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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새 ㅣ 내일의 고전
신종원 지음, 한규현 그림 / 소전서가 / 2025년 4월
평점 :
한국 문단의 특이점
소설가 신종원을 생각하면, (어디까지나 주관적인 감상이라는 전제 하에서) 문단에서 가장 독특하고 가장 스타일리시한 소설을 선보이는 작가라는 인상이 가장 먼저 떠오릅니다. 이전 작품인 『전자 시대의 아리아』에서 보여줬던 소설의 한계를 실험하면서 선보인 전위성이 상당히 강렬한 기억으로 남았기 때문입니다.
물론 근래 읽었던 소설 중에서 가장 좋았던 작품이 무엇이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아쉽지만 신종원 작가의 작품을 꼽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김금희 작가의 『대온실 수리보고서』나 성해나 작가의 『혼모노』, 권혁일 작가의 『첫사랑의 침공』이라는 쟁쟁한 후보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근래 읽었던 소설 중에서 가장 충격적이거나 인상적이었던 작품을 꼽으라면, 주저하지 않고 『전자 시대의 아리아』를 꼽을 듯합니다.
신종원 작가의 신작인 『불새』 역시 이전 작품이 주었던 기대감 속에서 읽었습니다. 장편소설 『불새』는 『전자 시대의 아리아』에서 서로 다른 단편들로 보여주었던, 종교성, 사물성, 언어, 음악성에 대한 감각들이 극한으로 확장되고 한데 모인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개별 단편들에서 시도하던 실험들을 종합적이고 전방위적으로 실시하는 듯한 인상을 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인지 단일 소재가 강력하게 밀어붙여지던 단편 소설들만큼의 장악력은 느끼지 못했습니다. 지난 서평에서 ‘파시즘적이고 자폐적인 분위기’라고 표현했던 그 압도적인 느낌이 없었다는 아쉬움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여전히 넋놓고 따라가게 만드는 묘한 힘이 있는 작품이라곤 말해볼 수 있을 듯합니다. 또한 굉장히 인상적인 스타일을 자랑하지만, 한편으론 읽기에 난해하다고까지 여겨지던 문장들이 제법 말쑥하게 정리된 점들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아마도 긴 분량을 읽어야 하는 장편이기 때문에 가독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던 듯합니다.
전체적인 줄거리는 이렇습니다. 불행한 경험을 하게 된 신부 바오로가 성직을 그만두고자 합니다. 하지만 그의 정신적 아버지인 베드로 신부가 바오로에게 발렌시아 대성당에 안치된 ‘성배’를 보고 오라는 지시를 내립니다. 그러고 나서도 그만두겠다면 그렇게 하라고. 하지만 공교롭게도 때마침 성배가 어떤 집단에 의해 강탈당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입니다.
성배와 바오로, 그리고 다른 인물들을 따라서 소설은 이어집니다. 이 소설의 척추에 해당하는 종교성 덕분에 이 소설은 『사람의 아들』과 『죽음의 한 연구』의 유산을 이어받고자 하는 듯한 인상을 주기도 합니다. 시공간의 제약에서 굉장히 자유로워서 지금 내가 어디 한두 장 빠뜨리고 읽은 게 아닌가 싶은 기분이 들기도 합니다. 어쩌면 이전 작품에서도 드러나듯이 신종원 작가의 특징 중 하나인 옅은 서사성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각각의 자유분방함들을 이어주어야 할 서사의 맥이 가냘프기 때문입니다.
이전 작에서도 그러했듯이, 이 작가에게 서사는 여전히 그다지 중요해 보이지 않습니다. 서사는 신종원의 소설에 복무하되, 주력이 아닌 그가 가진 여러 가지의 무기 중 하나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신종원의 소설은 서사 예술이라기보다는 언어 예술이라는 재미난 인상을 줍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문장과 함께 글을 마치려고 합니다. 이 독특한 작가에게 소설의 앞날을 맡겨보는 건 분명 흥미로운 일이 될 것 같습니다. 작가가 계속해서 소설을 써준다면 말이죠.
이 다마스쿠스의 소경에게 앞날을 맡겨보겠다.
36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