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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바보 - 대양 육대주에서 만난 사랑하는 영혼들과의 대화
오소희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수많은 사랑과, 혹은 사랑에 흡사한 것들을 접하고 통과해왔건만, 애석하게도 나는 아직 그것을 마스터하지 못했다. 아마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럼에도 나의 위안은 나뿐 아니라 동시대의 모든 인류가 사랑을 마스터하지 못한 ‘사랑바보’라는 것이다.”
프롤로그에 나오는 이 문장으로 인해 ‘사랑바보’라는 제목으로 출간한 이유를 납득하게 되었지만 사실 책 제목이 마음에 들지 않았었다. 물론 작가나 출판사의 계획된 의도에 의해 탄생한 제목이겠지만 ‘바보’라 붙은 책 제목이 하나 둘 생겨나고 있는 이때에 유행에 편승하는 것만 같아 편하게 바라봐지지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 더 이상은 여행 에세이집은 읽지 않겠노라 결심했음에도 불구하고 읽은 ‘사랑바보’는 작가의 말처럼 사랑에 흔들리며, 사랑에 아파했고 그리고 또 사랑을 하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풍경 좋은 여행지를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서 만난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것도 사랑을 하는 사람들. 아마도 이것이 다른 책들과 구별되는 점이 아닐까 싶다. 그곳엔 어떻게 가야 하는지, 무엇을 봐야 하는지가 아니라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을 통해 어떤 감동을 받았는지 사람과 사람의 만남이 주는 기쁨이 무엇인지 시종일관 사람에 관해서 말하는 사람이야기다. 여행을 하며 만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그들과 함께 길거나 짧은 순간들에 대한 느낌, 그들과 나눈 사랑의 감정(인류애라고 보면 될 듯 싶다), 기억에 남는 교제의 시간을 글로 옮겨놓았다. 사랑이라는 일관된 주제 아래 자기를 사랑하기 시작 한 사람, 동성의 사랑, 젊은 부부의 사랑, 노년 부부의 사랑, 절제하는 사랑, 드러내는 사랑 등등 다양한 사람들의 사랑이야기를 결코 가볍지 않은 깊이 있는 글 솜씨로 풀어놓은 것이 좋다.
“우리는 모두 사랑을 ‘잘’ 하고픈 사람들이다.” 물론 나도 그렇다. 사랑을 잘 하면 좋겠다. 그러나 참 쉽지 않은 것이 또 사랑이 아닌가 싶다. 어떤 종류의 사랑이든지. 특히 여행을 하면서 낯선 사람들과 허물없이 인간애를 나눈다는 것은 나의 성격으로는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일 중 하나이다. 물론 마음속에는 사랑을 잘 하면 좋겠다 생각하지만 쉽지 않다. 글 속에 ‘사랑하지 않는 습관’이라는 말이 나온다. “사랑은 촛불처럼 생의 한 순간 주어진 선물일 뿐 나머지 시간들은 ‘사랑하지 않는 습관’으로 인내하며 조절하며 지새울 뿐이라고” 어쩜 나도 사랑하지 않는 습관에 너무 잘 인내하며 조절하며 기들여져 있는 것은 아닐까 싶다. 나를 사랑하는 것에도, 타인을 사랑하는 것에도 그리고 세상을 사랑하는 것에도 열린 마음으로 다가가지 못하고 꽁꽁 걸어 잠근 채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사랑을 마스터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사랑하고 싶은 생각조차도 사라져버리고 없는 그런 상태. 나를 향해 나도 질문을 던져본다. 나는 어떻게 사랑하는 사람인가 하고.
민들레 홀씨가 날아다는 듯 은은한 표지와 구겼다 편 종이 위에 쓰인 소제목의 디자인이 잘 어울리는 <사랑바보>가 주는 느낌은 편안함과 정감이다. ‘아이구’를 감탄사로 쓰는 구멍가게 할머니나 ‘거 참 고맙지’를 연발하는 김밥집 할머니가 주는 그런 따뜻함이 들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