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무늬
백희성 지음 / 북로망스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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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표지부터 이야기를 시작하겠습니다. 짙은 남색 바탕에 촘촘한 격자가 깔려 있는데, 천의 짜임을 크게 확대해 놓은 모양입니다. 가운데에는 손 하나가 실패를 쥐고 있어요. 실패의 살구색과 손등의 결이 꽤 세밀하게 그려져 있고, 붉은 실 한 가닥이 풀려 나와 화면 위쪽의 파란 사선을 가로지릅니다. 띠지는 흰 바탕에 붉은 글씨로 볼 수 없어 더욱 선명하게 느끼는 것들이 있다, 라고 적혀 있고, 띠지 아래쪽은 다시 붉은 직물 무늬로 마감돼 있습니다. 표지 전체가 이미 소설의 방식을 설명하고 있는 셈이죠.


<기억의 무늬>는 <빛이 이끄는 곳으로>를 쓴 백희성 작가의 두 번째 장편입니다. 띠지에 폴 메이몽 프랑스 젊은건축가상 수상, 장 누벨 사무소 전 디렉터라는 이력이 적혀 있어요. 북로망스 서평단을 통해 받았고, 304쪽이라 부담 없이 며칠에 나눠 읽었습니다. 아래 글에는 중반부 전개가 어느 정도 들어갑니다. 범인의 정체와 결말은 적지 않았지만 아무것도 모르고 읽고 싶은 분은 여기서 접어두셔도 좋겠습니다.


주인공 카미는 스물둘, 파리에서 의상을 공부하는 학생 입니다. 사람의 얼굴이 하나로 맺히지 않는 상태로 살아가고 있어요. 세 살 때 눈앞에서 부모를 잃었는데, 수사 기록에는 없는 사람이 그 자리에 한 명 더 있었습니다. 얼굴은 남지 않았고 그가 입고 있던 옷의 감촉만 손끝에 남았습니다. 미제로 묻혀 있던 살인 사건이 19년 만에 다시 수사 선상에 오르면서 이야기가 움직입니다.


중반의 직물 추적 대목에서 이 소설이 어떤 방식으로 굴러가는지 드러납니다. 카미가 결정적인 단서를 알아채는 순간이 하필 사다리에서 떨어지는 중이에요. 떨어지는 몸에 커튼이 스치고, 뺨에 닿은 감촉으로 찾았다고 외칩니다. 눈으로 뒤져서 얻은 결과가 아니라 몸이 먼저 반응한 겁니다. 그 커튼은 방수 처리가 개발되기 이전의 거친 원단이고, 부드러움도 냄새도 없어야 할 천인데 어딘가 앞뒤가 맞지 않는 구석이 남습니다. 잘라낸 조각을 손에 쥐고 있으면 마음이 가라앉는다는 서술이 뒤따르고요. 단서가 위안을 주는 물건으로도 쓰인다는 점이 이 작품의 성격을 잘 보여줍니다.


가구의 비밀 장은 조금 더 촘촘합니다. 아기 침대와 어머니의 의자가 원래부터 한 덩어리처럼 보이도록 제작되었다는 설정인데, 두 조각의 나뭇결을 이어 맞춰 이음매를 지웠다고 해요. 나무가 계절마다 줄고 부푸는 성질까지 계산해 두었다는 설명이 나옵니다. 나무의 미래를 예측하는 게 설계자의 숙명이라는 표현도 있고요. 이 가구를 다시 떼어내는 방식이 또 특이합니다. 힘으로 뜯으면 망가지고, 사람이 몸을 실어 안는 자세라야 반응하도록 만들어져 있습니다. 진실을 밝히려면 원형을 훼손해야 하고 원형을 지키려면 진실을 덮어야 하는 상황이 여기서 만들어지는데, 미스터리의 장치이면서 이 소설이 계속 붙들고 있는 질문이기도 합니다.


후반부는 화자가 다른 사람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옮기는 형식으로 진행됩니다. 여기 오래된 나무 벤치를 두고 하는 말이 있어요.


"할머니가 늘 앉아 계시던 그 자리만…… 오랜 세월의 마찰로 나뭇결이 닳고 닳아 유독 매끄럽게 패여 있었지."


제목이 왜 무늬인지 이 한 줄로 설명이 됩니다. 사람이 오래 머문 자리에는 표시가 남고, 그 표시는 닳아서 생긴다는 것. 앞서 나온 직물도 가구도 결국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무늬는 기억 자체라기보다 지금의 내가 그 기억을 이해하고 있는 모양에 가깝습니다. 사건은 그대로인데 뒤늦게 알게 된 사실 하나가 같은 장면의 결을 바꿔놓는 일이 이 소설 안에서 여러 번 일어납니다.


아픔을 다루는 방식도 마음에 남았습니다. 어떤 통증이 사라졌는데 그것을 회복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인물이 나와요. 그 아픔이 남아 있던 마지막 끈이라고 여겨서, 통증이 사라진 자리에서 소멸의 징조를 읽습니다. 잊히지 않아서 힘든 상태와 더는 아프지 않아서 두려운 상태 사이의 거리를 이렇게 그린 소설은 드물었습니다.


아쉬운 점도 적어둘게요. 후반 회고 구간은 들은 이야기를 전하는 문장이 계속 이어지면서 호흡이 늘어집니다. 장면 자체의 밀도는 높은데 한 겹 건너 듣는 느낌이 생겨서, 앞 장의 현장감과 비교하면 속도가 떨어져요. 카미의 감각이 필요한 순간마다 정확히 작동하는 것도 다소 편리해 보였습니다. 가구점 쪽 인물이 진술을 바꾸는 대목 역시 저항이 크지 않아서, 추리의 재미를 기대한 독자라면 싱겁게 느낄 수 있습니다. 이 소설은 범인을 좁혀가는 쾌감보다 사람을 이해하는 과정에 무게를 둔 이야기라고 보는 편이 맞습니다.


뒤표지에는 상처도 하나의 아름다운 무늬가 될 수 있을까, 라는 문장이 붙어 있습니다. 저는 이 물음에 선뜻 그렇다고 답하지는 못하겠어요. 다만 닳은 자리를 흠으로 부르지 않고 결이라고 부를 수 있다는 감각은, 19년이든 그보다 짧은 시간이든 무언가를 오래 안고 살아온 사람에게 어느 정도 힘이 됩니다. 사물의 결을 짚는 이야기가 결국 사람 쪽으로 돌아오는 소설입니다.


8월 중순, 낮은 여전히 덥고 저녁이 되어야 겨우 바람이 도는 시기입니다. 두께가 부담스럽지 않고 문장도 어렵지 않아서 여름 끝자락에 붙잡기 좋은 책입니다. 조용한 이야기를 천천히 읽고 싶은 시기에 어울립니다.


얼굴을 알아보지 못하는 사람이 직물과 나뭇결을 짚어 19년 전의 진실에 닿는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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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성공하는 AI 비서, 오픈클로 - 윈도우·맥미니·라즈베리 파이까지, 30분 만에 구축하는 오픈클로 실전 활용서
박권 외 지음 / 책밥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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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표지 한가운데 말풍선이 하나 떠 있습니다. 거기 적힌 짧은 문장의 목소리가 기술서답지 않게 낮습니다. 가르치겠다는 자세는 옅고, 옆자리에서 말을 건네는 쪽에 가까웠어요. 책밥에서 나온 <누구나 성공하는 AI 비서, 오픈클로>를 북유럽 카페를 통해 받았습니다. 판형도 분량도 무겁지 않아 며칠에 걸쳐 편하게 넘겼습니다.


책은 시작부터 시대를 셋으로 갈라놓습니다. 검색의 시대, 생성의 시대, 그리고 실행의 시대입니다. 저자가 짚는 지점이 여기서 분명해집니다. 생성형 AI는 초안까지 만들어주지만, 그 초안을 붙들고 마무리하는 몫은 여전히 사람에게 남는다는 것입니다. 답을 받아 드는 경험과 일이 끝나는 경험 사이의 거리가 얼마나 먼지는, 여러 서비스를 써보신 분이라면 짐작하실 겁니다. 오픈클로는 그 간격을 좁혀보겠다고 나선 물건입니다.


기술적 정체성도 셋으로 정리됩니다. 데이터가 사용자 컴퓨터에 머무는 로컬 우선, 특정 모델에 묶이지 않는 모델 중립, 그리고 오픈소스입니다. 저자는 이 셋을 묶어 '주권'이라고 부릅니다. 비용과 보안과 운영의 주권이죠. 회사 시스템에 얹혀 일해온 시간이 길수록 이 단어가 다르게 읽힙니다. 무엇을 쓸지 고르는 자유를 넘어, 쓰는 물건이 제 손 안에 있다는 감각을 말하고 있으니까요.


2장은 30분 안에 첫 성공을 만들어보게 합니다. 설치하고 키를 발급받고 텔레그램으로 말을 걸어보는 순서인데, 이 대목에서 제목의 '누구나'가 어떤 뜻인지 알겠더군요. 한 번이라도 제대로 작동시켜 본 사람에게는 기준점이 생깁니다. 나중에 막히더라도 어디까지는 됐었다는 지점이 있으면 덜 무섭습니다. 초보자를 대하는 태도가 여기서 드러납니다.


중반부의 캘린더 자동화 장은 제목부터 눈에 들어옵니다. 연결보다 운영이 더 중요하다는 문장이 붙어 있어요. 구글 클라우드 콘솔에서 프로젝트를 만들고 API를 켜고 인증 파일을 제자리에 놓는 과정을 차근차근 따라가는데, 프로젝트를 '큰 폴더'에 빗대고 API 활성화를 길을 열어주는 일로 풀어낸 설명이 친절합니다. 그러면서도 연결만 해두면 끝날 것 같은 기대를 조용히 눌러줍니다. 등록은 출발선일 뿐이고, 권한을 어디까지 열어줄지 정하는 일이 진짜 숙제라는 인식이 깔려 있습니다.


책의 끝자락에 놓인 보안 장은 겁부터 주지 않고 절차를 건넵니다. 사고 사례가 하나같이 구체적이에요. API 키를 메모장에 적어두고 잊어버리는 경우, 테스트용을 따로 두지 않고 실제 업무 폴더에서 바로 돌려보는 경우 같은 것들입니다. "반복된 성공으로 경계심이 낮아지면"이라는 대목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익숙해진 뒤에 찾아오는 방심을 이렇게 담담하게 적어둘 수 있는 건 겪어본 사람의 문장입니다.


실수의 원인을 정리한 표에서, 업무 계정을 그냥 써버리는 이유를 "실제 환경에서 결과를 빨리 보고 싶어 함"이라고 적어둔 걸 봤습니다. 탓을 실력에 돌리지 않았습니다. 조급함을 원인으로 지목했어요. 그래서 "초보 단계에서는 이 번거로운 절차가 가장 강력한 방패가 됩니다"라는 문장이 설득력을 얻습니다. 파일을 고치기 전에 승인을 묻는 창이 성가시게 느껴질 때, 그 성가심이 저를 지키고 있다는 이야기죠. 계정을 나눠 쓰는 습관을 최고의 보안으로 꼽는 대목도 결이 같습니다. 설정을 바꾼 뒤에는 현관문이 제대로 잠겼는지 확인하라는 비유가 오래 남았습니다.


정직한 대목도 있습니다. 데이터는 기본적으로 사용자 컴퓨터에 저장되지만 질문 내용 자체는 AI 모델 서버로 전송된다고 분명히 밝혀둡니다. 로컬 우선을 앞세운 원고가 그 한계를 스스로 꺼내놓는 자리입니다. 성능이 떨어질 때도 "시스템의 고장이 아니라 AI 모델의 성능 한계와 고유한 특성으로 인해 발생하는 현상입니다"라고 먼저 말해줍니다. 잘 풀리지 않을 때 자기 탓부터 하는 사람에게는 이 한 줄이 꽤 큽니다.


비용 이야기도 뭉뚱그리지 않습니다. 토큰이 어떻게 쌓이는지 구조를 보여준 다음, 모델을 난이도별로 바꿔 쓰면 월 5~15달러 선에서 운영할 수 있다고 착지점을 제시합니다. 무거운 작업은 트래픽이 적은 밤 시간대에 돌리라는 조언에서는 살림하는 감각이 느껴졌어요. 대화가 길어지면 AI가 같은 대답을 되풀이하거나 잘하던 일을 갑자기 모르겠다고 하는데, 이 증상을 화이트보드가 꽉 찬 상태에 빗댄 설명이 선명합니다. 적어둔 것을 잃어버린 상태라는 표현은 눈에 보이듯 다가옵니다.


아쉬움도 적어둡니다. 실행 화면 캡처에는 2026년 4월과 5월 버전 표기가 남아 있고, 가격표와 성능 비교표도 2026년 4월 기준입니다. 마감 직전까지 원고를 손봤다는 증거이긴 합니다. 그런데 이 분야가 달마다 얼굴을 바꾸는 걸 생각하면, 버튼 위치와 단가는 독자가 책을 펼치는 시점에 이미 달라져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갱신 자료를 확인할 온라인 통로가 함께 안내됐다면 더 마음 놓고 권했을 것 같아요. 물론 이 한 권의 알맹이는 화면 좌표에 있지 않습니다. 판단의 기준을 세워주는 안내서라, 숫자가 바뀌어도 태도는 남습니다.


읽고 나서 남은 문장은 방패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자동화를 다루는 책들이 대개 얼마나 빨라지는지를 말할 때, 이 도서는 어디서 멈춰야 하는지를 함께 짚습니다. 권한을 좁히고 계정을 나누고 이상하면 일단 멈추라는 순서를 알려줍니다. 울타리를 세워둔 다음에야 마음 놓고 맡길 수 있다는 뜻이겠죠. 북유럽 카페를 통해 만난 책 가운데, 다 읽고 나서도 책상 가까이 두게 되는 쪽입니다. 새 기술 앞에서 자꾸 뒷걸음질 치게 되는 분들께, 안전하게 겁내는 방법을 알려주는 한 권으로 권하고 싶습니다.


입추가 지났는데도 한낮 열기는 그대로입니다. 그래도 해가 조금씩 이르게 기울고 저녁 공기에 서늘한 결이 섞이기 시작했어요. 여름 내내 미뤄둔 일을 하나쯤 꺼내보기 좋은 때입니다.


실패했을 때 어디서 멈춰야 하는지부터 손에 쥐여주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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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동 눌림목 매매법 - 손절에서 익절로, ‘반전의 터닝포인트!’
파동마스터 지음 / 스마트비즈니스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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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붉은 바탕 위로 남색 물결이 몇 겹 흐르고, 흰 글씨의 제목이 그 물결 사이를 뚫고 올라와 있는 표지입니다. 재테크 서적치고는 꽤 큰 목소리로 말을 거는 편이에요. 아래쪽 띠지에 적힌 한 줄, 모두가 끝을 외칠 때 파동은 상승을 가리킨다는 문장이 표지 전체의 인상을 정리해 줍니다. 판형은 부담 없는 크기이고 분량도 과하지 않아서, 차트를 다룬 도서 특유의 압박감 없이 앉은자리에서 진도가 제법 나갔습니다.


<파동 눌림목 매매법>이 내세우는 원칙은 하나입니다. 파동으로 추세를 확인하고, 눌림목에서 손익비로만 들어간다. 여덟 개 파트가 전부 이 한 문장을 풀어 쓰는 데 쓰입니다.


그런데 책장을 넘기다 걸음이 느려진 곳은 기법 설명 쪽이 아니었어요. 2부 끝자락에 놓인 「기준은 만들었지만, 여전히 불안했다」라는 꼭지였습니다. 저자는 나름의 규칙을 세운 뒤의 변화를 담담하게 적습니다. 손절이 빨라졌고, 비중이 줄었고, 계좌도 서서히 안정되기 시작했다고요. 객관적으로 진전이 있었다는 겁니다. 그럼에도 마음은 편해지지 않았다고 해요. 매매하고 나면 이게 맞나 싶고, 손절하고 나면 너무 빨리 자른 건 아닌가 싶고, 수익을 실현하고 나면 더 끌고 갈 걸 그랬나 싶었다는 대목에서 고개가 끄덕여졌습니다.


그 상태를 저자는 한 문장으로 정리합니다. "기준은 있지만 맥락이 없는 것이죠."


설명을 위해 가져온 그림도 오래 남습니다. 지도 없이 나침반만 들고 산을 오르는 사람. 방향은 아는데 얼마나 더 가야 하는지, 지금 어디쯤 와 있는지는 모르는 상태 말입니다. 규칙을 만들어 놓고도 왜 계속 흔들리는지를 이렇게 짚어 주는 투자서는 흔치 않다고 생각합니다. 방법을 익혔는데도 마음이 따라오지 않는 시기는 오래 일해 온 사람이라면 어느 영역에서든 한 번쯤 지나오게 되니까요.


6부로 넘어가면 이야기가 숫자 쪽으로 옮겨 갑니다. 승률 70%인 사람이 돈을 잃고 승률 40%인 사람이 돈을 버는 사례를 나란히 세우는데, 계산은 어렵지 않아요. 이길 때 조금 벌고 질 때 크게 잃으면 자주 맞혀도 계좌는 줄어든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파트의 중심은 승률과 손익비를 갈라놓는 설명에 있습니다. 시장이 어떻게 움직일지는 알 수 없지만, 틀렸을 때 어디서 나올지와 맞았을 때 어디서 팔지는 매매 전에 스스로 정할 수 있다는 것. 통제할 수 있는 영역에만 힘을 쓰겠다는 태도인데, 차트 밖에서도 꽤 오래 써먹을 만한 사고방식으로 보였습니다. 목적지만 정해 놓고 연료 계기판은 확인하지 않은 채 출발한다는 비유가 이 근처에 나오는데, 매수 버튼만 고민하고 나머지는 시장에 맡겨 온 사람이라면 뜨끔할 대목이겠지요.


다만 읽는 내내 하나가 걸렸습니다. 손절가와 목표가를 제가 정하니 손익비는 통제 가능하다는 논리인데, 뒤집어 보면 목표가를 넉넉히 잡을수록 손익비는 얼마든지 좋아 보이게 만들 수 있습니다. 애초에 저자를 괴롭혔던 질문도 목표가의 애매함이었고요. 파동으로 위치를 가늠하는 것만으로 그 애매함이 얼마나 해소되는지는, 이 도서를 덮고 나서도 완전히 정리되지는 않았습니다. 물론 저자 스스로 파동 이론이 완벽하지 않다고 여러 번 밝히고 있고, 시장은 교과서대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말도 빼놓지 않습니다. 그 솔직함 덕분에 걸림돌이 반감으로까지는 가지 않았어요.


8부에 이르면 책의 결이 조금 달라집니다. 수익 인증 화면을 올리는 사람들 이야기로 시작해서, 그들도 대개 잘된 결과만 보여줄 뿐이며 그 뒤에 숨겨진 손실의 시간은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고 적어요. 연속 손절은 기법의 문제가 아니라 확률의 문제이니 반드시 찾아온다고 미리 일러 두고, 그때 사람들이 보이는 반응을 복수 매매와 기법 의심과 매매 중단으로 나눕니다. 올바른 대응은 잠시 멈추고 복기하는 것이라면서 이렇게 씁니다. "쉬는 것은 약함의 표시가 아닙니다." 부상당한 몸으로 경기를 뛰면 부상만 깊어진다는 설명이 뒤따르고요.


책의 마지막 조언이 매매 밖에 있다는 점도 기억해 둘 만합니다. 하루의 매매 결과만으로 자신의 가치를 판단하지 말라는 것, 주식이 인생의 전부가 되면 손실이 곧 인생의 실패처럼 느껴진다는 것. 운동하고 가족과 시간을 보내고 취미를 유지하라는 권유가 투자서의 결론부에 놓여 있습니다. 기법서를 표방하면서 끝에서는 삶의 균형을 이야기하는 구성이, 저에게는 이 책의 가장 신뢰가 가는 부분이었습니다.


그동안 여러 권을 읽어 왔지만, 숫자와 도표가 앞에 놓인 도서에서 이만큼 사람의 마음 쪽을 들여다본 경우는 드물었어요. 차트를 볼 줄은 아는데 막상 주문 창 앞에서 매번 흔들려 온 분이라면 얻어 갈 것이 분명 있습니다. 반대로 종목 추천이나 빠른 수익을 기대하고 펼치면 실망할 가능성이 큽니다. 이 책이 반복해서 말하는 건 들어가지 말아야 할 자리를 먼저 알아보라는 쪽이니까요.


8월 중순, 더위가 한창인데도 아침저녁으로는 공기가 조금씩 자리를 바꿉니다. 시장도 그렇게 밀려왔다 빠지기를 반복하는 것이겠지요. 계절이 바뀌는 걸 억지로 앞당길 수 없듯, 자리가 올 때까지 기다리는 법을 배우는 데도 시간이 필요할 겁니다. 조급해하지 말라는 저자의 당부가 이 계절과 어울린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한 줄 요약: 빨리 버는 기술이 아니라 오래 살아남는 구조를 알려 주는, 흔들리는 초보 투자자를 위한 기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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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읽고 말하다
아사쿠라 가스미 지음, 전화윤 옮김 / 현암사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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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홋카이도 오타루의 낡은 카페 시트론. 매달 넷째 주 금요일 오후 한 시가 되면 같은 여섯 사람이 같은 자리에 앉습니다. 최고령이 아흔둘, 막내가 일흔여덟, 평균 나이 여든다섯. 스무 해를 이어온 독서모임입니다. <읽고 읽고 말하다>는 이 카페를 맡게 된 젊은 점장 야스다가 얼떨결에 그 자리에 끼면서 굴러가기 시작합니다.


표지 이야기부터 해야겠습니다. 초록빛 책 한 권이 화면을 거의 채우고, 펼쳐진 페이지 위로 손톱만 한 사람들이 기어오릅니다. 옆에는 창문과 커피잔, 레몬 한 알. 여백이 넉넉해서 오래된 카페의 구석 자리를 그대로 옮겨놓은 인상인데, 마지막 장을 덮을 즈음이면 저 레몬이 왜 거기 놓여 있는지까지 알게 됩니다.


모임의 방식이 독특합니다. 이 사람들은 자기들이 하는 일을 낭독이라 부르지 않고 그냥 읽기라고 합니다. 한 사람이 두 쪽 남짓, 가입한 순서대로 돌아가며 소리 내어 읽고, 미치루 노트라 불리는 회의록에는 규칙까지 적혀 있어요.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돌아가되 읽기에 대한 감상은 반드시 말하고, 내용에 대한 감상은 선택. 남의 목소리를 먼저 인정한 다음에야 자기 이야기를 꺼내라는 뜻입니다. 학창 시절의 읽기란 틀리지 않는 일이었다고 회상하는 야스다의 문장에서, 같은 행위가 얼마나 다르게 쓰일 수 있는지 짐작하게 됩니다.


2장 끝머리에 이런 문장이 놓입니다. "우리는 지금, 이 이야기를 저마다 경험하고 있다." 같은 페이지를 나란히 통과하는데도 각자 건져 올리는 것이 다르다는 말이고, 이 소설이 굳이 이런 형식을 택한 이유를 한 줄로 설명해주는 대목입니다.


정작 대화는 계속 옆길로 샙니다. 작가의 사망 나이를 이야기하다가 그 숫자가 회장님과 같다는 걸 누군가 짚어버려 공기가 굳고, 곧바로 농담이 튀어나와 그 공기를 풀어놓습니다. 정확한 정보를 주고받으려고 모인 자리가 아니라는 게 금세 드러나요. 냉소적이던 야스다가 자신을 두고 녹이 슬었다고 말하고, 그 냉소가 줄어드는 과정을 매실 씨에 비유하는 장면도 요란하지 않게 처리됩니다. 나비넥타이 씨가 연하장 뒷면에 귤즙을 발라본 어린 시절 기억을 꺼내 책 속 장면을 제 몸으로 이해해내는 대목 역시 이 소설의 방식을 잘 보여줍니다.


중반으로 갈수록 죽음이 대화 안으로 들어옵니다. 흰 그림자라는 표현이 나오고, 옛 일본에서는 흰색을 색으로 치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거쳐, 저승 마중을 나오는 존재를 만날 수 있는 상태에 관한 이야기로 이어집니다. 실바니아 씨는 자기가 죽는 날짜를 정확히 알고 싶다고 말해요. 그래야 우선순위를 정할 수 있다면서, 겁에 질린 기색 없이 일정을 짜는 사람처럼 말합니다. 서로에게 좋아요 버튼을 눌러준다는 표현이 등장하는 것도 이 언저리인데, 노년의 관계를 이만큼 가볍고 다정하게 적을 수 있다는 게 반가웠습니다.


회원의 집에서 열리는 틈새 모임도 기억할 만합니다. 커피를 마시지 않는다는 집에 금테 두른 제비꽃 무늬 커피잔이 놓여 있고, 어딘가에는 젊은 남자의 사진이 걸려 있어요. 말해지지 않은 사연이 물건의 자리로만 남아 있는 방식이 좋았습니다. 현관 앞에 사철 세워둔 눈 치우는 도구 하나로 그 지역의 시간 감각을 전하는 대목도 마찬가지고요.


그리고 마지막 장, 스무 돌 공개독서회 날입니다. 접이식 의자 쉰여섯 개를 놓고, 표지와 똑같은 레몬 도안의 전단을 만들고, 행사 시작 전부터 뒤풀이 노래방 십팔번을 정하느라 분주합니다. 헛기침과 허밍이 오케스트라 튜닝 소리 같다는 비유가 붙어요. 무대 한 자리에는 아크릴 스탠드가 서 있습니다. 지난달 세상을 떠난 회원, 전 회계담당 가토 다쓰코 씨. 여든둘이었습니다.


회장의 인사말이 이 소설의 정점입니다. 늙은 사람들의 모임이지만 동료를 보내는 일은 처음이라며, 대나무로 짠 둥근 것 안에 방울이 든 열쇠고리를 이야기합니다. 빈 땅에서 바람에 날려 딸랑딸랑 굴러가는 그 소리가 귀 안쪽에 잔향으로 남아 있다고요. 그러고는 "말씀드리자면 쓸쓸합니다."로 맺습니다. 독서모임 회원들은 한결같이 눈물을 잘 흘리는 사람들이지만 그럼에도 참아보려고 했다는 문장이 곧바로 뒤따릅니다. 우는 장면을 늘이는 대신 참는 쪽을 적어둔 절제가 이 책의 성격입니다. 죽음을 농담거리로 삼던 사람들이 실제로 한 사람을 배웅하는 자리에 이르기까지, 앞의 시시껄렁한 수다가 전부 다르게 읽히도록 설계돼 있어요.


아쉬운 대목도 있습니다. 매달 같은 형식으로 모이는 이야기라 중반부는 비슷한 리듬이 반복되고, 분량이 있는 만큼 그 구간에서 속도가 처집니다. 후반 행사 장면에 이노우에 씨라는 인물이 이름표와 함께 등장하는데, 앞에서 쌓아둔 것이 적다 보니 다른 회원들만큼 무게가 실리지 않아요. 신구 회계담당이 나란히 놓이는 자리인 만큼 조금 더 준비돼 있었다면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사쿠라 가스미는 1960년 홋카이도에서 태어난 작가로, 이 작품으로 나오키상을 받으며 최고령 여성 수상자가 되었습니다. 전화윤 님의 번역은 노인들의 말맛과 라쿠고식 말장난, 지역색까지 무리 없이 옮겨놓았어요. 실바니아 씨가 청중을 향해 "라쿠고거든요. 지금 잠깐 라쿠고 얘기로 삼천포에 빠져서"라고 해설하는 장면이 어색하지 않게 읽히는 데는 번역의 몫이 큽니다.


서평단 도서는 아무래도 마감을 의식하며 읽게 되는데, 이 한 권은 그 속도를 스스로 늦추게 만든 쪽이었어요. 두께와 무게가 상당해 한 번에 몰아 읽기도 쉽지 않고, 회원들이 두 쪽씩 나눠 읽듯 며칠에 걸쳐 조금씩 넘기는 편이 이 소설과 훨씬 잘 맞습니다.


입추가 지났는데도 한낮 열기가 좀처럼 물러가지 않는 요즘입니다. 매미 소리가 옅어지는 저녁 무렵, 몇 쪽씩 나눠 읽어나가기에 어울리는 도서예요. 한국도 초고령사회에 들어섰고, 동네에서 오래 이어지던 모임이 하나둘 문을 닫았다는 소식을 어렵지 않게 듣습니다. 그런 소식 사이에서 이 소설은 계속 읽을 것, 그리고 읽은 것을 말할 상대를 곁에 둘 것이라는 답을 조용히 내놓습니다. 노년을 준비하는 방법으로는 꽤 든든한 제안이라고 봅니다. 나이 드는 일이 조금 덜 무거워지는 이야기를 찾고 계시다면 시간을 넉넉히 잡고 이 초록 책을 펼쳐보셔도 좋겠습니다.


평균 나이 여든다섯의 독서모임이 스무 해 지켜온 오후 한 시, 소리 내어 읽고 듣고 말하는 일이 사람을 어떻게 붙들어주는지 보여주는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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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골 - 세상을 등지고 살아가는 사람들
권민창 지음 / 모티브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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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반골이라는 말에는 어쩐지 날이 서 있습니다. 어릴 적부터 그 소리를 들으면 좋은 뜻은 아니겠거니 짐작했으니까요. 그런데 표지를 보고 나면 인상이 조금 달라집니다. 검은 바탕에 흰 선으로 그려진 뼈대가 화면을 가득 채우고, BONES 01부터 08까지 챕터 이름이 회색으로 조용히 얹혀 있어요. 눈길이 오래 가는 건 그 뼈가 단단한 덩어리로 그려지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가느다란 선을 수없이 이어 붙인 그물 구조라서, 강함을 말하는 책인데 정작 그 강함을 성기고 투명하게 그려놨더군요. 해부도 같기도 하고 설계도 같기도 합니다.


지은이 권민창은 10년의 군 생활을 접고 출판사 대표가 된 사람입니다. 지금은 일본 시장에도 출판사를 세웠다고 하고요. <반골>은 그 과정에서 얻은 결론을 여덟 개의 뼈대로 나눠 담은 자기계발서입니다. 생존 DNA에서 시작해 실전형 사고방식, 고독을 견디는 기세, 실행력, 불완전한 시작, 선점, 회복력, 지속 시스템 순으로 이어지는데 순서가 제법 논리적입니다. 306쪽에 판형도 편안해서 며칠이면 다 읽힙니다. 다만 읽는 속도가 빠르다고 마음까지 편한 건 아니었어요.


초반부터 저자는 위로 산업을 정조준합니다. 서점 매대에 지금 그대로도 충분하다는 말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고, 소셜 미디어에서는 전문가를 자처하는 이들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위안을 판다는 거예요. 그러면서 위안은 문제 해결의 도구가 아니라 불안을 잠재우는 약일 뿐이라고 못을 박습니다. 저는 이 대목을 읽으면서 반쯤 동의했습니다. 위로 자체가 나쁠 리는 없습니다. 다만 같은 위로를 몇 년째 반복하면서 아무것도 바꾸지 않는 상태가 있다는 건 부정하기 어렵더군요.


책 부제인 세상을 등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의미도 중반쯤 풀립니다. 저자가 말하는 세상을 등진다는 표현은 은둔이나 시비 걸기와는 거리가 멉니다. 가고자 하는 방향 외의 소음을 차단하는 맹렬한 집중력이라는 겁니다. 이 정의를 읽고 나서야 제목이 다르게 보였습니다. 반항이라기보다 선택과 집중에 가까운 이야기였던 셈이지요.


가장 실감 나게 읽힌 쪽은 완벽주의를 다룬 대목이었습니다. 완벽하게 준비되면 하겠다는 말을 저자는 안 하겠다는 선언과 동의어로 봅니다. 갈증 난 두 사람이 물을 마실 때 누구는 컵 바닥이 보여야 만족하고 누구는 한 모금이면 충분하다는 비유가 나오는데, 완벽이라는 기준이 얼마나 주관적인지를 이만큼 간단히 보여주기도 어려울 것 같습니다. 차라리 겁쟁이라서 실패가 두렵고 솔직히 귀찮아서 하기 싫다고 인정하는 편이 덜 비겁하다는 문장에서는 저도 모르게 자세를 고쳐 앉았습니다.


야근 이야기도 빠지지 않습니다. 저자가 마케팅 직원이던 시절, 하루 서른 개가 넘는 카피를 손봐야 하는 상황에 몰렸을 때 던진 질문이 오늘 야근을 어떻게 피할까가 아니라 이걸 정규 시간 안에 어떻게 끝낼까였다고 해요. 그리고 이렇게 적습니다. "야근은 성실함의 훈장이 아니라 비효율과 무능을 증명하는 낙인일 뿐이다."


여기서는 솔직히 갸웃했습니다. 업무 효율이 낮아 야근하는 경우가 분명 있습니다. 하지만 조직에는 개인이 아무리 속도를 높여도 줄지 않는 총량이라는 게 있어요. 결재 라인이 길거나 인력이 모자라거나 위에서 방향을 자주 바꾸는 문제는 개인의 뇌 회로로 해결되지 않습니다. 저자가 그 시절 성과를 낸 건 사실이겠지만, 그 경험을 모든 직장인에게 그대로 대입하기엔 조건이 다릅니다. 번아웃이라는 단어를 입에 담는 순간 뇌가 실행 스위치를 꺼버린다는 주장도 마찬가지예요. 자기 상태를 습관적으로 부풀려 말하는 태도를 경계하자는 취지는 알겠는데, 실제로 치료가 필요한 사람에게는 그 말이 다르게 닿을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책의 뒤쪽으로 갈수록 사례가 구체적입니다. 자기 기준으로 40점밖에 못 주겠던 원고에 시장의 욕망을 찌르는 제목을 입혔더니 10만 부가 나갔다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 전에 심혈을 기울인 90점짜리 원고들은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았다는 고백이 앞에 놓여 있어서 설득력이 생깁니다. 완벽은 출발선에 있는 것이 아니라, 피를 흘리며 굴러가는 과정의 맨 끝에 존재한다는 문장이 이 챕터의 결론입니다. 물론 책을 사는 사람 입장에서는 완성도 낮은 원고에 날카로운 제목을 입혀 팔았다는 이야기로도 읽힙니다. 저자도 내용의 훌륭함은 기본값이라고 전제하긴 하는데, 그 기본값을 어떻게 지키는지에 대한 설명은 조금 얇은 편이었어요.


읽고 나서 실제로 챙긴 건 의외로 작은 것이었습니다. 일이 틀어졌을 때 뱉는 말을 "아쉽네" 한마디로 줄인다는 대목이요. 다 망했다거나 최악이라는 말은 감정을 수습하는 데만 시간을 쓰게 만들고, 가벼운 단어는 실패를 인정하면서도 다음 수를 생각하게 만든다는 겁니다. 거창한 결심보다 이런 쪽이 오래갑니다.


책은 8개의 뼈대마다 뇌과학 연구를 하나씩 끌어옵니다. 도파민 보상 회로, 거울 신경세포, 자이가르닉 효과, 정서 명명, 미엘린까지 이어지는데 논지에 힘을 싣는 장치이긴 하나 연구 결과와 저자의 해석 사이 간격이 넓어 보일 때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책을 과학적 근거가 탄탄한 안내서로 읽기보다, 십 년 넘게 일한 사람이 자기 방식으로 정리한 실전 기록으로 읽었습니다. 그렇게 보면 문장의 세기도 납득이 됩니다.


서평단으로 여러 도서를 만나다 보면 마음을 쓰다듬는 책이 아무래도 많은데, 이렇게 반대쪽에서 어깨를 툭 치는 한 권을 만나는 것도 필요하다는 걸 새삼 인정하게 됐습니다. 위로가 부족해서 힘든 게 아니라 움직일 명분이 없어서 미루고 있었던 일이 누구에게나 하나쯤 있으니까요. 뭔가를 시작해야 한다는 생각만 몇 년째 반복하고 있는 분이라면 이 책의 거친 어조가 오히려 도움이 될 겁니다. 반대로 지금 마음이 많이 지쳐 있다면 조금 나중에 펼치시길 권합니다. 이 도서는 다정한 편이 아니거든요.


말복이 지났는데도 한낮 열기는 좀처럼 물러나지 않네요. 처서를 앞둔 이맘때는 어쩐지 한 해의 남은 절반을 계산하게 됩니다. 여름 내내 미뤄둔 일을 가을로 또 넘길지 말지 정해야 하는 시기이기도 하고요. 그런 계절에 이 책을 읽어서 다행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위로 대신 실행을 처방하는 책. 문장은 거칠지만 미루는 습관에는 확실히 잘 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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