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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근두근 묵정밭 - 세종도서 교양부문 선정작 ㅣ 책고래아이들 24
이성자 지음, 조명화 그림 / 책고래 / 2021년 8월
평점 :
세상에 쓸모없는 것이 있을까. 들꽃도, 잡초도, 이름 없는 풀벌레도 저마다 자신만의 아름다움과 쓸모가 있다. 곡식을 가꾸지 못해서 거칠고 빈 밭이 되어버린 묵정밭일지언정 찾아오는 이가 있는 것처럼 말이다.
밭의 주인인 상동 할머니가 허리를 다쳐 서울 아들집으로 떠나자 밭은 금세 제 모습을 잃어버린다. 비료를 주고 풀도 뽑아주고 어루만져 주는 주인이 있는 다른 밭과 같을 수는 없다.
개망초 좋아하다가 묵정밭 된다는 다른 밭의 비아냥에도 할머니네 밭은 개망초를 안아주며 정말로 묵정밭이 된다. 달걀 프라이를 닮은 꽃이 환하게 피어나자 벌과 나비들이 날아오고 온갖 벌레들도 찾아들기 시작한다. 풍뎅이, 무당벌레, 거미 등등. 시끄럽고 유해하기만 한 벌레들 때문에 피해를 본다는 다른 밭들의 항의 역시 줄줄이 이어진다. 묵정밭은 곡식은 키우지 못하지만 대신 살아 숨 쉬는 생명을 키우는 자신을 뿌듯하게 여기며 새끼를 밴 들쥐부부도 받아들인다. 뒤이어 태어난 일곱 마리 들쥐 새끼들의 활발함으로 원성은 더 더욱 높아갔지만 묵정밭은 새끼들이 철 들 때까지 기다려주기로 한다. 온전한 밭이었을 때 곡식이 익어가기를 가만히 기다려준 것처럼, 할머니를 간절히 기다리는 것처럼.
할머니대신 아들과 손자가 내려오고 아들이 밭을 팔려고 하자 묵정밭은 순식간에 걱정에 휩싸인다. 아들은 나이가 드신 어머니가 농사를 짓기가 어렵고, 고생한다고 생각하지만 손자 민규는 누구보다도 할머니의 마음을 잘 알고 극구 반대한다.
“아니에요. 할머니는 밭에 씨 뿌리고 가꾸는 일이 세상에서 제일 행복하다고 했어요. 정말이에요. 못 믿겠으면 집에 가서 할머니한테 물어보세요.”
온갖 꽃들과 벌레들, 생물들의 시끌시끌한 기운이 아니었다면 민규도 버려진 밭이라고 여겼을 것이다. 묵정밭이 지금은 안식년이라고 말하며 자신을 찾아오는 이들을 넓은 마음으로 품어주었기 때문에 진짜 쓸모없는 밭이 되지 않은 것이다. 그동안 할머니의 따뜻한 손길로 곡식을 길러왔던 순간을 묵정밭은 잊지 않았던 것이다.
참새가 유난히 시끄러운 아침, 언덕길 너머로 보이는 할머니의 모습에 덩달아 웃음이 나던, 수채화 같은 원화가 예쁜 그림책 읽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