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의 AI 문해력
김진형 지음 / 메이트북스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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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파란 바탕에 흰 글자, 그리고 옆으로 Gemini와 ChatGPT와 Claude가 사슬처럼 이어진 도형. 표지를 보자마자 든 생각은 저 세 이름이 주인공은 아니겠구나 하는 것이었어요. 실제로 책을 펴 보니 예상이 맞았습니다. 김진형 작가가 붙잡고 있는 대상은 도구가 아니라 그 앞에 앉은 사람이었어요.


핸드북 사이즈에 두께도 얇습니다. 가방에 넣어도 존재감이 없을 만큼 가벼워서 이동하는 틈틈이 읽기에 부담이 없었어요. 내용의 밀도까지 가벼운 것은 아니었지만요.


<어른의 AI 문해력>이 겨냥하는 지점은 초반부터 분명합니다. 질문을 잘 던지는 법에 대한 책은 이미 많이 나와 있고, 이 도서는 답을 받은 다음의 시간을 다룹니다. 읽고, 묻고, 검증하고, 고치는 네 가지 힘을 축으로 삼았어요.


2장을 읽으면서 마음이 조금 불편해졌습니다. 잘 아는 분야에서는 AI가 이상한 소리를 하면 금방 걸립니다. 용어가 엉뚱하거나 앞뒤가 안 맞으면 이상하다는 감각이 먼저 오니까요. 문제는 낯선 분야예요. 무엇이 핵심인지, 어떤 조건이 반드시 들어가야 하는지를 모르니 걸러낼 그물 자체가 없습니다. 작가는 이렇게 정리합니다.


"오류가 없어서 보이지 않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 틀렸는지 알아볼 지식이 없어서 지나칠 수 있다."


세금 공제를 예로 든 대목이 특히 그랬어요. 서류와 절차는 정확한데 적용 연도나 소득 기준이 틀릴 수 있다는 겁니다. 익숙한 사람은 조건부터 보지만 처음 접한 사람은 자세한 절차만 보고 답 전체를 믿는다고요. 답 하나 안에 맞는 정보와 틀린 정보가 나란히 들어갈 수 있다는 설명 앞에서는 그동안 제가 받아 적은 것들을 떠올리게 됐습니다.


속도를 다룬 부분도 기억에 남습니다. 몇 초 만에 문장이 나오면 필요한 일까지 끝났다는 기분이 들죠. 시장 규모를 조사하는 직장인 사례가 나오는데, 숫자가 바로 나오니 보고서 빈칸은 채워지지만 어느 기관이 언제 조사했는지 확인하지 않으면 기준이 다른 수치를 쓰게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마감이 가까울수록 이미 답을 받았으니 검토에 시간을 더 쓰지 않으려 한다는 관찰은 꽤 정확했어요. 답을 받는 일과 그 답을 검토하는 일은 원래 별개의 작업인데, 속도가 그 경계를 흐려 놓습니다. 작가는 이 대목을 다독이듯 닫습니다. "AI의 속도는 분명한 장점이다. 다만 그 속도에 맞춰 사람의 판단까지 서두를 필요는 없다."


중반의 고치는 힘도 짧게 언급하고 싶어요. 국어국문학을 전공하고 오랜 기간 출판기획자로 일한 이력이 여기서 가장 잘 드러납니다. AI가 만든 초안을 손볼 때 표현부터 다듬지 말고 읽을 사람과 전달할 내용을 먼저 정하라는 조언, 그리고 좋아 보이는 내용이라도 중심과 관계없으면 덜어내라는 기준이 실무적입니다. "AI가 제시한 내용을 모두 살리는 것이 좋은 수정은 아니다"라는 문장은 저장해 두었어요. 뭔가를 더 넣어서 채우려는 습관이 있는 사람에게는 방향을 바꿔 주는 말입니다.


책의 끝자락, 10장이 가장 오래 남았습니다. 여기서 작가는 결정 이야기를 합니다. 연봉과 근무 시간 중 무엇을 더 중요하게 볼지, 안정된 길과 새로운 기회 중 어디로 갈지, 가족과 보내는 시간을 얼마나 지킬지는 숫자로 정할 수 없다고요. 같은 조건이라도 사람마다 무겁게 받아들이는 정도가 다르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결정에서 빠지기 쉬운 조건으로 건강 상태와 가족과의 약속, 감당할 수 있는 불안, 포기하고 싶지 않은 생활 방식을 듭니다. 감당할 수 있는 불안이라는 표현이 담담해서 좋았어요. 이 책에서 가장 사람 냄새가 나는 어휘였습니다.


되돌리기 어려운 결정일수록 천천히 판단하라는 꼭지도 실질적이었습니다. AI에게 장단점만 묻지 말고 취소하려면 어떤 비용이 드는지, 원래 상태로 돌아가는 데 얼마나 걸리는지까지 물어보라는 제안이에요. 그런 질문을 빼면 기대되는 효과는 크게 보이고 빠져나오는 어려움은 작게 보인다는 지적에 고개가 끄덕여졌습니다. 퇴사 전에 부업으로 가능성을 먼저 확인하고, 큰 금액을 넣기 전에 적은 금액으로 경험해 보라는 조언은 사십 대 후반의 자리에서 읽으면 무게가 다릅니다. 얻는 것과 포기하는 것을 함께 적어 서로 연결해 보라는 대목의 마지막 문장은 이렇습니다. "그 대가를 알고도 받아들일 수 있는지를 확인한 뒤 결정해야 한다."


읽으면서 걸린 부분도 있었어요. 책이 권하는 절차를 성실히 지키려면 시간이 꽤 듭니다. 출처를 대조하고 취소 비용을 계산하고 판단 항목을 나눠 적다 보면, AI를 쓰는 이유였던 시간 절약분이 얼마나 남을지 의문이 들더군요. 물론 작가도 모든 결정을 같은 무게로 다룰 필요는 없다고 미리 선을 그어 두긴 했습니다. 다만 그 무게를 실제로 어떻게 가늠할지, 바쁜 하루 안에서 어디까지 검증하고 어디서 멈출지에 대한 안내는 조금 더 두툼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았어요. 이 부분은 결국 각자 몫으로 남는 것 같습니다.


부록에 프롬프트 백 개가 실려 있는데, 앞의 내용을 다 읽고 보면 성격이 달라 보입니다. 답을 잘 뽑아내는 주문이 아니라 스스로에게 확인 절차를 걸어 두는 장치에 가까워요.


서평단으로 여러 권을 만나다 보면 읽는 속도에 욕심이 붙을 때가 있는데, 이번 한 권은 오히려 속도를 늦추라고 말하는 도서였어요. 그 점이 묘하게 어울렸습니다. 마지막 장을 덮으며 남은 문장은 결국 하나였어요. 결과에 책임질 사람이 최종 결정을 내린다는 것.


AI를 매일 쓰면서도 어딘가 개운하지 않았던 분들, 보고서와 기획서를 검토하는 자리에 계신 분들이 읽으면 얻어 갈 게 많습니다. 처음 써 보는 분에게도 문턱이 낮고요. 두께가 얇아 하루 이틀이면 넘길 수 있지만, 부록을 곁에 두고 필요할 때 다시 펼치는 쪽이 더 쓸모 있어 보입니다.


에어컨 바람 아래에서 이 책을 읽었습니다. 창밖은 아직 한여름이고 매미 소리가 종일 이어지는 계절이지만, 이 도서가 권하는 태도는 서늘한 쪽에 가까웠어요. 빨리 나온 답 앞에서 잠깐 멈추는 일. 여름이 물러갈 즈음에는 그 멈춤이 습관으로 남아 있으면 좋겠습니다.


AI가 답을 만드는 시대에 필요한 능력은 더 빨리 얻는 힘이 아니라 받은 답을 읽고 판단하는 힘이며, <어른의 AI 문해력>은 그 판단의 절차를 손에 잡히게 정리한 안내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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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으로 끝내는 AI 전환
오형섭 지음 / 하움출판사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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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검정 바탕 위에 형광 연둣빛 사각형들이 흩어져 있습니다. 처음에는 그냥 픽셀 무늬인 줄 알았는데, 책을 조금 떨어뜨려 놓고 보니 AI라는 두 글자가 떠올랐어요. 같은 점들인데 배열이 잡히는 순간 의미가 생기는 셈이죠. 조직 안에서 이런저런 도구를 들여놓고도 아무 형태가 만들어지지 않는 경우를 떠올리게 하는 표지였습니다.


상자를 열자마자 든 생각은 단순했어요. 이건 며칠 만에 다 읽고 감상을 정리할 수 있는 종류가 아니겠구나. 실제로 손에 쥐면 묵직하고, 목차만 훑어도 다섯 개 부에 열여섯 개 장, 부록까지 붙어 있습니다. 그래서 처음부터 완독을 목표로 잡지 않고, 지금 관심이 가는 장부터 천천히 들어가기로 했습니다.


표지 아래쪽 띠에 적힌 문구가 이 책의 자리를 잘 설명해 줍니다. 생성형 AI를 조직의 실험이 아닌 업무의 일부로 만드는 법. 저자 오형섭 님은 기술 자체보다 그 기술이 조직의 업무와 의사결정, 책임 구조를 어떻게 바꾸는지에 관심을 둔다고 소개되어 있는데, 본문의 결도 그 소개와 정확히 겹칩니다.


1부 초반에 실패하는 AI 프로젝트의 공통 요인을 정리한 절이 있습니다. 저자는 원인을 모델 성능에서 찾지 않아요. "기술이 없어서 실패하기보다 무엇을 어떻게 운영할지 정하지 못해서 실패하는 경우가 더 많다는 것이다." 이어지는 여섯 가지 요인은 문제 정의가 흐릿한 채 출발하는 것, 시연에서 멈추는 것, 내부 지식을 가볍게 보는 것, 보안과 비용을 뒤로 미루는 것, 반복 사용 구조를 설계하지 않는 것, 성공 기준이 모호한 것입니다. 그중에서도 짧게 끊어 놓은 한 줄이 오래 남았습니다. '작동한다'와 '정착한다'는 전혀 다른 문제다. 시연 자리에서 박수를 받은 것과 석 달 뒤에도 누군가 그 화면을 켜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일이라는 뜻이겠지요. 같은 절 끝에는 실무 포인트로 이런 질문이 놓여 있습니다. "이 프로젝트는 지금 무엇을 증명하려는가?" 여기에 답하지 못하면 대체로 준비가 덜 된 것이라는 진단이 붙어 있는데, 답하기 어려운 회의 자리가 적지 않을 겁니다.


2부로 넘어가면 데이터 이야기가 나옵니다. '문서가 많다고 지식이 되는 것은 아니다'라는 제목의 절이 특히 읽기 좋았어요. 저자는 연차 사용 기준을 묻는 상황을 예로 듭니다. 사람은 인사 규정 하나만 보지 않고 세부 시행지침과 최근 개정 공지, 예외 사례를 함께 놓고 무엇이 먼저인지 판단하는데, 기계가 텍스트 조각만 잔뜩 끌어오면 그럴듯한 문장은 나와도 현업이 쓸 답은 되지 않는다는 것이죠. 문서 저장소는 파일을 보관하고, 지식 서비스는 근거와 관계, 우선순위, 예외를 함께 제공한다는 구분이 이 절의 뼈대입니다. 그래서 준비의 첫 단계는 자료를 새로 모으는 일이 아니라 무엇이 정본인지부터 정하는 일이라고 말합니다.


바로 뒤 절에서는 데이터 품질을 다섯 항목으로 쪼개 놓습니다. 품질, 최신성, 표준화, 메타데이터, 라인리지. 각각이 막아 주는 실패의 종류가 다르니 한 묶음으로 다루지 말라는 조언인데, 그중 최신성 대목의 문장이 제 밑줄을 받았습니다. "오래된 정보는 틀린 정보보다 더 위험할 때도 있다. 그럴듯해 보이기 때문이다." 폐지된 규정이 최신 답변처럼 제시되는 순간 사용자의 신뢰가 어떻게 무너지는지, 굳이 설명을 덧붙이지 않아도 그림이 그려집니다.


이 흐름은 권한과 보안, 책임을 다루는 절에서 방향을 한 번 틉니다. 파일서버 구석에 조용히 놓여 있던 문서가 검색을 통해 여러 사람에게 노출되고, 어떤 판단의 근거로 쓰이기 시작하면 그 문서의 성격 자체가 달라진다는 서술이 나와요. 누가 최신성을 보장하고, 누가 보안 등급을 붙이고, 누가 잘못된 답변의 원인이 된 자료를 고칠 것인지 정하지 못하면 아무리 정리해 두어도 자산이 되지 못한다고 합니다. 기술서인데 결국 사람과 책임 쪽으로 착지하는 대목이라, 이 지점에서 책을 대하는 마음이 조금 달라졌습니다.


읽으면서 걸리는 부분이 없지는 않았어요. 이 책이 제시하는 점검 항목은 상당히 촘촘합니다. 실패 신호 목록만 여덟 가지고, 데이터 항목도 다섯으로 나뉘고, 부록에는 진단표와 점검표가 따로 붙어 있습니다. 그런데 뒤쪽으로 가면 지표를 너무 많이 만들지 말라는 조언이 나와요. 두 이야기가 어긋난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인원과 예산이 넉넉하지 않은 곳에서는 목록 자체가 또 하나의 부담으로 읽힐 여지가 있습니다. 조직 유형을 공공기관과 민간기업, 대학 셋으로 깔끔하게 나눈 도식도 마찬가지예요. 그 사이 어딘가에 걸쳐 있는 곳들은 어느 경로를 따라야 하는지, 조금 더 이야기해 주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마지막 부에서 다시 마음이 붙잡혔습니다. 수용성을 다루는 절인데, 저자는 시연회 반응은 좋고 교육 직후 사용량도 늘지만 몇 주 지나면 다시 줄어드는 현상을 두고, 이걸 사람들이 변화를 싫어해서라고만 보면 해결책이 안 나온다고 말합니다. 변화 관리는 심리의 문제라기보다 마찰의 문제에 가깝다는 것이죠. 어디서부터 써야 할지 모르겠고, 자기 업무에 맞는 예시가 없고, 답이 그럴듯한데 믿기는 어렵고, 어디까지 써도 되는지 몰라 조심스러운 상태. 이런 걸 하나씩 걷어 내는 게 캠페인보다 낫다는 이야기입니다. 실무 포인트에 적힌 두 줄은 이 책 전체에서 가장 따뜻한 문장이기도 했어요. "사용자는 'AI를 써라'라는 말 때문에 반복 사용하지 않는다. 자기 업무가 실제로 조금 더 쉬워졌다고 느낄 때 반복 사용한다."


물론 마찰만 걷어 낸다고 다 풀릴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평가 제도나 부서 간 관행처럼 더 아래에 깔린 층위는 상대적으로 짧게 지나가거든요. 다만 저자가 실무자가 당장 손댈 수 있는 범위로 초점을 좁힌 것이라면, 그 선택도 이해가 갑니다.


기술 용어 때문에 망설이는 분들께는 7장 끝의 '실무에 필요한 만큼은 이해하기'라는 절을 먼저 펼쳐 보시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모든 걸 알아야 한다고 몰아붙이지 않는 태도가 이 두꺼운 안내서를 조금 만만하게 만들어 줍니다. 조직 안에서 무언가를 굴려야 하는 자리에 있다면 1부와 5부만 먼저 읽어도 회의 자리에서 쓸 말이 생길 거예요. 데이터 담당이라면 2부가 실질적인 도움이 되겠고요. 서평단으로 여러 책을 만나 왔지만, 다 읽고 서가에 꽂아 두기보다 필요할 때 다시 펴 보게 될 종류는 흔치 않습니다. 이 도서는 그쪽에 속합니다.


입추가 지났다는데 낮 공기는 여전히 무겁습니다. 이런 계절에는 얇고 빠른 책이 손에 잡히기 마련인데, 오히려 두툼한 한 권을 며칠씩 나눠 읽는 것도 나쁘지 않았어요. 서늘한 바람이 들 무렵에는 부록의 진단표를 펴 놓고 지금 어디쯤 서 있는지 표시해 볼 생각입니다.


AI를 어떤 도구로 쓸지 고르기 전에, 우리가 무엇을 바꾸고 누가 책임질지부터 다시 묻게 만드는 실무 안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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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의 에스킹 - AI가 대체할 수 없는 리더의 결정적 능력
정소영.정우성 지음 / 나비의활주로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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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책을 펼치면 회의실 장면 하나가 먼저 나옵니다. 30년 가까이 조직에서 살아남은 대기업 팀장이 두꺼운 보고서를 들고 앉아 있어요. AI가 만든 시장 분석 자료였고 데이터도, 경쟁사 동향도, 예측 모델도 흠잡을 데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꺼낸 말은 이랬습니다.


"이게… 맞는 말이긴 한데. 사실 뭔가 잘 모르겠어요. 이걸 팀원들한테 들고 가면 되는 건지, 아니면 제가 뭔가를 더 해야 하는 건지."


<리더의 에스킹>은 이 한마디에서 시작된 책입니다. 자료가 완성되기 전에 어떤 물음을 품고 있었느냐고 저자가 되묻자, 팀장은 잠시 멈췄다가 천천히 대답했다고 해요. 어떤 질문을 해야 하는지를 모르겠다고. AI가 워낙 잘 정리를 해주니까요.


정소영, 정우성 두 저자는 기업교육과 조직개발 현장에서 십수 년을 보낸 사람들입니다. 그래서인지 이 도서의 논지는 관념적인 자리에 오래 머물지 않습니다. 전 세계 기업의 88%가 AI를 도입했는데 의미 있는 성과를 낸 곳은 1%라는 맥킨지 수치를 인용하면서, 그 어마어마한 격차를 도구의 성능 바깥에서 설명하려 합니다. 빠르게 결정하고 명확하게 지시하고 정확한 답을 내는 것, 우리 세대가 유능함이라 배운 세 가지를 지금은 기계가 더 잘한다는 진단이 앞에 놓이고요.


읽으면서 손이 멈춘 대목은 증상과 원인을 갈라놓는 부분이었습니다. AI 회의록 자동화를 전사 도입해서 작성 시간을 0으로 만든 회사가 반년 뒤 회의 건수는 오히려 30% 늘었다는 사례가 나옵니다. 아무도 이 회의를 왜 하는지 묻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정리합니다. 두통약만 처방받고 돌아와 다음 날 또 아픈 상황에 빗댄 설명이 이어지는데, 이직률이 높으면 복지를 늘리고 회의가 비효율적이면 규칙을 새로 만들고 성과가 없으면 더 좋은 툴로 바꾸는 일이 전부 같은 종류라는 겁니다.


원인을 왜 묻지 않는지에 대한 저자의 답이 꽤 정직했습니다. 시간이 없어서가 아니라, 증상에 집중하면 뭔가 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라고 하더군요. 원인을 파고들면 구조가 잘못됐거나 방향이 틀렸거나 리더의 결정이 문제였다는 불편한 것들이 나오니까요. 그 불편함을 피하다 보면 조직은 매년 같은 증상을 다른 이름으로 반복해서 치료하게 된다는 문장 앞에서, 회사 생활 오래 한 사람이라면 짚이는 장면이 한둘씩 있을 겁니다.


AI 발주 예측 시스템에 3천만 원을 쓴 회사 이야기도 오래 남습니다. 정확도가 85%였는데 직원들이 쓰지 않았고, 대표는 기술 수용 저항이라 판단해 교육을 늘렸습니다. 나중에 드러난 이유는 예측이 틀렸을 때 책임을 자신이 져야 한다는 부담이었어요. 결국 그 대표가 풀어야 했던 것은 도입이 아니라 실패해도 괜찮은 문화를 만드는 일이었다고 책은 말합니다. 기술로 시작한 이야기가 사람의 두려움으로 내려앉는 자리라, 이 도서에서 가장 온도가 낮으면서도 따뜻한 대목이었습니다.


뒷부분으로 갈수록 화살은 조직에서 리더 개인 쪽으로 옮겨옵니다. 답을 내려놓을 때 성과가 올라간다는 챕터에 팀원들의 말이 인용돼 있는데요.


"팀장님이 워낙 빠르게 결론을 내리시니까, 저희는 그냥 따라가는 편이에요."


이 문장은 무능한 상사를 향한 불평이 아닙니다. 오히려 성실하게 잘해온 사람이 만든 결과라서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리더의 답이 빠를수록 팀원의 사고는 느려진다는 역설을 저자는 담담하게 짚고, 대신 그렇게 생각한 이유가 뭔지 되물어 보라고 권합니다. 신제품 회의에 아무 준비 없이 들어가 요즘 마트에서 뭘 보고 있느냐고 물었던 어느 대표 사례도 나오는데, 아이디어를 낸 직원이 남긴 말이 제겐 이 책 전체의 요약처럼 읽혔습니다. 대표님이 처음으로 모른다고 하셔서 저도 말할 수 있었어요.


다만 아쉬움도 있었습니다. 등장하는 사례들이 하나같이 반년 안에 숫자로 보상을 받습니다. 모르겠다고 말한 임원은 발언자 수가 두 배로 늘고, 되물으며 기다린 창업자는 한 달 만에 팀이 달라지죠. 실제 조직에서 리더가 모르겠다고 말했을 때 늘 이런 결말이 오지는 않을 겁니다. 신뢰가 어느 정도 쌓인 곳에서만 작동하는 방식일 수도 있고요. 그 전제가 조금 더 설명됐다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저자도 정답을 팔 생각은 없어 보입니다. 바로 쓸 수 있는 답이라면 AI한테 물어보면 된다는 대목에서 그 태도가 분명히 드러나니까요.


서평단으로 만난 책 가운데는 표지가 먼저 말을 거는 경우가 많은데, 이 한 권은 회색 바탕에 ASKING 여섯 글자만 큼직하게 박아두고 나머지를 비워뒀더군요. 판형도 분량도 부담 없어서 며칠에 나눠 편하게 읽힙니다. 각 파트 끝의 에스킹 코너와 부록 진단지까지 붙어 있어, 팀을 맡고 있는 사람이라면 회의 전에 한 꼭지씩 들춰보는 식으로도 쓸 수 있겠어요. 회의를 자신 있게 마치고 자리로 돌아왔는데 뭔가 놓친 것 같은 기분이 남는 분들이라면, 그 기분의 정체를 여기서 확인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입추가 지났다는데 더위는 아직 물러설 기미가 없습니다. 이런 계절에는 결론이 선명한 책보다 물음이 남는 책이 오래 갑니다. 저 역시 답을 내려놓으면 무엇이 두려운지, 그 두려움이 실제로 근거가 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보는 숙제를 하나 안고 이 도서를 덮었습니다.


답을 더 빨리 내는 사람보다, 먼저 물을 줄 아는 사람이 남는다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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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러 푸드 - 인스턴트에 중독된 내 아이, 어떻게 살릴까?
배경미 지음 / 밥북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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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표지가 먼저 말을 겁니다. 짙은 갈색과 검붉은 바탕 위로 흰 삼각형이 솟아 있고, 위에서 내려온 손가락 하나가 그 꼭대기를 정확히 겨누고 있어요. 감자튀김 봉지처럼 보이다가 어느 순간에는 도로 위 경고 표지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거기에 "사랑하는 아이에게 쓰레기를 먹이시겠습니까?"라는 표지 문구까지 얹혀 있으니, 책을 펼치기 전부터 마음이 조금 불편해졌습니다. 북유럽 카페 서평단으로 이 한 권을 받아 들었을 때 든 생각은, 아무래도 편하게 읽히지는 않겠구나 하는 쪽이었습니다.


실제로 앞부분은 그랬습니다. 저자 배경미 님은 초등학교 보건교사로 십육 년을 일했고, 이후에도 현장에서 건강 관리를 해온 분입니다. 그 이력이 도입부에 그대로 나옵니다. 환절기 보건실이 열감기와 독감으로 북새통을 이루는데, 같은 교실에서 같은 바이러스에 노출된 아이들의 결과가 갈립니다. 어떤 아이는 콧물만 훌쩍이고 지나가고, 어떤 아이는 고열로 입원까지 합니다. 저자는 그 차이를 국가 방역이 아닌 개인 방역, 곧 면역력의 문제로 봅니다.


이 대목에서 인용된 숫자들은 담담하게 읽기가 어려웠습니다. 국내 삼십 세 미만의 2형 당뇨 유병률이 십삼 년 만에 네 배 가까이 늘었고, 증가 폭은 중고등학생 나이대에서 가장 가팔랐다는 연구가 소개됩니다. 성인병이라 부르던 병이 이제 청소년의 병이 되어간다는 이야기지요. 면역 시스템을 정예 군대에 비유한 설명도 인상적이었습니다. 편의점 컵라면과 삼각김밥은 배를 부르게 하지만 병사를 훈련시키고 항체라는 무기를 만들 재료는 주지 못한다는 것이고, 영양학에서 이런 음식을 빈 칼로리라 부른다는 설명이 뒤따릅니다. 그러고는 이렇게 정리합니다.


"우리 아이들은 역사상 가장 풍족하게 먹는 세대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세포 수준에서는 가장 굶주리고 있는 세대입니다."


풍족과 굶주림을 한 문장에 나란히 놓은 이 표현 앞에서 손이 멈췄습니다. 우리 세대가 자랄 때보다 훨씬 잘 먹이고 있다고 여겼는데, 그 판단의 기준 자체가 흔들리는 느낌이었어요.


그런데 이 책이 경고로만 채워진 안내서였다면 아마 끝까지 읽기 힘들었을 겁니다. 중반으로 넘어가면 저자의 목소리가 눈에 띄게 낮아집니다.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가 현관문을 열자마자 배고프다고 외치며 냉장고를 여는 장면을 두고, 저자는 그 말에 여러 뜻이 섞여 있다고 봅니다. 오늘 너무 힘들었어, 잠깐 쉬고 싶어, 뭔가로 위로받고 싶어 같은 말들이요. 감정을 언어로 정리할 힘이 아직 자라지 않은 아이는 가장 익숙한 방식으로 반응한다는 설명입니다. 반대로 마음이 지치면 아예 먹지 못하는 아이도 있다고 짚는데, 과식과 거식을 같은 뿌리에서 읽어내는 시선이 좋았습니다.


부모가 서운해지는 순간을 다루는 방식도 인상 깊었습니다. 저녁상에서는 몇 술 뜨다 말던 아이가 밤늦게 방에서 과자를 먹고 있는 걸 발견했을 때의 그 감정 말입니다. 저자는 아이 입장에서 혼자 먹는 음식이 어떤 의미인지 설명합니다. 식탁에서는 질문을 받아야 하고, 반찬을 골라 먹는 눈치를 봐야 하고, 하루를 설명해야 합니다. 혼자 먹을 때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아도 되고 누구의 표정도 살피지 않아도 되지요. 잠깐이나마 자기만의 시간이 되는 겁니다. 아이가 밥을 피한 게 아니라 그 자리에 딸려 오는 것들을 피했을 수 있다는 해석은, 읽는 쪽에서 한동안 생각하게 만듭니다.


책에서 가장 솔직한 대목은 저자가 자기 이야기를 꺼내는 자리였습니다. 학교에서는 아이들의 식습관을 비교적 차분히 볼 수 있었지만, 정작 자기 아이가 현관문을 열자마자 냉동실 앞에 서 있으면 "보건교사보다 엄마가 먼저 흔들렸습니다"라고 적어둡니다. 지금 이걸 주면 저녁을 망칠 텐데, 그래도 오늘 하루가 고단했을 텐데, 지금 필요한 게 밥일까 위로일까. 이 세 줄이 나란히 놓인 걸 보면서, 전문가 이력을 앞세운 책이 아니라 같은 자리에서 헤맨 사람의 기록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엇을 먹었는가만큼 어떤 상태에서 먹고 있는가를 살피자는 제안도 이 흔들림 위에서 나오니 훨씬 설득력 있게 다가옵니다.


다만 조금 갸웃했던 곳도 있습니다. 저자는 세대 차이를 설명하면서 부모 세대는 음식에서 정성과 건강과 돌봄을 먼저 떠올리고, 아이들 세대는 편의성과 즉각성을 먼저 경험한다고 정리합니다. 구도는 명쾌한데 지금 사십 대, 오십 대가 자란 시절을 떠올려보면 꼭 그렇지도 않았습니다. 학교 앞 불량식품과 라면은 그때도 일상이었으니까요. 부모 세대의 식탁을 조금 곱게 그린 면이 있고, 그만큼 아이들 쪽이 더 나쁜 조건에 놓인 것처럼 읽히는 부분이 있습니다. 물론 초가공식품의 밀도와 배달 앱의 접근성은 비교가 안 될 만큼 달라졌으니 저자의 진단 자체를 뒤집을 이야기는 아닙니다.


후반부의 실천 파트는 결이 또 다릅니다. 저자는 오늘부터 배달 음식과 라면과 탄산음료를 전부 금지하겠다는 선언을 혁명이라 부르며, 준비 없는 혁명은 사흘 만에 끝난다고 말합니다. 부모는 좌절하고 아이는 더 숨어서 먹게 되니 관계만 상하는 셈이지요. 이걸 완벽주의의 함정이라 이름 붙인 뒤, 그 대안으로 도로 공사 비유를 꺼냅니다. 아이 머릿속에는 이미 십 년 넘게 다져진 넓은 길이 나 있는데 거기에 바리케이드를 치면 사고만 난다는 겁니다. 옆에 새 길을 놓자는 쪽이고요.


그래서 제안되는 목표들이 하나같이 작습니다. 탄산음료를 끊으라는 대신 물을 하루 1.5리터 마셔보라는 식입니다. 물배가 차면 탄산음료를 덜 찾게 된다는 논리인데, 빼는 대신 더하는 방향이라 아이도 덜 반발하겠구나 싶었어요. 라면 국물 남기기, 치킨 먹기 전 채소 한 입, 빵 먹기 전 삶은 계란 하나. 이 정도라면 맞벌이 가정에서도 해볼 만합니다. 중기 목표 중에는 이 주 동안 미각 리셋을 해본 뒤 십오 일째 되는 날 탕후루를 먹어보고 맛이 어떻게 느껴지는지 기록해보라는 항목이 있는데, 금지 대신 아이 스스로 감각의 변화를 확인하게 만드는 설계라 이 책의 태도를 가장 잘 보여준다고 느꼈습니다.


일 년 뒤의 모습을 그려둔 장기 목표도 과하지 않습니다. 혼자 편의점에 가도 성분표를 읽고 그중 나은 것을 고를 수 있는 정도, 스트레스를 받을 때 음식 말고 다른 것을 먼저 떠올리는 정도, 컵라면 대신 십 분이면 되는 자기 레시피 한두 가지를 아는 정도입니다. 마지막 문장에서 저자는 부모의 자리를 감시하는 사람이 아니라 방향을 알려주는 나침반으로 정합니다. 이 표현 하나로 책 전체의 인상이 정리되더군요.


책이 272쪽이고 판형도 부담스럽지 않아 며칠이면 넘길 수 있습니다. 다만 앞부분과 뒷부분의 온도 차가 꽤 커서, 경고에 놀란 마음이 실천 파트에서 천천히 가라앉는 구조로 읽히더라고요. 장 사이사이에 놓인 속표지마다 주황빛 미소 곡선이 하나씩 그려져 있는데, 검붉은 표지에서 출발한 도서가 어디로 가려는지를 그 작은 곡선들이 미리 알려주고 있었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서평단으로 여러 권을 만나다 보면 읽고 나서 무언가를 바꾸게 되는 책은 생각보다 드뭅니다. 이번 한 권은 거창한 결심 대신 아주 사소한 질문 하나를 남겼습니다. 아이가 무언가를 집어 들 때 그게 배가 고파서인지 하루가 고단해서인지 한 번쯤 헤아려보는 일, 그것부터가 시작이라는 이야기니까요. 자녀의 편식이나 야식 습관 때문에 저녁마다 같은 실랑이를 반복해온 집이라면 특히 도움이 될 겁니다. 아이 없이 혼자 사는 사람이 읽어도 편의점으로 때우던 자기 끼니를 다시 보게 되는 대목이 여럿 있고요.


여름방학이 끝나가는 무렵입니다. 아이들의 하루가 늦게 시작하고 늦게 끝나면서 끼니 시간도 자연스레 흐트러지는 시기지요. 개학과 함께 다시 규칙적인 일상이 돌아오기 전에, 냉장고 문을 한 번 열어보고 식탁 위에 무엇을 올려둘지 정도만 정해봐도 좋겠습니다. 거창한 계획보다 그 편이 오래갈 것 같습니다.


아이의 식습관을 고치라고 다그치는 책이 아니라, 아이가 왜 그것을 집어 드는지부터 함께 들여다보자고 손을 내미는 안내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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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력을 키우는 수학의 힘 - 원리를 꿰뚫고 직관으로 끝내는 수학의 모든 것
장허 지음, 김지혜 옮김, 신재호 감수 / 미디어숲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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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표지를 처음 마주했을 때는 조금 삐딱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청록에서 하늘빛으로 번지는 그라데이션 위로 삼각형과 원, 정육면체의 선화가 옅게 깔려 있고, 아래쪽 검정 띠에 "공식은 잊어라, 수학은 사고력 싸움이다!"라는 문장이 굵게 박혀 있더군요. 공식을 잊으라는 말을 수학책이 한다는 게 어쩐지 앞뒤가 맞지 않아 보였습니다. 판형은 손에 쥐기 좋은 보통 크기, 분량도 부담스럽지 않아서 며칠에 걸쳐 천천히 넘겨 볼 만했고요.


책장을 덮고 나니 저 카피의 뜻이 조금 달리 읽혔습니다. 공식을 버리라는 권고가 아니라, 공식이 서 있는 자리를 한 번쯤 확인해 보자는 제안에 가까웠어요.


1부에서 삼각형 내각의 합을 다루는 장이 그 태도를 가장 잘 보여 줍니다. 세 내각을 더하면 180도라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지요. 그런데 왜 그런지 설명해 보라고 하면 대부분 말문이 막힙니다. 저자는 곧장 증명으로 뛰어들지 않고 우선 삼각형 바깥에 직선 하나를 그어 둡니다. 그 직선을 삼각형에서 떼어 놓았다가, 꼭짓점에 붙였다가, 조금씩 돌려 밑변과 나란하게 만들어 보는 식이에요. 평행이 되는 순간에 비로소 두 각이 삼각형의 각과 같아지고, 평각이라는 오래된 개념이 답을 내줍니다.


이 대목에서 저자가 스스로 붙인 단서가 좋았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문제 해석일 뿐 증명은 아니다."라고 못을 박아 두거든요. 자기 논의의 성격을 정확히 아는 사람의 문장이라 신뢰가 갔습니다.


장의 뒷부분은 한 번 더 밀고 나갑니다. 꼭짓점 하나를 오른쪽으로 계속 밀어내면 한 각은 점점 작아지고, 무한히 멀리 보내면 두 변은 거의 평행한 상태가 됩니다. 그러면 남는 것은 나머지 두 각의 합이고, 그 값이 다시 180도로 돌아오지요. 움직여 봐야 움직이지 않는 것이 보인다는 이야기인데, 도형 이야기로만 읽히지는 않았습니다. 삶에서도 흔들어 봐야 남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는 일이 있으니까요.


2부의 '문제해결은 생각의 결과다'는 결이 조금 다릅니다. 여기서 저자가 겨누는 것은 유형 학습이에요. 문제를 만나면 먼저 유형을 판단하고, 유형에 붙은 방법을 꺼내 쓰는 구조를 도식으로 그려 놓고는, 이렇게 익히면 유형을 못 알아본 순간 풀 수 없다고 스스로 단정 짓게 된다고 짚습니다. 문제에 자신이 없어지고 나중에는 손도 못 대는 지경에 이른다는 문장이 있는데, 학창 시절 어느 지점에서 이 과목을 놓아 버린 사람이라면 남 얘기로 읽히지 않을 겁니다. 제 또래 중에도 그런 기억을 품고 사는 이가 많지요.


저자가 내미는 대안은 소박합니다. 문제에서 풀어야 하는 핵심이 무엇인지 먼저 묻고, 그것을 파악한 다음 무엇을 할지 정하라는 것. 실제로 함수 문제 하나를 두고 대상의 성질을 확인하는 데 여러 쪽을 쓰고, 정작 답은 마지막에 한 줄로 정리해 버립니다. 같은 문제를 세 가지 경로로 풀어 보이기도 하고요. 순서를 바꾸는 것만으로 문제가 이렇게 다르게 보인다는 걸 실연해 보이는 구성입니다.


3부에 오면 질문이 한층 더 내려갑니다. 왜 7 더하기 5는 12인가. 사과 일곱 개에 사과 다섯 개를 더하면 열두 개인데, 사과 일곱 개에 배 다섯 개를 더하라고 하면 대답이 궁색해집니다. 둘의 기본단위가 다르기 때문이고, 과일이라고 이름을 바꾸는 순간 열두 개라는 답이 성립하지요. 더할 수 없던 것이 공통의 단위를 얻으면서 더해진다는 이야기가 분수의 통분으로, 동류항으로, 부채꼴 호의 길이 공식으로 차례차례 번져 갑니다. 학창 시절에 따로따로 외웠던 것들이 실은 한 가지 원리의 변주였다는 걸 뒤늦게 알게 되니 마음이 조금 서늘했습니다.


책에서 제일 오래 남은 문장은 뜻밖에도 삼각자 이야기 곁에 있었어요. 동위각이 같으면 두 직선은 평행하다는 기본 사실을 두고, 저자는 삼각자를 밀어 평행선을 그어 본 경험을 다시 꺼내 놓습니다. 그러면서 "만약 우리가 스스로에게 묻지 않는다면 스스로 생각하지도 않을 것이다."라고 적어요. 수학책의 문장인데 책 바깥까지 따라 나오더군요. 오래 다닌 직장에서 익숙해진 판단들, 별 의심 없이 되풀이해 온 방식들을 떠올리게 하는 힘이 있었습니다.


물론 아쉬운 대목도 있습니다. 직선을 옮기고 돌리는 서술이 문장만으로는 촘촘해서, 도형에 익숙지 않다면 종이에 직접 그려 가며 읽어야 뜻이 통합니다. 예제도 대체로 고등학교 함수 문제 범위에 머물러 있어서, 수식에서 눈이 미끄러지는 독자는 몇 대목을 건너뛰게 될 거예요. 평면기하를 왜 공부해야 하는지 답하는 부분도 한 문단 남짓으로 지나가는데, 하필 그 질문이야말로 성인 독자가 가장 궁금해할 지점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유형 훈련의 한계를 지적하면서도 반복 학습의 쓸모를 완전히 부정하지는 않는데, 그렇다면 둘을 어떤 비율로 가져가야 하는지에 대한 안내는 뚜렷하지 않고요. 이 책이 교사의 언어로 쓰였다는 사실이 장점이자 한계로 함께 드러나는 자리입니다.


그럼에도 이 한 권은 자기 자리를 분명히 지킵니다. 아이 문제집을 들여다보다 설명이 막혔던 어른, 수포자라는 말을 오래 자기 이름표처럼 달고 지낸 사람, 성적과 무관하게 생각하는 일 자체의 골격을 다시 보고 싶은 이라면 얻어 갈 게 있을 겁니다. 하루에 한 주제씩 끊어 읽기 좋게 짜여 있어서 진도를 재촉하지 않아도 되고요.


북유럽 카페를 통해 받아 든 도서였는데, 서평단으로 여러 책을 만나다 보면 정답을 서둘러 건네주는 책이 대부분입니다. 이 안내서는 답 대신 질문 던지는 자리를 계속 비워 두더군요. 그 여백이 오히려 오래 남았습니다.


입추가 지났다고는 하나 한낮 볕은 여전히 두껍습니다. 그래도 해 지는 시각이 조금씩 앞당겨지고 저녁 공기 끝에 서늘한 기운이 섞이기 시작했어요. 계절이 바뀌는 건 이렇게 눈에 잘 띄지 않는 자리에서 먼저 일어나지요. 오래 안다고 여겨 온 것을 다시 들여다보는 일도 그와 비슷한 데가 있는 것 같습니다.


답을 알려 주는 대신 답에 이르는 순서를 되돌려 보여 주는 책, 수학을 오래 놓았던 어른에게 생각하는 방법을 다시 쥐여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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