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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불완전함에 대하여
팀 하포드 지음, 윤영삼 옮김 / 윌마 / 2026년 5월
평점 :
"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택배 상자를 뜯은 뒤로 며칠 책상에 놓여 있었습니다. 두께가 만만치 않아서, 펼치기 전부터 "이건 시간을 좀 들여야겠구나" 싶었던 책이었지요. 그런데 막상 읽기 시작하니 손에서 놓기가 어려웠습니다. 팀 하포드의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불완전함에 대하여>입니다.
처음 이 책을 집어 든 건 사실 표지에 적힌 한 문장 때문이었습니다. 김지수 기자가 "'불완전함' 다음에 '다정함'의 패러다임이 온다"고 적어두었더라고요. 완벽을 말하는 책은 많이 봤어도, 불완전함이 다정함으로 이어진다는 말은 처음이라 한참을 들여다봤습니다. 어긋남과 빈틈이 어떻게 따뜻함이 되는 걸까. 그 궁금증 하나로 책장을 넘겼습니다.

책의 출발은 뜻밖에도 비행기 추락 사고입니다. 2009년 대서양 한복판에서 사라진 에어프랑스 447편. 228명이 목숨을 잃었지요. 저자가 차근차근 풀어내는 사고의 진상은, 폭풍우도 기계 결함도 아니었습니다. 문제는 사람이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너무 완벽한 기계에 길들여진 사람이었습니다.
에어버스 A330은 15년간 단 한 번의 사고도 없던 비행기였습니다. 자동화가 워낙 완벽해서 조종사가 직접 비행기를 몰 일이 거의 없었지요. 사고가 난 그날, 베테랑 기장은 직전 346시간 비행 중 손으로 조종한 시간이 고작 4시간뿐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다 날개에 얼음이 끼고 속도 센서가 얼어붙어 자동조종이 풀리는 순간, 조종사들은 가장 기본적인 대처조차 해내지 못했습니다. 비행 훈련 첫머리에 배우는, 기수를 낮춰 속도를 회복하는 그 단순한 동작 말입니다.
저자는 이걸 '자동화의 역설'이라 부릅니다. 자동화가 작은 실수를 막아주는 동안, 사람은 위기를 다룰 능력 자체를 잃어버린다는 겁니다. 그러다 정작 시스템이 멈추면, 그땐 이미 위기 한가운데에 서 있고요. 추락하는 4분 30초 동안 경고음이 마흔다섯 번 울렸지만, 세 사람 모두 그 소리를 무시했습니다. 자신들이 탄 비행기가 추락할 리 없다고 믿었으니까요. 부조종사 보냉이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 자꾸 떠올랐습니다. "그런데 지금 무슨 상황이죠?"

이 대목을 읽으며 묘하게 가슴이 서늘했습니다. 비행기 이야기인데, 어쩐지 비행기만의 이야기는 아닌 것 같아서요. 우리가 매일 쓰는 도구들, 손가락이 알아서 누르는 단축번호, 머릿속으로 더하지 않게 된 셈법, 자동으로 채워지는 보고서 양식. 편리함에 기대는 사이 슬그머니 빠져나간 무언가가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대개 그것이 멈춘 뒤에야 알아차립니다.
책은 여기서 흥미로운 방향으로 틀어집니다. 완벽한 시스템이 사람을 무력하게 만든다면, 반대로 일부러 어긋남을 들여놓는 사람들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4장에 데이비드 보위와 브라이언 이노가 나옵니다. 두 사람은 '오블리크 전략'이라는 카드를 만들어 작업실에서 뽑았다고 해요. "기타리스트에게 드럼을 맡겨라" 같은, 일부러 판을 흔드는 지시들이었습니다. 당연히 연주자들은 반발했고 작업실은 아수라장이 됐지만, 그 혼란 속에서 와 <"Heroes"> 같은 명반이 태어났습니다. 보위의 베를린 3부작 마지막 앨범은 원래 제목이 '계획된 사고'였다더군요. 그 한마디에 이 장의 핵심이 다 담겨 있는 듯합니다.
저자는 이걸 산에 오르는 비유로 설명합니다. 한 걸음씩 꾸준히 위로만 가는 '언덕 오르기' 방식은, 출발점이 낮은 봉우리면 거기 갇혀버립니다. 더 높은 곳이 있어도 닿을 수가 없지요. 그래서 가끔은 무작위로 멀리 뛰어보는 도약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망가진 피아노밖에 없던 무대에서 오히려 평생의 명연주를 끌어낸 피아니스트 이야기처럼, 제약과 어긋남이 사람을 더 높은 곳으로 데려가기도 하니까요.

마지막으로 마음을 가장 단단히 붙든 건 7장이었습니다. '모든 것을 숫자로 환원할 수는 없다'는 장입니다. 일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어딘가 찔릴 만한 이야기들이 가득했습니다.
영국 NHS의 앰뷸런스 사례가 특히 그랬습니다. 응급 신고가 들어오면 8분 안에 도착하라는, 누가 봐도 선의로 만든 목표였습니다. 그런데 이 깔끔한 숫자 하나가 벌인 일들을 보면 입이 다물어지지 않습니다. 도착 시간 데이터를 조작하고(7분 59초에 그래프가 솟구치다 8분 1초부터 곤두박질친다는 "기막힌 우연의 일치"가 압권입니다), 이미 늦은 환자는 버려두고 새 신고로 방향을 틀고, 자전거로 출동하고, 시골 인력을 도시로 빼 오고, 직원들의 사기와 건강까지 갉아먹었습니다. 저자는 이렇게 정리합니다. "깔끔하게 수치화된 목표 하나가 이 모든 결과를 유발했다."

여기서 제가 잠시 멈춰 선 문장이 있습니다. 늦은 앰뷸런스가 환자를 버리고 새 신고로 가는 그 행동을, 저자는 "목표 달성 게임에서는 이것이 논리적으로 타당하다"고 적었습니다. 누구를 탓할 수가 없다는 뜻이지요. 나쁜 사람이 아니라, 잘못 놓인 목표가 멀쩡한 사람을 이상한 방향으로 몰아간 겁니다. 경영학자 스티븐 커가 일찍이 한 말이 이걸 한마디로 요약합니다. "애당초 목표를 잘못 설정했기 때문이다."
이 책이 왜 다정함을 말하는지는 다 읽고 나서야 어렴풋이 알 것 같았습니다. 사람이 완벽하지 않다는 건 고쳐야 할 결함이 아니라,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자리라는 겁니다. 숫자로 깔끔하게 떨어지지 않는 머뭇거림 속에 사실은 판단이 있고, 측정되지 않는다고 사라지는 게 아니라 측정되지 않기에 더 지켜야 할 무언가가 있다는 것. 알고리즘이 우리 빈자리를 점점 더 매끄럽게 메워주는 시대라 그런지, 이 두툼한 책이 건네는 말이 꽤 묵직하게 남았습니다.
완벽하지 못한 자신을 자주 탓해온 사람이라면, 어쩌면 이 책에서 한숨 돌릴 자리를 찾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두께에 겁먹지 말고 천천히 읽어봐도 좋을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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