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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의 에스킹 - AI가 대체할 수 없는 리더의 결정적 능력
정소영.정우성 지음 / 나비의활주로 / 2026년 7월
평점 :
"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책을 펼치면 회의실 장면 하나가 먼저 나옵니다. 30년 가까이 조직에서 살아남은 대기업 팀장이 두꺼운 보고서를 들고 앉아 있어요. AI가 만든 시장 분석 자료였고 데이터도, 경쟁사 동향도, 예측 모델도 흠잡을 데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꺼낸 말은 이랬습니다.
"이게… 맞는 말이긴 한데. 사실 뭔가 잘 모르겠어요. 이걸 팀원들한테 들고 가면 되는 건지, 아니면 제가 뭔가를 더 해야 하는 건지."

<리더의 에스킹>은 이 한마디에서 시작된 책입니다. 자료가 완성되기 전에 어떤 물음을 품고 있었느냐고 저자가 되묻자, 팀장은 잠시 멈췄다가 천천히 대답했다고 해요. 어떤 질문을 해야 하는지를 모르겠다고. AI가 워낙 잘 정리를 해주니까요.
정소영, 정우성 두 저자는 기업교육과 조직개발 현장에서 십수 년을 보낸 사람들입니다. 그래서인지 이 도서의 논지는 관념적인 자리에 오래 머물지 않습니다. 전 세계 기업의 88%가 AI를 도입했는데 의미 있는 성과를 낸 곳은 1%라는 맥킨지 수치를 인용하면서, 그 어마어마한 격차를 도구의 성능 바깥에서 설명하려 합니다. 빠르게 결정하고 명확하게 지시하고 정확한 답을 내는 것, 우리 세대가 유능함이라 배운 세 가지를 지금은 기계가 더 잘한다는 진단이 앞에 놓이고요.
읽으면서 손이 멈춘 대목은 증상과 원인을 갈라놓는 부분이었습니다. AI 회의록 자동화를 전사 도입해서 작성 시간을 0으로 만든 회사가 반년 뒤 회의 건수는 오히려 30% 늘었다는 사례가 나옵니다. 아무도 이 회의를 왜 하는지 묻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정리합니다. 두통약만 처방받고 돌아와 다음 날 또 아픈 상황에 빗댄 설명이 이어지는데, 이직률이 높으면 복지를 늘리고 회의가 비효율적이면 규칙을 새로 만들고 성과가 없으면 더 좋은 툴로 바꾸는 일이 전부 같은 종류라는 겁니다.

원인을 왜 묻지 않는지에 대한 저자의 답이 꽤 정직했습니다. 시간이 없어서가 아니라, 증상에 집중하면 뭔가 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라고 하더군요. 원인을 파고들면 구조가 잘못됐거나 방향이 틀렸거나 리더의 결정이 문제였다는 불편한 것들이 나오니까요. 그 불편함을 피하다 보면 조직은 매년 같은 증상을 다른 이름으로 반복해서 치료하게 된다는 문장 앞에서, 회사 생활 오래 한 사람이라면 짚이는 장면이 한둘씩 있을 겁니다.
AI 발주 예측 시스템에 3천만 원을 쓴 회사 이야기도 오래 남습니다. 정확도가 85%였는데 직원들이 쓰지 않았고, 대표는 기술 수용 저항이라 판단해 교육을 늘렸습니다. 나중에 드러난 이유는 예측이 틀렸을 때 책임을 자신이 져야 한다는 부담이었어요. 결국 그 대표가 풀어야 했던 것은 도입이 아니라 실패해도 괜찮은 문화를 만드는 일이었다고 책은 말합니다. 기술로 시작한 이야기가 사람의 두려움으로 내려앉는 자리라, 이 도서에서 가장 온도가 낮으면서도 따뜻한 대목이었습니다.
뒷부분으로 갈수록 화살은 조직에서 리더 개인 쪽으로 옮겨옵니다. 답을 내려놓을 때 성과가 올라간다는 챕터에 팀원들의 말이 인용돼 있는데요.

"팀장님이 워낙 빠르게 결론을 내리시니까, 저희는 그냥 따라가는 편이에요."
이 문장은 무능한 상사를 향한 불평이 아닙니다. 오히려 성실하게 잘해온 사람이 만든 결과라서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리더의 답이 빠를수록 팀원의 사고는 느려진다는 역설을 저자는 담담하게 짚고, 대신 그렇게 생각한 이유가 뭔지 되물어 보라고 권합니다. 신제품 회의에 아무 준비 없이 들어가 요즘 마트에서 뭘 보고 있느냐고 물었던 어느 대표 사례도 나오는데, 아이디어를 낸 직원이 남긴 말이 제겐 이 책 전체의 요약처럼 읽혔습니다. 대표님이 처음으로 모른다고 하셔서 저도 말할 수 있었어요.
다만 아쉬움도 있었습니다. 등장하는 사례들이 하나같이 반년 안에 숫자로 보상을 받습니다. 모르겠다고 말한 임원은 발언자 수가 두 배로 늘고, 되물으며 기다린 창업자는 한 달 만에 팀이 달라지죠. 실제 조직에서 리더가 모르겠다고 말했을 때 늘 이런 결말이 오지는 않을 겁니다. 신뢰가 어느 정도 쌓인 곳에서만 작동하는 방식일 수도 있고요. 그 전제가 조금 더 설명됐다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저자도 정답을 팔 생각은 없어 보입니다. 바로 쓸 수 있는 답이라면 AI한테 물어보면 된다는 대목에서 그 태도가 분명히 드러나니까요.

서평단으로 만난 책 가운데는 표지가 먼저 말을 거는 경우가 많은데, 이 한 권은 회색 바탕에 ASKING 여섯 글자만 큼직하게 박아두고 나머지를 비워뒀더군요. 판형도 분량도 부담 없어서 며칠에 나눠 편하게 읽힙니다. 각 파트 끝의 에스킹 코너와 부록 진단지까지 붙어 있어, 팀을 맡고 있는 사람이라면 회의 전에 한 꼭지씩 들춰보는 식으로도 쓸 수 있겠어요. 회의를 자신 있게 마치고 자리로 돌아왔는데 뭔가 놓친 것 같은 기분이 남는 분들이라면, 그 기분의 정체를 여기서 확인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입추가 지났다는데 더위는 아직 물러설 기미가 없습니다. 이런 계절에는 결론이 선명한 책보다 물음이 남는 책이 오래 갑니다. 저 역시 답을 내려놓으면 무엇이 두려운지, 그 두려움이 실제로 근거가 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보는 숙제를 하나 안고 이 도서를 덮었습니다.
답을 더 빨리 내는 사람보다, 먼저 물을 줄 아는 사람이 남는다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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