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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고 노력하는 사자성어 명언필사 : 성장편 - 단단한 말이 단단한 나를 만든다
김한수 지음 / 하늘아래 / 2026년 8월
평점 :
"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필사책 표지에 들판이 있는 건 처음 봤습니다. 연둣빛 언덕과 밭이 층층이 겹치고 그 위에 작은 집 몇 채, 꽃이 핀 나무, 새 한 마리가 판화처럼 눌러 찍혀 있어요. 아래쪽은 은은한 연노랑이라 전체가 한낮의 들판처럼 밝습니다. 그 맨 위, 표지에 적힌 한 줄이 이렇습니다. 단단한 말이 단단한 나를 만든다.
책은 보통 크기에 보통 두께예요. 손에 쥐면 부담이 없고, 펼쳐 놓으면 한 항목이 정확히 두 쪽으로 떨어집니다. 왼쪽에 해설, 오른쪽에 필사 지면. 이 짝이 끝까지 흐트러지지 않아서, 오늘 어디까지 했는지 헤아릴 필요가 없습니다.
해설 지면의 짜임이 마음에 들었어요. 성어를 한글과 한자로 올린 뒤, 글자마다 훈을 끼워 넣습니다. 이합집산이라면 흩어지고[離] 모이며[合] 모이고[集] 흩어짐[散], 이렇게요. 뜻이 조립되는 과정이 눈에 먼저 들어옵니다. 이어서 직역, 넓어진 의미, 실제로 쓰이는 맥락까지 세 걸음으로 설명이 붙는데 어조가 시종 담백합니다. 감동을 주려고 애쓰는 문장이 없어요.

그런데 실려 있는 말들의 결이 예상과 달랐습니다. 남의 충고를 흘려듣는 태도를 가리키는 마이동풍, 제 밭에만 물을 끌어들이는 아전인수, 하나를 얻고 또 하나를 바라는 등롱망촉, 바람 앞의 등불 같은 풍전등화, 모였다 흩어지는 인연을 말하는 이합집산, 우열을 가리기 어려운 백중지세. 사람을 밀어주는 말보다 사람을 세워 두고 멈추게 하는 말이 많습니다.
'성장편'이라는 부제와 이 목록이 살짝 어긋나 보인 건 사실이에요. 배움과 노력을 격려하는 성어를 기대하고 펼친 독자라면 조금 의아할 수 있습니다. 다만 며칠 넘겨 보고는 편집자의 셈이 짐작됐습니다. 마흔을 훌쩍 넘긴 나이에 무엇이 부족해서 못 자라는 경우는 드물어요. 대개는 알고도 반복하는 태도 때문이니까요. 마이동풍 옆에 붙은 무심불경의 풀이가 그래서 오래 남습니다. 마음이 없으면 아무리 중요한 말을 해도 효과가 없다. 상대에게 하는 말인 줄 알았는데, 읽다 보면 듣는 자리에 스스로를 앉히게 됩니다.

아전인수 항목에는 다른 곳과 달리 '한자의 발견'이라는 코너가 놓였어요. 我라는 글자가 창과 같은 무기를 들고 있는 모양인데, 몸을 구부려 자신을 드러낸다는 데서 '자신'의 뜻을 얻었다는 설명입니다. 자기를 세우는 글자에 무기가 들어 있다는 사실이 조용히 걸립니다. 이런 곁가지 코너가 항목마다 이름을 바꿔 가며 나오는 편집도 지루함을 덜어 줍니다.
오른쪽 지면은 성격이 다릅니다. 성어를 제목처럼 올리고 그 아래에 세계 명언 한 대목, 다시 그 아래로 필사 줄이 이어져요. 하석상대 지면에는 조지 버나드 쇼의 이름으로 이런 문장이 실려 있었습니다. "급하게 문제를 해결하려 하면 오히려 더 큰 문제를 만든다. 중요한 것은 신중히 상황을 파악하고 최선의 방법을 선택하는 것이다." 회사에서 급한 일과 중요한 일을 구분하지 못해 치른 대가를 떠올리면, 이 문장은 필사보다 반성 쪽에 가깝습니다.

금상첨화 지면에서는 진정한 아름다움이 이미 완벽한 것에 있지 않고 사랑의 손길을 거쳐 완벽해진다는 문장을 만났습니다. 널리 알려진 문구라 원 출처를 제가 확인하진 못했지만, 비단에 꽃을 더한다는 성어와 나란히 두었을 때 뜻이 훨씬 부드럽게 풀립니다. 이 짝짓기가 이 도서의 진짜 솜씨라고 봅니다.
필사 지면 아래에는 네 글자가 흐린 회색으로 깔려 있어서 그대로 덧쓰면 됩니다. 종이가 얇아 다음 장이 살짝 비치는데, 저는 그 흔적이 오히려 좋았어요. 어제 쓴 것이 오늘 뒤에 남아 있는 느낌이라서요. 한자가 부담스러운 분도 훈음이 아래에 달려 있어 막히지 않습니다. 시험 준비하는 중고생 아이가 있는 집이라면 어른이 먼저 펼쳐 두고 슬쩍 옆에 밀어 놓기에도 좋은 한 권입니다.

서평단으로 여러 권을 만나다 보면 읽고 정리하는 일이 어느새 속도전이 되곤 합니다. 손으로 옮겨 적는 책은 그 속도를 강제로 눌러 줘서, 이번에는 마감보다 문장 쪽에 마음이 더 붙어 있었습니다.
9월로 넘어오니 낮의 열기는 남았어도 저녁 공기가 먼저 물러납니다. 이맘때 책상에 오래 앉기가 한결 수월해지지요. 하루 열 분 남짓, 네 글자와 명언 한 줄을 옮겨 적는 시간으로 가을 초입을 열어 보는 것도 괜찮겠습니다.
응원보다 경계에 가까운 말들을 손으로 옮겨 적으며, 알고도 되풀이하던 태도를 조용히 점검하게 하는 필사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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