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구스티누스 & 아퀴나스 : 신앙과 이성사이에서 지식인마을 26
신재식 지음 / 김영사 / 2008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토요일 종일 빈둥대다가 결국 허무주의에 빠져 허우적댔다.

일요일 오후, 공허한 연기로 가득찬 가슴속에 환풍기를 들이댄다. 연기를 걷어내며 자리를 박찬다. ‘무얼 좀 해볼까?’ 하고 둘러본다. 마음의 양식으로 연기가 지나간 자리를 채우면 포만을 느낄 수 있을까? 동네에 있는 도서관으로 간다. 커피를 마시고 ‘새로 들어온 책’ 코너에서 별 기대하는 마음 없이 삐딱한 자세로 서서 책들을 째려본다. 몇 권을 들어보고 표지와 제목에 눈도장만 찍고 돌려놓는다.

네 번째로 손에 잡힌 책이었다. “신앙과 이성 사이에서-아우구스티누스 & 아퀴나스”. 제목을 보아 하니 흔하디흔한 영적 세계와 물질 세계의 관계를 말할 듯싶었다. 표지에 쓰인 작은 글자들을 읽어나간다. 왠지 말이 멋있게 다가온다. 책장을 넘긴다. 머리말을 읽어본다. 딱딱하고 어려운 말로 잔뜩 폼을 잡을 줄 알았는데 가볍지만 생각을 하게 하는 글들이 호기심 한 자락을 잡아끈다. 책을 들고 책상으로 간다. 자연스레 손은 책장을 하나씩 넘겨간다. 평소 정신세계에 관심이 있었다. 철학, 심리학 등에 관심이 있었지만 이런 학문은 인내심과 싸워야 할 것 같은 선입견이 있었다. 이번에 제대로 된 인연을 만난 듯싶다.

책날개에 저자의 사진과 간단한 소개가 실려 있다. 40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저자는 잘 생기지는 않았지만 푸근한 인상에 입이 귀에까지 걸릴 만큼 함박웃음을 짓고 있다. 여행을 좋아한다고 소개한 글을 다시 한 번 주지라도 하려는 듯 머리글에서도 여행 얘기로 시작한다. 자신이 머물고 살고픈 마을을 밝힌다. 그러면서 이 책 시리즈의 컨셉인 지식인 마을을 소개한다. 이야기는 그 마을에 사는 중세 초기 인물 아우렐리우스 아우구스티누스와 중세 중기 인물 토머스 아퀴나스에 초점을 맞춘다.

사실 나는 두 사람의 이름조차 들어본 기억이 없는 듯하다. 기억 아득한 곳에서 간질간질 뭔가가 비집고 올라올 듯하긴 해도. 아우구스티누스는 중세 초기에 처음으로 그리스도교 신앙세계에 이성의 논리를 도입한다. 그리스도교의 신앙을 더욱 굳건히 하고 하나님의 절대성을 공고히 다지기 위해 인간의 이성으로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는 논리다. 그렇다고 이성으로, 하나님의 존재를 파헤치거나 신앙의 실타래를 풀지는 않는다. 이 책에서 말하는 아우구스티누스의 논리는 이른바 ‘이해하기 위해 믿는다’는 명제다. 일단 하나님의 존재와 신앙을 믿고 나면 이성적으로도 우주만물의 탄생과 하나님의 실재성 등도 이해할 수 있다는 논리다.

아우구스티누스 시기로부터 약 400년 뒤 토머스 아퀴나스도 아우구스티누스처럼 그리스도교 신앙세계에 이성의 잣대를 들이댄다. 아우구스티누스 사상을 계승해 이성의 역할에 무게를 더욱 싣는다. 아우구스티누스처럼 하나님의 실재성과 신앙을 막연히 신적인, 영적인 세계로만 두지 않고 이성으로 이해해야 함을 설파한다. 아우구스티누스보다 이성을 더욱 강조한 이른바 ‘믿기 위해 이해한다’는 명제를 내세운다. 아퀴나스는 아리스토텔레스에 영향을 받고 스콜라철학에 관심을 둔다. 이성의 학문이라 할 수 있는 철학으로 하나님 존재를 증명하고 신앙이 필요함을 주장한다.

중세 두 학자의 특징은 하나님과 신앙을 막연히 믿거나 계시에 의존한 고대 사유의 틀에서 벗어난다는 점이다. 이성의 잣대를 들이대 고대보다 합리적으로 하나님을 찾고 신앙생활을 영위하려고 했던 것이다. 이성의 개념을 도입하고 발전시켰다고 해도, 두 학자 모두 이성으로 신앙을 밟고 올라서지는 않았다. 신앙을 더욱 공고히 하기 위해 이성으로 이해하려고 했던 것이다.

중세가 지나고 근대에 이르러 이성에 근거한 사유는 더욱 불꽃을 발한다. 신앙의 원리로, 하나님의 계시로 세상사를 이해하고 끌고 나가려 하지 않는다. 이 책에선 이성의 중요성을 더욱 강조한 데카르트를 예로 든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인간의 생각, 즉 인간의 이성으로 우주만물과 세상사를 이해하려 든다. 이런 철학과 사상이 꿈틀꿈틀 용솟음치면서 그에 대한 화답으로 과학이 불같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자동차, 비행기, 컴퓨터, 아파트, 인스턴트식품, 등...... 과학의 이기는 이루 헤아릴 수 없다. 과학은 몸을 편하게 해준다. 과학은 눈에 보여 명확하다. 그래서 애써 사유하지 않아도 된다. 중세까지만 해도 철학은 이성의 영역이었는데, 이제는 철학도 영적 영역이 아닌 듯싶다. 그만큼 명확하고 화려하게 보이는 것들이 너무 많아 철학도 이젠 잘 보이지 않는 것은 아닌지......

이 책은 중세 그리스도의 뼈대라고 할 수 있는 두 명의 학자를 소개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중세의 사상을 이야기하면서 고대 사상을 끌어와 붙이고, 근대와 현대의 사상으로 나가는 통로를 열어주고 있다. 볼륨이 크지 않고 많은 얘기가 주저리주저리 널부러져 있지도 않다. 고도의 사상적, 철학적 개념과 고급 전문용어를 남발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과학의 문명에 눌려 사는, 사유하는 데 서투른 나는 이 책에서 끌리는 뭔가를 느꼈다.

‘지식인마을 시리즈’ 를 기획한 사람이 기특하다. 이 시리즈 마음에 든다. 그래서 지식인 마을을 한 집씩 점령해 볼 생각이다. ‘신앙과 이성 사이에서’ 읽자마자 두 권 주문했다. 이번엔 아퀴나스 사상에 영향을 준 아리스토텔레스와 근대 이성 철학의 거장 데카르트를 살펴볼 생각이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blueyonder 2011-11-20 0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우구스티누스가 354년에 태어났고 아퀴나스가 1225년 경에 태어났다고 하니, 시대가 900년 가까운 차이가 납니다. 그냥 사실 관계를 바로잡기 위해서 댓글 남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