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몰랐던 간첩 잡는 이야기
하동환 지음 / 에스엠디자인 / 2024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전직 국정원 대공수사 요원 출신인 하동환의 『우리가 몰랐던 간첩 잡는 이야기』를 읽었다.

2024년 1월 1일부로, 국정원은 그동안 해오던 대공수사 업무를 경찰로 이관했다. 『우리가 몰랐던 간첩 잡는 이야기』는 소를 잃은 농부가 외양간을 고치는 마음으로 쓴 책처럼 읽힌다.



『우리가 몰랐던 간첩 잡는 이야기』에 실린 간첩 수사의 역사는 흥미롭다.

1970~1990년대까지는 "연고선" 간첩들이 활동했다고 한다. 주로 한국전쟁 당시 헤어진 가족의 혈연을 이용한 공작 방식이다. 이때 이후로 완전한 북한 출신인 "새세대 공작원"들이 등장했으며, 놀랍게도 근래까지 "자생 간첩"이 활동하다가 검거되기도 했다. 『우리가 몰랐던 간첩 잡는 이야기』에서는 "남조선노동당 사건", "민혁당 사건", "일심회", "RO" 등 굵직한 사건들을 아우른다.


특히 내 이목을 끈 부분은, 요즘 북한의 문화교류국은 "유튜브" 댓글을 이용하기도 한다는 점이다. 또한 "스테가노그라피"라는 암호 생성기, 해독기를 사용한다는 점 역시 인상적이었다. "유튜브" 댓글 부분을 읽으면서 예전엔 "네이버 지식인"을 통해서 익명의 사람들이 특정한 좌표를 주고 받는다고 의혹을 제기한 글을 본 적이 있었는데, 다시 찾아보니 보이지 않는다. 어쩌면 드보크 좌표가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우리는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향한다.



국정원의 실체에 대해선 잘 몰라도 원훈만큼은 유명하다. (현재의 원훈은 이재명 정부에 들어서 "정보는 국력이다"로 교체되었다고 한다.) 이 원훈처럼, 우리가 모르는 곳에서 끊임없이 북한의 대남공작과 치열하게 싸움을 전개해온 국정원은 국회의원들의 입법에 의해 수사권을 잃었다. 여러모로 생각해볼 거리를 던져주는 문제다. 저자가 주장하듯이 '국정원 대공수사권 폐지'를 입법시킨 다수당 의원들 중 많은 수가 국가보안법에 저촉된 이력이 있고, 국정원의 전신인 안기부에서 상당한 고초를 치렀기 때문일 수도 있다. (『우리가 몰랐던 간첩 잡는 이야기』, 210쪽)


하지만, 저자가 언급했다시피, 국정원은 FBI의 수사권과 CIA의 정보력을 동시에 지닌 막강한 권력기구이기도 하다. 중정이나 안기부에 대해 말할 때,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 "남자를 여자로 바꾸는 것만 빼고는 뭐든지 가능하다."와 같은 묘사가 나오는 건 그런 면모를 더욱 부각시킨다. 권력의 이름으로 자행된 강압 수사의 결과물들이 축적되어 대공 수사권 폐지에 한몫했음도 부정할 순 없다.


실질적으로 통진당 사건, 이태원 참사 시위 지시문 등을 살펴볼 때, 북한은 여전히 우리나라에 실제적인 위협을 가하고 있다. 나 역시 저자의 의견대로 이러한 북한의 야욕을 저지하기 위해선 국정원이 대공 수사를 맡아야 한다고 본다. 다만, 앞서 언급한 강압 수사나, 저자가 책에서 고백했듯이 잘못된 정보를 재판에 사용했던 문제 등은 국정원의 자승자박이었다. 따라서 이 수사권을 국정원에게 돌려주되, 무소불위의 권한을 주기보다는 효율적으로 쓸 수 있는 방안을 정치권이 마련해주었으면 하고 바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지극히 사적인 일본 - 전 아사히신문 기자가 솔직하게 말하는 요즘 일본 지구 여행자를 위한 안내서
나리카와 아야 지음 / 틈새책방 / 2025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먼나라 이웃나라, 가깝지만 또 먼 나라, 일본



『지극히 사적인 일본』의 저자 나리카와 아야는 오사카 태생이다. <아사히신문>에서 기자로 근무하면서 일본 곳곳으로 파견을 나가서 근무하면서 일본의 여러 모습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한국에 두 차례 유학을 와 한국 문화에도 친숙한 편이다. 근래에는 한국의 방송에 출연하는 등 한국와 일본 양국을 오가면서 한국에는 일본을, 일본에는 한국을 알리는 일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지극히 사적인 일본』은 틈새책방이라는 곳에서 출간되었는데, "지극히 사적인" 시리즈를 밀고 있는 듯하다. 우리나라 방송에 자주 모습을 드러내는 이탈리아의 알베르토, 러시아의 일리야, 영국의 피터 번트가 각각 『지극히 사적인 이탈리아』, 『지극히 사적인 러시아』, 『지극히 사적인 영국』을 집필했다.



『지극히 사적인 일본』는 전체적으로 통통 튀는 문체로 구성되어 있다. 통번역도 할 수 있는 저자의 역량 덕분에, 번역체 느낌보다는 저자 고유의 언어가 살아 있는 것 같다. 『지극히 사적인 일본』을 읽는 내내, 한국말을 정말 잘하는 일본인 친구가 있다면 이렇게 말할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지극히 사적인 일본』은 전반적으로 한국과 일본의 문화를 비교한다. 당연하게도 그 무엇이 우월하고 열등하다는 판단을 내리지 않는다. 종종 인터넷에서 한국은 "서일본", 일본은 "동조선"이라고 부를 때가 있다. 대체로 서로의 안 좋은 사회적 문화나 특성에서 공통점을 발견했을 때 사용한다. 그만큼 한국과 일본은 비슷한 점이 많은 이웃나라다. 북한이나 중국, 대만과 함께 서로에게 가장 가까운 이웃이기도 하며, 안 좋은 역사로도 묶여 있는 사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책을 읽어나가면서 비슷하다고 생각했지만, 정말 다르다는 점을 새롭게 배울 수 있었다. 일본에 관심이 많아서 대체로 알고 있는 이야기도 많았지만, 이런 지점은 정말로 양쪽 문화를 깊숙이 체화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알려줄 수 없는 내용 같았다. 호칭의 문제는 한국 사람도 헷갈리는 경우가 많은데, 서로 다른 문화권이라면 더 헷갈리기 마련이다.



한국어를 배우는 일본 사람 중에 '씨'와 '상(さん)'을 같다고 생각해서 쓰는 사람이 많은데 씨보다 상이 훨씬 쓸 수 있는 범위가 넓다. 상은 총리에게도, 사장님에게도, 후배에게도 쓸 수 있다. 한국에서 직원이 김 사장님을 "김 씨"라고 부르면 실례가 되겠지만, 일본에서는 직원이 다나카 사장님을 "다나카상"이라고 불러도 괜찮다.


『지극히 사적인 일본』, 392쪽


또한 일본에는 "2세대 대출"이라는 게 있다고 한다. 한국에도 있을지 모르겠지만, 생소한 개념이라 신기했다.



친척 중에 크게 다친 사람은 없었지만 큰아버지 집 벽에 금이 갔다. 단독 주택이었는데 지진 몇 년 후에 '2세대 대출'을 받아 다시 집을 지었다. 큰아버지가 정년퇴직 때까지 갚고 그다음에 이어서 장남이 갚는 대출이다.


『지극히 사적인 일본』, 313쪽



"유도리"라는 말이 양국에서 가지는 뉘앙스 차이도 재밌었다. 유도리는 한국어에 남아 있는 일본어의 잔재라고 한다. 한국에서 "유도리 있게 하자.", "저 사람은 유도리가 없다."라고 하면, "융통성 있게 하자.", "저 사람은 융통성이 없고 꽉 막혔다."라는 의미를 가진다. 물론, 이는 일본어의 원래 의미인 "여유"와도 의미는 대략적으로 통하긴 한다. "여유 있게 일을 하자.", "저 사람은 여유가 없다." 정도로 표현해도 말의 뉘앙스는 알아들을 수 있다. 정확한 의미는 "융통성"이 맞다.



한국에서는 '유도리'를 '융통성'이라는 뜻으로 사용하는데, 원래 '여유'를 뜻하는 일본어 발음은 '유토리'에 가깝다. 일본에서는 1987년부터 2004년에 태어난 세대를 '유토리 세대'라고 부른다. (…) 유토리(여유)가 있는 학교 생활을 보낼 수 있게 한 것이다.


『지극히 사적인 일본』, 303쪽



일본만의 고유한 놀이에 대해서도 알 수 있었는데, 술게임이다. '기쿠노하나'라는 놀이라고 하는데, 술자리 인원에 맞게 술잔을 뒤집어 놓는다. 그 중 하나에는 '국화'를 숨겨놓는다. (상상해보자면 그러고나서 아마도 야바위 게임을 하듯이 잔을 마구 섞지 않을까?) 그때부터 한 사람씩 돌아가면서 잔을 뒤집는다. 국화가 있는 잔을 뒤집은 사람이 그때까지 뒤집어진 잔만큼의 술을 마셔야 한다고 한다. 저자의 말처럼 정말로 "어떻게든 마시게 하겠다는 의지가 충만한 음주문화"다. (77쪽)



「여성 천황의 가능성」이라는 꼭지는 특히 인상적이었다. 일본에선 역대 8명의 여성 천황이 있었다고 한다. (물론, 천황의 계보는 과거로 갈수록 정확한 편은 아니긴 하다.) 그러나 메이지 유신에 의해 공포된 '일본국 헌법', 그리고 미군정 시절 반포된 '일본국 헌법'에 의거한 '황실 전범'에서는 남성의 세습만을 인정한다.


지금 나루히토 천황에게는 딸밖에 없어서 만약 나루히토 천황이 자리에서 물러나면, 동생인 왕세제가 물려 받거나, 왕세제도 고령인 점을 감안하여, 승계 2순위인 왕세제의 아들이 물려받을 수도 있다고 한다.


이 책이 쓰여진 건 2025년 여름인데, 그 이후 2025년 10월에 사상 처음으로 여성인 '다카이치 사나에'가 취임했다. 게다가 2026년 2월에는 의회를 해산하고 개헌 의석수까지 확보할 만큼 강력한 지지를 받고 있다. 이번에 새로이 취임하면서 '황실기본법'도 고치겠다고 하는데, 근대화 이후 사상 첫 여성 총황이 탄생하게 될지도 귀추가 주목된다. '평화 헌법'이 얼만큼 고쳐질지를 예의주시하면서 같이 관심을 갖고 챙겨볼 만한 사안인 것 같다.



「외면하는 가해의 역사」 꼭지도 흥미로웠다. 우리는 피해자의 입장이어서 더 흥미로웠는지도 모르겠다. 『지극히 사적인 일본』은 전체적으로 중립적인 관점에서 쓰여졌다. 어느 한 쪽을 일방적으로 편들지도 않고, 나리카와 아야 개인이 한일 양쪽에서 불편한 점은 솔직하게 말하고, 좋았던 점 역시 솔직하게 적었다. 하지만 회색 지대에 선다는 것은 언제나 양쪽 모두에게서 공격을 받을 여지가 있다. '적이 없다면 친구도 없다'는 말을 생각해본다면, 중립의 어려움을 조금은 짐작할 수 있다.


나리카와 아야는 일본에서 개봉한 한국 뮤지컬 영화 <영웅>의 팜플렛에 글을 기고했다고 한다. 이때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한 안중근"이라는 문구를 편집자가 수정을 요청했다. (363쪽) 저자의 말대로 "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한 건 역사적 사실"이다. 그러한 가해의 역사를 불편하게 여기고 숨기려는 모습이 일부 일본인들에게 보일 때마다 독일이 떠오르는 건 어쩔 수가 없다.



특히 (한국의) 연예인들은 10대부터 활동하는 경우가 많아 대부분 대학에 안 가는데, 한국은 연예인도 대부분 대졸인 상황을 보면 일본인 입장에서는 신기한 일이다. 확실히 한국이 일본보다 학력 사회다.


『지극히 사적인 일본』, 322쪽


이 부분에는 사족을 달고 싶었다. 이 해석에서는 중요한 변수 하나를 빼먹은 것 같다. 바로 군대다. 물론 한국이 일본보다 대학 진학율이 높고, 연예인들도 대학에 가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요새는 10대 때부터 활동하는 아이돌 가수나 배우들은 대학에 가지 않는 경우도 많아졌다. 그렇지만, 이건 여자의 경우다. 남자 연예인의 경우에는 크게 학업에 뜻이 없더라도 대부분 대학에 진학한다. 대학교에 진학하지 않으면 한창 활동해야 할 시기에 영장이 날라오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징병제에 낯선 저자가 간과할 수 있는 부분인 것 같다.




『지극히 사적인 일본』은 한국에 사는 일본인 친구와 대화를 하는 기분이었다. 밤에 침대에 누워서 전화를 하거나, 아니면 카페에서, 이자카야에서 만나서 일본에 대해서, 한국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죽 듣는 기분이었다. '먼나라 이웃나라'라는 호칭이 딱 맞는 일본이라는 나라에 대해서 일상적이고 가볍게 알고 싶다면, 이 책을 추천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소설가의 휴가 - 미시마 유키오 에세이
미시마 유키오 지음, 박성민 옮김 / 시와서 / 2026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미시마 유키오는 왜 그렇게 생을 마감했을까. 그냥 쓸쓸해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버섯 농장
성혜령 지음 / 창비 / 2024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불청객을 조심하라







『버섯 농장』은 소설가 성혜령의 첫 단편소설집입니다. 「윤 소 정」으로 2021년 창비신인소설상을 통해 등단한 성혜령은, 「버섯 농장」으로 젊은작가상을 받았습니다. 또한 2024년에는 「간병인」으로 이상문학상 우수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수상 이력만으로도 문단의 주목을 받고 있는 작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버섯 농장』의 표지는 울창한 수림 한 가운데에서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듯한 그림입니다. 하지만 이 그림의 색감과 소설의 분위기 탓인지, 열려 있는 하늘에 대한 개방감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지금 여기서 도망칠 곳은 바로 위 하늘밖에 없다는 인상을 줍니다. 그리고 그건 실현가능성이 없기 때문에, 결국 도망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절망적인 암시를 주는 그림 같습니다.



책을 설명하는 문구 중 눈에 띄는 것은 ‘하드보일드’입니다. 익숙하지 않아서 조금 찾아보았습니다.



문학 장르 혹은 스타일. 영어로 hard-boiled. 일본에서는 비정파(非情派)라고 번역한다. 비슷한 단어로 느와르가 있다.


원래는 '(계란이) 완숙되는'이라는 의미의 형용사이지만 '비정·냉혹'이라는 의미의 문학용어로 변했다. 사전에서는 자연주의적인, 또는 폭력적인 테마나 사건을 감정이 들어가지 않은 냉혹한 자세로 또는 도덕적 판단을 전면적으로 거부한 비개인적인 시점에서 묘사하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쉽게 말해 비극적인 사건을 건조하고 진지한 분위기로 묘사하는 작품을 하드보일드라고 부른다. 자극적인 갈등, 감정묘사가 없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몰타의 매〉를 쓴 대실 해밋,〈빅 슬립〉과 〈기나긴 이별〉을 쓴 레이먼드 챈들러,〈움직이는 표적〉을 쓴 로스 맥도널드를 크게 하드보일드 추리소설 작가의 대표격으로 꼽을 수 있다. 또는 마이크 해머 시리즈의 미키 스필레인도 있다. - 출처: 나무위키





책을 읽기 전에는 고개를 갸웃하게 되기도 했지만, 다 읽고 나서 느낀 인상은 ‘하드보일드’의 설명에 부합했습니다. 『버섯 농장』에 묶여 있는 소설들에서는 비극적이거나 고통스러운 상황이 전개되는데 그에 따르는 감정의 묘사는 극도로 제한되어 있습니다. 오히려 괴로울 정도로 건조함을 느끼게 됩니다. 결말에 이를 때까지 한 겹씩 쌓이는 부조리와 불가해함은 끝내 해결되지 못한 채 불길함을 자아냅니다.





인상적인 소설들은 크게 3편이었습니다.



「사태」


「주말부부」


「마구간에서 하룻밤」



이 세 편의 단편소설은 하나의 원형을 공유하고 있는 듯합니다. ‘도무지 떠날 생각이 없는 불청객’들이 나온다는 점입니다. 그들은 한결같이 초대받지도 않은 채 집에 들어옵니다. 그리고 마치 자신의 사정을 망각한 채, 그곳의 주인인마냥 떠날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불청객과 함께 낯선 장소에서 고립되는 형식은 불편을 넘어서서 꽤나 공포스럽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이 소설들에서는 우리가 가장 안락함을 느껴야 할 집도 그런 장소로 변할 수 있음을 적나라하게 드러내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 편 한 편 읽고 나면, 도대체 불편함과 불길함이라는 인상만 남게 됩니다. 하지만 마지막 소설까지 다 읽고 나서야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불청객을 조심하라, 그리고 가장 난처하고 불쾌한 불청객은 우리 자신일지도 모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불새 내일의 고전
신종원 지음, 한규현 그림 / 소전서가 / 2025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한국 문단의 특이점




소설가 신종원을 생각하면, (어디까지나 주관적인 감상이라는 전제 하에서) 문단에서 가장 독특하고 가장 스타일리시한 소설을 선보이는 작가라는 인상이 가장 먼저 떠오릅니다. 이전 작품인 『전자 시대의 아리아』에서 보여줬던 소설의 한계를 실험하면서 선보인 전위성이 상당히 강렬한 기억으로 남았기 때문입니다.



물론 근래 읽었던 소설 중에서 가장 좋았던 작품이 무엇이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아쉽지만 신종원 작가의 작품을 꼽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김금희 작가의 『대온실 수리보고서』나 성해나 작가의 『혼모노』, 권혁일 작가의 『첫사랑의 침공』이라는 쟁쟁한 후보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근래 읽었던 소설 중에서 가장 충격적이거나 인상적이었던 작품을 꼽으라면, 주저하지 않고 『전자 시대의 아리아』를 꼽을 듯합니다.



신종원 작가의 신작인 『불새』 역시 이전 작품이 주었던 기대감 속에서 읽었습니다. 장편소설 『불새』는 『전자 시대의 아리아』에서 서로 다른 단편들로 보여주었던, 종교성, 사물성, 언어, 음악성에 대한 감각들이 극한으로 확장되고 한데 모인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개별 단편들에서 시도하던 실험들을 종합적이고 전방위적으로 실시하는 듯한 인상을 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인지 단일 소재가 강력하게 밀어붙여지던 단편 소설들만큼의 장악력은 느끼지 못했습니다. 지난 서평에서 ‘파시즘적이고 자폐적인 분위기’라고 표현했던 그 압도적인 느낌이 없었다는 아쉬움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여전히 넋놓고 따라가게 만드는 묘한 힘이 있는 작품이라곤 말해볼 수 있을 듯합니다. 또한 굉장히 인상적인 스타일을 자랑하지만, 한편으론 읽기에 난해하다고까지 여겨지던 문장들이 제법 말쑥하게 정리된 점들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아마도 긴 분량을 읽어야 하는 장편이기 때문에 가독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던 듯합니다.


전체적인 줄거리는 이렇습니다. 불행한 경험을 하게 된 신부 바오로가 성직을 그만두고자 합니다. 하지만 그의 정신적 아버지인 베드로 신부가 바오로에게 발렌시아 대성당에 안치된 ‘성배’를 보고 오라는 지시를 내립니다. 그러고 나서도 그만두겠다면 그렇게 하라고. 하지만 공교롭게도 때마침 성배가 어떤 집단에 의해 강탈당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입니다.


성배와 바오로, 그리고 다른 인물들을 따라서 소설은 이어집니다. 이 소설의 척추에 해당하는 종교성 덕분에 이 소설은 『사람의 아들』과 『죽음의 한 연구』의 유산을 이어받고자 하는 듯한 인상을 주기도 합니다. 시공간의 제약에서 굉장히 자유로워서 지금 내가 어디 한두 장 빠뜨리고 읽은 게 아닌가 싶은 기분이 들기도 합니다. 어쩌면 이전 작품에서도 드러나듯이 신종원 작가의 특징 중 하나인 옅은 서사성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각각의 자유분방함들을 이어주어야 할 서사의 맥이 가냘프기 때문입니다.


이전 작에서도 그러했듯이, 이 작가에게 서사는 여전히 그다지 중요해 보이지 않습니다. 서사는 신종원의 소설에 복무하되, 주력이 아닌 그가 가진 여러 가지의 무기 중 하나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신종원의 소설은 서사 예술이라기보다는 언어 예술이라는 재미난 인상을 줍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문장과 함께 글을 마치려고 합니다. 이 독특한 작가에게 소설의 앞날을 맡겨보는 건 분명 흥미로운 일이 될 것 같습니다. 작가가 계속해서 소설을 써준다면 말이죠.




이 다마스쿠스의 소경에게 앞날을 맡겨보겠다.


362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