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연한 인생
은희경 지음 / 창비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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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적으로 보자면 소설가인 남자 요셉과 그의 과거의 여자 류의 이야기이다.

요셉은 현재 자신의 일상생활을 이야기하고 류는 자신의 과거를 이야기한다.

이 책은 류의 어머니와 아버지의 이야기로 시작하고 그들의 이야기로 끝이난다.

중간중간 이안이라는 인물이 등장하고 요셉도 알고 류도 아는 이안과 요셉의 미묘한 오해와 갈등이 이야기를 전개시켜나가기도 한다.

은희경작가의 소설이 조금은 그렇듯....이야기를 읽어내는 동안 껄적지근한 느낌이 든다....ㅡㅡ;;

 

p. 76~77

류는 독을 삼키고 잠들고 싶었다. 비행기가 목적지에 착륙하고 죽음 같은 잠에서 깨어난다면 곧바로 낯선 나라의 극장으로 달려가고 싶었다. 어두운 극장의 구석 자리에 앉아 스크린 위를 흘러가는 빛을 바라보며 시간을 빨리빨리 흘러보내고 싶었다. 인생이라는 필름은 조금도 심각하지 않답니다. 자, 다시 한번 돌려볼까요. 시간을 다시 설정할 필요 없이 그 나라의 극장에서는 그런 안내방송이 흘러나올지도 모른다. 그리고 극장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더라도 그 낯선 나라에 류를 고독과 고통의 세계로 끌고 가기 위해 기다리는 태연한 인생 따위는 없을 것이다. 낯선 곳으로 가고 있다는 것만이 그 상황에서 류의 단 하나의 위안이었다. 류는 눈을 감았다. 아무것도 알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두 손으로 귀를 막았다. 굉음을 내며 비행기가 이륙하고 있었고 류의 감은 눈이 더욱 찡그러졌다.

 

p. 171

어떤 분야에서의 성공과 실패를 평가내리고 강자와 약자를 가르는 현상적 이분법, 그리고 결과만으로 인간을 재단하는 세속적 패턴은 요셉에게 차라리 익숙했다. 요셉이 역겨운 것은 발언권이 없는 죽은 자를 이분법적 틀에 집어넣어 부저로 만들어놓고 그를 동정함으로써 자신들이 공의의 편에 서 있다고 믿는 자들의 기만적 패턴이었다. 누군가를 약자로 만든 것은 강자가 아니라 바로 그처럼 강약을 나누는 틀이고 그리고 그 틀에 스스로 편입되는 자들이다.

 

p. 178

다시 시트에 등을 기댄 요셉은 눈을 감았다. 그리고 마치 오래 참았던 말을 내뱉듯 조용히 중얼거렸다. 알고 있는지,류. 나의 모든 것은 거짓이다. 내가 거짓된 세상에 태어났다는 걸 깨달은 뒤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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