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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읽고 말하다
아사쿠라 가스미 지음, 전화윤 옮김 / 현암사 / 2026년 7월
평점 :
"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홋카이도 오타루의 낡은 카페 시트론. 매달 넷째 주 금요일 오후 한 시가 되면 같은 여섯 사람이 같은 자리에 앉습니다. 최고령이 아흔둘, 막내가 일흔여덟, 평균 나이 여든다섯. 스무 해를 이어온 독서모임입니다. <읽고 읽고 말하다>는 이 카페를 맡게 된 젊은 점장 야스다가 얼떨결에 그 자리에 끼면서 굴러가기 시작합니다.
표지 이야기부터 해야겠습니다. 초록빛 책 한 권이 화면을 거의 채우고, 펼쳐진 페이지 위로 손톱만 한 사람들이 기어오릅니다. 옆에는 창문과 커피잔, 레몬 한 알. 여백이 넉넉해서 오래된 카페의 구석 자리를 그대로 옮겨놓은 인상인데, 마지막 장을 덮을 즈음이면 저 레몬이 왜 거기 놓여 있는지까지 알게 됩니다.
모임의 방식이 독특합니다. 이 사람들은 자기들이 하는 일을 낭독이라 부르지 않고 그냥 읽기라고 합니다. 한 사람이 두 쪽 남짓, 가입한 순서대로 돌아가며 소리 내어 읽고, 미치루 노트라 불리는 회의록에는 규칙까지 적혀 있어요.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돌아가되 읽기에 대한 감상은 반드시 말하고, 내용에 대한 감상은 선택. 남의 목소리를 먼저 인정한 다음에야 자기 이야기를 꺼내라는 뜻입니다. 학창 시절의 읽기란 틀리지 않는 일이었다고 회상하는 야스다의 문장에서, 같은 행위가 얼마나 다르게 쓰일 수 있는지 짐작하게 됩니다.

2장 끝머리에 이런 문장이 놓입니다. "우리는 지금, 이 이야기를 저마다 경험하고 있다." 같은 페이지를 나란히 통과하는데도 각자 건져 올리는 것이 다르다는 말이고, 이 소설이 굳이 이런 형식을 택한 이유를 한 줄로 설명해주는 대목입니다.
정작 대화는 계속 옆길로 샙니다. 작가의 사망 나이를 이야기하다가 그 숫자가 회장님과 같다는 걸 누군가 짚어버려 공기가 굳고, 곧바로 농담이 튀어나와 그 공기를 풀어놓습니다. 정확한 정보를 주고받으려고 모인 자리가 아니라는 게 금세 드러나요. 냉소적이던 야스다가 자신을 두고 녹이 슬었다고 말하고, 그 냉소가 줄어드는 과정을 매실 씨에 비유하는 장면도 요란하지 않게 처리됩니다. 나비넥타이 씨가 연하장 뒷면에 귤즙을 발라본 어린 시절 기억을 꺼내 책 속 장면을 제 몸으로 이해해내는 대목 역시 이 소설의 방식을 잘 보여줍니다.

중반으로 갈수록 죽음이 대화 안으로 들어옵니다. 흰 그림자라는 표현이 나오고, 옛 일본에서는 흰색을 색으로 치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거쳐, 저승 마중을 나오는 존재를 만날 수 있는 상태에 관한 이야기로 이어집니다. 실바니아 씨는 자기가 죽는 날짜를 정확히 알고 싶다고 말해요. 그래야 우선순위를 정할 수 있다면서, 겁에 질린 기색 없이 일정을 짜는 사람처럼 말합니다. 서로에게 좋아요 버튼을 눌러준다는 표현이 등장하는 것도 이 언저리인데, 노년의 관계를 이만큼 가볍고 다정하게 적을 수 있다는 게 반가웠습니다.
회원의 집에서 열리는 틈새 모임도 기억할 만합니다. 커피를 마시지 않는다는 집에 금테 두른 제비꽃 무늬 커피잔이 놓여 있고, 어딘가에는 젊은 남자의 사진이 걸려 있어요. 말해지지 않은 사연이 물건의 자리로만 남아 있는 방식이 좋았습니다. 현관 앞에 사철 세워둔 눈 치우는 도구 하나로 그 지역의 시간 감각을 전하는 대목도 마찬가지고요.
그리고 마지막 장, 스무 돌 공개독서회 날입니다. 접이식 의자 쉰여섯 개를 놓고, 표지와 똑같은 레몬 도안의 전단을 만들고, 행사 시작 전부터 뒤풀이 노래방 십팔번을 정하느라 분주합니다. 헛기침과 허밍이 오케스트라 튜닝 소리 같다는 비유가 붙어요. 무대 한 자리에는 아크릴 스탠드가 서 있습니다. 지난달 세상을 떠난 회원, 전 회계담당 가토 다쓰코 씨. 여든둘이었습니다.

회장의 인사말이 이 소설의 정점입니다. 늙은 사람들의 모임이지만 동료를 보내는 일은 처음이라며, 대나무로 짠 둥근 것 안에 방울이 든 열쇠고리를 이야기합니다. 빈 땅에서 바람에 날려 딸랑딸랑 굴러가는 그 소리가 귀 안쪽에 잔향으로 남아 있다고요. 그러고는 "말씀드리자면 쓸쓸합니다."로 맺습니다. 독서모임 회원들은 한결같이 눈물을 잘 흘리는 사람들이지만 그럼에도 참아보려고 했다는 문장이 곧바로 뒤따릅니다. 우는 장면을 늘이는 대신 참는 쪽을 적어둔 절제가 이 책의 성격입니다. 죽음을 농담거리로 삼던 사람들이 실제로 한 사람을 배웅하는 자리에 이르기까지, 앞의 시시껄렁한 수다가 전부 다르게 읽히도록 설계돼 있어요.
아쉬운 대목도 있습니다. 매달 같은 형식으로 모이는 이야기라 중반부는 비슷한 리듬이 반복되고, 분량이 있는 만큼 그 구간에서 속도가 처집니다. 후반 행사 장면에 이노우에 씨라는 인물이 이름표와 함께 등장하는데, 앞에서 쌓아둔 것이 적다 보니 다른 회원들만큼 무게가 실리지 않아요. 신구 회계담당이 나란히 놓이는 자리인 만큼 조금 더 준비돼 있었다면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사쿠라 가스미는 1960년 홋카이도에서 태어난 작가로, 이 작품으로 나오키상을 받으며 최고령 여성 수상자가 되었습니다. 전화윤 님의 번역은 노인들의 말맛과 라쿠고식 말장난, 지역색까지 무리 없이 옮겨놓았어요. 실바니아 씨가 청중을 향해 "라쿠고거든요. 지금 잠깐 라쿠고 얘기로 삼천포에 빠져서"라고 해설하는 장면이 어색하지 않게 읽히는 데는 번역의 몫이 큽니다.

서평단 도서는 아무래도 마감을 의식하며 읽게 되는데, 이 한 권은 그 속도를 스스로 늦추게 만든 쪽이었어요. 두께와 무게가 상당해 한 번에 몰아 읽기도 쉽지 않고, 회원들이 두 쪽씩 나눠 읽듯 며칠에 걸쳐 조금씩 넘기는 편이 이 소설과 훨씬 잘 맞습니다.
입추가 지났는데도 한낮 열기가 좀처럼 물러가지 않는 요즘입니다. 매미 소리가 옅어지는 저녁 무렵, 몇 쪽씩 나눠 읽어나가기에 어울리는 도서예요. 한국도 초고령사회에 들어섰고, 동네에서 오래 이어지던 모임이 하나둘 문을 닫았다는 소식을 어렵지 않게 듣습니다. 그런 소식 사이에서 이 소설은 계속 읽을 것, 그리고 읽은 것을 말할 상대를 곁에 둘 것이라는 답을 조용히 내놓습니다. 노년을 준비하는 방법으로는 꽤 든든한 제안이라고 봅니다. 나이 드는 일이 조금 덜 무거워지는 이야기를 찾고 계시다면 시간을 넉넉히 잡고 이 초록 책을 펼쳐보셔도 좋겠습니다.
평균 나이 여든다섯의 독서모임이 스무 해 지켜온 오후 한 시, 소리 내어 읽고 듣고 말하는 일이 사람을 어떻게 붙들어주는지 보여주는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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