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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력을 키우는 수학의 힘 - 원리를 꿰뚫고 직관으로 끝내는 수학의 모든 것
장허 지음, 김지혜 옮김, 신재호 감수 / 미디어숲 / 2026년 8월
평점 :
"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표지를 처음 마주했을 때는 조금 삐딱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청록에서 하늘빛으로 번지는 그라데이션 위로 삼각형과 원, 정육면체의 선화가 옅게 깔려 있고, 아래쪽 검정 띠에 "공식은 잊어라, 수학은 사고력 싸움이다!"라는 문장이 굵게 박혀 있더군요. 공식을 잊으라는 말을 수학책이 한다는 게 어쩐지 앞뒤가 맞지 않아 보였습니다. 판형은 손에 쥐기 좋은 보통 크기, 분량도 부담스럽지 않아서 며칠에 걸쳐 천천히 넘겨 볼 만했고요.
책장을 덮고 나니 저 카피의 뜻이 조금 달리 읽혔습니다. 공식을 버리라는 권고가 아니라, 공식이 서 있는 자리를 한 번쯤 확인해 보자는 제안에 가까웠어요.

1부에서 삼각형 내각의 합을 다루는 장이 그 태도를 가장 잘 보여 줍니다. 세 내각을 더하면 180도라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지요. 그런데 왜 그런지 설명해 보라고 하면 대부분 말문이 막힙니다. 저자는 곧장 증명으로 뛰어들지 않고 우선 삼각형 바깥에 직선 하나를 그어 둡니다. 그 직선을 삼각형에서 떼어 놓았다가, 꼭짓점에 붙였다가, 조금씩 돌려 밑변과 나란하게 만들어 보는 식이에요. 평행이 되는 순간에 비로소 두 각이 삼각형의 각과 같아지고, 평각이라는 오래된 개념이 답을 내줍니다.
이 대목에서 저자가 스스로 붙인 단서가 좋았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문제 해석일 뿐 증명은 아니다."라고 못을 박아 두거든요. 자기 논의의 성격을 정확히 아는 사람의 문장이라 신뢰가 갔습니다.

장의 뒷부분은 한 번 더 밀고 나갑니다. 꼭짓점 하나를 오른쪽으로 계속 밀어내면 한 각은 점점 작아지고, 무한히 멀리 보내면 두 변은 거의 평행한 상태가 됩니다. 그러면 남는 것은 나머지 두 각의 합이고, 그 값이 다시 180도로 돌아오지요. 움직여 봐야 움직이지 않는 것이 보인다는 이야기인데, 도형 이야기로만 읽히지는 않았습니다. 삶에서도 흔들어 봐야 남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는 일이 있으니까요.
2부의 '문제해결은 생각의 결과다'는 결이 조금 다릅니다. 여기서 저자가 겨누는 것은 유형 학습이에요. 문제를 만나면 먼저 유형을 판단하고, 유형에 붙은 방법을 꺼내 쓰는 구조를 도식으로 그려 놓고는, 이렇게 익히면 유형을 못 알아본 순간 풀 수 없다고 스스로 단정 짓게 된다고 짚습니다. 문제에 자신이 없어지고 나중에는 손도 못 대는 지경에 이른다는 문장이 있는데, 학창 시절 어느 지점에서 이 과목을 놓아 버린 사람이라면 남 얘기로 읽히지 않을 겁니다. 제 또래 중에도 그런 기억을 품고 사는 이가 많지요.

저자가 내미는 대안은 소박합니다. 문제에서 풀어야 하는 핵심이 무엇인지 먼저 묻고, 그것을 파악한 다음 무엇을 할지 정하라는 것. 실제로 함수 문제 하나를 두고 대상의 성질을 확인하는 데 여러 쪽을 쓰고, 정작 답은 마지막에 한 줄로 정리해 버립니다. 같은 문제를 세 가지 경로로 풀어 보이기도 하고요. 순서를 바꾸는 것만으로 문제가 이렇게 다르게 보인다는 걸 실연해 보이는 구성입니다.
3부에 오면 질문이 한층 더 내려갑니다. 왜 7 더하기 5는 12인가. 사과 일곱 개에 사과 다섯 개를 더하면 열두 개인데, 사과 일곱 개에 배 다섯 개를 더하라고 하면 대답이 궁색해집니다. 둘의 기본단위가 다르기 때문이고, 과일이라고 이름을 바꾸는 순간 열두 개라는 답이 성립하지요. 더할 수 없던 것이 공통의 단위를 얻으면서 더해진다는 이야기가 분수의 통분으로, 동류항으로, 부채꼴 호의 길이 공식으로 차례차례 번져 갑니다. 학창 시절에 따로따로 외웠던 것들이 실은 한 가지 원리의 변주였다는 걸 뒤늦게 알게 되니 마음이 조금 서늘했습니다.
책에서 제일 오래 남은 문장은 뜻밖에도 삼각자 이야기 곁에 있었어요. 동위각이 같으면 두 직선은 평행하다는 기본 사실을 두고, 저자는 삼각자를 밀어 평행선을 그어 본 경험을 다시 꺼내 놓습니다. 그러면서 "만약 우리가 스스로에게 묻지 않는다면 스스로 생각하지도 않을 것이다."라고 적어요. 수학책의 문장인데 책 바깥까지 따라 나오더군요. 오래 다닌 직장에서 익숙해진 판단들, 별 의심 없이 되풀이해 온 방식들을 떠올리게 하는 힘이 있었습니다.
물론 아쉬운 대목도 있습니다. 직선을 옮기고 돌리는 서술이 문장만으로는 촘촘해서, 도형에 익숙지 않다면 종이에 직접 그려 가며 읽어야 뜻이 통합니다. 예제도 대체로 고등학교 함수 문제 범위에 머물러 있어서, 수식에서 눈이 미끄러지는 독자는 몇 대목을 건너뛰게 될 거예요. 평면기하를 왜 공부해야 하는지 답하는 부분도 한 문단 남짓으로 지나가는데, 하필 그 질문이야말로 성인 독자가 가장 궁금해할 지점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유형 훈련의 한계를 지적하면서도 반복 학습의 쓸모를 완전히 부정하지는 않는데, 그렇다면 둘을 어떤 비율로 가져가야 하는지에 대한 안내는 뚜렷하지 않고요. 이 책이 교사의 언어로 쓰였다는 사실이 장점이자 한계로 함께 드러나는 자리입니다.

그럼에도 이 한 권은 자기 자리를 분명히 지킵니다. 아이 문제집을 들여다보다 설명이 막혔던 어른, 수포자라는 말을 오래 자기 이름표처럼 달고 지낸 사람, 성적과 무관하게 생각하는 일 자체의 골격을 다시 보고 싶은 이라면 얻어 갈 게 있을 겁니다. 하루에 한 주제씩 끊어 읽기 좋게 짜여 있어서 진도를 재촉하지 않아도 되고요.
북유럽 카페를 통해 받아 든 도서였는데, 서평단으로 여러 책을 만나다 보면 정답을 서둘러 건네주는 책이 대부분입니다. 이 안내서는 답 대신 질문 던지는 자리를 계속 비워 두더군요. 그 여백이 오히려 오래 남았습니다.
입추가 지났다고는 하나 한낮 볕은 여전히 두껍습니다. 그래도 해 지는 시각이 조금씩 앞당겨지고 저녁 공기 끝에 서늘한 기운이 섞이기 시작했어요. 계절이 바뀌는 건 이렇게 눈에 잘 띄지 않는 자리에서 먼저 일어나지요. 오래 안다고 여겨 온 것을 다시 들여다보는 일도 그와 비슷한 데가 있는 것 같습니다.
답을 알려 주는 대신 답에 이르는 순서를 되돌려 보여 주는 책, 수학을 오래 놓았던 어른에게 생각하는 방법을 다시 쥐여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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