지만 저자가 처음부터 끝까지 강조한 사람의 행동을 좌우하는 것은 마음의 움직임이라는 점만은 어떤 새로운 시대에도 변하지 않는 마케팅의 정의라고 단언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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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 메이트북스 클래식 10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지음, 이현우.이현준 편역 / 메이트북스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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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나라가 홍수와 산불과 태풍으로, 그것도 모자라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까지 창궐해 일상을 포기해야 할 지경이다. 어느 때보다 이성이 필요한 순간이다. ‘자연의 순리를 생각하고 우리가 우주의 한 점에 불과함에 겸손을 배워야 할 때이기도 하다. 아우렐리우스가 말하고자 하는 모든 것이다.

1800여 년 전 로마제국의 황제가 쓴 수기와도 같은 기록서가 오늘날까지 통용되는 것은 아무리 문명이 발달했다 하더라도 사람의 본성은 쉽사리 변하지 않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죽음을 두려워해 영생을 누리고 싶어 하고, 당장 눈앞의 이익만 쫓아 자연이 파괴되어 가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으며, 사회의 혜택을 받으면서도 어떤 손해도 감수하지 않으려 한다.

지금의 상황이 이런 이기적인 생각들이 불러낸 결과물임은 자명하다. 한 단계 발전된 편리는 두 단계 편리를 원하고 세 단계 편리를 추구한다. 세상의 빠른 변화를 지혜롭게 따라잡지 못한 것이 잘못이라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자연의 본성에 따라 생활하는 것이 인간이 살아가는 최선의 길이라는 스토아학파를 기반으로 한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은 오늘날 한 번은 읽어 봐야할 지침서라고 여겨진다.

 

편역자는 기존의 12개 테마를 6개의 주요테마로 재분류했다고 하는데 특히 눈에 띄는 테마는 죽음정의에 대한 통찰이다.

나는 사람이 느끼는 최초의 두려움은 죽음 이라고 생각한다. 그 누구도 알 수 없는 세계에 대한 불안, 가까운 이와의 영원한 이별을 받아들여야만 하는 슬픔,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삶에 대한 초조함.

죽기에는 아직 많은 날이 남았어. 너는 이제 열여섯이야

한 때 죽음에 골몰하던 나에게 던진 친구의 한 마디에 마음이 가벼워 진건 순전히 그때 내가 열여섯이었기 때문임이 분명하다. 시간이 그렇게 빨리 지나갈 줄 모르고 새털 같은 나날들만 세고 있었으니. 인생의 대부분을 진영에 있었던 아우렐리우스의 죽음에 대한 통찰은 그래서 더 공감이 간다. 그에게 죽음은 어떤 대비가 아니라 자연스러움이다.

유년기, 소년기, 청년기, 장년기 등 각 단계의 변화는 일종의 죽음인 셈인데 그 변화에 어떤 두려움이 있었단 말인가?”

그의 말처럼 우리는 이미 살면서 죽음을 겪고 있으니 특별히 죽음에 두려움을 느낄 필요도 없고 연장하기 위해 애쓸 필요도 없다는 말이다. 두려워한다고 그 시간이 오지 않는 것도 아니고 애쓴다고 영생할 수도 없으니, 살아있을 때 선한 일을 하는데 힘쓰라는 역설이 고개를 주억거리게 만든다.

그가 말하는 정의란 공공의 이익을 항상 염두에 두라는 것이다. 그것은 자연의 순환이나 더 나아가 우주의 순환과도 같은 말이다. 공부를 하고 취직을 하고 결혼을 하는 모든 행위가 궁극적으로는 사회의 한 부분이 되기 위한 것이니, 공공의 이익이 곧 나의 이익으로 돌아옴은 당연하다. 해결책 없는 바이러스의 출몰에 서너 가지의 약속을 지키려는 의지에는 타인에 대한 배려도 포함되어있다. 그 타인이란 곧 자신의 가족이며 동료이다. 아우렐리우스가 덧붙여 말한 정의를 성취하는 것이야말로 최고의 성공이라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황제이면서도 그의 부단한 자기성찰과 삶에 대한 끝없는 탐구심이 21세기에도 공감을 주는 것은 학문과 철학에 대한 열정덕분일 것이다. 죽을 때까지 배워야 하는 이유다.

부피는 가볍지만 한동안 곱씹으며 읽을 만한 묵직한 내용의 책으로 다시 한 번 고전이 고전인 이유를 되새김하게 된 독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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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나간다, 그림책 - 김서정 그림책 평론집, 세종도서 교양부문 선정작 책고래숲 2
김서정 지음 / 책고래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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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그림책은 사라 스튜어트가 글을 쓰고 그녀의 남편인 데이비드 스몰이 그림을 그린 도서관이다. 도서관에서 집어든 도서관은 책표지부터 마음을 사로잡더니 마지막 페이지를 덮을 때까지 무아지경 속을 헤맸다. 책 읽기에 모든 시간과 재산을 쏟아 부은 엘리자베스 브라운의 일생은 몇 페이지에 불과했지만 그 이미지는 상당히 오랜 시간 아니, 지금까지 생생하다. 이불속에서도 손전등을 켜고 책을 읽는 열정, 책이 천장까지 쌓여 금방이라고 쓰러질거같은 위태함, 그동안 읽었던 책과 집을 기부하고 친구 집으로 거처를 옮긴 그녀의 후련하면서도 즐거운 기분. 글뿐만 아니라 그림도 있었기에 수십 년이 지나도 그 짧은 이야기를 웃으면서 기억하는 이유다.

 

동화작가이자 평론가인 저자도 말했듯이 나 역시 해외작가의 그림책을 훨씬 더 많이 접하고 자라온 세대다. 저자가 책에서 소개한 해외작가의 그림책과 우리그림책 중에 눈에 익은 표지만으로도 알 수 있다. 최근에 읽은 우리그림책은 도서관에 전시됐던 평균 연령, 여든의 나이에 글을 배운 순천할머니들의 그림일기다. 단순하기 그지없는 그림과 삐뚤빼뚤한 글자가 눈시울을 붉히게 했다. 도서관 현관입구에 전시를 해 놓지 않았다면 굳이 찾아 읽지도 않았을 것이다. 여전히 나는 우리그림책과 가깝지 않다. 그런 의미에서 앞으로 이 책을 길잡이 삼아 더 많은 우리그림책을 접해 볼 수 있을 거 같아 기쁘다.

저자는 우리그림책을 알리는 데 있어서 크게 네 개의 목차로 분류를 했다.

그림책의 역사와 진화, 우리 그림책의 현재 상황, 세계로 뻗어나가는 우리 그림책, 한국 그림책 이야기. 해외에서 우리 그림책이 많이 읽히고 유수의 상을 휩쓸고 있다니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순전히 젊은 작가들의 오롯이 자기만의 이야기를 가지고 앞으로 나아감에 주저함이 없었음에 여기까지 왔다는 저자의 말이 가슴을 울린다. 새로운 길을 개척함에 있어서 얼마나 많은 장애물이 있었겠는가. 이미 머리와 마음이 어른이 된 상태에서 아이를 위한 그림책을 그린다는 일은 결코 쉬운 아니다. 물론 그림책에 어른과 아이를 긋는 경계선은 지금은 없다. 계몽적이고 세세한 설명 없이, 파도가 밀려오는 바닷가에 서 있는 아이의 뒷모습만으로도 눈으로 가슴으로 느낄 수 있는걸 보면 그림책이야말로 남녀노소가 없는 듯하다.

아이가 좋아하는 책은 어른도 좋아하는 책이고, 아이를 발견하게 해주는 책은 인간 전체를 발견하게 해주는 책이라고 저자가 말했듯이 그림책은 그런 존재다.

무엇보다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은 그림책이 더 이상 해피엔딩만을 꿈꾸는 아름답고 예쁜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이다. 마당을 나온 암탉을 애니메이션으로 보고 받은 충격이 문득 떠올랐다. 마지막 장면을 굳이 영상으로 보여줘야 하냐는 노파심에 혼자 움찔했다. 어른인 나도 보기 불편하고 양육강식의 험악한 세계를 아이들이 벌써 알아봐야 좋을 게 뭔가 싶어서.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다시금 생각해보니 어느 정도의 내성도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토미 웅거러의 제랄다와 거인은 폭력적이고 거친 그림책으로 어른들이 자기 아이에게 읽히기를 꺼려했다. 하지만 아이들은 본능적인 호기심을 자극하고 충족시켜 주는 이 책을 아주 좋아한다고 한다.

아이들은 공포를 알아야 한다. 세상에 나가면 반드시 그것과 마주치게 되니까.”

전쟁의 공포를 직접 겪은 작가는 그림책을 통해 평화의 메시지를 퍼뜨리며 동시에 선은 악을 통해 드러나게 되니 서로 잘 지내게 해줘야 한다고 말한다.

어차피 알아야 할 세상사라면 글과 그림이 어우러진 한 권의 그림책이 어른들의 잔소리 보다 훨씬 유용하다는 것을 새삼 느낀 평론집이었다.

우리 그림책이 앞으로도 계속 잘 나가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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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어도 두 번
김멜라 지음 / 자음과모음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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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따라 강남 가듯이 소설책은 작가 따라 골라 읽는 편이다. 벌써 네다섯 장을 읽었는데 재미가 없어서 그냥 덮기도 그렇고 앞으로 나아가기도 그런 어정쩡한 독서를 싫어한다.

한 편의 액션영화를 보듯 걸림 없이 쭉 읽고 싶어 작가편애모드 독서가 된지 오래 되었다.

검증된 작가의 책이니 무슨 의구심이 필요할까. 간혹 전작과 전혀 다른 신작이 나와도 작가에 대한 애정으로 그냥 넘어가주기도 한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일종의 모험일 수밖에 없었다. 김멜라 라는 예명이 분명한 작가의 이름은 낯설고 물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번 읽어보고 싶다고 생각한 이유는 순전히 표지 때문이었다. 푸른 색 수채화로 그린 듯한 여자의 얼굴표정이 뭔가 많은 말을 하고 있는 듯해서. 그리고 그 표정만큼 등장인물들의 사연은 구구절절 아니 파란만장했다.

 

남자가 되어야 하는지 여자가 되어야 하는지의 기로에 서 있는 도림<호르몬을 쳐줘요>, 시각장애 미성년을 성추행한 혐의에 열심히 해명중인 유파고<적어도 두 번>, 집안 말아먹을 년 이라는 오명을 벗기 위해 과학으로 도망쳤다 다시 역학으로 돌아온 홍주<물질계>, 친구의 사고사에 가정이 흔들리는 강투와 해연<모여 있는 녹색점>, 남은 인생10년과 공무원 합격을 바꿀 수 있다는 ’<에콜>, 불운과 정면으로 마주서기 위해 사투하는 세방 <스프링클러>,폭력의 대물림에 끌려가는 조카 홍이를 안타까워하는 중경<홍이>

모두들 보이지는 않지만 있다고 믿는 운명론에 휘말려 갈팡질팡 하는 것만 같다. 그 사이에 이른바 성소수자의 겉도는 세상살이도 엿볼 수 있다. 내가 보기엔 그냥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는 듯해도 선을 그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니 그들은 힘겹다.

열셋의 나이에 자신을 인터섹스라 지칭하는 도림도 그 힘겨움 때문에 이태원으로 모험을 떠난다. 지도를 들고 가니 모험이 분명하다. 여행일 수도 있겠다. 자신과 같은 사람들을 찾으러 갔으니. 도림은 그들이 성별의 기로에 서 있는 자신에게 정답을 줄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품었다. 그들은 자신보다는 어른이고 경험이 더 많고 현대 음률을 출 수 있으니 말이다.

어떤 이들은 아무리 나이를 먹고 산전수전 다 겪고 사이버 춤을 춰도 여전히 오답만 내고 있다는 것을 아직 어린 도림은 모른다. 불운과 폭력과 두려움의 계보를 이어가는 등장인물들이 온 몸으로 보여주고 있다. 어쩌면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바로 이런 악순환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이제 그만 이런 악순환은 끊고, 희망과 연대의 고리를 이어보자고 역설적으로 말하고 있다고.

 

남자가 되던 여자가 되던 우선 좋은 대학만 가면 된다는 엄마의 말이나 잘 들어야겠다는 도림의 결정은 과연 정답일까 오답일까. 나도 해답지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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