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나간다, 그림책 - 김서정 그림책 평론집, 세종도서 교양부문 선정작 책고래숲 2
김서정 지음 / 책고래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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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그림책은 사라 스튜어트가 글을 쓰고 그녀의 남편인 데이비드 스몰이 그림을 그린 도서관이다. 도서관에서 집어든 도서관은 책표지부터 마음을 사로잡더니 마지막 페이지를 덮을 때까지 무아지경 속을 헤맸다. 책 읽기에 모든 시간과 재산을 쏟아 부은 엘리자베스 브라운의 일생은 몇 페이지에 불과했지만 그 이미지는 상당히 오랜 시간 아니, 지금까지 생생하다. 이불속에서도 손전등을 켜고 책을 읽는 열정, 책이 천장까지 쌓여 금방이라고 쓰러질거같은 위태함, 그동안 읽었던 책과 집을 기부하고 친구 집으로 거처를 옮긴 그녀의 후련하면서도 즐거운 기분. 글뿐만 아니라 그림도 있었기에 수십 년이 지나도 그 짧은 이야기를 웃으면서 기억하는 이유다.

 

동화작가이자 평론가인 저자도 말했듯이 나 역시 해외작가의 그림책을 훨씬 더 많이 접하고 자라온 세대다. 저자가 책에서 소개한 해외작가의 그림책과 우리그림책 중에 눈에 익은 표지만으로도 알 수 있다. 최근에 읽은 우리그림책은 도서관에 전시됐던 평균 연령, 여든의 나이에 글을 배운 순천할머니들의 그림일기다. 단순하기 그지없는 그림과 삐뚤빼뚤한 글자가 눈시울을 붉히게 했다. 도서관 현관입구에 전시를 해 놓지 않았다면 굳이 찾아 읽지도 않았을 것이다. 여전히 나는 우리그림책과 가깝지 않다. 그런 의미에서 앞으로 이 책을 길잡이 삼아 더 많은 우리그림책을 접해 볼 수 있을 거 같아 기쁘다.

저자는 우리그림책을 알리는 데 있어서 크게 네 개의 목차로 분류를 했다.

그림책의 역사와 진화, 우리 그림책의 현재 상황, 세계로 뻗어나가는 우리 그림책, 한국 그림책 이야기. 해외에서 우리 그림책이 많이 읽히고 유수의 상을 휩쓸고 있다니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순전히 젊은 작가들의 오롯이 자기만의 이야기를 가지고 앞으로 나아감에 주저함이 없었음에 여기까지 왔다는 저자의 말이 가슴을 울린다. 새로운 길을 개척함에 있어서 얼마나 많은 장애물이 있었겠는가. 이미 머리와 마음이 어른이 된 상태에서 아이를 위한 그림책을 그린다는 일은 결코 쉬운 아니다. 물론 그림책에 어른과 아이를 긋는 경계선은 지금은 없다. 계몽적이고 세세한 설명 없이, 파도가 밀려오는 바닷가에 서 있는 아이의 뒷모습만으로도 눈으로 가슴으로 느낄 수 있는걸 보면 그림책이야말로 남녀노소가 없는 듯하다.

아이가 좋아하는 책은 어른도 좋아하는 책이고, 아이를 발견하게 해주는 책은 인간 전체를 발견하게 해주는 책이라고 저자가 말했듯이 그림책은 그런 존재다.

무엇보다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은 그림책이 더 이상 해피엔딩만을 꿈꾸는 아름답고 예쁜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이다. 마당을 나온 암탉을 애니메이션으로 보고 받은 충격이 문득 떠올랐다. 마지막 장면을 굳이 영상으로 보여줘야 하냐는 노파심에 혼자 움찔했다. 어른인 나도 보기 불편하고 양육강식의 험악한 세계를 아이들이 벌써 알아봐야 좋을 게 뭔가 싶어서.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다시금 생각해보니 어느 정도의 내성도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토미 웅거러의 제랄다와 거인은 폭력적이고 거친 그림책으로 어른들이 자기 아이에게 읽히기를 꺼려했다. 하지만 아이들은 본능적인 호기심을 자극하고 충족시켜 주는 이 책을 아주 좋아한다고 한다.

아이들은 공포를 알아야 한다. 세상에 나가면 반드시 그것과 마주치게 되니까.”

전쟁의 공포를 직접 겪은 작가는 그림책을 통해 평화의 메시지를 퍼뜨리며 동시에 선은 악을 통해 드러나게 되니 서로 잘 지내게 해줘야 한다고 말한다.

어차피 알아야 할 세상사라면 글과 그림이 어우러진 한 권의 그림책이 어른들의 잔소리 보다 훨씬 유용하다는 것을 새삼 느낀 평론집이었다.

우리 그림책이 앞으로도 계속 잘 나가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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