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어의 쓸모 - 평범한 대화를 더 근사하게 만드는 어휘의 힘
차민진 지음 / 21세기북스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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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단어의 쓸모>를 덮고 나서 가장 먼저 떠오른 건, 제가 그동안 얼마나 같은 말만 반복하며 살아왔나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회의실에서 누군가의 기획안이 영 미덥지 않을 때 저는 늘 "그건 좀 아닌 것 같은데요"라고 했어요. 나쁜 뜻은 없었지만 그 말 뒤에 따라오던 어색한 침묵을, 이제와 돌아보면 꽤 자주 겪었던 것 같습니다.


북유럽 카페를 통해 이 책을 받았을 때 솔직히 어휘책이라기엔 표지가 너무 말랑하다고 생각했어요. 동글동글한 동물 둘이 말풍선을 주고받는 그림이 표지를 채우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그 캐릭터들이 책 안에서 그대로 살아나 중간중간 짧은 만화로 등장합니다. 묵직한 풀이 사이에서 고양이 상사가 곰 사원에게 일을 건네는 장면 같은 게 불쑥 나오니, 두께가 제법 있는데도 숨 막히지 않게 넘어가더라고요. 공부한다는 부담 없이 에세이 읽듯 읽힌다는 출판사 소개가 빈말은 아니었습니다.

저자 차민진은 대치동에서 고등 국어를 가르치다 지금은 '랜선 국어쌤'으로 불리는 사람이에요. 어휘력이란 낱말을 많이 아는 능력이 아니라 상황에 맞는 정확한 말을 꺼내 쓰는 감각이라고 그는 말합니다. 익숙하지만 거친 표현 대신 한 끗 더 정교한 말을 고르는 순간 말의 인상과 관계의 온도가 달라진다는 것이죠. 책은 매일 쓰는 말을 어른스럽게 다듬는 법부터 관계 어휘, 직장 어휘, 시사 어휘, 고급 어휘까지 다섯 단계로 차곡차곡 올라갑니다.


읽으면서 제 발목을 붙든 건 직설적인 반대를 부드럽게 바꾸는 법을 다룬 부분이었어요. '회의적'이라는 단어를 그렇게 풀어낼 줄은 몰랐습니다. "저는 그 방향성에 조금 회의적입니다. 혹시 다른 데이터도 있을까요?"라고 말하면 상대를 공격하지 않으면서도 제 의견을 분명히 전할 수 있다는 거예요. 게다가 회의적인 태도가 냉소와는 완전히 다르다는 설명이 마음에 남았습니다. 냉소가 "어차피 안 될 거야"라며 팔짱 끼고 비웃는 체념이라면, 회의는 "정말 그럴까, 다른 가능성은 없을까"라며 더 나은 답을 찾으려 질문하는 태도라는 거죠. 책의 표현을 그대로 빌리면 회의적이라는 말은 "믿지 않기 위해 의심하는 것이 아니라, '더 잘 믿기 위해' 잠시 확신을 보류하는 건강한 멈춤"입니다. 나이가 들수록 무언가에 시큰둥해지기 쉬운데, 그 시큰둥함이 냉소인지 회의인지 스스로 물어보게 되더군요.

의견이 정반대로 갈릴 때 쓰는 '궤를 달리하다'라는 표현에서는 한 가지 장면이 따라붙었어요. 책에는 저자가 대학 토론 수업에서 한 선배에게 "너무 나이브한 거 아닌가요"라는 비웃음을 듣고 얼굴이 화끈거렸던 일화가 나옵니다. 그때 침묵을 깬 교수의 한마디가 "두 사람의 생각이 궤를 좀 달리하네. 어떻게 다른지 더 들어볼까"였다고 해요. 태양계의 행성들이 수십억 년 동안 부딪히지 않고 도는 건 힘이 세서도 서로 눈치를 봐서도 아니라 그저 각자 자기 궤도를 따라 돌기 때문이라는 비유까지 읽고 나니, "이 사안에서는 저와 궤를 조금 달리하시네요"라는 말이 '당신이 틀렸다'는 공격과 얼마나 다른지 단번에 와닿았습니다.


일에 관한 어휘들도 슬며시 마음을 데웠습니다. 지친 동료에게 건네는 '고무적'이라는 말이 사실은 북을 치고 춤을 추며 기운을 끌어올리던 옛 풍습에서 왔다는 이야기, 그래서 딱딱한 회의에서 "이번 발표 고무적입니다"라는 말도 뜯어보면 북소리와 춤사위가 숨어 있다는 풀이에선 저도 모르게 웃었어요. 시작은 거창한데 끝이 흐지부지되곤 하는 제게는 '매조지다'라는 순우리말도 콕 박혔습니다. 일의 끝을 단단히 묶어 마무리한다는 뜻인데, 야구로 치면 9회를 책임지는 마무리 투수 같은 표현이라고 하더군요. 끝이 좋아야 다 좋은 거라는 그 평범한 말이, 정확한 단어 하나에 실리니 다르게 들렸습니다.

무엇보다 마지막 장으로 갈수록 책은 단순한 단어 교체를 넘어섭니다. 영화를 10분짜리 요약으로 보고 "봤다"고 말하는 시대를 짚으며 '피상적'이라는 말을 꺼내는 흐름이 그랬어요. 좋은 작품은 원래 내 가치관을 흔들고 생각을 불편하게 만드는데, 줄거리 요약에는 그 마찰이 없다는 거죠. 누군가 정성껏 만든 케이크에서 비닐 커버만 핥아 먹은 셈이라는 비유가 따끔했습니다. 그 반대편에 놓인 단어가 '톺아보다'예요. 살살이 살피며 속속들이 들여다본다는 뜻의 이 순우리말이, 뜻밖에도 애플코리아가 홈페이지에 쓰면서 다시 살아났다는 이야기는 읽는 재미가 쏠쏠했고요. 빠르게 넘기고 요약으로 때우는 시대에, 책 한 권을 천천히 톺아보는 일이 어떤 의미인지 곰곰 생각하게 만드는 대목이었습니다.


아쉬운 점이 없진 않았어요. 어휘마다 풀이가 워낙 알차다 보니 사전 정의와 예문이 표로 정리되는 구성이 단계마다 반복되어, 한 번에 몰아 읽으면 비슷한 리듬이 이어지는 느낌이 듭니다. 그래서 이 책은 하루에 몇 꼭지씩 천천히 곁에 두고 펼치는 편이 훨씬 잘 맞는 것 같아요.

이 책이 특히 반가울 사람을 떠올려보면, 메일 한 통 쓰면서도 단어 고르느라 커서만 깜빡이게 두는 직장인이 먼저 생각납니다. 솔직하게 말한 것뿐인데 자꾸 오해를 사는 것 같아 마음이 무거웠던 사람이라면, 책장을 넘기는 동안 조용한 위로를 받을 거예요. 거창한 화술이 아니라 자기 마음을 조금 더 정확하게 전하고 싶은 사람에게 가장 어울리는 한 권입니다.


서평단으로 받은 책들 사이에서 이 한 권은, 무언가를 빨리 읽어치우는 데 익숙해진 제 습관을 잠깐 멈춰 세웠다는 점에서 특별했습니다. 표현을 천천히 들여다보는 일이 곧 제 생각을 들여다보는 일이라는 걸, 읽는 내내 조용히 일깨워주었거든요.


장마가 시작되려는지 요즘은 공기가 한결 묵직합니다. 창밖이 흐린 날, 빗소리를 배경으로 이런 책을 한 꼭지씩 넘기는 시간은 꽤 어울려요. 마음에 드는 낱말 하나를 주워 그날 누군가에게 건네보는 것도 작은 즐거움이 될 것 같습니다.


단어 하나를 바꾸면 말의 온도가 달라진다는 걸, 부담 없이 그러나 깊이 있게 일러주는 어휘 안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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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의 기술 - 성공은 내가 던진 질문에서 시작된다
야마구치 다쿠로 지음, 김수경 옮김 / 레몬한스푼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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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요즘처럼 검색창에 몇 글자만 넣으면 답이 쏟아지는 시대에, ‘잘 묻는 일’이 따로 기술이 될 수 있을까. 솔직히 〈질문의 기술〉을 처음 받아 들었을 때는 그런 의심이 조금 있었어요. 답을 구하는 도구는 넘치도록 많아졌으니까요. 그런데 책장을 넘길수록 저자가 하려는 말은 정반대였습니다. 도구가 강력해질수록 결과를 가르는 건 결국 ‘무엇을 어떻게 묻느냐’더라고요.


저자 야마구치 다쿠로는 일본에서 30년 가까이 3,800건이 넘는 취재와 인터뷰를 해온 사람입니다. 말하자면 평생을 질문으로 먹고살아 온 셈인데, 그 오랜 현장에서 얻은 결론이 단순해서 더 기억에 남았어요. 원하는 것을 얻는 사람은 예외 없이 질문을 잘한다는 것. 이 책은 그 관찰을 여덟 개의 장으로 풀어낸 안내서입니다.

문을 여는 건 뜻밖에도 뉴턴의 사과였습니다. 누구나 보는 평범한 장면, 사과가 떨어진다는 그 흔한 일 앞에서 단 한 사람만이 “왜 옆이나 위가 아니라 곧장 아래로 떨어질까”라고 물었고, 그 소박한 의문이 만유인력으로 이어졌다는 이야기죠. 저자가 강조하는 건 사과가 아니라 그 앞에서 끈질기게 “왜”라고 되묻는 태도입니다. 여기서 그는 한 줄로 못을 박아요. “세상을 바꾼 발견의 시작은 바로 ‘왜?’라는 하나의 질문이었다.” 거창한 지식이 아니라 묻는 자세가 먼저였다는 거예요.


여러 장을 지나오면서 제일 오래 붙들렸던 자리는 리더의 질문을 다룬 대목이었습니다. 직장 생활을 오래 한 사람이라면 한 번쯤 찔릴 만한 이야기가 거기 있거든요. “어떻게 할까요”라고 물어 오는 후배에게 곧장 “이렇게 처리해”라고 답을 주는 건 당장은 편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답만 받아 온 사람은 조금만 상황이 달라져도 또다시 같은 질문을 들고 달려온다는 거예요. 저자는 리더의 역할이 정답을 던져 주는 게 아니라 스스로 생각하도록 질문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일방적인 지시는 그 가능성의 싹을 잘라버리는 셈이 될 수 있다”는 문장 앞에서, 그동안 제가 효율이라는 이름으로 누군가의 생각할 기회를 가로챈 적은 없었나 돌아보게 되더라고요.

그러면서 저자는 ‘해서는 안 될 질문’도 나란히 짚어 줍니다. 길고 산만해서 요점이 흐려지는 질문, 의도 없이 뜬구름만 잡는 질문, 추궁하듯 몰아세우는 압박 질문, 흐름을 무시한 채 불쑥 끼어드는 질문, 그리고 책임을 떠넘기는 질문까지요. 특히 마지막 대목이 오래 남았습니다. 팀원에게 과실이 있더라도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는 각오를 가지라는 부분이요. 좋은 질문을 던지는 능력만큼이나, 상대에게 상처가 되는 질문을 삼가는 절제가 사람을 이끄는 자리의 덕목이라는 걸 새삼 느꼈어요. 솔직히 이 장만큼은 일하는 내내 곁에 두고 가끔씩 다시 펴 보고 싶어졌습니다.


관계를 다루는 장으로 넘어가면 책의 온도가 한결 따뜻해집니다. 상대에게 갑자기 의견을 물으면 누구나 당황하기 마련이니,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라며 제 소감을 먼저 꺼내라는 조언이 그래요. 영화 한 편을 두고 내가 먼저 느낀 점을 털어놓은 뒤 상대의 생각을 물으면, 대화가 훨씬 편하게 깊어진다는 거죠. 다만 저자는 여기에도 단서를 답니다. 휘둘리기 쉽거나 위축되기 쉬운 상대에게는 먼저 의견을 내는 게 오히려 부담이 될 수 있다고요. 정답을 고집하기보다 상대가 편히 말할 수 있게 흐름을 조절하는 유연함, 그게 핵심이라는 마무리가 참 어른스럽게 다가왔습니다.


AI를 다루는 장은 비교적 가볍게 읽었지만 고개는 자주 끄덕였어요. 같은 도구를 쓰고도 결과가 갈리는 이유를 저자는 질문 설계에서 찾습니다. “프레젠테이션 잘하는 법을 알려줘”처럼 막연히 물으면 그럴듯하지만 내 상황에 맞지 않는 답이 돌아오고, 대상과 목적, 원하는 형태와 어조를 또렷이 담아 물으면 결과물이 비로소 바로 쓸 수 있는 정보로 바뀐다는 거죠. 표지에 적힌 “질문력의 차이가 경쟁력의 차이를 만든다”는 한 줄이 가장 실감 나는 자리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 책이 단순한 비즈니스 실용서에 그치지 않는다고 느낀 건 마지막 장에 이르러서였습니다. 그동안 줄곧 ‘타인에게 어떻게 물을 것인가’를 이야기하던 저자가, 여기서 시선을 안으로 돌려 ‘나에게 어떻게 물을 것인가’를 묻거든요. 이직에 실패한 두 사람 이야기가 인상 깊었습니다. 한 사람은 “나는 정말 안 되는구나”라고 자신을 탓하다 결국 구직을 그만뒀고, 다른 한 사람은 “이번에는 인연이 아니었네, 다음을 위해 무엇을 준비해볼까”라고 물으며 다시 일어나 끝내 원하는 곳에 닿았다고 해요. 두 사람의 차이는 능력이 아니라 자기에게 던진 질문의 질에 있었다는 대목에서, 한동안 책장을 넘기던 손이 느려졌습니다.


저자는 질문을 인생이라는 자동차의 핸들에 빗댑니다. 어떤 질문을 쥐느냐에 따라 향하는 방향과 감정의 결이 달라진다고요. 낙담했을 때 “왜 나는 이 모양일까”라고 묻는 대신 “이 경험을 다음에는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까”라고 물으면, 질문이 가라앉은 감정을 정리하는 교통정리 역할을 한다는 비유가 좋았어요. 더 나아가 자신에게 던지는 질문이 감정 조절과 자기긍정감, 공감력과 낙천성, 회복하는 힘까지 길러 준다는 설명에 이르면, 질문이 단지 일을 잘하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나를 다독이고 일으켜 세우는 방식일 수도 있겠다 싶어집니다.

분량은 제법 묵직합니다. 한자리에서 단숨에 읽어 치우기보다, 틈틈이 한 장씩 곱씹으며 가는 편이 어울리는 책이에요. 저도 서평단으로 받아 시간을 두고 나누어 읽었는데, 그렇게 천천히 간 게 오히려 잘 맞았습니다. 한 챕터를 덮고 나면 그날 제가 누군가에게 던진 질문, 혹은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되거든요.


업무에서 더 나은 결과를 얻고 싶은 직장인이라면 곧장 써먹을 실전 질문이 가득해 든든할 거예요. 동시에 요즘 들어 속이 자주 가라앉는다는 분이라면, 마지막 장의 ‘나에게 묻는 법’에서 뜻밖의 위로를 만날지도 모르겠습니다. 좋은 답을 찾느라 애써 온 사람일수록, 어쩌면 먼저 점검해야 할 건 답이 아니라 질문이었을 수 있으니까요.


여름의 초입, 해가 길어지고 더위가 조금씩 짙어지는 계절입니다. 이런 때 심정이 어수선해지면 무언가를 더 하려 들기 쉬운데, 이 책은 오히려 한 박자 멈추고 스스로에게 묻는 일의 힘을 차분히 일러 줍니다. 답을 늘리기보다 질문을 가다듬는 여름이어도 좋겠다 싶어요.


결과도 관계도 삶의 방향도 결국 좋은 질문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일터와 내면 양쪽에서 차분히 일깨워 주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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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에이터 김연지의 돈 되는 AI 콘텐츠 설계 - 프롬프트로 기획하고 하네스 엔지니어링으로 완성하는 상위 1%의 수익 자동화
김연지 지음 / 한빛비즈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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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요즘은 AI 도구가 흔합니다. 휴대폰에도 노트북에도 하나쯤 들어 있지만, 막상 그걸로 뭔가 제대로 만들어낸 적은 손에 꼽아요. 결제만 해두고 잘 안 쓰는 구독 서비스처럼, 켜두기만 하고 닫아버린 화면이 많았습니다. <돈 되는 AI 콘텐츠 설계>를 펼친 건 바로 그 어정쩡한 거리감 때문이었어요.

저자 김연지는 11년 차 기자 출신이자 12만 팔로워를 둔 크리에이터입니다. 책의 첫인상은 의외로 가벼웠어요. 두툼한 기술서를 각오했는데 읽다 보면 술술 넘어갑니다. 핵심은 제목 그대로 '설계'예요. 좋은 질문을 쥐어짜내는 게 아니라, 인공지능이 흔들리지 않고 일할 수 있는 환경을 짜두자는 이야기죠. 저자는 이걸 '하네스 엔지니어링'이라고 부릅니다.


1장을 읽으면서 제가 그동안 프롬프트를 '마법의 주문' 비슷하게 여겨왔다는 걸 알았어요. 어딘가에 완벽한 문장이 있고, 그걸 복사해 붙여 넣으면 알아서 해주겠거니 했던 거죠. 책은 그 착각을 부드럽게 깨줍니다. "AI를 잘 다루는 사람일수록 프롬프트를 복잡하게 쓰지 않는다"는 대목이 그래서 오래 남았어요. 중요한 건 길이나 기술이 아니라 질문이 얼마나 명확하고 구조적으로 설계되었느냐라는 겁니다.

그 구조에 이름을 붙인 게 'GROCAT 6원칙'입니다. 목표, 역할, 출력, 맥락, 대상, 조건이라는 여섯 칸을 차례로 채우면 모호하던 생각이 AI가 알아듣는 언어로 번역된다는 거죠. 역할을 부여하는 일을 "조수에게 명함을 주는 일"에 빗댄 설명이 특히 기억에 남아요. 막연히 "글 잘 써줘"가 아니라 "30대 워킹맘이 공감할 현실적인 톤으로, 개인적 경험 하나와 구체적 사례 세 개를 넣어줘"처럼 풀어내라는 거예요. 칸을 채운다는 감각 하나만 손에 쥐어도 막연한 두려움이 한결 옅어집니다.


가장 듬직했던 건 3장이었습니다. 요즘 이런 책들이 대개 '얼마나 빠르게, 많이' 쪽에 무게를 두는데, 이 책은 검증에 상당한 분량을 써요. 저자는 AI의 환각을 두고 "버그가 아니라 기능"이라고 잘라 말합니다. 인공지능은 거짓말을 하는 게 아니라 '모른다'는 말 대신 무언가를 말하도록 설계되어 있어서, 그럴듯한 가짜 숫자나 없는 발언을 만들어낸다는 거죠. 형식은 완벽하고 문장은 매끄러운데 내용만 틀린 경우가 가장 위험하다는 지적이 특히 와닿았어요. 책에서 소개한 한 사례로는, 어느 노무사가 AI가 지어낸 가짜 판례를 그대로 제출했다가 적발된 일도 있었다고 합니다.

여기서 기자 출신다운 색이 진하게 나옵니다. 퍼플렉시티를 두고 "챗GPT가 소설가라면 퍼플렉시티는 사서"라고 비유하는데, 사서는 이야기를 지어내지 않고 어디를 확인하면 되는지 출처를 짚어준다는 설명이 깔끔하게 얹혀요. 발행 버튼을 누르기 전에 스스로 데스크가 되어 숫자와 통계, 인물 발언, 날짜와 사건, 법령, 내 주장의 근거를 점검하는 5단계 체크리스트도 인상적이었습니다. 번거로워 보이지만 이 루틴이 쌓이면 콘텐츠 하나하나가 신뢰 자산이 된다는 말이, 일에서 신뢰가 곧 밑천인 사람에게는 남다르게 들렸어요.


그런데 이 단단한 책에서 정작 마음이 오래 머문 건 4장이었습니다. 저자는 글을 못 쓰는 이유가 쓸거리가 없어서가 아니라 꺼내는 법을 몰라서라고 말해요. 그래서 AI에게 '전문 인터뷰어' 역할을 맡기고, 감각이나 후회, 관계 같은 범주로 나를 인터뷰하게 하라고 권합니다. 답할 때는 글을 잘 쓰려 애쓰지 말고 음성 입력을 켜두고 말하듯 쏟아내면 된다는 대목에서, 어쩌면 누구나 한 권쯤은 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 4장 끝자락에 이런 문장이 있어요. "이제 글솜씨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평범하다'고 고개를 내젓는 당신의 삶 자체가 콘텐츠입니다." 그리고 곧바로 균형을 잡습니다. AI가 대신할 수 없는 단 하나가 진솔함이고, 독자의 마음을 움직이는 건 화려한 문장이 아니라 비슷한 경험을 가진 누군가가 먼저 꺼내놓은 솔직한 이야기라고요. 기술서를 읽다가 슬그머니 위로를 받은 기분이었습니다.


이 책의 미덕은 그 균형에 있다고 생각해요. 도구를 예찬하지도, 겁주지도 않습니다. 거들 뿐 신뢰와 진솔함은 끝까지 사람의 몫이라는 태도를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요. 굳이 아쉬운 점을 꼽자면 다루는 도구가 여럿이라 한 번에 다 따라 하긴 벅찰 수 있다는 정도인데, 이건 오히려 필요한 장부터 골라 읽으라는 신호로 받아들이면 될 듯합니다.

읽고 나니 떠오른 건, 인공지능을 깔아만 두고 좀처럼 손이 안 가던 사람이나 살아온 이야기는 많은데 그걸 어떻게 꺼내 정리해야 할지 막막했던 사람이라면 분명 얻어갈 게 있겠다는 생각이었어요. 거창한 부업이나 수익화를 떠나, 내 경험을 한 번쯤 글로 갈무리해 보고 싶은 마음만 있어도 충분히 펼쳐볼 만합니다.


이 책은 북유럽 카페 서평단을 통해 만났어요. 서평을 핑계로 들춰본 책 가운데, 읽는 동안 메모가 가장 많이 늘어난 한 권이었습니다. 기술을 배웠다기보다, 미뤄두었던 제 이야기를 언제 한번 꺼내볼까 하는 마음이 슬그머니 생겼어요.


장마가 오기 전, 공기가 눅눅해지기 시작하는 유월의 저녁입니다. 이런 계절엔 거창한 결심보다 작은 한 걸음이 어울리는 것 같아요. 멋진 결과물을 시키기 전에, 내 안에 어떤 이야기가 쌓여 있는지부터 가만히 들여다보게 하는 책. 그 출발점으로 삼기 좋은 한 권이었습니다.


AI를 잘 부리는 기술서이면서, 결국 '내 이야기를 꺼내는 용기'에 대해 말하는 따뜻한 안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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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불완전함에 대하여
팀 하포드 지음, 윤영삼 옮김 / 윌마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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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택배 상자를 뜯은 뒤로 며칠 책상에 놓여 있었습니다. 두께가 만만치 않아서, 펼치기 전부터 "이건 시간을 좀 들여야겠구나" 싶었던 책이었지요. 그런데 막상 읽기 시작하니 손에서 놓기가 어려웠습니다. 팀 하포드의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불완전함에 대하여>입니다.


처음 이 책을 집어 든 건 사실 표지에 적힌 한 문장 때문이었습니다. 김지수 기자가 "'불완전함' 다음에 '다정함'의 패러다임이 온다"고 적어두었더라고요. 완벽을 말하는 책은 많이 봤어도, 불완전함이 다정함으로 이어진다는 말은 처음이라 한참을 들여다봤습니다. 어긋남과 빈틈이 어떻게 따뜻함이 되는 걸까. 그 궁금증 하나로 책장을 넘겼습니다.

책의 출발은 뜻밖에도 비행기 추락 사고입니다. 2009년 대서양 한복판에서 사라진 에어프랑스 447편. 228명이 목숨을 잃었지요. 저자가 차근차근 풀어내는 사고의 진상은, 폭풍우도 기계 결함도 아니었습니다. 문제는 사람이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너무 완벽한 기계에 길들여진 사람이었습니다.


에어버스 A330은 15년간 단 한 번의 사고도 없던 비행기였습니다. 자동화가 워낙 완벽해서 조종사가 직접 비행기를 몰 일이 거의 없었지요. 사고가 난 그날, 베테랑 기장은 직전 346시간 비행 중 손으로 조종한 시간이 고작 4시간뿐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다 날개에 얼음이 끼고 속도 센서가 얼어붙어 자동조종이 풀리는 순간, 조종사들은 가장 기본적인 대처조차 해내지 못했습니다. 비행 훈련 첫머리에 배우는, 기수를 낮춰 속도를 회복하는 그 단순한 동작 말입니다.


저자는 이걸 '자동화의 역설'이라 부릅니다. 자동화가 작은 실수를 막아주는 동안, 사람은 위기를 다룰 능력 자체를 잃어버린다는 겁니다. 그러다 정작 시스템이 멈추면, 그땐 이미 위기 한가운데에 서 있고요. 추락하는 4분 30초 동안 경고음이 마흔다섯 번 울렸지만, 세 사람 모두 그 소리를 무시했습니다. 자신들이 탄 비행기가 추락할 리 없다고 믿었으니까요. 부조종사 보냉이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 자꾸 떠올랐습니다. "그런데 지금 무슨 상황이죠?"

이 대목을 읽으며 묘하게 가슴이 서늘했습니다. 비행기 이야기인데, 어쩐지 비행기만의 이야기는 아닌 것 같아서요. 우리가 매일 쓰는 도구들, 손가락이 알아서 누르는 단축번호, 머릿속으로 더하지 않게 된 셈법, 자동으로 채워지는 보고서 양식. 편리함에 기대는 사이 슬그머니 빠져나간 무언가가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대개 그것이 멈춘 뒤에야 알아차립니다.


책은 여기서 흥미로운 방향으로 틀어집니다. 완벽한 시스템이 사람을 무력하게 만든다면, 반대로 일부러 어긋남을 들여놓는 사람들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4장에 데이비드 보위와 브라이언 이노가 나옵니다. 두 사람은 '오블리크 전략'이라는 카드를 만들어 작업실에서 뽑았다고 해요. "기타리스트에게 드럼을 맡겨라" 같은, 일부러 판을 흔드는 지시들이었습니다. 당연히 연주자들은 반발했고 작업실은 아수라장이 됐지만, 그 혼란 속에서 와 <"Heroes"> 같은 명반이 태어났습니다. 보위의 베를린 3부작 마지막 앨범은 원래 제목이 '계획된 사고'였다더군요. 그 한마디에 이 장의 핵심이 다 담겨 있는 듯합니다.


저자는 이걸 산에 오르는 비유로 설명합니다. 한 걸음씩 꾸준히 위로만 가는 '언덕 오르기' 방식은, 출발점이 낮은 봉우리면 거기 갇혀버립니다. 더 높은 곳이 있어도 닿을 수가 없지요. 그래서 가끔은 무작위로 멀리 뛰어보는 도약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망가진 피아노밖에 없던 무대에서 오히려 평생의 명연주를 끌어낸 피아니스트 이야기처럼, 제약과 어긋남이 사람을 더 높은 곳으로 데려가기도 하니까요.

마지막으로 마음을 가장 단단히 붙든 건 7장이었습니다. '모든 것을 숫자로 환원할 수는 없다'는 장입니다. 일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어딘가 찔릴 만한 이야기들이 가득했습니다.


영국 NHS의 앰뷸런스 사례가 특히 그랬습니다. 응급 신고가 들어오면 8분 안에 도착하라는, 누가 봐도 선의로 만든 목표였습니다. 그런데 이 깔끔한 숫자 하나가 벌인 일들을 보면 입이 다물어지지 않습니다. 도착 시간 데이터를 조작하고(7분 59초에 그래프가 솟구치다 8분 1초부터 곤두박질친다는 "기막힌 우연의 일치"가 압권입니다), 이미 늦은 환자는 버려두고 새 신고로 방향을 틀고, 자전거로 출동하고, 시골 인력을 도시로 빼 오고, 직원들의 사기와 건강까지 갉아먹었습니다. 저자는 이렇게 정리합니다. "깔끔하게 수치화된 목표 하나가 이 모든 결과를 유발했다."

여기서 제가 잠시 멈춰 선 문장이 있습니다. 늦은 앰뷸런스가 환자를 버리고 새 신고로 가는 그 행동을, 저자는 "목표 달성 게임에서는 이것이 논리적으로 타당하다"고 적었습니다. 누구를 탓할 수가 없다는 뜻이지요. 나쁜 사람이 아니라, 잘못 놓인 목표가 멀쩡한 사람을 이상한 방향으로 몰아간 겁니다. 경영학자 스티븐 커가 일찍이 한 말이 이걸 한마디로 요약합니다. "애당초 목표를 잘못 설정했기 때문이다."


이 책이 왜 다정함을 말하는지는 다 읽고 나서야 어렴풋이 알 것 같았습니다. 사람이 완벽하지 않다는 건 고쳐야 할 결함이 아니라,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자리라는 겁니다. 숫자로 깔끔하게 떨어지지 않는 머뭇거림 속에 사실은 판단이 있고, 측정되지 않는다고 사라지는 게 아니라 측정되지 않기에 더 지켜야 할 무언가가 있다는 것. 알고리즘이 우리 빈자리를 점점 더 매끄럽게 메워주는 시대라 그런지, 이 두툼한 책이 건네는 말이 꽤 묵직하게 남았습니다.


완벽하지 못한 자신을 자주 탓해온 사람이라면, 어쩌면 이 책에서 한숨 돌릴 자리를 찾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두께에 겁먹지 말고 천천히 읽어봐도 좋을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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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귀 뚫기
집영 지음 / 모티브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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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서점이든 인터넷이든, 영어책 코너 앞에서 한 번쯤 멈칫해본 분들이 많을 거예요. 저도 그랬습니다. 영어에 미련은 늘 있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이 나이에 무슨’이라는 말이 먼저 튀어나왔거든요. 단어를 외워도 돌아서면 잊고, 외국인 앞에선 입이 굳던 기억만 차곡차곡 쌓인 탓이겠죠.




그런 제 눈길을 붙든 게 모티브 출판사에서 나온 이 책의 표지였습니다. 휴대폰을 들여다보는 사람이 그려져 있는데, 어딘가 공부하는 학생 같으면서도 ‘저렇게 켜놓기만 하면 정말 귀가 뚫린다고?’ 싶은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더라고요. 표지의 노란빛도 산뜻했고요. ‘공부하지 마, 그냥 켜 놓기만 해’라는 카피가 농담처럼 보이면서도, 나이 들면 영어는 안 된다는 제 오래된 고정관념을 슬쩍 건드렸습니다. 이 책은 북유럽 카페 서평단을 통해 받아 읽게 되었어요.


<영어 귀 뚫기>의 저자 집영은 미술을 전공했고, 45세가 되어서야 비로소 영어가 들리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영어를 잘하는 사람들의 방식이 아니라, 아기가 모국어를 익히듯 ‘자연스럽게 습득하는 방식’으로 방향을 틀면서부터였다고 해요. 단어 암기와 문법, 한국어 해석을 잠시 내려놓고 영어를 소리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그 단순한 반복이 어느 순간 안 들리던 문장을 들리게 만들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책에서 가장 후련했던 건 ‘자막을 보면 듣기가 안 되는 이유’를 풀어낸 대목이에요. 자막을 읽는 순간 뇌는 소리 덩어리를 듣지 않고 글자에서 곧장 의미로 직행해버린다고 합니다. 실제 영어는 단어가 또박또박 들리는 게 아니라 뭉쳐서 들리는데, 자막에 기대면 이 연결음을 영영 못 듣게 된다는 설명이 오래 기억에 남았습니다. 저자는 듣기가 예민해진다는 걸 “‘볼륨이 커진다’가 아니라 들은 소리의 분해 능력이 올라간다는 뜻”이라고 정의해요. 자막을 ‘엄마’에 빗댄 비유도 좋았습니다. 없으면 무섭지만 언젠가는 독립해야 홀로 설 수 있다는 흐름이 영어 듣기를 성장의 문제로 바꿔놓더라고요.


문법을 다룬 장도 흥미로웠습니다. ‘아버지 가방에 들어가신다’가 어색하다는 걸 우리가 문법을 따지지 않고도 그냥 느끼듯, 영어 역시 바른 소리가 충분히 쌓이면 어색함을 감각으로 알게 된다고 말하거든요. 저자는 귀를 뚫은 지 3년이 됐을 때 테솔(TESOL) 자격증 시험을 봤는데, 그 시험의 8할 이상이 문법 문제였는데도 “문법 공부를 한 번도 한 적이 없다”고 적습니다. 조동사니 전치사니 하는 이름은 몰라도 문장이 자연스러운지는 느낄 수 있었다고요. 우리가 모국어에서 말이 되는지 안 되는지를 느낌으로 아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여러 사례 가운데 특히 오래 남은 건 저자의 두 아이 이야기였어요. 문법 공부를 따로 시키지 않았는데도, 둘째 아이가 학교에서 집에 오던 길에 놀이터에서 외국인 아이 둘이 모래놀이를 하며 주고받던 말을 ‘저절로 들리고 알아들었다’고 합니다. 한 아이가 모래를 건네자 상대가 뿌리지 말라 했고, 건넨 아이는 ‘이거 너 주려고 그래’라고 했다는 그 사소한 대화를요. 그리고 큰아이는 시작한 지 1년이 된 어느 날 이렇게 말했다고 해요.


“엄마, 영어가 한국어처럼 들려요.”


이 한마디가 책을 덮은 뒤로도 마음에 오래 머물렀습니다. 영어가 정복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어느새 곁에 익숙해진 소리가 된다는 것. 그게 어른에게도 가능하다고 책은 분명히 말하고 있으니까요. 뒷부분으로 갈수록 저자는 여러 언어학자들이 공통적으로 말해온 ‘이해 가능한 인풋(comprehensible input)’ 개념을 끌어와 이 주장을 단단히 받쳐줍니다. 결국 말하기는 이해한 만큼 따라 나오는 것이고, 흥미롭게 즐기며 이해할 때 언어는 저절로 몸에 밴다는 거죠. ‘그냥 켜놓기만 하라’던 가벼운 카피가 막연한 말이 아니었구나 하는 신뢰가 그제야 생겼습니다.



읽는 내내 회사에서 영어를 마주하던 순간들이 자연스레 겹쳤어요. 그런 자리마다 늘 따라붙던 건 ‘틀리면 어쩌지’ 하는 두려움이었거든요. 그런데 이 책은 말이 트일 무렵 실수를 매번 지적받으면 오히려 뇌가 긴장해 말문이 막힌다고 짚습니다. 실수는 줄여나가는 과정의 일부일 뿐이라고요. “우리는 어른이니 울지 않는다. 그저 울고 싶을 뿐이다”라는 문장에서는 그만 피식 웃고 말았습니다. 말이 입안에서 맴돌기만 하는 그 답답함을, 저자는 막 말 배우는 아이에 빗대 따뜻하게 다독여줘요. 영어가 더는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조금씩 친근한 무언가로 다가올 것 같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아쉬움이 없진 않았어요. 저자 자신과 두 아이의 경험이 설득력 있게 담겼지만, 연령대나 환경이 다른 사례가 좀 더 다양하게 실렸더라면 ‘나와 비슷한 사람’을 책 속에서 만나는 반가움이 더 컸을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핵심 메시지를 흐릴 정도는 아니었고요.


이 책이 특히 가닿을 사람을 떠올려봤어요. 영어 앞에서 한 번쯤 마음을 접어본 사람, 그리고 영어가 여전히 어렵고 멀게만 느껴지는 사람이라면 분명 얻어갈 게 있습니다. 시험 점수를 위한 책이 아니라, 영어 때문에 작아졌던 자신감을 슬그머니 다시 세워주는 책에 가깝거든요.


장마를 앞둔 6월의 눅눅한 공기 속에서, 이 책은 의외로 가볍고 산뜻하게 읽혔습니다. 거창한 결심 없이 좋아하는 영상 하나를 틀어놓는 일부터 시작하면 된다고 하니, 여름이 더 깊어지기 전에 가만히 시도해보려 합니다. 서평단으로 받아 읽은 책이지만, 오래 미뤄둔 영어라는 숙제를 다시 마주하게 해줬다는 점에서 제겐 꽤 의미 있는 한 권으로 남았습니다.


나이 들면 영어는 끝이라는 고정관념을, 아기처럼 듣는 법으로 다정하게 깨주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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