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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말 잘하는 사람이 이긴다
신현종 지음 / 모티브 / 2026년 8월
평점 :
"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핑크가 이렇게 소리를 내는 색이었나 싶었습니다. 북유럽 카페 서평단으로 받아 든 <결국 말 잘하는 사람이 이긴다>는 표지부터 목청을 높이는 책이에요. 마젠타에 가까운 바탕에 흰 글씨가 굵게 박히고, 그 아래로 SPEAK WELL이라는 영문 레터링이 도형처럼 겹쳐 있습니다. 오른쪽 아래에 말하는 옆얼굴 아이콘이 작게 붙어 있고요. 띠지에 적힌 "더 이상 말 때문에 손해 보지 마라!"라는 한 줄이 이 도서가 누구를 부르고 있는지를 숨기지 않습니다.

솔직히 처음에는 반신반의했습니다. 제목에 '이긴다'가 들어간 책은 대개 기술을 팔지 않던가요. 그런 마음으로 첫 장을 펼쳤는데, 이야기는 예상과 다른 문으로 들어왔습니다. 판형은 손에 쥐기 좋은 크기, 두께도 무겁지 않은 정도라 며칠에 걸쳐 천천히 넘기기 편했어요.
첫 챕터의 제목이 '설명의 늪에서 벗어나라'입니다. 저자는 시작부터 독자를 진단대에 올려놓습니다. 상대가 반대하면 다시 설명하려 들었는지, 남의 고민에 해결책을 먼저 내놓았는지, 옳음을 증명하려 검색창을 켜서 보여준 적이 있는지 차례로 묻습니다. 목록을 따라가다 보면 몇 항목은 그냥 지나쳐지지 않고요. 세 개 이상 걸리면 당신은 설득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저 설명하는 사람이라고, 저자는 담백하게 판정을 내립니다. 그리고 이런 문장을 놓아요. "대화에서 '맞는 말'만큼 위험한 카드는 없습니다."
이 대목이 오래 남았습니다. 직장에서 스무 해 넘게 말로 먹고사는 일을 하다 보면, 정확하게 말하는 훈련은 어지간히 받게 됩니다. 근거를 갖추고 순서를 정리해 브리핑하는 법은 배웠는데, 그 정확함이 관계를 지켜 주는지는 따로 배운 적이 없어요. 저자가 짚는 이유가 담백합니다. 우리는 평생 시험지 위의 정답을 찾고 아는 것을 논리정연하게 요약해 발표하는 법만 배우고 자랐다는 것이죠. 그래서 답답한 순간에 꺼내 드는 카드가 늘 더 자세한 설명뿐이라는 지적에는 반박할 말이 마땅치 않았습니다. 챕터의 마지막 문장은 상대를 억지로 바꾸려 하지 말고 스스로 바뀌게 만들어야 한다는 당부인데, 이 말이 책 전체의 축이 됩니다.

중간쯤에 놓인 '묻지 않은 조언은 참견이다'는 결이 조금 다릅니다. 간지에 적힌 문구가 이렇습니다. 허락받지 않고 문을 열고 들어가면 아무리 좋은 선물을 들고 있어도 침입자가 된다고요. 나이가 쌓이면서 조언하는 자리에 서는 일이 늘어난 사람이라면 이 비유가 편치 않게 읽힐 겁니다. 저자는 "내가 겪어봐서 아는데."로 시작하는 말들, 굳이 전하지 않아도 될 뒷이야기를 '너를 위해서'라는 포장으로 옮기는 습관을 하나씩 꺼내 놓습니다. 그중 문장 하나가 특히 단단했어요. "해결책 없는 정보는 조언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상대가 그 사실을 알고 난 뒤 행동을 바꿀 수 있는지, 문제를 풀 수 있는지, 관계가 나아질 수 있는지를 먼저 셈해 보라는 겁니다.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도움이 아니라 부담일 가능성이 크다고요. 아는 것을 전부 말하는 것이 배려는 아니라는 문장 앞에서는 저도 몇 사람의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선의로 건넨 말이 상대의 자신감을 깎고 눈치를 늘리는 쪽으로 도착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처음 해 봤어요. 다만 저자는 무조건 침묵을 권하지 않습니다. 상대가 감당할 수 없는 정보일 때라는 조건을 분명히 걸어 두거든요. 그 선을 어디에 그을지는 결국 읽는 사람의 몫이겠습니다.

뒤쪽으로 갈수록 책은 설득의 실전으로 넘어가는데, 정작 가장 따뜻했던 챕터가 여기 숨어 있었습니다. '상처를 먼저 살펴라'라는 제목 아래 적힌 간지 문구는 반창고를 팔려거든 상처부터 찾으라는 짧은 명령문이에요. 저자는 무릎이 까져 우는 아이에게 달려와 반창고의 방수 기능과 접착력을 자랑하는 부모의 장면을 그립니다. 아이에게 필요한 건 성능이 아니라 아픔을 먼저 봐주는 한마디라는 것이죠. 이어지는 정리가 뜨끔합니다. "얼마나 깊게 다쳤는지도 모르면서 반창고의 성능만 자랑하고 있는 셈입니다." 손가락이 베인 사람은 반창고 제조사를 따지지 않고, 머리가 깨질 듯 아픈 사람은 진통제 성분표를 읽지 않는다는 비유가 뒤를 받치고요. 챕터를 닫는 문장은 이 책에서 제가 가장 좋아하는 한 줄입니다. "처방전은 언제나 진단 뒤에 나와야 합니다."
물론 고개가 갸웃해지는 지점도 있었습니다. 세상 사람의 99%가 설명의 늪에 빠져 있다는 표현은 근거보다 수사에 가까워 보였고, 문장의 강도를 전반적으로 세게 잡는 편이라 조용한 결의 글을 선호하는 독자에게는 조금 크게 들릴 수 있겠어요. 무엇보다 배우자에게 운동을 권하는 예시 대화가 지나치게 매끄럽게 성공합니다. 불편함을 먼저 물어 주고 상대가 그것을 인정한 뒤에도 끝내 움직이지 않는 경우가 실제로는 훨씬 많은데, 그 다음 수에 대한 답은 이 챕터에 담기지 않았습니다. 반창고 비유를 세일즈 쪽으로 당겨 읽으면 약한 지점을 공략하라는 말처럼 들릴 여지도 남고요. 그 균형을 어떻게 잡을지는 저자가 에필로그에서 관계를 지키는 일로 책을 닫는 이유와 함께 생각해 볼 문제 같습니다.

서평단으로 여러 책을 만나다 보면 읽고 나서 무언가 해 보고 싶어지는 책과 그냥 잘 읽히는 책이 갈립니다. 이 한 권은 앞쪽이었어요. 말을 잘하는 법을 알려 준다고 해 놓고 실은 덜 말하는 법, 늦게 말하는 법, 먼저 묻는 법을 가르치더군요. 화술을 다듬고 싶어 집어 든 사람이라면 21가지 기술을 순서대로 챙겨 가면 좋겠고, 회의실에서 옳은 말을 하고도 서늘한 공기를 느껴 본 적 있는 분에게는 첫 챕터만으로도 값을 하는 책입니다. 오래 알던 사람과의 대화가 자꾸 어긋나 마음이 무거운 시기라면 중간의 두 챕터를 먼저 펼쳐 보셔도 괜찮겠어요.
낮에는 아직 여름의 끝이 남아 있는데 밤공기가 먼저 서늘해지는 요즘입니다. 계절이 바뀔 때면 안부를 묻고 싶은 사람이 한둘 떠오르지요. 그럴 때 무슨 말을 해 줄까를 고르기보다 요즘 어디가 힘든지를 먼저 물어보는 편이 낫다는 것을, 이 도서를 덮으며 배웠습니다.
말을 잘하는 기술을 앞세우지만, 결국 상대를 먼저 살피는 태도에 대한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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