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골 - 세상을 등지고 살아가는 사람들
권민창 지음 / 모티브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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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반골이라는 말에는 어쩐지 날이 서 있습니다. 어릴 적부터 그 소리를 들으면 좋은 뜻은 아니겠거니 짐작했으니까요. 그런데 표지를 보고 나면 인상이 조금 달라집니다. 검은 바탕에 흰 선으로 그려진 뼈대가 화면을 가득 채우고, BONES 01부터 08까지 챕터 이름이 회색으로 조용히 얹혀 있어요. 눈길이 오래 가는 건 그 뼈가 단단한 덩어리로 그려지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가느다란 선을 수없이 이어 붙인 그물 구조라서, 강함을 말하는 책인데 정작 그 강함을 성기고 투명하게 그려놨더군요. 해부도 같기도 하고 설계도 같기도 합니다.


지은이 권민창은 10년의 군 생활을 접고 출판사 대표가 된 사람입니다. 지금은 일본 시장에도 출판사를 세웠다고 하고요. <반골>은 그 과정에서 얻은 결론을 여덟 개의 뼈대로 나눠 담은 자기계발서입니다. 생존 DNA에서 시작해 실전형 사고방식, 고독을 견디는 기세, 실행력, 불완전한 시작, 선점, 회복력, 지속 시스템 순으로 이어지는데 순서가 제법 논리적입니다. 306쪽에 판형도 편안해서 며칠이면 다 읽힙니다. 다만 읽는 속도가 빠르다고 마음까지 편한 건 아니었어요.


초반부터 저자는 위로 산업을 정조준합니다. 서점 매대에 지금 그대로도 충분하다는 말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고, 소셜 미디어에서는 전문가를 자처하는 이들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위안을 판다는 거예요. 그러면서 위안은 문제 해결의 도구가 아니라 불안을 잠재우는 약일 뿐이라고 못을 박습니다. 저는 이 대목을 읽으면서 반쯤 동의했습니다. 위로 자체가 나쁠 리는 없습니다. 다만 같은 위로를 몇 년째 반복하면서 아무것도 바꾸지 않는 상태가 있다는 건 부정하기 어렵더군요.


책 부제인 세상을 등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의미도 중반쯤 풀립니다. 저자가 말하는 세상을 등진다는 표현은 은둔이나 시비 걸기와는 거리가 멉니다. 가고자 하는 방향 외의 소음을 차단하는 맹렬한 집중력이라는 겁니다. 이 정의를 읽고 나서야 제목이 다르게 보였습니다. 반항이라기보다 선택과 집중에 가까운 이야기였던 셈이지요.


가장 실감 나게 읽힌 쪽은 완벽주의를 다룬 대목이었습니다. 완벽하게 준비되면 하겠다는 말을 저자는 안 하겠다는 선언과 동의어로 봅니다. 갈증 난 두 사람이 물을 마실 때 누구는 컵 바닥이 보여야 만족하고 누구는 한 모금이면 충분하다는 비유가 나오는데, 완벽이라는 기준이 얼마나 주관적인지를 이만큼 간단히 보여주기도 어려울 것 같습니다. 차라리 겁쟁이라서 실패가 두렵고 솔직히 귀찮아서 하기 싫다고 인정하는 편이 덜 비겁하다는 문장에서는 저도 모르게 자세를 고쳐 앉았습니다.


야근 이야기도 빠지지 않습니다. 저자가 마케팅 직원이던 시절, 하루 서른 개가 넘는 카피를 손봐야 하는 상황에 몰렸을 때 던진 질문이 오늘 야근을 어떻게 피할까가 아니라 이걸 정규 시간 안에 어떻게 끝낼까였다고 해요. 그리고 이렇게 적습니다. "야근은 성실함의 훈장이 아니라 비효율과 무능을 증명하는 낙인일 뿐이다."


여기서는 솔직히 갸웃했습니다. 업무 효율이 낮아 야근하는 경우가 분명 있습니다. 하지만 조직에는 개인이 아무리 속도를 높여도 줄지 않는 총량이라는 게 있어요. 결재 라인이 길거나 인력이 모자라거나 위에서 방향을 자주 바꾸는 문제는 개인의 뇌 회로로 해결되지 않습니다. 저자가 그 시절 성과를 낸 건 사실이겠지만, 그 경험을 모든 직장인에게 그대로 대입하기엔 조건이 다릅니다. 번아웃이라는 단어를 입에 담는 순간 뇌가 실행 스위치를 꺼버린다는 주장도 마찬가지예요. 자기 상태를 습관적으로 부풀려 말하는 태도를 경계하자는 취지는 알겠는데, 실제로 치료가 필요한 사람에게는 그 말이 다르게 닿을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책의 뒤쪽으로 갈수록 사례가 구체적입니다. 자기 기준으로 40점밖에 못 주겠던 원고에 시장의 욕망을 찌르는 제목을 입혔더니 10만 부가 나갔다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 전에 심혈을 기울인 90점짜리 원고들은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았다는 고백이 앞에 놓여 있어서 설득력이 생깁니다. 완벽은 출발선에 있는 것이 아니라, 피를 흘리며 굴러가는 과정의 맨 끝에 존재한다는 문장이 이 챕터의 결론입니다. 물론 책을 사는 사람 입장에서는 완성도 낮은 원고에 날카로운 제목을 입혀 팔았다는 이야기로도 읽힙니다. 저자도 내용의 훌륭함은 기본값이라고 전제하긴 하는데, 그 기본값을 어떻게 지키는지에 대한 설명은 조금 얇은 편이었어요.


읽고 나서 실제로 챙긴 건 의외로 작은 것이었습니다. 일이 틀어졌을 때 뱉는 말을 "아쉽네" 한마디로 줄인다는 대목이요. 다 망했다거나 최악이라는 말은 감정을 수습하는 데만 시간을 쓰게 만들고, 가벼운 단어는 실패를 인정하면서도 다음 수를 생각하게 만든다는 겁니다. 거창한 결심보다 이런 쪽이 오래갑니다.


책은 8개의 뼈대마다 뇌과학 연구를 하나씩 끌어옵니다. 도파민 보상 회로, 거울 신경세포, 자이가르닉 효과, 정서 명명, 미엘린까지 이어지는데 논지에 힘을 싣는 장치이긴 하나 연구 결과와 저자의 해석 사이 간격이 넓어 보일 때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책을 과학적 근거가 탄탄한 안내서로 읽기보다, 십 년 넘게 일한 사람이 자기 방식으로 정리한 실전 기록으로 읽었습니다. 그렇게 보면 문장의 세기도 납득이 됩니다.


서평단으로 여러 도서를 만나다 보면 마음을 쓰다듬는 책이 아무래도 많은데, 이렇게 반대쪽에서 어깨를 툭 치는 한 권을 만나는 것도 필요하다는 걸 새삼 인정하게 됐습니다. 위로가 부족해서 힘든 게 아니라 움직일 명분이 없어서 미루고 있었던 일이 누구에게나 하나쯤 있으니까요. 뭔가를 시작해야 한다는 생각만 몇 년째 반복하고 있는 분이라면 이 책의 거친 어조가 오히려 도움이 될 겁니다. 반대로 지금 마음이 많이 지쳐 있다면 조금 나중에 펼치시길 권합니다. 이 도서는 다정한 편이 아니거든요.


말복이 지났는데도 한낮 열기는 좀처럼 물러나지 않네요. 처서를 앞둔 이맘때는 어쩐지 한 해의 남은 절반을 계산하게 됩니다. 여름 내내 미뤄둔 일을 가을로 또 넘길지 말지 정해야 하는 시기이기도 하고요. 그런 계절에 이 책을 읽어서 다행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위로 대신 실행을 처방하는 책. 문장은 거칠지만 미루는 습관에는 확실히 잘 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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