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니베이킹
김다인(머니바게트) 지음 / 모티브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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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투자 관련 책을 펼칠 때 살짝 주춤하게 되는 이유가 있습니다. 숫자가 많고 용어가 낯설고, 무엇보다 늦었다는 말을 듣게 될 것 같아서요. <머니베이킹>은 그 예상과 조금 다른 자리에서 말을 걸어옵니다.


표지부터 그렇습니다. 크라프트 봉투에 담긴 바게트 세 개가 100달러 지폐로 돌돌 감겨 있는데, 돈 이야기를 하겠다는 선언 같기도 하고 이건 결국 굽는 일이라는 예고 같기도 했습니다. 금빛과 베이지로 정리된 색감이 화려한 쪽으로 가지 않아서, 표지를 마주한 첫 인상은 의외로 차분했어요. 판형도 두툼하거나 얄팍하지 않은 보통의 두께라 마음이 놓였습니다. 작정하고 공부하듯 붙들지 않아도 될 것 같은 무게니까요. 북유럽 카페를 통해 서평단으로 받은 도서입니다.


띠지에 적힌 한 줄이 이 한 권의 방향을 다 말해줍니다. 이제는 '느린 부자'가 가장 확실한 부자가 됩니다. 20년간 IT 회사에서 근로소득으로 달려온 저자가 자본소득으로 눈을 돌린 뒤에 얻은 결론이라는 걸 알고 읽으면, 저 문장의 무게가 조금 달라집니다.


가장 오래 눈길이 간 대목은 40대를 정면으로 호명하는 챕터였습니다. 저자는 위로를 서둘러 꺼내지 않아요. 이미 40대라면 솔직하게 말하겠다고 운을 뗀 뒤에 "30대에 시작하는 것보다는 불리하다"고 먼저 인정합니다. 그러고 나서야 50대에 시작하는 것보다는 훨씬 유리하다고, 40대에는 아직 20년이 있고 그 20년은 복리가 힘을 발휘하기에 충분한 시간이라고 말을 이어갑니다. 순서가 이렇게 놓여 있으니 뒤에 오는 격려가 헛돌지 않습니다.


이 챕터에서 저자가 40대의 강점으로 꼽는 건 소득 수준만이 아닙니다. 재무적 판단력이 성숙해서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낭비인지 구분할 줄 안다는 서술이 있는데, 그 문장 앞에서 잠깐 멈췄습니다. 30대에는 명품 가방이나 비싼 차에 돈을 쓸 수 있지만 40대에는 미래를 위한 투자가 더 절실하다는 것을 피부로 느낀다는 이야기가 따라붙는데, 이건 계산이 아니라 체감의 영역이라 반박하기가 어려웠어요.


숫자도 겁을 주는 방식으로 쓰이지 않습니다. 월 50만 원부터 시작해 소득이 오를 때마다 조금씩 늘려가면 된다고, 처음부터 완벽할 필요 없다고 못을 박습니다. "시작하는 것 자체가 가장 중요하다"는 문장이 이 파트 전체의 뼈대입니다.


책의 중간, 복리를 나무에 비유하는 챕터는 이 도서에서 가장 좋았던 자리였습니다. 씨앗을 심으면 처음 몇 년은 눈에 띄는 성장이 없고 땅 밑에서 뿌리가 내리는 시간이라는 설명인데, 저자는 그 구간을 지루하고 답답하다고 그대로 씁니다. 이거 제대로 자라는 거 맞아, 하는 의심이 든다는 대목까지 적어두었어요. 그러고는 3년 투자해 원금 대비 25% 수익을 보고 은행 이자랑 별 차이 없다며 포기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붙입니다. 그 3년이 뿌리를 내리는 시간이었는데 포기하는 순간 뿌리째 뽑히는 것이고, 다시 다른 곳에 심고 또 3년을 기다리다 또 뽑으면 10년이 지나도 자산은 제자리라는 결론입니다. 이 챕터에 굵게 박힌 문장이 "복리 투자의 진짜 적은 시장 폭락이 아니라 투자자의 조급함이다"인데, 시장을 탓하기 쉬운 자리에서 화살을 자기 쪽으로 돌린 셈입니다.


같은 챕터의 거름 비유도 오래 남았습니다. 20대는 물만 줄 수 있었다면 40대는 양질의 비료를 한가득 줄 수 있으니, 시작은 늦었어도 영양 상태가 좋아 성장 속도가 빠르다는 이야기예요. 늦음을 부정하지 않으면서 늦음의 조건을 다르게 읽어주는 방식이라, 위로치고는 꽤 단단합니다.


물론 읽으면서 고개를 갸웃한 부분도 있었습니다. S&P 500의 지난 150년을 근거로 20년 이상 보유한 사람 중 손해 본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고 단정하는 대목인데, 저자도 연 8~10% 수익률이 현실적인가라는 의문을 스스로 꺼내며 과거 30년 연평균 수익률과 실질 수익률을 근거로 답을 준비해두긴 했습니다. 다만 지난 150년이 앞으로의 20년을 보증해주는 건 아니라는 생각은 끝까지 남았어요. 월 100만 원을 30년간 굴리면 약 22억이 된다는 계산도 그렇습니다. 세금 문제는 뒤쪽 파트에서 따로 다루지만, 이 대목의 숫자 자체는 환율이 흔들리지 않고 소득이 30년간 끊기지 않는다는 상당히 이상적인 조건에 기대고 있습니다. 그 조건이 얼마나 깨지기 쉬운지는 월급을 받아본 사람이라면 알고 있고요.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연금저축펀드와 IRP, ISA를 다루는 절세 파트가 오히려 더 실용적으로 읽혔습니다. 수익도 복리지만 세금도 복리라는 지적, 근로소득자는 세금 구조를 잘 모른다는 대목은 수익률 표보다 당장 손에 잡히는 이야기였습니다.


책의 끝자락은 다시 오븐 앞으로 돌아옵니다. 반죽을 하고 발효를 시키고 기다려야 하며 중간에 오븐을 열면 빵이 망가진다는 비유로 시작해, 지금 40대라면 70대가 지금 만들어지고 있다는 문장으로 이어집니다. 오븐 앞에서 조급해하지 마라, 문을 열지 마라, 그냥 기다려라. 명령형이 이어지는데도 몰아붙이는 느낌이 없었던 건 그 앞에 놓인 목표의 재정의 때문일 겁니다. "투자의 궁극적 목표는 100억 부자가 되는 것이 아니다. 돈 때문에 싫은 일을 하지 않아도 되는 삶, 내 시간을 되찾는 삶, 그것이 진정한 목표다." 반(半) 파이어를 완전한 은퇴로 두지 않고 월급에만 의존하지 않아도 되는 상태, 싫으면 그만둘 수 있는 용기로 정의한 대목도 이 도서의 정서를 대표합니다.


서평단으로 여러 책을 만나면서, 읽는 동안은 좋았는데 덮으면 남는 게 없는 경우를 종종 겪습니다. 이 한 권은 그렇지 않았어요. 대단한 기법을 배우지는 않았지만, 늦었다는 감각을 다루는 방식 하나는 확실히 얻었습니다. 40대의 시간을 부족한 잔여로 세지 않고 거름을 줄 수 있는 시기로 세는 관점이요. 투자 경험이 거의 없어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막막한 분이라면 입문서로 충분하고, 이미 몇 년째 계좌를 들여다보며 조급해지는 중이라면 오히려 뒤쪽 파트부터 펼쳐도 좋겠습니다.


9월로 넘어오니 저녁 공기가 확실히 달라졌습니다. 여름 내내 그대로인 것 같던 것들이 실은 조용히 자리를 옮기고 있었다는 걸, 계절이 바뀔 때 알게 되지요. 눈에 보이지 않는 동안에도 뿌리는 내려가고 있다는 이 도서의 이야기가, 하필 이 시기에 잘 어울렸습니다. 빵의 크기는 지금 정해진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조급해하지 않기로 마음먹는 것도 결국 오늘의 몫이겠습니다.


늦었다고 말하는 대신 지금 무엇을 줄 수 있는지 묻는, 40대를 위한 담백한 장기 투자 안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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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랄 맞을 용기 - 세상이 당신의 선을 넘으려 할 때, 기꺼이 ‘지랄맞을’ 용기를 내십시오
조영훈 지음 / 모티브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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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표지를 받아 들고 한동안 인물의 얼굴만 봤습니다. 검은 곱슬머리에 양쪽 귀를 손가락으로 막았는데 표정이 화난 쪽은 아니에요. 그냥 안 듣기로 정한 얼굴이죠. 그런데 이마에는 주황색 종이비행기가 정확히 꽂혀 있습니다. 귀는 막았지만 날아오는 말을 다 피하지는 못했다는 뜻으로 읽혔어요. 세상의 말을 안 듣고 사는 사람이 아니라, 다 들리는데도 자기 자리를 지키려는 사람의 그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굵고 둥근 서체가 험한 제목을 오히려 담백하게 눌러 주고 있고요.


<지랄 맞을 용기>는 사실 제목만 보고 조금 망설였던 책입니다. 마흔을 훌쩍 넘긴 사람에게 세게 나가라고 부추기는 자기계발서일까 싶었어요. 표지 문구도 세상이 당신의 선을 넘으려 할 때 기꺼이 용기를 내라는 쪽이니까요. 판형이 손에 편하고 두께도 부담 없어서 일단 펼쳤는데, 첫 챕터 몇 장을 지나면서 예상이 어긋났습니다.


밥줄 앞에서의 용기를 다룬 장의 도입부가 그랬어요. 저자는 자본과 권력 앞에서 신념을 굽히는 사람들 이야기를 먼저 꺼냅니다. 그들이 굽히는 이유는 상대가 실제로 생계를 좌우하는 권한을 쥐고 있기 때문이라고 짚고, 카너먼과 트버스키의 손실 회피 개념까지 끌어와 인간이 원래 잃는 일에 극심한 공포를 느끼도록 설계되었다고 설명합니다. 그러고 나서 이렇게 적어 둡니다.


"돈 앞에서는 누구나 작아질 수밖에 없다는 것, 그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일지도 모릅니다."


용기를 권하는 책이 첫머리에서 용기 내지 못한 쪽을 먼저 감싸 주더군요. 그 순서 덕분에 방어할 필요 없이 책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베토벤 편은 그래서 더 담담하게 읽혔어요. 궁전에 머물게 해 주고 최고급 악기를 선물하고 매년 거액을 조건 없이 보내던 후원자가 어느 날 점령군 장교들 앞에서 연주를 지시합니다. 거절의 대가로 그는 막대한 경제적 타격을 입었고, 저자는 그 대가를 숨기지 않고 적어 둡니다. 다른 후원자와 수입원이 남아 있었으니 기반 전체가 무너진 것은 아니라는 단서까지 스스로 달아 놓았어요. 영웅으로 부풀리지 않는 이 정직함이 이 책의 미덕이라고 봅니다. 이후 그가 남긴 편지의 핵심은 짧습니다. 당신이 나의 시간과 기술에 돈을 지불할 수는 있어도 나의 영혼과 존엄성까지 소유할 수는 없다는 것이죠.


이 대목에서 저자가 붙인 해설이 오래 남았습니다. 직장을 때려치우거나 갑자기 상대에게 욕하라는 말이 아니라고 분명히 못 박아요. 지불받은 값은 노동력과 시간, 전문적 기술에 대한 정당한 대가이지 인격과 존엄을 마음대로 구겨도 좋다는 면벌부가 아니라는 문장. 그리고 당장 모든 것을 뒤로하고 뛰어들 수는 없더라도 마음속에 흉상을 부숴버릴 망치 하나쯤은 품고 살아야 한다는 권유. 실제로 부수라는 게 아니라 부술 수 있다는 감각을 잃지 말라는 뜻으로 들려서, 오래 일한 사람의 현실에 닿는 말이었습니다.


결이 완전히 다른 챕터도 있어요. 억까를 다룬 장의 사마천 편입니다. 여기서 용기는 목소리를 높이는 형태로 나타나지 않습니다. 사형을 면할 길이 사실상 하나뿐이었던 상황, 당대 지식인들이 궁형보다 자결을 미덕으로 여겼던 분위기, 모두가 그의 자결을 의심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차곡차곡 쌓아 놓고, 그가 세상의 상식을 배반했다고 서술합니다.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는 사람은 누구나 한 번 죽지만 어떤 죽음은 태산보다 무겁고 어떤 죽음은 새털보다 가볍다는 말이 있고, 가장 참기 어려웠던 것은 품은 뜻을 다 펴지 못하고 죽는 일이었다고 적혀 있어요. 망가진 몸을 끌고 다시 책상 앞에 앉은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십여 년 뒤 130권, 52만 자가 넘는 기록이 완성됐고, 그를 벌한 권력은 스러졌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아쉬운 대목도 있었어요. 챕터마다 결말로 갈수록 어휘의 온도가 올라갑니다. 압도적이라는 말, 맹렬하다는 말, 세상이 무릎 꿇을 것이라는 표현이 반복돼서 후반부에서는 조금 몰아붙이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위로를 기대하고 집어 든 독자라면 숨이 찰 수도 있겠다 싶었어요. 또 하나는 형식 자체의 한계인데, 이 책에 모인 스물넷은 결국 결과가 자신을 증명해 준 사람들입니다. 견딤이 성취로 회수되지 않은 삶은 어디에 놓아야 하는지에 대한 답이 충분히 나오지는 않아요. 다만 그 질문에 책의 마지막 인물이 부분적으로 대답하고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마지막 자리는 에디트 피아프예요. 이 편은 화려한 성취 이야기가 아닙니다. 어머니에게 버림받은 유년, 어린 시절 잃었던 시력, 두 살에 떠난 첫아이, 사랑하는 사람의 비행기 사고, 통증 치료로 시작된 약물 의존, 마흔 몇에 병든 노파처럼 보였다는 몸. 저자는 그가 파리 벨빌의 가로등 밑에서 태어났다는 유명한 일화를 그대로 옮기지 않고 실제 출생 기록을 밝혀 바로잡습니다. 각막염의 원인에 대해서도 다른 견해를 각주로 달아 두었어요. 그런 태도가 있어서 뒤에 이어지는 감동적인 장면도 믿고 읽게 됩니다.


1960년 올랭피아 극장, 깡마른 체구에 검은 드레스를 입고 위태롭게 서 있던 사람이 반주가 시작되자 후회하지 않는다고 노래합니다. 사람들이 준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자신에게는 다 마찬가지라고, 과거를 불태워 버렸으니 모든 것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겠다고요. 흉터를 부끄러워하지도 변명하지도 않고, 동정 어린 시선을 걷어내고 자기 삶의 주도권을 되찾은 목소리였다고 저자는 씁니다. 첫 장에서 자본 앞의 주도권으로 시작한 책이 마지막에 운명 앞의 주도권으로 닫히는 구성이었어요.


여섯 개의 장을 지나며 지랄맞음이라는 말은 세 가지 얼굴을 갖게 됩니다. 관계를 끊고 나오는 쪽, 남아서 견디는 쪽, 이미 부서진 다음에 다시 시작하는 쪽. 그리고 책이 마지막에 도착한 곳은 저항이 아니라 긍정이었습니다. 도비라마다 붙은 한 줄 해설이 태도에서 정신력으로, 다시 긍정으로 옮겨 가는 흐름과도 맞아떨어져요.


서평단으로 여러 책을 만나다 보면 읽는 내내 고개만 끄덕이게 되는 책이 있고, 읽고 나서 자기 자리를 한 번 돌아보게 만드는 책이 있습니다. 이 도서는 후자에 가까웠어요. 굽힌 적이 있어 스스로를 오래 탓해 온 사람이라면 첫 장의 저 문장 하나만으로도 짐을 덜 수 있을 것 같아요. 반대로 요즘 참는 일이 습관이 되어 어디까지 양보했는지 셈하기 어려워진 분들에게는 중간의 챕터들이 자기 기준을 다시 그려 보는 자리가 될 겁니다. 목소리를 키우는 법을 배우려고 펼치면 조금 어긋날 수도 있어요. 이 한 권이 말하는 용기는 소리의 크기보다 선을 아는 일에 가깝습니다.


여름 끝이라 아침저녁 공기가 조금 달라졌습니다. 한 해의 절반을 이미 견뎌 낸 시기이기도 하고요. 이맘때 이런 책을 만난 게 나쁘지 않았습니다. 남은 계절을 지나는 동안 마음 한구석에 망치 하나쯤 넣어 두고 살아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굽혔던 자신을 먼저 이해시켜 준 다음, 지켜야 할 선이 어디였는지 조용히 짚어 주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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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 ㅣ 21세기 시선으로 읽는 동양고전
박찬근 지음 / 청년정신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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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표지가 먼저 말을 걸었어요. 흰 바닥에 회색으로 크게 앉힌 書經 두 글자, 그 위에 낡은 고서 몇 권을 쌓아 올린 것 말고는 장식이 거의 없습니다. 3천 년 전 통치의 교과서라는 이름값을 생각하면 좀 더 위엄을 부려도 될 텐데 여백을 넓게 비워 뒀더군요. 아래쪽에 작게 적힌 한 줄이 리더의 품격을 만드는 16가지 물음이었으니, 이 책이 어떤 자리에 서려는지는 표지에서 이미 짐작이 됐습니다.


208쪽, 손에 쥐기 좋은 크기입니다. 두께로 사람을 주저앉히는 고전이 아니어서 첫 장을 넘기는 데 별다른 준비가 필요하지 않았어요.


<서경>은 요·순·우·탕·문왕·무왕의 말과 군신 사이의 논쟁을 모아 둔 경전이고, 세종이 집현전 학자들과 밤새 붙들었고 정조가 왕도정치의 뼈대를 세울 때도 곁에 두었던 책입니다. 저자 단산 박찬근 선생은 35년간 한학을 연구하고 강의해 온 분인데, 채침의 서집전을 바탕 텍스트로 삼아 이 방대한 경전을 春夏秋冬 네 계절, 열여섯 개 장으로 다시 짰습니다. 봄에 리더의 조건을 심고, 여름에 땀 흘려 실천하고, 가을에 결산하고, 겨울에 스스로를 갱신하는 순서예요. 계절에 고전을 얹은 발상이 처음에는 편집상의 장식처럼 보였는데, 읽어 갈수록 이 배치가 내용을 붙잡아 주는 쪽으로 작동합니다.


봄 부의 네 번째 장에서 걸음이 느려졌어요. 표제가 호문즉유, 묻기를 좋아하면 여유로워진다는 뜻입니다. 상나라를 세운 탕왕이 천하를 얻은 직후에 오히려 편안하지 못했고, 그 흔들림을 읽은 신하 중훼가 진언을 올리며 임금의 덕 가운데 하나로 꼽은 것이 바로 묻는 태도였다고 해요.


"묻기를 좋아하면 넉넉해지고, 자기 생각만을 고집하면 작아진다."


넉넉함을 뜻하는 유裕라는 글자를 저자가 열어 보이는 대목이 특히 좋았습니다. 옷 의와 골짜기 곡이 겹쳐 있어서, 품이 넉넉해 무언가 담을 여지가 있는 옷이면서 동시에 모든 물을 받아들이는 깊은 계곡이라는 겁니다. 질문을 던지는 순간 모른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고, 그 인정이 빈자리를 만들고, 그 빈자리로 남의 지혜가 흘러든다는 설명이었어요. 넉넉함이 비워 둠으로써 얻어지는 것이라는 문장으로 단락이 닫힙니다.


반대편에 놓인 글자가 자용自用입니다. 스스로를 쓴다는 뜻인데, 남의 경험을 배제하고 제 판단만으로 결정하는 태도를 가리켜요. 자기만 쓰는 사람은 자기 시야각만큼만 세상을 본다고, 저자는 담담하게 적어 둡니다. 연차가 쌓이면 묻는 일이 어색해집니다. 모른다고 말하는 게 무능의 자백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오니까요. 그런데 이 장은 정반대로 말해요. 리더는 지혜를 혼자 만들어내는 사람이 아니라 흩어진 지혜가 모여드는 자리가 되는 것이라고요.


이 장의 「서경 깊이 읽기」는 먹줄 이야기입니다. 목수가 굽은 나무 위에 튕겨 곧은 금 하나를 남기는 그 검은 실인데, 아무리 뒤틀린 나무도 먹줄 앞에서는 제 굽음을 숨기지 못한다고 합니다. 곧음의 기준이 자기 밖에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죠. 임금에게 그 먹줄은 간언이고요.


"조직의 굽음은 늘 꼭대기에서 자란다. 아무도 먹줄을 대지 않아서."


이 문장 앞에서 잠깐 손을 멈췄습니다. 높이 오른 사람일수록 곧은 소리를 듣기 어렵고, 아랫사람은 윗사람의 굽음을 보고도 먹줄을 대지 못한다고 해요. 대는 순간 미움을 살까 두렵기 때문이라고요. 그러니 좋은 리더는 스스로 먹줄을 부른다는 것, 제 굽은 곳을 말해 달라고 청하는 한마디가 곧 간언을 따르는 일이라는 것. 회의실에서 침묵이 흐를 때 그것을 동의로 읽어 온 시간들이 함께 떠올랐습니다.


가을 부로 넘어가면 결이 한층 서늘해집니다. 문을 여는 장이 죄당짐궁, 허물은 제가 진다는 뜻이에요. 탕왕 재위 중에 극심한 가뭄이 들었고, 점괘가 사람을 제물로 바쳐야 한다고 나왔을 때 탕왕은 그렇다면 자신이 제물이 되겠다고 답합니다. 상림으로 나가 머리카락과 손발톱을 자르고 흰 띠풀로 스스로를 묶어 제물의 모양으로 하늘에 고했다는 기록인데, 저자는 여기서 한 걸음 물러서요. 사실의 기록인지 상징적 서술인지 우리는 알 수 없다고 먼저 밝히고, 이 장면이 여러 고전에 함께 남은 이유를 진위가 아니라 각인의 강도에서 찾습니다. 고전을 다루는 손길이 조심스러운 자리라 신뢰가 갔습니다.


이 장의 마무리가 이 책에서 가장 오래 붙들린 대목입니다.


"허물이 드러났을 때 책임지는 것은 오히려 쉽다. 남들이 보고 있으니 어쩔 수 없이 진다. 정작 어려운 것은 아무도 모르는 허물을 스스로 용서하지 않는 일이다."


책임이라는 말을 그동안 너무 헐하게 써 왔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드러난 잘못을 인정하는 일은 어차피 피할 수 없어서 하는 것이고, 저만 아는 실수를 덮지 않는 쪽이 훨씬 값이 비싼 일이라는 겁니다. 정약용을 인용한 대목도 이 결을 따라갑니다. 허물을 제 것으로 삼는 일은 고통스럽지만 의지로 할 수 있는데, 공을 제 것으로 삼지 않는 일은 더 깊은 자기 극복을 요구한다고요. 칭찬받고 싶은 마음을 내려놓아야 하니까요. 자랑하지 않을 때 비로소 내면이 평안해진다는 문장이 뒤에 붙어 있는데, 이 한 줄은 위로처럼 읽혔습니다.


다만 읽으면서 걸리는 지점도 있었어요. 이 책이 세워 둔 모범은 대체로 최종 결정권자의 자리에서 나온 것입니다. 영조는 재해가 들면 수라상의 반찬 수를 줄일 수 있었고, 유성룡은 벼슬에서 물러나 <징비록>을 쓸 수 있었고요. 그런데 조직의 중간에 낀 자리는 사정이 좀 다릅니다. 허물을 혼자 지겠다고 나선 순간 무엇이 어디서 어긋났는지 규명할 기회가 그대로 닫혀 버리는 경우가 적지 않아요. 자책이 구성원의 책임감을 높인다는 저자의 관찰은 옳다고 보는데, 그 효과가 자리의 높이에 따라 달라진다는 이야기까지는 이 책이 나아가지 않는 듯합니다. 물어서 잘된 사례가 세종에서 이순신으로 이어지는 배열도, 묻는 일이 결정을 늦추거나 책임을 흐리게 만드는 국면은 비켜 갑니다. 고전을 오늘로 옮겨 오는 책이라면 한 번쯤 짚어 줄 만한 대목이었다고 생각해요.


가을 부를 닫는 장은 개과불린입니다. 잘못을 고치는 데 인색하지 않다는 뜻인데, 봄 부에서 만났던 중훼가 여기서 다시 등장해요. 같은 신하가 같은 진언에서 꼽은 덕목이 책의 앞과 뒤를 묶는 셈입니다.


"잘못을 고치는 데 인색하지 않으셨고, 선을 따르기를 물 흐르듯이 하셨다."


고칠 개改가 자기 기己와 칠 복攴이 합쳐진 모양이라는 풀이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스스로를 두드려 바꾸는 일이니 고침에는 폭력의 이미지가 숨어 있다는 것이죠. 그래서 어렵다고 해요. 리더가 잘못을 고치기 힘든 이유를 저자는 둘로 나눕니다. 잘못을 인정하면 권위를 잃는다는 착각, 그리고 이미 그 방향으로 많은 자원이 들어갔다는 현실. 쏟아부은 것이 아까워 틀린 길을 계속 간다는 진단은 요즘 조직에서도 그대로 통합니다. 왕안석의 개혁이 그렇게 무너졌다고 짚으면서 저자가 붙인 구분이 날카로웠어요. 잘못을 고치는 데 인색했던 것이 아니라 잘못을 잘못으로 인정하는 데 인색했던 것이라고요.


반대편에 세종의 공법이 놓입니다. 새 세법을 만들면서 자기 안을 밀어붙이지 않고 전국의 관리와 백성 십칠만여 명에게 가부를 물었고, 찬반이 갈리자 전면 시행 대신 일부 지역에서 먼저 시험해 문제가 드러나면 손봤다는 과정이 정리돼 있어요. 오늘날의 시범 사업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완성된 법을 내린 게 아니라 고쳐 가는 법을 함께 만든 것이라는 서술, 그리고 개과불린이 한순간의 결단이면서 오래 고쳐 나가는 끈기이기도 하다는 마무리가 좋았습니다.


이 장의 결론은 순서에 있습니다. 검신이 앞에 있어야 개과가 뒤따른다는 것. 자신을 살피지 않는 사람에게는 고칠 잘못조차 보이지 않는다는 것. 남에게는 완비를 구하지 말고 자신을 단속하기를 미치지 못한 듯이 하라는 이윤의 말이 그 뿌리로 놓여 있어요. 사람은 이 저울을 대개 거꾸로 듭니다. 남의 작은 흠은 크게 보면서 제 큰 허물은 어쩔 수 없었다며 넘기니까요.


완성이 리더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고침이 리더를 만든다.


책 전체를 한 문장으로 줄이면 아마 이 대목일 겁니다. 열여섯 개 장을 지나오며 갖춰야 할 덕목의 목록을 받아 든 독자에게, 저자는 그 모든 것을 완벽하게 갖춘 사람은 없다고 인정해 줘요. 그리고 고쳐라, 물처럼 흘러라라고 답합니다. 이 순서가 이 책의 따뜻한 지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각 장 끝에는 「나를 향한 질문」이 다섯 개씩 놓여 있습니다. 답을 이미 정해 두고 형식만 갖춘 물음이 아니었는지, 회의에서 먼저 말하는 사람인지 마지막에 말하는 사람인지, 곁에 제 굽은 곳을 말해 줄 사람이 있는지를 되짚게 하는 항목들이에요. 이 장치 때문에 이 책은 하루에 몰아 읽는 쪽보다 한 장씩 끊어 읽는 편이 나을 것 같습니다. 세 장을 이어 읽었을 때는 마무리의 형식이 반복되는 게 눈에 들어왔는데, 하루에 한 장씩 두고 읽으면 그 반복이 오히려 리듬으로 작동하겠더군요.


서평단으로 여러 권을 만나다 보면 읽고 정리하고 넘어가는 흐름에 익숙해지는데, 이번 한 권은 그 흐름을 조금 붙들었어요. 읽는 사람을 평가하는 자리에 세우는 책이라서요. 조직을 이끄는 분들에게 유용할 내용이 분명히 많지만, 직함과 무관하게 제 판단으로 무언가를 결정하고 그 결과를 감당해야 하는 사람이라면 어디서든 걸리는 대목이 나옵니다. 어려운 한문 때문에 동양고전을 멀리 뒀던 분들께도 문턱이 낮은 편이에요. 원문과 독음과 직역이 나란히 배치돼 있어서 한자를 모르고도 막힘없이 읽힙니다.


늦더위가 아직 남아 있지만 아침 공기가 하루가 다르게 달라지는 무렵이네요. 마침 이 책의 가을 부가 리더의 유산, 수확과 결산을 다룹니다. 한 해의 절반을 넘긴 자리에서 무엇을 거뒀고 무엇을 고쳐야 하는지 셈해 보기에 계절이 맞춤합니다. 서늘한 바람이 도는 저녁에 한 장씩 천천히 읽어 나가기 좋은 한 권입니다.


3천 년 전 임금들의 언어로 오늘의 제 자리를 되짚게 하는 책, 완벽함이 아니라 고칠 용기를 리더의 조건으로 놓은 <서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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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골 3 : 흐름의 법칙 ㅣ 더 골 (40주년 기념판) 3
에프랏 골드랫-아쉬라그 지음, 이정숙.이주영 옮김 / 동양북스(동양문고)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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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각각 아흐레가 걸리는 일이 세 개 있습니다. 하나씩 차례로 처리하면 첫 번째 일은 아흐레째에 손을 뗍니다. 그런데 셋을 조금씩 번갈아 붙들면 첫 번째 일이 끝나는 데 스무하루가 걸립니다. 세 개 전부가 마무리되는 시점은 어느 방식이든 스무이레째로 같습니다. 얻은 것 없이 앞의 두 건만 늦어진 셈이죠. <더 골3 흐름의 법칙>의 강의실 장면에 나오는 계산인데, 화이트보드에 그려진 사각형 줄을 보던 수강생이 "말도 안 돼요! A 프로젝트를 끝내는 데 9일이 아니라 21일이 걸리네요!"라고 소리칩니다. 책장을 넘기다 저도 비슷한 소리가 나왔습니다.


표지는 그 계산만큼 단호합니다. 흰 바탕을 검정과 붉은색이 갈라놓고, 굵은 세리프체로 눌러 박은 글자 아래 파이프를 문 흑백 사진이 놓여 있어요. 표지에 적힌 한 줄에서는 이제 성과가 속도에 있지 않고 '흐름'에 있다고 못을 박습니다. 경영서라기보다 선언문 쪽에 가까운 인상입니다. 다만 판형은 손에 쥐기 편하고 두께도 만만해서, 표지가 주는 압박과 달리 읽는 동안은 편안했습니다. 260쪽을 앉은 자리에서 상당히 밀어낼 수 있는 종류의 도서예요.


이 책은 엘리 골드렛이 평생 붙들었으나 끝내 완성하지 못한 '흐름의 법칙'을 딸이자 조력자였던 에프랏 골드렛 아쉬라그가 이어받아 내놓은 결과물입니다. 시리즈답게 소설 형식이고요. 매각 위기에 놓인 윌슨 사에서 엔지니어링 부서를 맡은 마크가 MBA 수업을 들으며 회사를 구해보려는 이야기가 축입니다. 이론서로 읽히지 않도록 저자가 애쓴 흔적이 곳곳에 보입니다.


앞부분에서 마크가 처음 손대는 일은 프로젝트 사양을 훑어 '있으면 좋은 것'을 걷어내는 작업입니다. 엔지니어들이 임의로 얹어둔 항목이 여러 건 발견되고, 중요해 보이는 한두 개만 남기고 지웁니다. 여기서 눈에 걸린 건 기술적 판단이 아니라 감정이었어요. 마크는 누구의 기분도 상하게 하고 싶지 않고 갈등도 생기지 않기를 바랍니다. 실제로 불필요한 항목을 지우자고 말해본 사람은 이 망설임을 알 겁니다. 고객과 화상 회의를 하니 이틀 뒤 대부분의 요구를 내려놓겠다는 답이 오는데, 대신 마감이 임박했을 때는 요구 사항을 줄여달라고 해서는 안 된다는 경고가 붙습니다. 같은 요청이 시점에 따라 협의가 되기도 하고 변명이 되기도 한다는 이야기라 이 단서가 오래 남았습니다. 그렇게 프로젝트 두 개를 취소하고도 벌어들인 시간은 약간이었고, 상황을 뒤집기엔 턱없이 부족했다고 적혀 있습니다. 이 정직함이 마음에 들었어요.


본론은 나쁜 멀티태스킹을 다루는 장입니다. 리처드 교수는 피로와 번아웃, 자원 충돌 같은 익숙한 부작용을 먼저 나열한 뒤 그것들이 빙산의 일각일 뿐이라고 자릅니다. 진짜 문제는 이것이 프로젝트에서 시간을 가장 많이 잡아먹는 살인마라는 점이라고요. 마크가 속으로 표현이 극적이라고 삐딱하게 받는 대목이 있어서 설교로 기울지 않습니다. 이어지는 수강생들의 증언이 이 장의 힘입니다. 자리에 앉아 이메일을 절반도 읽기 전에 휴대폰이 울리고, 옆자리에서 부르고, 전화를 대기로 돌려놓고 갔더니 정작 휴대폰은 책상에 있고, 돌아오니 새 메일이 쌓여 있고, 정신을 차리면 오전의 절반이 지났는데 끝낸 일은 없습니다. 강의실에 웃음이 터졌다고 적혀 있어요. 웃을 수 있는 사람이 저 말고도 여럿이라는 뜻이겠죠. 개발자 수강생의 말은 더 아픕니다. "설령 그 멍청이가 나 자신이었을지라도, 왜 그렇게 코딩을 했는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아요." 결국 다 갈아엎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처방은 간명합니다. 진행 중인 일의 개수를 통제하라는 것. 이미 시작한 것 하나를 끝낸 뒤에 새로운 것에 착수하라는 것. 그런데 이미 일정이 꽉 찬 조직에는 훨씬 과격한 조치가 붙습니다. 진행 중인 프로젝트 일부를 동결하라는 겁니다. 어떤 회사는 전체의 20~30퍼센트부터 세워보고, 흐름이 심하게 막힌 곳은 70~80퍼센트를 멈춘 뒤에야 숨이 트인 경우도 봤다고 합니다. 학생들이 침묵에 잠겼다는 서술이 나오는데, 독자도 같이 멈추는 자리입니다. 교수의 표현으로는 먹기에는 쓴 약이지만 흐름을 원활하게 만들기 위해 무조건 한 번은 거쳐야 하는 과정입니다.


제목이 인상적인 장이 하나 더 있습니다. 일찍 시작하는 것에 대한 잘못된 생각을 다루는 대목이에요. 마크가 아버지에게 설명하면서 통념을 먼저 인정하고 들어갑니다. 마감을 맞추려면 수주하는 즉시 착수해야 하고 일찍 시작할수록 제때 끝낼 가능성이 커진다고 믿었다는 것이죠. 아버지가 "그렇지"라고 받는 짧은 대사가 좋았습니다. 이건 무지한 사람의 오해가 아니라 경영자라면 누구나 품는 상식이라는 뜻이니까요. 반박은 한 문장으로 끝납니다. 모두 일찍 시작한다는 건 진행 중인 작업이 그만큼 불어난다는 뜻이고, 그것이 오히려 마감을 맞출 기회를 위태롭게 만든다는 것. 대안으로 나온 방식은 프로젝트를 중앙에서 하나의 목록으로 관리하고, 담당자가 하나를 끝내면 곧바로 다음 것을 받아가는 구조입니다. 제조 라인의 대기열을 사무실로 옮겨온 셈인데, 실무자 입장에서 가장 바로 써먹을 만한 처방으로 보였습니다. 저자가 이 대목에 붙인 문장이 "지극히 상식적인 이야기였다"인 것도 이 시리즈의 화법답습니다.


가장 좋았던 통찰은 뒤쪽에서 나옵니다. 마크가 흐름을 손보자 생산 부서를 맡은 누나에게서 항의 전화가 옵니다. 일주일에 프로젝트 세 개가 한꺼번에 넘어왔다는 겁니다. 여기서 마크가 알아차립니다. 여러 건을 번갈아 진행하면 완료 시점도 비슷하게 몰리고, 그것이 뒤 공정의 작업량에 파도 같은 변동을 만든다는 사실이요. 손 놓고 기다리는 시기와 주문이 쏟아지는 시기가 번갈아 오던 이유가 실은 앞 공정의 습관이었던 겁니다. 부서 간에 오래 쌓인 불평의 시작점을 다시 그려주는 장면이라, 남 탓하던 목록을 조용히 지우게 만듭니다.


물론 전부 수긍하며 읽지는 못했습니다. 걸린 건 동결을 실행하는 주체입니다. 마크는 부서장이고, 게다가 오너의 아들입니다. 아버지가 아들과의 관계를 생각해 재량권을 내주는 장면이 분명히 적혀 있어요. 그 위치가 아니었다면 이 실험은 시작도 못 했을 겁니다. 중간에 끼인 실무자가 자기 판단으로 프로젝트를 세워둘 수 있는 조직이 국내에 얼마나 될지 생각하면 답이 쉽게 나오지 않습니다. 고객이 이틀 만에 요구 대부분을 내려놓는 전개도 이야기로는 매끄럽지만, 우리 발주 관행에 대보면 다소 수월해 보입니다. 하루 단위 처방이 결국 개인의 규율로 돌아오는 점도 아쉬웠어요. 옆자리에서 부르고 전화가 걸려오는 상황 자체를 개인이 통제할 수 없다는 게 그 아침 장면의 핵심인데, 그 부분은 다소 비껴갑니다. 이런 의문을 안고 읽는 편이 오히려 이 책과 잘 맞는 방식일 것 같기도 합니다. 소크라테스식으로 질문을 던지는 책이니까요.


마음에 오래 남은 문장은 이론 쪽이 아니었습니다. 아들의 계획을 들은 아버지가 감명받으면서도 성공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계산하는 대목의 끝에 이런 서술이 놓여 있습니다. 그들에게 시간이 더 있기를 바랐지만, 그에게 가장 부족한 게 바로 시간이었다고요. 흐름을 다루는 책의 정서적 바닥에 결국 시간의 부족이 놓여 있는 배치가 잘 짜여 있습니다. 방법을 알아도 늦게 알면 소용이 없다는 사실, 그리고 알았을 때 남은 시간이 얼마인지는 아무도 보장해주지 않는다는 사실. 성과 이야기를 하는 책에서 예상하지 못했던 위로를 여기서 받았습니다.


읽고 나서 달라진 건 거창하지 않습니다. 손에 잡고 있는 일의 개수를 세어보게 됐어요. 그게 이 책이 요구하는 첫 단계이기도 하고요. 프로젝트 목록이 자꾸 늘어나기만 하는 부서를 맡고 있다면 중반부의 동결과 풀 키트 대목을 천천히 보시면 좋겠습니다. 경영서라는 말에 손이 안 가는 분도 소설이라 생각보다 잘 넘어갑니다. 실적을 재촉받는 자리에 있으면서 정작 왜 안 되는지 설명하기 어려웠던 사람에게는, 그 곤란함을 말로 만들어주는 도서 한 권이 될 겁니다. 서평단으로 읽어온 책 가운데 일하는 방식을 이렇게 직접 건드린 경우는 드물었습니다.


처서가 지났는데 낮의 열기는 아직 그대로입니다. 그래도 저녁 공기가 조금씩 물러나는 게 느껴지고, 곧 하반기 계획을 다시 세우는 시기가 옵니다. 밀린 것들을 한꺼번에 붙들고 속도를 올릴 궁리를 하기 쉬운 계절이죠. 그전에 목록을 한 번 줄여보는 쪽이 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더 빨리 일하는 방법을 찾던 손에 쥐어진, 붙든 일의 개수를 줄이라는 답. <더 골3 흐름의 법칙>은 성실함과 성과가 어긋나는 이유를 아주 담담하게 계산해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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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재 없음 - 인재는 어디서 일하려 하는가
오용석 지음 / 경이로움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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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표지 가운데에 사원증 하나가 걸려 있습니다. 파란 목걸이 줄에 매달린 카드는 이름도 부서도 비워둔 채, 대신 "인재는 어디서 일하려 하는가"라는 문장만 담고 있어요. 제목은 <인재 없음>이라고 딱 잘라 말하는데, 표지 아래쪽에 적힌 한 줄은 곧바로 그 선언을 되돌립니다. '인재'가 없는 게 아니라, '인재가 머물 이유'가 없는 것이다. 회의실에서 수없이 반복되는 한숨을 제목으로 앞세우고 그 한숨의 방향을 슬쩍 돌려세우는 구성이라, 첫 장을 펴기 전부터 저자가 어느 편에 서 있는지 짐작이 됐습니다.


저자 오용석은 삼성중공업 인사기획팀을 거쳐 SAP Korea의 기업문화총괄로 일하는 20년 경력의 HR 실무자입니다. 이력만 보면 컨설팅 언어로 가득한 책일 것 같았는데, 읽어보니 결이 조금 달랐어요. 숫자와 이론이 자주 등장하지만 그 숫자들이 결국 가리키는 곳은 사람이 아침에 자리에 앉아 겪는 아주 평범한 몇 분입니다.


가장 먼저 마음을 붙든 건 이직의 이유를 다루는 앞부분이었습니다. 회사를 고를 때 사람들이 첫손에 꼽는 항목은 늘 연봉입니다. 잡코리아 설문에서도 신입과 경력직 모두 그랬다고 해요. 그런데 직원 유지 쪽으로 시선을 옮긴 조사에서는 일에 대한 만족감이 1위로 올라오고 높은 연봉은 다섯 번째로 내려앉습니다. 저자는 여기에 함정이 있다고 짚습니다. 회사를 선택하는 기준과 회사를 떠나기로 결심하는 계기가 애초에 같은 항목이 아니라는 것이죠. 연봉은 내년 액수를 대략 계산할 수 있는 정적인 조건이니 당장 짐을 싸게 만들지 못하지만, 매일 마주하는 결핍과 성장의 정체는 즉각적인 결심을 부른다고 설명합니다.


그 뒤에 놓인 문장이 오래 남았습니다. 높은 근속률이 안정의 증거는 아니라는 대목이에요. 직원이 남아 있는 이유가 만족과 성장이 아니라 관성, 불확실성, 대안 부족이라면 그 조직에서는 언제든 급격한 이탈이 일어날 수 있다고 합니다. 우리 회사는 오래 다닌 사람이 많다는 말을 자랑처럼 꺼내는 자리를 여러 번 지나온 사람이라면, 이 진단 앞에서 잠시 표정이 굳을 것 같아요. 남아 있음과 머물고 싶음이 전혀 다른 상태라는 사실을, 이 책은 데이터로 조용히 확인시킵니다.


3장으로 넘어가면 이야기가 개인 쪽으로 좁혀집니다. 심리적 안전감을 다루는 자리에서 저자는 아무리 좋은 제도와 파격적인 복지를 갖추더라도 이것이 결여되면 성과는 모래성처럼 무너진다고 씁니다. 조직문화의 거장 에드거 샤인이 말한 두 가지 불안, 변하지 않으면 도태된다는 생존 불안과 새 시도 앞에서 느끼는 학습 불안을 소개한 뒤, 리더가 압박으로 생존 불안을 키우는 쪽보다 학습 불안을 낮추는 편이 훨씬 효과적이라고 정리하지요. 그리고 이런 문장이 따라옵니다.


"학습 불안이 해소될 때 구성원은 자신의 실수를 방어하는 데 쓰던 에너지를 내려놓고 성과 창출을 위한 실험을 시작한다."


방어에 쓰이는 에너지라는 표현이 유난히 구체적으로 다가왔습니다. 어느 조직에나 실제 업무가 아니라 나중에 문제가 생겼을 때 자신을 설명하기 위해 미리 준비해두는 일들이 있잖아요. 그 준비에 들어가는 시간과 마음의 총량을 계산해본 사람은 아마 드물 겁니다. 구글의 프로젝트 아리스토텔레스가 2년간 180개 팀을 뒤져 얻은 결론도 이 지점과 맞닿습니다. 학벌이나 전문성, 심지어 점심을 함께 먹는지 여부까지 250개가 넘는 변수를 넣었더니, 팀 성과를 가른 것은 구성원의 면면이 아니라 그들이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였다고 해요. 실수를 드러내도 보복당하지 않는다는 확신이 있는 팀은 이직률이 낮았고, 그 팀의 아이디어가 실제 사업에 채택될 확률은 두 배 이상 높았다고 합니다.


티모시 클라크가 정리한 네 단계도 곱씹을 만했습니다. 팀에 속해 있고 존중받는다는 믿음에서 시작해, 질문하고 실수해도 보호받는 신뢰, 기여할 기회를 얻고 그 가치를 인정받는 단계를 지나, 기존 방식에 의문을 제기하는 도전 단계에 이른다는 흐름이지요. 경력이 길어지면 앞의 두 단계는 이미 통과했다고 여기기 쉬운데, 정작 발이 묶이는 곳은 마지막 문턱입니다. 회의실에서 하고 싶은 말을 삼킨 채 나온 날들의 정체를 이 표는 꽤 정확하게 설명해줍니다.


저자가 이 지점에서 리더의 인성이나 배려로 답을 몰지 않는 것이 좋았어요. 심리적 안전감은 시스템으로 보장되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에어비앤비가 인사팀 대신 직원경험팀을 두고 업무 과정의 불안 요소를 데이터로 추적하는 사례, 링크드인이 커리어 경로를 시각화해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는 막막함을 구조적으로 걷어내는 사례가 이어집니다. 현장에 필요한 약속으로는 구성원을 전문성 있는 파트너로 대우하는 실질적 존중, 사고가 났을 때 누구의 잘못인지보다 시스템의 어느 부분이 문제였는지를 파헤치는 비난 없는 피드백, 그리고 명문화된 그라운드 룰을 꼽습니다. 심리적 안전감이 리더의 기분에 좌우되지 않도록 규칙으로 못 박아야 한다는 문구는 짧지만 서늘했습니다. 그 기분에 하루의 온도가 결정되는 부서를 우리는 이미 알고 있으니까요.


권한 위임을 다룬 장은 이 책에서 가장 목소리가 단단해지는 대목입니다. 업무 방식은 실무자에게 맡기면서 예산과 인력 운용 권한은 놓지 않는 관행을 두고 저자는 이렇게 씁니다.


"실질적 자원 결정권이 없는 위임은 책임만 있고 권한은 없는 반쪽짜리에 불과하다."


이어지는 진단은 더 직설적입니다. 한국 기업에서 단순 반복 업무는 전결 규정대로 처리되지만 주요 의사결정은 여전히 최종 결재선을 거치고, 중간 리더가 판단하고 결정하는 사안이 거의 없다는 관찰이지요. 그 결과 실무자는 문제의 본질을 파고들기보다 보고서 꾸미기에 매몰되고, 현장 맥락을 담당자보다 모르는 최상위 결정권자가 자신의 과거 경험에 빗대어 결론을 내리는 순환이 반복된다고 합니다. 보고서 꾸미기라는 다섯 글자는 부연이 필요 없을 만큼 정확했습니다.


다만 뒷부분에서 한 번 걸음이 멈췄어요. 수평적 문화는 안락한 파라다이스가 아니라는 절입니다. 직급이 역량을 보증하지 않는 환경에서 준비가 덜 된 사람에게 위임은 자유가 아닌 방치가 된다고 저자는 솔직하게 인정합니다. 수평 문화를 옹호하는 책이 그 문화의 가혹함까지 적어둔 셈이니 서술은 정직합니다. 그런데 그 방치의 자리에 놓인 사람을 어떻게 건져 올릴지에 대한 이야기는 글로벌 기업의 단계적 위임을 소개하는 정도에서 마무리됩니다. 오래 일해온 사람 중에도 결정의 무게를 져본 경험이 거의 없는 이들이 많고, 그 공백은 개인의 게으름 탓으로 돌리기 어려운 구조의 산물일 텐데요. 프로의 세계라는 규정만으로는 조금 성급하게 넘어간 느낌이 남았습니다. 물론 이 책이 조직 설계자를 향한 책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자연스러운 초점 이동일 수도 있겠습니다.


몰입을 다룬 마지막 흐름에서 이 도서의 주장은 한 문장으로 좁혀집니다. 리더가 먼저 할 일은 무언가를 새로 얹는 쪽이 아니고, 구성원이 매일 부딪히는 걸림돌을 하나씩 확인해 덜어주는 쪽이라는 이야기예요. 배달의민족의 월요일 오후 출근, 직방의 가상 오피스, 휴넷의 주 4일 근무제 같은 국내 사례가 붙어 있어 훨씬 가깝게 읽혔습니다. 두나무가 무이자 주택자금 대출로 주거 불안을 덜어준다는 사례는 이 땅의 직장인에게 유독 실감이 클 것 같고요. 결국 조직문화란 행복을 만들어내는 일이라기보다 그 앞을 막고 선 것들을 치우는 일이라는 저자의 정의가, 앞의 모든 논지를 하나로 묶어냅니다.


보통 판형에 보통 두께라 부담 없이 넘길 수 있었고, 그동안 읽어온 조직문화 관련 도서들이 대체로 이상적인 그림에서 멈췄던 것과 비교하면 이번 한 권은 실행의 언어에 더 오래 머무는 편이었어요. 경영자와 HR 담당자를 향해 쓰인 안내서인데, 실제로는 팀 하나를 맡고 있거나 위와 아래 사이에서 결정을 전달하는 위치에 선 사람이 더 많은 밑줄을 그을 것 같습니다. 조직을 바꿀 권한이 없다고 느끼는 자리에서도, 자기 팀의 회의 한 시간에는 여전히 쓸 수 있는 문장들이 꽤 남아 있습니다.


늦더위가 아직 물러가지 않았지만 저녁 공기의 결이 조금씩 바뀌는 시기입니다. 하반기 조직 개편과 평가 이야기가 슬슬 오르내리기 시작하는 무렵이기도 하지요. 이맘때 이 책을 펴두면 제도 하나를 새로 만들 궁리보다, 우리 팀이 매일 넘어지는 지점이 어디인지 먼저 적어보게 될 것 같아요. 걷어낼 것을 찾는 계절로 8월의 끝은 나쁘지 않아 보입니다.


사람이 떠나는 자리는 연봉 협상 테이블이 아니라 매일의 평범한 장면이고, 그 장면을 손보는 일이 조직문화라고 말하는 실무자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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