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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파민 과잉 시대, 당신의 뇌가 무너진다 - 디지털 기기의 유혹과 과잉 자극은 어떻게 뇌를 오작동시키는가
리처드 사이토윅 지음, 김광국 옮김 / 알레 / 2026년 8월
평점 :
"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책이 도착한 날, 상자를 열자마자 무게가 먼저 전해졌습니다. 504쪽에 판형도 커서 한 손으로 들고 읽을 만한 책은 아니었어요. 북유럽 카페를 통해 받은 책인데, 첫날은 그냥 책상 위에 세워두기만 했습니다. 이건 며칠 안에 후루룩 넘길 책이 아니라, 시간을 두고 천천히 걸어 들어가야 하는 책이라는 감이 들었습니다.
표지 이야기를 먼저 하고 싶습니다. 청록색 종이 질감 위에 스마트폰 한 대와 석판이 나란히 놓여 있고, 화면 쪽으로 흑백의 두개골이 겹쳐 보입니다. 원제가 라는 걸 알면 이 배치가 단번에 읽힙니다. 석기시대의 뇌가 화면의 시대에 놓여 있다는 말이지요. 표지 아래 검은 띠에는 "가장 섬뜩하지만 그만큼 희망적이다"라는 추천 문구가 실려 있는데, 다 읽고 나서 보니 섬뜩함과 희망의 배합이 저 문장과 거의 같았습니다.
저자 리처드 사이토윅은 조지워싱턴대학 신경과 교수이고, 공감각 연구로 이름이 알려진 신경과학자입니다. 이 책에서 그가 붙잡고 있는 개념은 진화적 불일치입니다. 수렵채집 환경에 맞춰 오랜 시간 다듬어진 뇌가, 알림과 무한 스크롤로 설계된 환경에 그대로 놓였다는 것. 그래서 집중이 흐트러지는 일은 개인의 의지 문제가 아니라 설계와 구조의 문제라는 쪽으로 논의가 흘러갑니다. 첫 장의 제목이 '설계된 중독'인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제가 가장 오래 붙들려 있던 대목은 원함과 좋아함을 갈라놓는 부분이었습니다. 저자는 뇌 안에 두 개의 회로가 따로 돌아간다고 정리합니다. 도파민이 움직이는 욕망-보상 회로는 범위가 넓고 무의식적으로 작동해서 쉽게 불이 붙습니다. 반면 오피오이드 펩타이드가 관여하는 쾌락-만족 회로는 범위가 좁고 켜기가 어렵고 금세 식습니다. 원하는 일은 끝없이 가능한데 좋아하는 일은 잘 되지 않는 구조인 셈이지요. 스탠퍼드 연구진이 관찰한 바에 따르면 성인들은 화면을 20초도 채 붙들지 못하고 앱과 사이트 사이를 옮겨 다녔고, 다른 조사에서는 하루 화면 접촉 횟수가 4만 번에 이르는 사례까지 확인됩니다. 잠결에도 화면을 만진다는 문장을 읽을 때는 잠시 손을 멈췄습니다.
이 회로 이야기가 개인의 결함으로 읽히지 않도록, 저자는 곧바로 사회 쪽으로 시야를 넓힙니다. 브릭먼과 캠벨이 말한 쾌락의 트레드밀, 소득은 올라가도 행복 순위는 제자리이거나 뒤로 밀리는 미국의 역설, 광고가 욕망의 끝없음을 어떻게 이용하는지가 이어집니다. 위를 향한 비교가 행복을 깎아낸다는 설명 다음에 놓인 어머니의 짧은 한마디는 조금 다른 결로 남았습니다. 다리가 아직 있다는 식의, 아래를 보며 버티는 문장이었어요. 40대 후반쯤 되면 이런 문장이 왜 필요한지를 설명 없이 알게 됩니다.

'정적은 필수 영양소다'라는 장은 이 책의 온도가 가장 따뜻해지는 곳입니다. 필수 영양소란 몸이 스스로 만들어내지 못해 반드시 밖에서 들여와야 하는 것이라는 정의를 가져와, 저자는 정적을 그 목록에 올려놓습니다. 정적은 여유 있는 사람의 취향이 아니라 결핍의 문제라는 이야기입니다. 유기농에는 예민하면서 머릿속으로 들어오는 것에는 무심한 태도를 그는 디지털 정크푸드라 부르고, 악보의 쉼표를 뜻하는 음악 용어를 빌려와 우리 하루에서 사라진 것이 무엇인지 짚습니다. 서구의 시선이 사물에만 머무는 동안 일본의 '마'는 사이의 공간 자체를 보아왔다는 대목, 사비와 와비, 시부이 같은 말들이 정적을 중심으로 하나의 별자리처럼 놓이는 대목에서 이 장은 신경과학책의 문법을 잠시 벗어납니다. 음과 음 사이의 침묵을 말한 아이작 스턴의 문장도 여기 있습니다.
처방은 소박합니다. 고독은 가진 상태이고 외로움은 모자란 상태라는 구분을 세운 뒤, 저자는 신호등 앞, 줄을 선 몇 초, 계단을 오르는 동안처럼 하루에 흩어져 있는 30초짜리 틈을 그냥 비워두라고 권합니다. 휴식은 게으름이 아니라는 것, 짧은 멈춤이 학습과 수행을 실제로 끌어올린다는 것, 그 사이에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가 일한다는 것이 근거로 붙습니다. 숲과 관련한 수치들도 구체적입니다. 15분 정도의 숲 노출로 혈압과 코르티솔이 내려가고, 45분 정도면 인지 기능 쪽 변화가 관찰되고, 한 달간 녹지에서 시간을 보낸 사람들의 기분 변화는 몇 시간씩 이어졌다고 합니다. 영국이 녹지 접근성을 넓힌 뒤 정신과 치료가 줄었다는 자료까지 오면, 정적이 취향이 아니라 공공의 문제라는 말이 설득력을 얻습니다.

뒤쪽의 사회학습 장은 이 책에서 가장 목소리가 높아지는 자리입니다. 프뢰벨이 1852년에 '어린이의 정원'이라는 이름을 만들었다는 이야기로 시작해, 독일 유치원에서 아이들이 여섯 살 무렵에야 읽고 쓰기를 배우는 풍경, 숲에서 스스로 놀이를 만들어내는 아이들, 열두 살까지 디지털 기기를 들이지 않는 발도르프의 원칙이 차례로 나옵니다. 기술을 늦게 접한 아이가 결국 더 능숙해진다는 리처드 하우스의 관찰, 실리콘밸리 경영자들이 정작 자기 아이에게는 열 가지가 넘는 기기 규칙을 두었다는 대목이 나란히 놓입니다. 그리고 곧 불편한 숫자가 옵니다. 저소득층 아이들의 화면 시간이 부유한 집 아이들보다 훨씬 길다는 자료, 학군이 13억 달러를 들여 아이패드 6만 5천 대를 사들였다가 남긴 결과, 화면 시간을 줄여달라는 학부모 요청이 대부분 거절되었다는 기록. 디지털 격차가 결국 기술을 누가 통제하는가의 문제로 바뀐다는 이 장의 지적은, 사교육 이야기로 늘 시끄러운 우리 쪽에 옮겨놓아도 그대로 들어맞습니다. 손글씨가 타이핑보다 기억에 더 잘 남는다는 연구, 예전 세대보다 소근육이 약해진 아이들에 대한 현장 교사들의 증언은 그래서 단순한 향수로 읽히지 않았습니다.
다만 저는 이 책에 몇 가지 의심도 함께 품고 덮었습니다. 진단의 규모와 처방의 크기가 잘 맞지 않습니다. 산업 전체가 설계한 중독을 500쪽에 걸쳐 논증한 뒤에 개인에게 건네지는 것은 30초의 멈춤과 숲 산책인데, 이 간격을 저자가 충분히 메웠다고 보기는 어려웠어요. 숲 관련 연구가 실험실 지표에서 건강 효과로 넘어가는 구간도 조금 성급하게 느껴졌고, 발도르프는 논쟁적인 학교인데도 이 책에서는 거의 반론 없이 그려집니다. 미국과 독일의 사례가 중심이라 우리 교육 환경으로 바로 옮기기 어려운 부분도 있습니다. 서두에 증상 목록이 길게 이어지는 편집도, 두께에 눌리기 쉬운 독자에게는 진입 문턱이 될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그래도 이 책을 권하고 싶은 마음이 남습니다. 집중이 예전 같지 않다는 자각을 능력이나 나이 탓으로 돌리고 있던 분이라면, 이 책은 그 자책을 상당 부분 걷어내 줍니다. 아이 손에 기기를 언제 어떻게 쥐어줄지 매번 흔들리는 부모에게도 판단의 근거를 여러 개 남겨줍니다. 화면 밖에서 무언가를 만들거나 손으로 쓰는 일을 오래 미뤄둔 사람에게는, 그 일을 다시 시작해도 된다는 허락처럼 읽힐 대목이 분명히 있습니다.
9월로 넘어오면서 저녁 공기가 눈에 띄게 순해졌습니다. 창을 열어두고 이 책의 정적 장을 다시 펼치니, 정적이 필수 영양소라는 말이 비유가 아니라 처방전처럼 들렸어요. 두꺼운 책이니 서둘러 읽지 않으셔도 됩니다. 하루에 몇 쪽씩, 알림을 잠시 꺼둔 채로 읽으면 이 책은 자기 이야기를 스스로 증명해 보입니다.
흐트러진 집중력을 의지의 실패가 아니라 뇌와 환경의 불일치로 다시 읽게 해주고, 정적과 손의 감각을 회복의 출발점으로 돌려놓는 두꺼운 안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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