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니치트키
머니치트키 지음 / 모티브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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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표지는 짙은 초록에 금색입니다. 열쇠 하나가 '머니'의 획을 대신하고, 배경에는 지폐 문양이 그림자처럼 눌려 있습니다. 아래쪽 금박 띠에 적힌 한 줄은 이렇습니다. "돈의 규칙을 모른 채 평생 일만 할 것인가, 구조를 읽고 부의 주도권을 쥘 것인가?" 이런 문장은 보통 마음을 좀 불편하게 만듭니다. 그런데 <머니치트키>는 첫 장을 넘기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태도를 보여주더군요.


1부에서 저자는 소득 곡선의 모양을 이야기합니다. 노동은 더 많이 일하면 더 많이 벌지만 시간과 에너지가 유한하니 완만한 직선을 벗어나기 어렵고, 자본은 이익이 재투자되며 규모가 커질수록 절대 수익도 함께 커진다는 설명이에요. 복리를 두고 "복리는 단순한 계산 공식이 아니라, 구조적 가속 장치다"라고 못 박은 대목에서 이 책이 무엇을 말하려는지 짐작이 갔습니다. 같은 10년을 놓고도 시간을 판매한 10년과 자본을 축적한 10년은 다른 결과를 만든다고 하면서, 저자는 이렇게 정리합니다. "이 차이는 노력의 문제가 아니다. 위치의 문제다."


오래 일해온 사람에게 이런 문장은 자칫 성실함을 부정하는 말로 읽힐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 앞에 놓인 한 대목이 오래 기억에 남았어요. 승진과 성과급, 인센티브가 모두 숫자로 표현되고 비교가 쉬우니 숫자에 집착하게 된다는 진단을 내린 뒤, 경쟁 속에서 자기 몸값을 올려온 일 자체는 "엄청난 노력의 결과이자 충분한 성공이다"라고 분명하게 인정하고 넘어갑니다. 그 인정 위에 세워진 논의라서 뒤에 오는 서늘한 이야기들을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뉴스 헤드라인은 결과를 보여줄 뿐 원인을 보여주지 않는다는 지적, 그리고 "그러나 숫자는 결과다. 먼저 움직이는 것은 언제나 구조다"라는 문장이 이 장의 결론입니다.


2장에는 돈의 이동 순서를 다룬 절이 있습니다. 대출을 받은 기업은 설비에 투자하고 개인은 집을 사고 금융기관은 자산을 매입하니, 새로 만들어진 돈은 경제 전체에 고르게 퍼지지 않고 특정 경로를 따라 흐른다는 이야기예요. 그 시차가 가격과 자산의 격차를 만든다고 봅니다. 저자는 인플레이션이 모든 물가가 동시에 오르는 공평한 현상이 아니라고 단언합니다. 노동으로 번 돈의 가치가 가장 나중에, 그리고 가장 철저하게 녹아내리는 구조적 시차의 결과물이라는 것. 집값과 물가 소식이 늘 월급 소식보다 앞서 도착하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해준 글은 처음이었습니다.


4부로 가면 어조가 조금 부드러워집니다. 시장의 불확실성에 대응할 도구 중 가장 단순한 것으로 시간을 꼽고, 자본의 크기나 정보의 우위와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주어진다는 점을 근거로 들어요. 이어지는 관찰이 이 책에서 가장 한국적인 대목입니다. 우리는 집에는 20년을 잘도 주고, 전세는 2년마다 갱신하고, 청약통장은 10년 넘게 묶어두고, 자식 결혼 자금은 태어날 때부터 적금으로 붓습니다. 그러면서 같은 사람이 주식 계좌 앞에서는 두 달을 못 버틴다고 저자는 씁니다. "집에 10년, 주식에 10주"라는 여섯 글자짜리 요약이 뒤따르는데, 이 비대칭의 기저에 1997년 외환위기의 기억이 자리 잡고 있다는 진단에는 고개가 끄덕여졌습니다. 멀쩡했던 회사가 하루아침에 사라지고 평생 모은 퇴직금이 반토막 난 경험이 한 세대의 몸에 새겨졌고, 자식 세대가 그 경계심을 물려받았다는 것이죠. 여기에는 훈계가 없습니다. 우리가 왜 그렇게 되었는지를 먼저 헤아려주는 문장에 가까웠어요.


이 절의 중심 이미지는 장독대입니다. 담그는 일이 공정의 절반이고 나머지 절반은 기다림이라는 문장, 5년 묵힌 간장과 1년 된 간장의 맛 차이는 만든 사람의 솜씨보다 장독대에 놓여 있던 햇수에서 더 크게 벌어진다는 관찰이 나옵니다. 중요한 것은 세월이 흘렀다는 사실만이 아니라 그동안 뚜껑을 함부로 열거나 자리를 옮기지 않았다는 데 있다고 하고, 복리도 이 햇수를 닮았다고 연결합니다. 숫자로 보여주는 예시도 있어요. 25세에 매월 30만 원을 10년만 넣고 멈춘 사람을 35세에 시작해 30년을 부은 사람이 끝내 따라잡지 못한다는 계산인데, 원금을 세 배 넘게 넣고 기간도 세 배 길었는데 그렇습니다. 예금 쪽 계산도 같이 놓여 있습니다. 물가 상승률을 연 2.5퍼센트로 잡으면 통장에 30년 잠들어 있던 1억 원의 실질 구매력은 4,700만 원 수준으로 조그라든다고. 당장 잃지 않을 뿐 조용히 녹는다는 표현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다만 한 가지가 걸렸습니다. 이 책은 정직한 편입니다. 닛케이 지수가 1989년 고점을 회복하는 데 34년이 걸렸다는 사실을 스스로 꺼내고, 오래 들고 있으면 반드시 이긴다는 식의 약속은 경계할 필요가 있다고 적어둡니다. 아이가 태어나고 전세금이 오르며 양가 부모가 늙어가는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 가계가 저축액을 두 배로 단번에 늘리는 일은 대개 불가능한 숫자라는 문장도 있어요. 그런데 그 사정을 짚어놓고 나서 내놓는 처방은 자동이체와 디폴트옵션 쪽으로 비교적 빠르게 정리됩니다. 매달 자동으로 빠져나가게 걸어두면 흔들리는 결심의 문제가 상당 부분 처리된다는 조언은 맞는 말이지만, 빠져나갈 여유 자체를 만들지 못하는 시기에 놓인 사람에게는 한 층이 더 필요했을 것 같습니다. 20년이라는 구간을 근거로 드는 통계도 남은 시간이 그만큼 넉넉하지 않은 독자에게는 다르게 읽히겠지요. 저자가 이 지점을 몰라서 생략한 것은 아닐 텐데, 입문서라는 성격상 여기서 멈춘 게 아쉬웠습니다.


책의 끝자락에는 "오늘 심지 않은 장독은 10년 뒤에도 묵은 장이 들어 있지 않다"는 문장이 놓여 있습니다. 늦었다는 말을 자주 하는 나이에 읽기에 이 문장은 의외로 위로가 됐어요. 지금 담글 수 있는 크기의 장독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만드니까요. 시간 하나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경고, 한 곳에 전부 둔 채 시간을 보내면 시간이 오히려 위험을 키울 수 있다는 문장까지 함께 놓여 있어서 균형도 나쁘지 않습니다.


서평단으로 여러 책을 만나다 보면 읽고 나서 무언가 하고 싶어지는 책과, 읽고 나서 조용해지는 책이 갈립니다. 이 한 권은 후자에 가까웠어요. 당장 계좌를 열고 싶어지는 종류가 아니라 그동안 왜 숫자만 쫓아왔는지를 조용히 되짚게 만드는 쪽이었습니다. 경제 용어에 밀려 책을 덮어본 사람이라면 첫 장부터 편하게 들어갈 수 있을 겁니다. 이미 몇 년째 시장에 발을 담그고 있으면서도 매달 들어갈지 말지를 새로 고민하고 있다면 4부의 그 대목이 특히 남을 것 같고, 자녀에게 돈 이야기를 어떻게 꺼내야 할지 막막했던 부모에게도 문장을 빌려 쓸 만한 구절이 여럿 보입니다.


9월의 첫 주입니다. 낮에는 아직 여름의 잔열이 남았는데 아침 공기는 확실히 결이 달라졌어요. 장독 비유가 계속 마음에 걸리는 계절이기도 합니다. 무언가를 담가두면 계절이 몇 번 바뀌는 동안 사람 손이 하는 일은 거의 없다는 그 말이, 가을 문턱에서는 조금 다르게 들립니다.


숫자를 더 잘 읽는 법이 아니라 돈이 흐르는 순서를 보여주는 경제 입문서, 그리고 늦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지금 담글 수 있는 크기를 묻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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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말 잘하는 사람이 이긴다
신현종 지음 / 모티브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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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핑크가 이렇게 소리를 내는 색이었나 싶었습니다. 북유럽 카페 서평단으로 받아 든 <결국 말 잘하는 사람이 이긴다>는 표지부터 목청을 높이는 책이에요. 마젠타에 가까운 바탕에 흰 글씨가 굵게 박히고, 그 아래로 SPEAK WELL이라는 영문 레터링이 도형처럼 겹쳐 있습니다. 오른쪽 아래에 말하는 옆얼굴 아이콘이 작게 붙어 있고요. 띠지에 적힌 "더 이상 말 때문에 손해 보지 마라!"라는 한 줄이 이 도서가 누구를 부르고 있는지를 숨기지 않습니다.


솔직히 처음에는 반신반의했습니다. 제목에 '이긴다'가 들어간 책은 대개 기술을 팔지 않던가요. 그런 마음으로 첫 장을 펼쳤는데, 이야기는 예상과 다른 문으로 들어왔습니다. 판형은 손에 쥐기 좋은 크기, 두께도 무겁지 않은 정도라 며칠에 걸쳐 천천히 넘기기 편했어요.


첫 챕터의 제목이 '설명의 늪에서 벗어나라'입니다. 저자는 시작부터 독자를 진단대에 올려놓습니다. 상대가 반대하면 다시 설명하려 들었는지, 남의 고민에 해결책을 먼저 내놓았는지, 옳음을 증명하려 검색창을 켜서 보여준 적이 있는지 차례로 묻습니다. 목록을 따라가다 보면 몇 항목은 그냥 지나쳐지지 않고요. 세 개 이상 걸리면 당신은 설득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저 설명하는 사람이라고, 저자는 담백하게 판정을 내립니다. 그리고 이런 문장을 놓아요. "대화에서 '맞는 말'만큼 위험한 카드는 없습니다."


이 대목이 오래 남았습니다. 직장에서 스무 해 넘게 말로 먹고사는 일을 하다 보면, 정확하게 말하는 훈련은 어지간히 받게 됩니다. 근거를 갖추고 순서를 정리해 브리핑하는 법은 배웠는데, 그 정확함이 관계를 지켜 주는지는 따로 배운 적이 없어요. 저자가 짚는 이유가 담백합니다. 우리는 평생 시험지 위의 정답을 찾고 아는 것을 논리정연하게 요약해 발표하는 법만 배우고 자랐다는 것이죠. 그래서 답답한 순간에 꺼내 드는 카드가 늘 더 자세한 설명뿐이라는 지적에는 반박할 말이 마땅치 않았습니다. 챕터의 마지막 문장은 상대를 억지로 바꾸려 하지 말고 스스로 바뀌게 만들어야 한다는 당부인데, 이 말이 책 전체의 축이 됩니다.


중간쯤에 놓인 '묻지 않은 조언은 참견이다'는 결이 조금 다릅니다. 간지에 적힌 문구가 이렇습니다. 허락받지 않고 문을 열고 들어가면 아무리 좋은 선물을 들고 있어도 침입자가 된다고요. 나이가 쌓이면서 조언하는 자리에 서는 일이 늘어난 사람이라면 이 비유가 편치 않게 읽힐 겁니다. 저자는 "내가 겪어봐서 아는데."로 시작하는 말들, 굳이 전하지 않아도 될 뒷이야기를 '너를 위해서'라는 포장으로 옮기는 습관을 하나씩 꺼내 놓습니다. 그중 문장 하나가 특히 단단했어요. "해결책 없는 정보는 조언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상대가 그 사실을 알고 난 뒤 행동을 바꿀 수 있는지, 문제를 풀 수 있는지, 관계가 나아질 수 있는지를 먼저 셈해 보라는 겁니다.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도움이 아니라 부담일 가능성이 크다고요. 아는 것을 전부 말하는 것이 배려는 아니라는 문장 앞에서는 저도 몇 사람의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선의로 건넨 말이 상대의 자신감을 깎고 눈치를 늘리는 쪽으로 도착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처음 해 봤어요. 다만 저자는 무조건 침묵을 권하지 않습니다. 상대가 감당할 수 없는 정보일 때라는 조건을 분명히 걸어 두거든요. 그 선을 어디에 그을지는 결국 읽는 사람의 몫이겠습니다.


뒤쪽으로 갈수록 책은 설득의 실전으로 넘어가는데, 정작 가장 따뜻했던 챕터가 여기 숨어 있었습니다. '상처를 먼저 살펴라'라는 제목 아래 적힌 간지 문구는 반창고를 팔려거든 상처부터 찾으라는 짧은 명령문이에요. 저자는 무릎이 까져 우는 아이에게 달려와 반창고의 방수 기능과 접착력을 자랑하는 부모의 장면을 그립니다. 아이에게 필요한 건 성능이 아니라 아픔을 먼저 봐주는 한마디라는 것이죠. 이어지는 정리가 뜨끔합니다. "얼마나 깊게 다쳤는지도 모르면서 반창고의 성능만 자랑하고 있는 셈입니다." 손가락이 베인 사람은 반창고 제조사를 따지지 않고, 머리가 깨질 듯 아픈 사람은 진통제 성분표를 읽지 않는다는 비유가 뒤를 받치고요. 챕터를 닫는 문장은 이 책에서 제가 가장 좋아하는 한 줄입니다. "처방전은 언제나 진단 뒤에 나와야 합니다."


물론 고개가 갸웃해지는 지점도 있었습니다. 세상 사람의 99%가 설명의 늪에 빠져 있다는 표현은 근거보다 수사에 가까워 보였고, 문장의 강도를 전반적으로 세게 잡는 편이라 조용한 결의 글을 선호하는 독자에게는 조금 크게 들릴 수 있겠어요. 무엇보다 배우자에게 운동을 권하는 예시 대화가 지나치게 매끄럽게 성공합니다. 불편함을 먼저 물어 주고 상대가 그것을 인정한 뒤에도 끝내 움직이지 않는 경우가 실제로는 훨씬 많은데, 그 다음 수에 대한 답은 이 챕터에 담기지 않았습니다. 반창고 비유를 세일즈 쪽으로 당겨 읽으면 약한 지점을 공략하라는 말처럼 들릴 여지도 남고요. 그 균형을 어떻게 잡을지는 저자가 에필로그에서 관계를 지키는 일로 책을 닫는 이유와 함께 생각해 볼 문제 같습니다.


서평단으로 여러 책을 만나다 보면 읽고 나서 무언가 해 보고 싶어지는 책과 그냥 잘 읽히는 책이 갈립니다. 이 한 권은 앞쪽이었어요. 말을 잘하는 법을 알려 준다고 해 놓고 실은 덜 말하는 법, 늦게 말하는 법, 먼저 묻는 법을 가르치더군요. 화술을 다듬고 싶어 집어 든 사람이라면 21가지 기술을 순서대로 챙겨 가면 좋겠고, 회의실에서 옳은 말을 하고도 서늘한 공기를 느껴 본 적 있는 분에게는 첫 챕터만으로도 값을 하는 책입니다. 오래 알던 사람과의 대화가 자꾸 어긋나 마음이 무거운 시기라면 중간의 두 챕터를 먼저 펼쳐 보셔도 괜찮겠어요.


낮에는 아직 여름의 끝이 남아 있는데 밤공기가 먼저 서늘해지는 요즘입니다. 계절이 바뀔 때면 안부를 묻고 싶은 사람이 한둘 떠오르지요. 그럴 때 무슨 말을 해 줄까를 고르기보다 요즘 어디가 힘든지를 먼저 물어보는 편이 낫다는 것을, 이 도서를 덮으며 배웠습니다.


말을 잘하는 기술을 앞세우지만, 결국 상대를 먼저 살피는 태도에 대한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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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건물주의 정석 : 기본편 ㅣ 온라인 건물주의 정석
알파남(김지수) 지음 / 모티브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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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검정 바탕에 파란 점들이 모여 글자를 만들고 있습니다. DIGITAL LANDLORD. 떨어져서 보면 단어인데, 가까이 들여다보면 작은 사각형 수백 개가 촘촘히 박혀 있어요. 건물주라는 말을 다루면서 콘크리트 건물 사진 한 장 쓰지 않고 픽셀로 밀고 간 표지를 한참 보다가, 이 책이 하려는 이야기가 겉면에 이미 다 나와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점 하나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그게 쌓이면 글자가 되고 건물이 된다는 것.


<온라인 건물주의 정석> 기본편은 월급 250만 원을 받던 자동차 부품회사 운전기사가 자본금 없이 블로그를 시작해 6년을 지나온 기록입니다. 140x210 판형에 336쪽이라 손에 쥐기 편하고, 문장도 강의를 듣는 것처럼 술술 넘어갑니다. 다만 내용까지 가볍지는 않았어요.


책의 앞쪽에서 저자는 자신의 수익 구조를 통째로 펼쳐 보입니다. 티스토리와 네이버 블로그를 1층 상가로, 워드프레스와 블로그스팟을 2층 사무동으로, 유튜브를 본관 사옥으로 두고, 뉴스레터와 오픈채팅은 금고라고 부릅니다. 알고리즘이 뒤집혀도 남는 팬 명단이라서 그렇다고 하더군요. 구조를 늘어놓기 직전에 던지는 문장이 있습니다.


"이 모든 게, 글 한 편에서 시작됩니다."


여덟아홉 개로 뻗은 수익의 뿌리를 따라가면 결국 잘 쓴 글 하나라는 겁니다. 예시로 든 것이 미스트롯 투표 글과 갤럭시 S20 구매 방법 글이에요. 그 글은 지금도 살아 있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새 폰을 살 때마다 자급제와 통신사 중에 뭐가 이득인지 검색하니까, 모델명만 바뀌었을 뿐 질문의 본질은 6년 전이나 지금이나 같다는 거죠. 내년에도 3년 뒤에도 누군가는 반드시 검색할 질문에 답하는 글을 쓰라는 조언이 여기서 나옵니다.


초심자에게 주는 처방은 단호합니다. 네이버 블로그 하나로 3~6개월을 밀어붙이고, 월 50만 원과 100만 원을 확실히 벌어본 다음에 확장하라는 것. 여러 개를 동시에 하지 말라는 당부에는 진심으로 부탁드린다는 말까지 붙어 있습니다. 다섯 개를 함께 벌이면 각각에 20%의 힘밖에 못 주는데, 어떤 플랫폼이든 궤도에 오르려면 최소 3~6개월이 필요하다는 계산이더군요. 그러면서도 특정 도구를 신앙처럼 붙들지는 말라고 합니다.


"도구를 신봉하지 말고, 원리를 신봉하세요."


2020년의 저자는 티스토리로 시작했지만 지금 시작하는 사람에게는 권하지 않고, 2028년이 되면 정답이 또 달라질지 모른다고 스스로 적어둡니다. 실용서에서 이런 문장을 만나면 오히려 신뢰가 갑니다. 방법을 파는 책이 방법의 유통기한을 먼저 밝히는 셈이니까요.


읽다가 잠깐 마음이 서늘해진 대목도 있었습니다. 저자는 콘텐츠를 자산과 소모품으로 나누는데, 오늘 있었던 일을 적은 일기나 브이로그성 잡담, 오늘의 나의 하루 같은 글을 소모품 쪽에 놓습니다. 1년 동안 500개를 올렸는데 매출은 훨씬 적었던 사람들 이야기가 이어지고요. 수익화라는 목적 안에서는 맞는 분류지만, 기록 자체가 좋아서 블로그를 써온 사람에게는 조금 매섭게 읽힐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모든 글이 검색 질문에 답해야 하는 것은 아닐 텐데, 이 부분은 책이 겨냥한 독자가 분명하다는 뜻으로 받아들였어요.


솔직히 갸웃한 지점도 있습니다. 저자는 자신이 6년 걸린 길을 이제는 1~3년으로 줄일 수 있다고 말하고, 근거로 AI를 듭니다. 블로그 초안도 유튜브 대본도 썸네일도 AI가 처리하니 혼자서 예전의 팀 열 명 몫을 한다는 거죠. 맞는 말인데, 도구가 빨라지면 같은 판에 들어오는 사람도 함께 늘어난다는 사정은 크게 다뤄지지 않습니다. 연차별로 월 500만 원, 월 3,000만 원이 표처럼 늘어선 대목도 계획표라기보다 저자 한 사람이 지나온 경로에 가깝다고 봐야 할 것 같고요. 국내 플랫폼의 수익 천장을 두고 뚜껑이 덮여 있다고 표현한 진단 역시 6년간의 관찰에서 나온 견해이지 공개된 규칙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이 책을 끝까지 읽게 만든 건 뒷부분이었습니다. 5부는 성공담이 아니라 무너진 사람들 이야기예요. 100명이 읽으면 80명은 시작조차 하지 않고, 20명이 첫 글을 쓰고, 그중 절반이 한 달 안에 그만둔다는 숫자로 문을 엽니다. 실패의 이유가 방법을 몰라서가 아니라고 못 박고, 자기 책을 팔면서도 유료 강의부터 사지 말라고 말리는 대목에서 이 사람이 지금 장사만 하고 있는 건 아니구나 싶었습니다.


다섯 가지 유형 중에 오래 남은 것은 네 번째와 다섯 번째였습니다. 온라인은 본질적으로 외로운 사업이라는 진단 아래 저자가 겪은 일들이 담담하게 나열됩니다. 이유도 없이 블로그가 정지되고, 애드센스 계정이 죽고, 믿었던 사람이 노하우를 베껴 가고, 진심으로 쓴 글에 악플이 달리고. 가장 아프게 적힌 건 가족의 반대였어요. 언제까지 그거 할 거냐는 물음, 안정적인 회사를 다시 알아보라는 권유. 가까운 사람의 걱정이 오히려 큰 타격이 되기도 한다는 문장 앞에서는 저도 잠깐 숨을 골랐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시련은 실패의 신호가 아니에요. 여러분이 진짜 뭔가를 시작했다는 신호예요."


다섯 번째 유형에 대한 조언은 수익화 책에서 나올 법한 말이 아니었습니다. 당장 이번 달 카드값이 급한 상태라면 온라인을 시작하지 말고 차라리 아르바이트를 하나 더 잡으라고, 이번 달 돈은 오프라인에서 벌고 온라인은 남는 시간에 씨앗 심는 용도로 쓰라고 합니다. 저자 본인도 운전대를 잡고 컨테이너를 뛰면서 블로그를 시작했고, 그 글 하나로 30만 원이 들어왔을 때에야 상하차를 놓을 용기가 생겼다고 하더군요. 최소한의 생존을 확보해야 심어둔 씨앗을 뽑지 않고 기다릴 수 있다는 말이, 표지에 큼직하게 적힌 100억이라는 숫자보다 훨씬 오래 남았습니다.


완벽주의자에게 건네는 한마디도 그렇습니다. 오늘 30점짜리 글이라도 발행하세요. 90점짜리 글은 100편 뒤에 나옵니다. 첫 글의 목적은 잘 쓰는 데 있지 않고 두 번째 글을 쓸 수 있는 근육을 만드는 데 있다는 설명이 붙어 있어요. 무언가를 새로 시작하기에 늦었다고 느끼는 나이대에 이 문장은 꽤 실용적인 위로가 됩니다.


북유럽 카페를 통해 받아 든 도서였는데, 서평을 쓰려고 읽다가 어느 순간 제 블로그 화면을 떠올리게 만드는 책이었습니다. 부업이나 파이어족이라는 말이 흔해진 요즘, 이런 종류의 안내서는 대개 조급함을 부추기며 끝나기 쉬운데, 이 한 권은 반대로 속도를 늦추라고 여러 번 붙잡습니다. 하나부터, 3~6개월은 묻어두고, 급하면 시작하지 말고, 혼자 하지 말라고요. 회사 밖의 시간을 어떻게 쓸지 고민 중인 분들, 블로그를 몇 년째 취미로만 굴려온 분들이라면 특히 뒷부분에서 얻어갈 게 있을 겁니다.


계절이 바뀌는 게 아침 공기에서 먼저 느껴지는 요즘입니다. 낮에는 여전히 여름이 남아 있는데 해 지는 시간이 눈에 띄게 당겨졌어요. 씨앗을 심으라는 말이 나오는 책을 하필 가을 문턱에서 읽었다는 게 조금 얄궂기도 했지만, 심는 계절이 따로 정해져 있지는 않겠지요. 올해가 넉 달쯤 남았으니 30점짜리 글 몇 편은 남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온라인 수익의 지도를 펼쳐 보이면서, 정작 가장 힘주어 말하는 것은 하나부터 천천히 그리고 오래 버티라는 당부인 실전형 안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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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파민 과잉 시대, 당신의 뇌가 무너진다 - 디지털 기기의 유혹과 과잉 자극은 어떻게 뇌를 오작동시키는가
리처드 사이토윅 지음, 김광국 옮김 / 알레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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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책이 도착한 날, 상자를 열자마자 무게가 먼저 전해졌습니다. 504쪽에 판형도 커서 한 손으로 들고 읽을 만한 책은 아니었어요. 북유럽 카페를 통해 받은 책인데, 첫날은 그냥 책상 위에 세워두기만 했습니다. 이건 며칠 안에 후루룩 넘길 책이 아니라, 시간을 두고 천천히 걸어 들어가야 하는 책이라는 감이 들었습니다.


표지 이야기를 먼저 하고 싶습니다. 청록색 종이 질감 위에 스마트폰 한 대와 석판이 나란히 놓여 있고, 화면 쪽으로 흑백의 두개골이 겹쳐 보입니다. 원제가 라는 걸 알면 이 배치가 단번에 읽힙니다. 석기시대의 뇌가 화면의 시대에 놓여 있다는 말이지요. 표지 아래 검은 띠에는 "가장 섬뜩하지만 그만큼 희망적이다"라는 추천 문구가 실려 있는데, 다 읽고 나서 보니 섬뜩함과 희망의 배합이 저 문장과 거의 같았습니다.


저자 리처드 사이토윅은 조지워싱턴대학 신경과 교수이고, 공감각 연구로 이름이 알려진 신경과학자입니다. 이 책에서 그가 붙잡고 있는 개념은 진화적 불일치입니다. 수렵채집 환경에 맞춰 오랜 시간 다듬어진 뇌가, 알림과 무한 스크롤로 설계된 환경에 그대로 놓였다는 것. 그래서 집중이 흐트러지는 일은 개인의 의지 문제가 아니라 설계와 구조의 문제라는 쪽으로 논의가 흘러갑니다. 첫 장의 제목이 '설계된 중독'인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제가 가장 오래 붙들려 있던 대목은 원함과 좋아함을 갈라놓는 부분이었습니다. 저자는 뇌 안에 두 개의 회로가 따로 돌아간다고 정리합니다. 도파민이 움직이는 욕망-보상 회로는 범위가 넓고 무의식적으로 작동해서 쉽게 불이 붙습니다. 반면 오피오이드 펩타이드가 관여하는 쾌락-만족 회로는 범위가 좁고 켜기가 어렵고 금세 식습니다. 원하는 일은 끝없이 가능한데 좋아하는 일은 잘 되지 않는 구조인 셈이지요. 스탠퍼드 연구진이 관찰한 바에 따르면 성인들은 화면을 20초도 채 붙들지 못하고 앱과 사이트 사이를 옮겨 다녔고, 다른 조사에서는 하루 화면 접촉 횟수가 4만 번에 이르는 사례까지 확인됩니다. 잠결에도 화면을 만진다는 문장을 읽을 때는 잠시 손을 멈췄습니다.


이 회로 이야기가 개인의 결함으로 읽히지 않도록, 저자는 곧바로 사회 쪽으로 시야를 넓힙니다. 브릭먼과 캠벨이 말한 쾌락의 트레드밀, 소득은 올라가도 행복 순위는 제자리이거나 뒤로 밀리는 미국의 역설, 광고가 욕망의 끝없음을 어떻게 이용하는지가 이어집니다. 위를 향한 비교가 행복을 깎아낸다는 설명 다음에 놓인 어머니의 짧은 한마디는 조금 다른 결로 남았습니다. 다리가 아직 있다는 식의, 아래를 보며 버티는 문장이었어요. 40대 후반쯤 되면 이런 문장이 왜 필요한지를 설명 없이 알게 됩니다.


'정적은 필수 영양소다'라는 장은 이 책의 온도가 가장 따뜻해지는 곳입니다. 필수 영양소란 몸이 스스로 만들어내지 못해 반드시 밖에서 들여와야 하는 것이라는 정의를 가져와, 저자는 정적을 그 목록에 올려놓습니다. 정적은 여유 있는 사람의 취향이 아니라 결핍의 문제라는 이야기입니다. 유기농에는 예민하면서 머릿속으로 들어오는 것에는 무심한 태도를 그는 디지털 정크푸드라 부르고, 악보의 쉼표를 뜻하는 음악 용어를 빌려와 우리 하루에서 사라진 것이 무엇인지 짚습니다. 서구의 시선이 사물에만 머무는 동안 일본의 '마'는 사이의 공간 자체를 보아왔다는 대목, 사비와 와비, 시부이 같은 말들이 정적을 중심으로 하나의 별자리처럼 놓이는 대목에서 이 장은 신경과학책의 문법을 잠시 벗어납니다. 음과 음 사이의 침묵을 말한 아이작 스턴의 문장도 여기 있습니다.


처방은 소박합니다. 고독은 가진 상태이고 외로움은 모자란 상태라는 구분을 세운 뒤, 저자는 신호등 앞, 줄을 선 몇 초, 계단을 오르는 동안처럼 하루에 흩어져 있는 30초짜리 틈을 그냥 비워두라고 권합니다. 휴식은 게으름이 아니라는 것, 짧은 멈춤이 학습과 수행을 실제로 끌어올린다는 것, 그 사이에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가 일한다는 것이 근거로 붙습니다. 숲과 관련한 수치들도 구체적입니다. 15분 정도의 숲 노출로 혈압과 코르티솔이 내려가고, 45분 정도면 인지 기능 쪽 변화가 관찰되고, 한 달간 녹지에서 시간을 보낸 사람들의 기분 변화는 몇 시간씩 이어졌다고 합니다. 영국이 녹지 접근성을 넓힌 뒤 정신과 치료가 줄었다는 자료까지 오면, 정적이 취향이 아니라 공공의 문제라는 말이 설득력을 얻습니다.


뒤쪽의 사회학습 장은 이 책에서 가장 목소리가 높아지는 자리입니다. 프뢰벨이 1852년에 '어린이의 정원'이라는 이름을 만들었다는 이야기로 시작해, 독일 유치원에서 아이들이 여섯 살 무렵에야 읽고 쓰기를 배우는 풍경, 숲에서 스스로 놀이를 만들어내는 아이들, 열두 살까지 디지털 기기를 들이지 않는 발도르프의 원칙이 차례로 나옵니다. 기술을 늦게 접한 아이가 결국 더 능숙해진다는 리처드 하우스의 관찰, 실리콘밸리 경영자들이 정작 자기 아이에게는 열 가지가 넘는 기기 규칙을 두었다는 대목이 나란히 놓입니다. 그리고 곧 불편한 숫자가 옵니다. 저소득층 아이들의 화면 시간이 부유한 집 아이들보다 훨씬 길다는 자료, 학군이 13억 달러를 들여 아이패드 6만 5천 대를 사들였다가 남긴 결과, 화면 시간을 줄여달라는 학부모 요청이 대부분 거절되었다는 기록. 디지털 격차가 결국 기술을 누가 통제하는가의 문제로 바뀐다는 이 장의 지적은, 사교육 이야기로 늘 시끄러운 우리 쪽에 옮겨놓아도 그대로 들어맞습니다. 손글씨가 타이핑보다 기억에 더 잘 남는다는 연구, 예전 세대보다 소근육이 약해진 아이들에 대한 현장 교사들의 증언은 그래서 단순한 향수로 읽히지 않았습니다.


다만 저는 이 책에 몇 가지 의심도 함께 품고 덮었습니다. 진단의 규모와 처방의 크기가 잘 맞지 않습니다. 산업 전체가 설계한 중독을 500쪽에 걸쳐 논증한 뒤에 개인에게 건네지는 것은 30초의 멈춤과 숲 산책인데, 이 간격을 저자가 충분히 메웠다고 보기는 어려웠어요. 숲 관련 연구가 실험실 지표에서 건강 효과로 넘어가는 구간도 조금 성급하게 느껴졌고, 발도르프는 논쟁적인 학교인데도 이 책에서는 거의 반론 없이 그려집니다. 미국과 독일의 사례가 중심이라 우리 교육 환경으로 바로 옮기기 어려운 부분도 있습니다. 서두에 증상 목록이 길게 이어지는 편집도, 두께에 눌리기 쉬운 독자에게는 진입 문턱이 될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그래도 이 책을 권하고 싶은 마음이 남습니다. 집중이 예전 같지 않다는 자각을 능력이나 나이 탓으로 돌리고 있던 분이라면, 이 책은 그 자책을 상당 부분 걷어내 줍니다. 아이 손에 기기를 언제 어떻게 쥐어줄지 매번 흔들리는 부모에게도 판단의 근거를 여러 개 남겨줍니다. 화면 밖에서 무언가를 만들거나 손으로 쓰는 일을 오래 미뤄둔 사람에게는, 그 일을 다시 시작해도 된다는 허락처럼 읽힐 대목이 분명히 있습니다.


9월로 넘어오면서 저녁 공기가 눈에 띄게 순해졌습니다. 창을 열어두고 이 책의 정적 장을 다시 펼치니, 정적이 필수 영양소라는 말이 비유가 아니라 처방전처럼 들렸어요. 두꺼운 책이니 서둘러 읽지 않으셔도 됩니다. 하루에 몇 쪽씩, 알림을 잠시 꺼둔 채로 읽으면 이 책은 자기 이야기를 스스로 증명해 보입니다.


흐트러진 집중력을 의지의 실패가 아니라 뇌와 환경의 불일치로 다시 읽게 해주고, 정적과 손의 감각을 회복의 출발점으로 돌려놓는 두꺼운 안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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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고 노력하는 사자성어 명언필사 : 성장편 - 단단한 말이 단단한 나를 만든다
김한수 지음 / 하늘아래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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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필사책 표지에 들판이 있는 건 처음 봤습니다. 연둣빛 언덕과 밭이 층층이 겹치고 그 위에 작은 집 몇 채, 꽃이 핀 나무, 새 한 마리가 판화처럼 눌러 찍혀 있어요. 아래쪽은 은은한 연노랑이라 전체가 한낮의 들판처럼 밝습니다. 그 맨 위, 표지에 적힌 한 줄이 이렇습니다. 단단한 말이 단단한 나를 만든다.


책은 보통 크기에 보통 두께예요. 손에 쥐면 부담이 없고, 펼쳐 놓으면 한 항목이 정확히 두 쪽으로 떨어집니다. 왼쪽에 해설, 오른쪽에 필사 지면. 이 짝이 끝까지 흐트러지지 않아서, 오늘 어디까지 했는지 헤아릴 필요가 없습니다.


해설 지면의 짜임이 마음에 들었어요. 성어를 한글과 한자로 올린 뒤, 글자마다 훈을 끼워 넣습니다. 이합집산이라면 흩어지고[離] 모이며[合] 모이고[集] 흩어짐[散], 이렇게요. 뜻이 조립되는 과정이 눈에 먼저 들어옵니다. 이어서 직역, 넓어진 의미, 실제로 쓰이는 맥락까지 세 걸음으로 설명이 붙는데 어조가 시종 담백합니다. 감동을 주려고 애쓰는 문장이 없어요.


그런데 실려 있는 말들의 결이 예상과 달랐습니다. 남의 충고를 흘려듣는 태도를 가리키는 마이동풍, 제 밭에만 물을 끌어들이는 아전인수, 하나를 얻고 또 하나를 바라는 등롱망촉, 바람 앞의 등불 같은 풍전등화, 모였다 흩어지는 인연을 말하는 이합집산, 우열을 가리기 어려운 백중지세. 사람을 밀어주는 말보다 사람을 세워 두고 멈추게 하는 말이 많습니다.


'성장편'이라는 부제와 이 목록이 살짝 어긋나 보인 건 사실이에요. 배움과 노력을 격려하는 성어를 기대하고 펼친 독자라면 조금 의아할 수 있습니다. 다만 며칠 넘겨 보고는 편집자의 셈이 짐작됐습니다. 마흔을 훌쩍 넘긴 나이에 무엇이 부족해서 못 자라는 경우는 드물어요. 대개는 알고도 반복하는 태도 때문이니까요. 마이동풍 옆에 붙은 무심불경의 풀이가 그래서 오래 남습니다. 마음이 없으면 아무리 중요한 말을 해도 효과가 없다. 상대에게 하는 말인 줄 알았는데, 읽다 보면 듣는 자리에 스스로를 앉히게 됩니다.


아전인수 항목에는 다른 곳과 달리 '한자의 발견'이라는 코너가 놓였어요. 我라는 글자가 창과 같은 무기를 들고 있는 모양인데, 몸을 구부려 자신을 드러낸다는 데서 '자신'의 뜻을 얻었다는 설명입니다. 자기를 세우는 글자에 무기가 들어 있다는 사실이 조용히 걸립니다. 이런 곁가지 코너가 항목마다 이름을 바꿔 가며 나오는 편집도 지루함을 덜어 줍니다.


오른쪽 지면은 성격이 다릅니다. 성어를 제목처럼 올리고 그 아래에 세계 명언 한 대목, 다시 그 아래로 필사 줄이 이어져요. 하석상대 지면에는 조지 버나드 쇼의 이름으로 이런 문장이 실려 있었습니다. "급하게 문제를 해결하려 하면 오히려 더 큰 문제를 만든다. 중요한 것은 신중히 상황을 파악하고 최선의 방법을 선택하는 것이다." 회사에서 급한 일과 중요한 일을 구분하지 못해 치른 대가를 떠올리면, 이 문장은 필사보다 반성 쪽에 가깝습니다.


금상첨화 지면에서는 진정한 아름다움이 이미 완벽한 것에 있지 않고 사랑의 손길을 거쳐 완벽해진다는 문장을 만났습니다. 널리 알려진 문구라 원 출처를 제가 확인하진 못했지만, 비단에 꽃을 더한다는 성어와 나란히 두었을 때 뜻이 훨씬 부드럽게 풀립니다. 이 짝짓기가 이 도서의 진짜 솜씨라고 봅니다.


필사 지면 아래에는 네 글자가 흐린 회색으로 깔려 있어서 그대로 덧쓰면 됩니다. 종이가 얇아 다음 장이 살짝 비치는데, 저는 그 흔적이 오히려 좋았어요. 어제 쓴 것이 오늘 뒤에 남아 있는 느낌이라서요. 한자가 부담스러운 분도 훈음이 아래에 달려 있어 막히지 않습니다. 시험 준비하는 중고생 아이가 있는 집이라면 어른이 먼저 펼쳐 두고 슬쩍 옆에 밀어 놓기에도 좋은 한 권입니다.


서평단으로 여러 권을 만나다 보면 읽고 정리하는 일이 어느새 속도전이 되곤 합니다. 손으로 옮겨 적는 책은 그 속도를 강제로 눌러 줘서, 이번에는 마감보다 문장 쪽에 마음이 더 붙어 있었습니다.


9월로 넘어오니 낮의 열기는 남았어도 저녁 공기가 먼저 물러납니다. 이맘때 책상에 오래 앉기가 한결 수월해지지요. 하루 열 분 남짓, 네 글자와 명언 한 줄을 옮겨 적는 시간으로 가을 초입을 열어 보는 것도 괜찮겠습니다.


응원보다 경계에 가까운 말들을 손으로 옮겨 적으며, 알고도 되풀이하던 태도를 조용히 점검하게 하는 필사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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