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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인의 행복한 책읽기 - 독서의 즐거움
정제원 지음 / 베이직북스 / 2010년 4월
평점 :
품절
“안상헌 씨의 『어느 독서광의 생산적 책읽기 50』과 박민영 씨의『책속의 책』을 읽으면서 느낀 바가 있어 이 책을 썼다” 『교양인의 행복한 책읽기』를 지은 이가 책 머리말에 적어 놓은 말이다. 나도 안상헌 씨의 『어느 독서광의 생산적 책읽기 50』은 읽었다. 몇 년 전 책을 읽어야 한다는 막연한 의무감에 시달린 적이 있다. 어떤 계기나 목적도 없이 말 그대로 막연히. 무슨 책부터 읽어야 할지, 어떻게 읽어야 할지 감이 서질 않았다. 무작정 서점으로 갔다. 가지각색의 책들이 곳곳에 층층이 자리를 잡고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중 한쪽 자리에는 한창 때를 지난 책들이 몸값을 낮춰 그나마 경쟁력을 유지하려 애쓰고 있었다. 그 당시 책 사는 데 돈 쓰기 아까워하던(지금은 많이 덜 아까워하는) 나를 위한 책들이었다. 거기서 고른 책이 안상헌 씨의 『어느 독서광의 생산적 책읽기 50』이었다.
나도 안상헌 씨의 책을 읽으며 나름 느낀 점이 있었다. 『교양인의 행복한 책읽기』의 지은이가 그랬던 것처럼. 하지만 나는 책은 쓰지 않았다ㅋㅋ. 어쨌든 지은이와 묘한 동질감을 느끼며 이 책의 책장을 넘겨갔다.
정제원의 『교양인의 행복한 책읽기』는 부담 없는 책이다. 유익하고 알찬 정보가 담긴 잡지 같은 책이다. 좋은 책들의 내용을 미리 맛보는 기회를 주는 책이다. 기준 없이 정한 기준으로 선별한 도서목록 같은 책이다.
책은 양서 29권을 독자들에게 권하는 형식을 취한다. 1장 나는 누구인가?, 2장 지식을 어떻게 확장하는가?, 3장 작가는 누구인가? 하는 타이틀을 각각 달아 알맞게 책을 배분해서 독자들에게 다가간다. 다종다양한 책을 읽은 지은이가 29권으로 압축하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었지 싶다. 한 책을 선정하기까지 함께 물망에 오른 선정 후보 책들도 함께 곁들여 소개한다. 그렇게 해서라도 선정하지 못한 안타까움을 달래는 듯했다. 곁들여 소개하는 책 정보도 아주 유익하다. 그러고 보면 29권이 아니라 대충 계산해 보면 100권을 육박하지 않나 싶다. 베테랑 관광가이드가 낯선 곳을 여행객에게 친절하게 안내해 주는 느낌이랄까. 그래서 길을 잃을까, 어떤 음식을 먹을까, 잠을 어디서 잘까 하는 두려움 없이 안심하고 여행을 즐길 수 있는 느낌이랄까. 뭐 그런 것이었다.
책에 나오는 몇 가지를 적어보면 이렇다.
“박웅희 씨가 번역한 헨드리크 빌렘 반 룬의 <렘브란트 1, 2>와 류한수 교수가 번역한 존 키건의 <2차세계대전사>는 놀라울 정도로 상세한 역자주가 달린, 그야말로 인상 깊은 책이다.”
번역이라고 해서 원문의 틀에만 박히지 말고 적극적인 자세로 대할 수도 있다는 사실이 신선했다.
“박민영 씨는 <책 읽는 책>에서 이렇게 적고 있다. ‘독자의 수준이 높아지기 위해서는 읽기에 만만한 책만 보지 말고 힘에 부치는 책에 꾸준히 도전해야 한다. 어려운 책에 도전해야 하는 진짜 이유는 어려운 책 중에 양서가 많기 때문이다. 양서에는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고도의 사유 체계들이 담겨 있고, 그것을 읽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는 결코 작지 않다. 양서를 읽은 사람은 그 내용만 습득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고도의 사유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긴다.’”
해리포터 시리즈는 날개 돋힌듯 팔리고, 인문학 서적에는 먼지만 날로 쌓여가는 시점에서 가슴 깊이 생각해 볼 문제가 아닌가 싶다.
“특색 있는 전문 출판사들이 있다. 품위 있는 인문사회과학서만을 고집하는 돌베개, 고전번역 전문 출판사라 할 수 있는 을유문화사, 인문교양물 출판을 선도해가는 들녘, 한국예술의 독보적인 멋을 선사해 주는 학고재, 서양문학의 전도사라 할 수 있는 열린책들, 인문정신과 예술의 절묘한 조화를 꿈꾸는 효형출판 등”
뜻있는 출판인들이 있어 우리 출판문화도 앞으로 점점 발전하지 싶다.
“<이것이 세상이다>는 차원이 다르다. 416가지 항목 중 첫 항목 ‘지구의 나이’만 봐도 우리는 한눈에 알 수 있다. ‘지구과학자들이 산출한 지구 나이는 45억 살에서 60억 살 가량이다. 좀 더 실감 나게 하기 위해 존속 기간을 열두 달로 바꾸어 생각해 보자. 1월 1일 지구가 탄생했다. 그리고 2월 2일에 지각이 형성되었다. 이르게는 3월에 늦게는 6월 전에 바다의 여신, 즉 원시 대양이 출현했다. 그 사이 4월에는 생명체가 탄생했고, 11월에 생명체가 화석으로 변했다. 공룡은 12월 중순경에 지구를 누비고 다녔다. 인간이 지구에 출현한 것은 맨 마지막 주의 마지막 날이다. 더 나아가 인간이 다른 동물들 위에 만물의 영장으로 군림하게 된 것은 365일째 되는 날 22시 30분경으로 추정된다.‘“
아득하고 광활함 속에 우리 인간, 나 자신이 서 있는 모습을 생각하니 한없이 작아지고 숙연해진다. 겸손해지자.
큰 부담 없이 술술 읽다보니 책의 마지막에 다다랐다. 마지막 장을 덮으며 마음이 성숙했다거나 지식이 확장했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다만 마음을 더 성숙시키고 지식을 더 확장시킬 길을 몇 개 찾았다고나 할까. 끝으로 다음 말이 참 의미심장했다.
“최고의 항해사만이 바람 부는 대로 제멋대로 항해하는 듯해도 언제나 머물러야 할 항구에 정확히 닻을 내릴 수 있듯, 수준 높은 독서가만이 마음 가는 대로 책을 집어 들어도 그 책이 어김없이 꼭 그 시점에 읽어야 할 책인 놀라운 경제에 도달할 수 있는 법이다.”
공자가 나이 70이 되어 고희의 경지에 올랐다고 했다. 착한 마음을 먹으려고 굳이 애쓰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착한 마음이 먹어지는 경지. 책을 고르는 데도 고희의 경지가 있다는 말이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