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의 궁전 안개 3부작 3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 지음, 김수진 옮김 / 살림 / 2011년 2월
평점 :
품절


 책을 읽으면서 나이탓 때문에 재미없었다고 하는 건 좋아하지 않는다. 오히려 나이 먹은 자신이 야속하고 작품에 대해서 아쉬움이 생긴다. 그리고 이번 책은 정말 읽는 내내, 그리고 읽고나서도 그렇게 느꼈다.   

 근래에는 주로 미스터리나 추리 관련 된 책을 많이 읽기 때문에 스릴러나 판타지는 한동안 보지 않고 있었는데, 왠 판타지와 스릴러가 합쳐진 책이 나온 것이었다. 판타지와 스릴러가 합쳐지면 어떤 느낌일까.  

 처음에는 별 다른 생각이 없었다. 책의 흐름에 몸을 맡기고 즐겁게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내 그 기대감은 알 수 없는 무언의 실망감으로 바뀌었다.  

 16세 소년들이 자신의 출생과 관련된 비밀을 16살에 알게 되고, 그 출생과 관련된 인물과 맞서싸우며 자신의 운명에 저항하고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지금은 나이가 많이 들어버린 의사 이언은 주인공인 벤의 친구로 그의 운명에 '차우바 소사이어티'의 일원으로써 함께 맞서며 자신들이 겪은 일들에 대해 기록해야 한다는 의무감을 띈 채 마치 유작품을 남기듯 자신이 겪은 일을 회상하며 적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하지만 작품 내내 회상 형식은 아니며 프롤로그나 막간, 에필로그 등을 통해서 이언이 직접 이야기를 들려줄때뿐이다. 그 외에는 들려주거나 말해주는 방식이 아니라 3인칭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전개된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들려주는 식의 이야기 방식이 압도적이다. 극중 인물들이 회상을 하며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하고 때로는 직접 작가가 과거의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이야기는 짧은 챕터별로 장면이 바뀌면서 진행되며 청소년의 모험과 우정, 정의, 가족, 생존 등을 주된 테마로 해서 판타지와 괴기스러운 스릴러를 뒤섞어 이야기를 전개한다. 악을 물리치고 친구들을 구하고 정의를 구현하려지만 그 악은 자신의 가족이며 지금 자신을 있게 해준 사람이라는 점에서 혼란스러워 한다. 결국 악을 물리치게 되지만 그 과정과정 중 어른이 되어 가는 것은 어떤 것이며, 사회란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이야기속의 이야기 즉 액자형식을 통해 말하기도 한다.  

 충분히 그들이 생각하는 것들이 이해는 가지만 감정이입이 되지 않는다. 비단 나이탓만은 아닌 듯 하다. 스토리를 이끌어 나가야 되다보니 캐릭터가 부실하다. 처음부터 이 인물은 이런이런 성격이며 이런 재능이 있다고 선언하고 시작하고 있는데다가 심리묘사가 그다지 와닿지 않았다. 사건을 전개시키고 과거의 미스터리를 풀며 앞으로 다가올 공포를 표현하는데 너무 급급하지 않았나 한다. 물론 전개도, 과거의 미스터리도, 스릴러도 중요하다. 하지만 그런 큼지막한 이야기들을 이끌어 가는 건 인물들이 되어야 한다. 주인공과 그의 친구들의 판타지스럽고 괴기한 모험을 적을 생각이었다면 좀 더 인물들에도 신경을 썼어야 했다. 

 또한 판타지도 판타지 나름이다. 귀신이나 요괴, 악령들을 좋아하는 나로써는 이 소재 자체가 싫은 것은 아니다. 단지 이 소재를 어떻게 살려서 이야기를 전개하느냐가 중요하다. 이 이야기로 들 것 같으면 여기 등장한 악령은 하나도 매력이 없다. 정말 굳이 넣었어야 했냐는 생각이 들 정도로 형편없다. 이야기 전개상 꼭 필요한 것임에는 틀림이 없지만, 그 악령이 자신의 죽은 아버지의 악령이라면 그의 양면성을 더 뚜렷하게 보여주어야 되는 것이 아니었나라는 생각이 든다. 도통 이 악령은 나타났다하면 불을 지르고 상해를 입히고 나아가 살인까지 하는 등 악행을 판타지스럽게 피우고는 사라지며 본모습을 드러냈다하면 겉멋만 들린 의미없는 게임같은 말만 할 뿐이다. 이래서는 아무리 악령이라고 해도, 아버지의 악령이 아니라 그저 그냥 망난이 악령일 뿐이다. 그냥 미쳐 죽은 악령, 지나쳐 간 악령도 아니고 주인공 아버지의 악령인데 깊이 있는 대사라고는 없다. 마지막 무렵게 그 악령이 벤이 한 말에 슬퍼하는 기색을 보이며 반성을 하고는 자신의 운명의 고리를 끊어달라며 벤에게 말하는데, 그렇게 끝에 가서 갑자기 인간적인 모습을 드러내며 감정에 호소한다고 한들 나로썬 어이만 없을 뿐이다. 갑자기 끝에 가서 악령으로써의 아버지가 회개하는 것을 보여줘도 의미가 없는 것이다. 그렇게 이야기를 끌고 갈 셈이었다면 그럴게 흘러가게끔 스토리를 좀 더 탄탄하게 했어야 했다. 이는 역시 부족한 심리묘사와 관련이 있지 않을까.

  인물들의 과거를 알고 현재를 알고 앞으로 나아갈 방향까지 나와있는데도 같이 조사를 하고 모험을 떠나며 공포에 맞설 수가 없다. 이건 정말 나이탓만이 아니다. 온통 사실들만이 잔뜩 늘어놓을 뿐 수습이 되질 않는다. 이렇게 감정이입하지 않고 읽기도 참 힘든데 말이다. 하지만 어렴풋이 책을 읽으면서 자신의 어릴적 모습을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자신이 '차우바 소사이어티' 멤버들처럼 우정과 친구에 불타오르던 시기를. 내가 차우바 소사이어티 멤버들과 같은 나이가 되었을 때는 이미 그러한 것들이 향수로 변해있을 무렵이였다.   

 지금 나는 청소년기를 지났지만 여전히 성장소설도 만화도 즐겨 읽는다. 특유의 겁없는 행동, 실행력, 친구를 위하고 정의를 구현하려 하고 우정을 중시하고 자긍심과 자신감을 넘어선 오만함까지도 좋아한다. 그런 것들이 없는 아이들은 거의 없으며 누구나가 한번 쯤은 겪고 지나가기에 향수에 잠길 수 있는지도 모른다. 그런 모든  소년스러움을 우리 모두 좋아하는 것이 아닌가? 그것을 통한 재미는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퇴색되지 않는다. 그리고 나는 그런 작품이야 말로 정말 굉장한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온 세대를 통틀어 하나의 감상만 내게 하는 것이 아니라, 각기 다른 나이대에 한 작품을 읽어도 각기 다른 재미와 감상을 내 놓게 만든다.  

 내가 본 작품에 너무 큰 것을 바란 것일까. 판타지면에서도 스릴러 면에서도 도통 점수를 줄 수가 없다. 어느쪽도 식상하고 뻔하며 전혀 스릴러스럽지도 않았다. 이러한 소재와 내용 그리고 전개를 가지고 읽기엔 힘이 들었고 인물들의 인상이 흐릿하며 아무리 회상이라지만 너무나도 들려주는, 김이 빠지는 진행이었다. 스릴러면에서는 역시 심리묘사가 부족했기 때문에 감정이입이 잘 되지 않아 여기서도 스릴러라기보단 그저 가벼운 공포체험정도로 밖에 느껴지지 않았다.  또한 풍경이나 다른 여타 묘사를 꽤나 감각적으로 잘 표현했는데, 심리묘사가 너무 없다보니 그런걸로 지면낭비 하지 말고 인물들에나 더 신경을 쓰라고 말하고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내가 청소년기에 이 소설을 읽었더라면 좀 더 다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악령이 등장하고 친구들과 자신이 가진 힘을 짜내어 조사를 하고 어둠을 향해 뛰어들고 목숨을 건 사투를 벌이며 공포는 극에 달한다. 과연 어떨까. 내가 말한 위의 모든 단점들은 충분히 장점으로 바꿔서 이야기 할 수 있다. 이런 소재와 내용, 전개는 사춘기 소년소녀에게 어필하기 쉬우며 그들은 훨씬 감정이입을 하며 재밌게 읽을 수 있을지 모른다. 또한 심리묘사가 짙지 않다는 것은 빠른 전개는 물론이고 너무 질척이지 않아 정말이지 청소년기 소년들에게 즐거움과 재미를 줄지도 모를 일인 것이다. 너무 무겁지도 그렇다고 가볍지도 않다. 즐거움과 교훈을 동시에 줄 수 있는, 오히려 멋진 책이 될지도 모를 일 인 것이다.   

 사춘기 소년 소녀들을 자극할 만한 단어 선택(친구, 우정, 모험, 운명 등)과 친구들과 함께 악을 물리치고 운명에 맞서며 어른으로 성장한다는 내용과 짙지 않은 심리묘사는 청소년기 아이들이 딱 읽기 좋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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