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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 ㅣ 메이트북스 클래식 10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지음, 이현우.이현준 편역 / 메이트북스 / 2020년 8월
평점 :
온 나라가 홍수와 산불과 태풍으로, 그것도 모자라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까지 창궐해 일상을 포기해야 할 지경이다. 어느 때보다 ‘이성’이 필요한 순간이다. ‘자연의 순리’를 생각하고 우리가 우주의 한 점에 불과함에 ‘겸손’을 배워야 할 때이기도 하다. 아우렐리우스가 말하고자 하는 모든 것이다.
1800여 년 전 로마제국의 황제가 쓴 수기와도 같은 기록서가 오늘날까지 통용되는 것은 아무리 문명이 발달했다 하더라도 사람의 본성은 쉽사리 변하지 않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죽음을 두려워해 영생을 누리고 싶어 하고, 당장 눈앞의 이익만 쫓아 자연이 파괴되어 가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으며, 사회의 혜택을 받으면서도 어떤 손해도 감수하지 않으려 한다.
지금의 상황이 이런 이기적인 생각들이 불러낸 결과물임은 자명하다. 한 단계 발전된 편리는 두 단계 편리를 원하고 세 단계 편리를 추구한다. 세상의 빠른 변화를 지혜롭게 따라잡지 못한 것이 잘못이라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자연의 본성에 따라 생활하는 것이 인간이 살아가는 최선의 길이라는 스토아학파를 기반으로 한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은 오늘날 한 번은 읽어 봐야할 지침서라고 여겨진다.
편역자는 기존의 12개 테마를 6개의 주요테마로 재분류했다고 하는데 특히 눈에 띄는 테마는 ‘죽음’ 과 ‘정의’에 대한 통찰이다.
나는 사람이 느끼는 최초의 두려움은 죽음 이라고 생각한다. 그 누구도 알 수 없는 세계에 대한 불안, 가까운 이와의 영원한 이별을 받아들여야만 하는 슬픔,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삶에 대한 초조함.
“ 죽기에는 아직 많은 날이 남았어. 너는 이제 열여섯이야”
한 때 죽음에 골몰하던 나에게 던진 친구의 한 마디에 마음이 가벼워 진건 순전히 그때 내가 열여섯이었기 때문임이 분명하다. 시간이 그렇게 빨리 지나갈 줄 모르고 새털 같은 나날들만 세고 있었으니. 인생의 대부분을 진영에 있었던 아우렐리우스의 죽음에 대한 통찰은 그래서 더 공감이 간다. 그에게 죽음은 어떤 ‘대비’ 가 아니라 ‘자연스러움’ 이다.
“ 유년기, 소년기, 청년기, 장년기 등 각 단계의 변화는 일종의 죽음인 셈인데 그 변화에 어떤 두려움이 있었단 말인가?”
그의 말처럼 우리는 이미 살면서 죽음을 겪고 있으니 특별히 죽음에 두려움을 느낄 필요도 없고 연장하기 위해 애쓸 필요도 없다는 말이다. 두려워한다고 그 시간이 오지 않는 것도 아니고 애쓴다고 영생할 수도 없으니, 살아있을 때 선한 일을 하는데 힘쓰라는 역설이 고개를 주억거리게 만든다.
그가 말하는 ‘정의’란 공공의 이익을 항상 염두에 두라는 것이다. 그것은 자연의 순환이나 더 나아가 우주의 순환과도 같은 말이다. 공부를 하고 취직을 하고 결혼을 하는 모든 행위가 궁극적으로는 사회의 한 부분이 되기 위한 것이니, 공공의 이익이 곧 나의 이익으로 돌아옴은 당연하다. 해결책 없는 바이러스의 출몰에 서너 가지의 약속을 지키려는 의지에는 타인에 대한 배려도 포함되어있다. 그 타인이란 곧 자신의 가족이며 동료이다. 아우렐리우스가 덧붙여 말한 정의를 성취하는 것이야말로 최고의 성공이라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황제이면서도 그의 부단한 자기성찰과 삶에 대한 끝없는 탐구심이 21세기에도 공감을 주는 것은 학문과 철학에 대한 열정덕분일 것이다. 죽을 때까지 배워야 하는 이유다.
부피는 가볍지만 한동안 곱씹으며 읽을 만한 묵직한 내용의 책으로 다시 한 번 고전이 고전인 이유를 되새김하게 된 독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