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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vesick 3 - 완결
사토시 모리에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1년 3월
평점 :
절판
만화책에 있어서 장르는 거의 가리지 않고 본다. 순정만화도 예외는 아닌데, 순정만화를 보기 시작한 건 순정만화만 보던 친구의 영향 때문이었다. 당시 주로 소년만화를 보던 내게 순정만화는 어쩐지 기피대상이었고 자신이 그걸 보는 모습은 상상이 가질 않았다. 연애소설에도 흥미가 없었으니, 순정만화라고 흥미가 있었으랴.
그렇게 발단은 사소하게 시작되었다. 그 뒤로 순정만화든 소년만화든 손에 집히는 대로 보고 있으니, 폭이 넓어져서 좋기는 하지만 너무 읽을 책이 많아 곤란한 것도 사실. 하지만 더 문제는 순정만화는 정말 다 거기서 거기라는 것이다. 몇번쯤 보고나면 어떻게 흘러갈지, 어떤식으로 나올지 등등이 눈에 보이기 시작한다. 그럼에도 그런 뻔한 이야기를 작가가 얼마나 재미있게 풀어내느냐에 따라 똑같은 소재도 재미있게 변하는 것에 푹 빠져서 읽고 만다. 하지만 이젠 100% 퓨어한 순정만화는 도저히 읽을 수가 없다. 읽을 수가 없다는 건 책장을 넘기면서 그림을 보고 활자를 보지만 어느 인물에도 감정이입을 하지 못한 채, 머리는 점점 냉정해지며 스토리라인과 러브라인, 앞으로 전개 등을 머릿속으로 그리면서 그저 '읽을' 뿐이다. 한마디로 만화가 주는 재미가 없다. 그건 심각하다.
모리에 사토시의 <Lovesick>는 그런 100%퓨어계의 순정만화는 아니다.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돌아가신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남장을 하고 학교에 입학하여 교내 탑 4명을 이용한다는 설정이다. 이렇게 줄거리만 간단히 쓰고 나면 별반 다른 순정만화와 다를바가 없어보이지만 실제로는 상당히 다르다.
첫째로 보통 순정만화에서 남장을 하고 학교에 입학한다면 남장한 사실을 들키지 않기 위해 조심하게 되고 남자들을 의식하게 되는데, 이것은 자신이 '여자'로써 자각을 무척이나 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러브시크의 주인공 시키는 남장 사실이 들켜도 의연하고 당당하다. 또한 자신의 성별이 밝혀진 뒤에도 여자로써의 대우를 바라거나 많은 의식을 하지 않은 채, 성별에 상관없이 한명의 사람으로써 각기 다른 병을 가진 교내 탑 4명의 마음을 헤아려준다.
둘째로는 복수와 관련된 것이다. 보통 주인공이 복수를 위해 학교에 남장을 하고 입학하게 될 경우, 복수도 중요하지만 대게는 포커스가 러브라인쪽으로 맞춰져서 흘러가는 경우가 있다. 그런 경우 복수의 의미가 간혹 희미해지거나 이차적인 요소로 변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좋지 않다. 조화를 이루지 못해 어느 한쪽이 미미해지면 찝찝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러브시크에서의 시키는 처음부터 3권의 거의 끝무렵까지 복수를 제일 첫번째의 목표로 둔 채, 아주 조금씩 하루에 대한 마음으로 고민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런 부분이 순정만화스러움을 드러내고 있는데, 너무 치우치지 않은 점이 좋다.
셋째로는 첫번째 이유와 비슷하다. 시키는 자신이 여성이며 복수를 위해서 4명을 이용하겠다고 당당히 말하며 도움을 청한다. 여성 그 자체라는 무기를 내세우지 않고 복수를 위해서는 도움을 청하거나 머리를 숙이는 것도 당연하다는 듯, 자신의 모든 상황을 철저히 이용하겠다는 마음의 의지를 보여준다. 하지만 이용한다고 해서 밉살스러운 것은 아니다. 자신의 복수에 4명이 가담하게끔 만드는 과정이 비인간적이다거나 악랄하지 않기 때문이다. 도움을 청하며 다가가 서로의 비밀을 공유하고 알아가며 의지하는 모습이 좋다.
네번째로는 탑 4명이 걸린 병을 감각적으로 표현해내었고 그것을 시키가 잘 헤아려줬다는 점이다. 이 4명은 각각 특이한 병을 앓고 있는데, 이러한 병들로 인해 고민하고 괴로워하는 모습들이 많이 등장한다. 4명이 가진 병에 대해서는 1~3권에 걸쳐서 이야기가 진행되며 사건의 흐름에 주축을 이루는데 이것이 마치 미스터리의 그것과 닮아있다. 어떤 병이 있을까 궁금해지고, 앞으로 어떻게 흘러갈까 종잡을 수 없는 매력이 있다. 무엇보다 개인적으로는 그들이 가진 병들 자체에도 무척이나 흥미가 있었고 그것을 이런식으로 풀어내는 것도 즐거움에 한 몫 더했다.
다섯번째로는 하루를 제외한 남자 주인공들 전부다가 자기자신이 소중하고 자신의 것만이 소중하다는 점이다. 자신이 너무나도 소중한데 혹여나 타인에게 다가가 자신을 드러내보였다가 상처를 입거나 그 상대를 잃을까봐 무서워한다. 나 자신이 너무 소중하고 상처 입기 싫은데도 가까이 있고 싶고 그 사람에게 필요로 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한다. 애정을 갈구하면서도 무서워하는 모습이 보인다. 또한 자신의 정체성을 찾지 못해 필사적으로 자신의 모습을 만들어나간다. 자신의 어떤 모습을 타인에게 보임으로써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알고 혼란에서 벗어나 스스로에게 자존감을 부여하려고 한다. 그 과정은 마치 <플래니타 데이터>의 가구라의 모습과 일부 닮아있었다.(스포일러가 되어 버린것 아닐런지.) 이러한 모습은 그들의 병과 관련이 있으며 마지막에 시키와 하루가 잘 되더라도 누구하나 찝찝하지 않고 이런 결말도 괜찮다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다.
3권에서는 아무래도 완결이기도 하고, 본 만화의 장르가 순정만화이다 보니 1,2,3권중 가장 순정만화스러운 컷들이 많이 나왔다. 그건 그것대로 좋으니, 이 점에 대해서는 노코멘트.
남자와 여자가 만나 사랑에 빠지고 흔들리며 불안해하고 고민하는 순정만화도 물론 좋아한다. 소년 소녀가 만나 풋풋한 사랑을 이어가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 다만 그런 이야기들이 많이 쏟아져나오는 만큼, 많이 읽어 본 만큼 좀 더 이색적이고 내 입맛에 맞는 책을 찾게 된다는 것이다.
남장을 했지만 왠만한 남성보다 더 멋있는 시키, 그런 시키를 예전부터 좋아해온 하루, 무척이나 귀여운 나츠, 머리좋은 까칠한 후유, 자신을 좋아해주는 여자라면 누구든지 괜찮다는 아키. 시키는 자신의 복수가 끝나고 살아있을 이유를 찾을 수가 없다. 복수에 성공해도 죽은 사람은 돌아오지 않는다. 그런 시키의 곁에 남겠다고 말한 4사람. 그 뒷 이야기는 모두들의 상상 속에 맡긴다.
각자가 각자의 상처를 안고 고민하며 사랑받기 위해, 필요로 하는 존재가 되기 위해 고민하고 때로는 혼란스러워하며 슬퍼하지만 결국 자신의 존재 가치를 서로에게서 찾고 발돋움 해가는 5 사람의 이야기. 3권으로 끝나서 아쉬운건 나뿐일까. 뒷 이야기가 궁금한 것은 아니다. 그건 독자의 몫이고 결말은 이정도가 딱 좋으니까. 단지 좀 더 들려줄 이야기가 남아있었던 것을 아닐까라는 생각이 문득 지나간다. 들려줄 이야기가 아니라 듣고 싶은 이야기인지도 모르겠지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