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랄 맞을 용기 - 세상이 당신의 선을 넘으려 할 때, 기꺼이 ‘지랄맞을’ 용기를 내십시오
조영훈 지음 / 모티브 / 2026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표지를 받아 들고 한동안 인물의 얼굴만 봤습니다. 검은 곱슬머리에 양쪽 귀를 손가락으로 막았는데 표정이 화난 쪽은 아니에요. 그냥 안 듣기로 정한 얼굴이죠. 그런데 이마에는 주황색 종이비행기가 정확히 꽂혀 있습니다. 귀는 막았지만 날아오는 말을 다 피하지는 못했다는 뜻으로 읽혔어요. 세상의 말을 안 듣고 사는 사람이 아니라, 다 들리는데도 자기 자리를 지키려는 사람의 그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굵고 둥근 서체가 험한 제목을 오히려 담백하게 눌러 주고 있고요.


<지랄 맞을 용기>는 사실 제목만 보고 조금 망설였던 책입니다. 마흔을 훌쩍 넘긴 사람에게 세게 나가라고 부추기는 자기계발서일까 싶었어요. 표지 문구도 세상이 당신의 선을 넘으려 할 때 기꺼이 용기를 내라는 쪽이니까요. 판형이 손에 편하고 두께도 부담 없어서 일단 펼쳤는데, 첫 챕터 몇 장을 지나면서 예상이 어긋났습니다.


밥줄 앞에서의 용기를 다룬 장의 도입부가 그랬어요. 저자는 자본과 권력 앞에서 신념을 굽히는 사람들 이야기를 먼저 꺼냅니다. 그들이 굽히는 이유는 상대가 실제로 생계를 좌우하는 권한을 쥐고 있기 때문이라고 짚고, 카너먼과 트버스키의 손실 회피 개념까지 끌어와 인간이 원래 잃는 일에 극심한 공포를 느끼도록 설계되었다고 설명합니다. 그러고 나서 이렇게 적어 둡니다.


"돈 앞에서는 누구나 작아질 수밖에 없다는 것, 그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일지도 모릅니다."


용기를 권하는 책이 첫머리에서 용기 내지 못한 쪽을 먼저 감싸 주더군요. 그 순서 덕분에 방어할 필요 없이 책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베토벤 편은 그래서 더 담담하게 읽혔어요. 궁전에 머물게 해 주고 최고급 악기를 선물하고 매년 거액을 조건 없이 보내던 후원자가 어느 날 점령군 장교들 앞에서 연주를 지시합니다. 거절의 대가로 그는 막대한 경제적 타격을 입었고, 저자는 그 대가를 숨기지 않고 적어 둡니다. 다른 후원자와 수입원이 남아 있었으니 기반 전체가 무너진 것은 아니라는 단서까지 스스로 달아 놓았어요. 영웅으로 부풀리지 않는 이 정직함이 이 책의 미덕이라고 봅니다. 이후 그가 남긴 편지의 핵심은 짧습니다. 당신이 나의 시간과 기술에 돈을 지불할 수는 있어도 나의 영혼과 존엄성까지 소유할 수는 없다는 것이죠.


이 대목에서 저자가 붙인 해설이 오래 남았습니다. 직장을 때려치우거나 갑자기 상대에게 욕하라는 말이 아니라고 분명히 못 박아요. 지불받은 값은 노동력과 시간, 전문적 기술에 대한 정당한 대가이지 인격과 존엄을 마음대로 구겨도 좋다는 면벌부가 아니라는 문장. 그리고 당장 모든 것을 뒤로하고 뛰어들 수는 없더라도 마음속에 흉상을 부숴버릴 망치 하나쯤은 품고 살아야 한다는 권유. 실제로 부수라는 게 아니라 부술 수 있다는 감각을 잃지 말라는 뜻으로 들려서, 오래 일한 사람의 현실에 닿는 말이었습니다.


결이 완전히 다른 챕터도 있어요. 억까를 다룬 장의 사마천 편입니다. 여기서 용기는 목소리를 높이는 형태로 나타나지 않습니다. 사형을 면할 길이 사실상 하나뿐이었던 상황, 당대 지식인들이 궁형보다 자결을 미덕으로 여겼던 분위기, 모두가 그의 자결을 의심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차곡차곡 쌓아 놓고, 그가 세상의 상식을 배반했다고 서술합니다.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는 사람은 누구나 한 번 죽지만 어떤 죽음은 태산보다 무겁고 어떤 죽음은 새털보다 가볍다는 말이 있고, 가장 참기 어려웠던 것은 품은 뜻을 다 펴지 못하고 죽는 일이었다고 적혀 있어요. 망가진 몸을 끌고 다시 책상 앞에 앉은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십여 년 뒤 130권, 52만 자가 넘는 기록이 완성됐고, 그를 벌한 권력은 스러졌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아쉬운 대목도 있었어요. 챕터마다 결말로 갈수록 어휘의 온도가 올라갑니다. 압도적이라는 말, 맹렬하다는 말, 세상이 무릎 꿇을 것이라는 표현이 반복돼서 후반부에서는 조금 몰아붙이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위로를 기대하고 집어 든 독자라면 숨이 찰 수도 있겠다 싶었어요. 또 하나는 형식 자체의 한계인데, 이 책에 모인 스물넷은 결국 결과가 자신을 증명해 준 사람들입니다. 견딤이 성취로 회수되지 않은 삶은 어디에 놓아야 하는지에 대한 답이 충분히 나오지는 않아요. 다만 그 질문에 책의 마지막 인물이 부분적으로 대답하고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마지막 자리는 에디트 피아프예요. 이 편은 화려한 성취 이야기가 아닙니다. 어머니에게 버림받은 유년, 어린 시절 잃었던 시력, 두 살에 떠난 첫아이, 사랑하는 사람의 비행기 사고, 통증 치료로 시작된 약물 의존, 마흔 몇에 병든 노파처럼 보였다는 몸. 저자는 그가 파리 벨빌의 가로등 밑에서 태어났다는 유명한 일화를 그대로 옮기지 않고 실제 출생 기록을 밝혀 바로잡습니다. 각막염의 원인에 대해서도 다른 견해를 각주로 달아 두었어요. 그런 태도가 있어서 뒤에 이어지는 감동적인 장면도 믿고 읽게 됩니다.


1960년 올랭피아 극장, 깡마른 체구에 검은 드레스를 입고 위태롭게 서 있던 사람이 반주가 시작되자 후회하지 않는다고 노래합니다. 사람들이 준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자신에게는 다 마찬가지라고, 과거를 불태워 버렸으니 모든 것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겠다고요. 흉터를 부끄러워하지도 변명하지도 않고, 동정 어린 시선을 걷어내고 자기 삶의 주도권을 되찾은 목소리였다고 저자는 씁니다. 첫 장에서 자본 앞의 주도권으로 시작한 책이 마지막에 운명 앞의 주도권으로 닫히는 구성이었어요.


여섯 개의 장을 지나며 지랄맞음이라는 말은 세 가지 얼굴을 갖게 됩니다. 관계를 끊고 나오는 쪽, 남아서 견디는 쪽, 이미 부서진 다음에 다시 시작하는 쪽. 그리고 책이 마지막에 도착한 곳은 저항이 아니라 긍정이었습니다. 도비라마다 붙은 한 줄 해설이 태도에서 정신력으로, 다시 긍정으로 옮겨 가는 흐름과도 맞아떨어져요.


서평단으로 여러 책을 만나다 보면 읽는 내내 고개만 끄덕이게 되는 책이 있고, 읽고 나서 자기 자리를 한 번 돌아보게 만드는 책이 있습니다. 이 도서는 후자에 가까웠어요. 굽힌 적이 있어 스스로를 오래 탓해 온 사람이라면 첫 장의 저 문장 하나만으로도 짐을 덜 수 있을 것 같아요. 반대로 요즘 참는 일이 습관이 되어 어디까지 양보했는지 셈하기 어려워진 분들에게는 중간의 챕터들이 자기 기준을 다시 그려 보는 자리가 될 겁니다. 목소리를 키우는 법을 배우려고 펼치면 조금 어긋날 수도 있어요. 이 한 권이 말하는 용기는 소리의 크기보다 선을 아는 일에 가깝습니다.


여름 끝이라 아침저녁 공기가 조금 달라졌습니다. 한 해의 절반을 이미 견뎌 낸 시기이기도 하고요. 이맘때 이런 책을 만난 게 나쁘지 않았습니다. 남은 계절을 지나는 동안 마음 한구석에 망치 하나쯤 넣어 두고 살아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굽혔던 자신을 먼저 이해시켜 준 다음, 지켜야 할 선이 어디였는지 조용히 짚어 주는 책입니다.


#지랄맞을용기 #조영훈 #모티브 #모티브출판사 #에세이추천 #신간에세이 #자기확신 #존엄 #베토벤 #사마천 #에디트피아프 #위인이야기 #직장인책추천 #40대독서 #책스타그램 #서평단 #북유럽카페 #독서기록 #책추천 #에세이신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