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골 3 : 흐름의 법칙 ㅣ 더 골 (40주년 기념판) 3
에프랏 골드랫-아쉬라그 지음, 이정숙.이주영 옮김 / 동양북스(동양문고)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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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각각 아흐레가 걸리는 일이 세 개 있습니다. 하나씩 차례로 처리하면 첫 번째 일은 아흐레째에 손을 뗍니다. 그런데 셋을 조금씩 번갈아 붙들면 첫 번째 일이 끝나는 데 스무하루가 걸립니다. 세 개 전부가 마무리되는 시점은 어느 방식이든 스무이레째로 같습니다. 얻은 것 없이 앞의 두 건만 늦어진 셈이죠. <더 골3 흐름의 법칙>의 강의실 장면에 나오는 계산인데, 화이트보드에 그려진 사각형 줄을 보던 수강생이 "말도 안 돼요! A 프로젝트를 끝내는 데 9일이 아니라 21일이 걸리네요!"라고 소리칩니다. 책장을 넘기다 저도 비슷한 소리가 나왔습니다.


표지는 그 계산만큼 단호합니다. 흰 바탕을 검정과 붉은색이 갈라놓고, 굵은 세리프체로 눌러 박은 글자 아래 파이프를 문 흑백 사진이 놓여 있어요. 표지에 적힌 한 줄에서는 이제 성과가 속도에 있지 않고 '흐름'에 있다고 못을 박습니다. 경영서라기보다 선언문 쪽에 가까운 인상입니다. 다만 판형은 손에 쥐기 편하고 두께도 만만해서, 표지가 주는 압박과 달리 읽는 동안은 편안했습니다. 260쪽을 앉은 자리에서 상당히 밀어낼 수 있는 종류의 도서예요.


이 책은 엘리 골드렛이 평생 붙들었으나 끝내 완성하지 못한 '흐름의 법칙'을 딸이자 조력자였던 에프랏 골드렛 아쉬라그가 이어받아 내놓은 결과물입니다. 시리즈답게 소설 형식이고요. 매각 위기에 놓인 윌슨 사에서 엔지니어링 부서를 맡은 마크가 MBA 수업을 들으며 회사를 구해보려는 이야기가 축입니다. 이론서로 읽히지 않도록 저자가 애쓴 흔적이 곳곳에 보입니다.


앞부분에서 마크가 처음 손대는 일은 프로젝트 사양을 훑어 '있으면 좋은 것'을 걷어내는 작업입니다. 엔지니어들이 임의로 얹어둔 항목이 여러 건 발견되고, 중요해 보이는 한두 개만 남기고 지웁니다. 여기서 눈에 걸린 건 기술적 판단이 아니라 감정이었어요. 마크는 누구의 기분도 상하게 하고 싶지 않고 갈등도 생기지 않기를 바랍니다. 실제로 불필요한 항목을 지우자고 말해본 사람은 이 망설임을 알 겁니다. 고객과 화상 회의를 하니 이틀 뒤 대부분의 요구를 내려놓겠다는 답이 오는데, 대신 마감이 임박했을 때는 요구 사항을 줄여달라고 해서는 안 된다는 경고가 붙습니다. 같은 요청이 시점에 따라 협의가 되기도 하고 변명이 되기도 한다는 이야기라 이 단서가 오래 남았습니다. 그렇게 프로젝트 두 개를 취소하고도 벌어들인 시간은 약간이었고, 상황을 뒤집기엔 턱없이 부족했다고 적혀 있습니다. 이 정직함이 마음에 들었어요.


본론은 나쁜 멀티태스킹을 다루는 장입니다. 리처드 교수는 피로와 번아웃, 자원 충돌 같은 익숙한 부작용을 먼저 나열한 뒤 그것들이 빙산의 일각일 뿐이라고 자릅니다. 진짜 문제는 이것이 프로젝트에서 시간을 가장 많이 잡아먹는 살인마라는 점이라고요. 마크가 속으로 표현이 극적이라고 삐딱하게 받는 대목이 있어서 설교로 기울지 않습니다. 이어지는 수강생들의 증언이 이 장의 힘입니다. 자리에 앉아 이메일을 절반도 읽기 전에 휴대폰이 울리고, 옆자리에서 부르고, 전화를 대기로 돌려놓고 갔더니 정작 휴대폰은 책상에 있고, 돌아오니 새 메일이 쌓여 있고, 정신을 차리면 오전의 절반이 지났는데 끝낸 일은 없습니다. 강의실에 웃음이 터졌다고 적혀 있어요. 웃을 수 있는 사람이 저 말고도 여럿이라는 뜻이겠죠. 개발자 수강생의 말은 더 아픕니다. "설령 그 멍청이가 나 자신이었을지라도, 왜 그렇게 코딩을 했는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아요." 결국 다 갈아엎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처방은 간명합니다. 진행 중인 일의 개수를 통제하라는 것. 이미 시작한 것 하나를 끝낸 뒤에 새로운 것에 착수하라는 것. 그런데 이미 일정이 꽉 찬 조직에는 훨씬 과격한 조치가 붙습니다. 진행 중인 프로젝트 일부를 동결하라는 겁니다. 어떤 회사는 전체의 20~30퍼센트부터 세워보고, 흐름이 심하게 막힌 곳은 70~80퍼센트를 멈춘 뒤에야 숨이 트인 경우도 봤다고 합니다. 학생들이 침묵에 잠겼다는 서술이 나오는데, 독자도 같이 멈추는 자리입니다. 교수의 표현으로는 먹기에는 쓴 약이지만 흐름을 원활하게 만들기 위해 무조건 한 번은 거쳐야 하는 과정입니다.


제목이 인상적인 장이 하나 더 있습니다. 일찍 시작하는 것에 대한 잘못된 생각을 다루는 대목이에요. 마크가 아버지에게 설명하면서 통념을 먼저 인정하고 들어갑니다. 마감을 맞추려면 수주하는 즉시 착수해야 하고 일찍 시작할수록 제때 끝낼 가능성이 커진다고 믿었다는 것이죠. 아버지가 "그렇지"라고 받는 짧은 대사가 좋았습니다. 이건 무지한 사람의 오해가 아니라 경영자라면 누구나 품는 상식이라는 뜻이니까요. 반박은 한 문장으로 끝납니다. 모두 일찍 시작한다는 건 진행 중인 작업이 그만큼 불어난다는 뜻이고, 그것이 오히려 마감을 맞출 기회를 위태롭게 만든다는 것. 대안으로 나온 방식은 프로젝트를 중앙에서 하나의 목록으로 관리하고, 담당자가 하나를 끝내면 곧바로 다음 것을 받아가는 구조입니다. 제조 라인의 대기열을 사무실로 옮겨온 셈인데, 실무자 입장에서 가장 바로 써먹을 만한 처방으로 보였습니다. 저자가 이 대목에 붙인 문장이 "지극히 상식적인 이야기였다"인 것도 이 시리즈의 화법답습니다.


가장 좋았던 통찰은 뒤쪽에서 나옵니다. 마크가 흐름을 손보자 생산 부서를 맡은 누나에게서 항의 전화가 옵니다. 일주일에 프로젝트 세 개가 한꺼번에 넘어왔다는 겁니다. 여기서 마크가 알아차립니다. 여러 건을 번갈아 진행하면 완료 시점도 비슷하게 몰리고, 그것이 뒤 공정의 작업량에 파도 같은 변동을 만든다는 사실이요. 손 놓고 기다리는 시기와 주문이 쏟아지는 시기가 번갈아 오던 이유가 실은 앞 공정의 습관이었던 겁니다. 부서 간에 오래 쌓인 불평의 시작점을 다시 그려주는 장면이라, 남 탓하던 목록을 조용히 지우게 만듭니다.


물론 전부 수긍하며 읽지는 못했습니다. 걸린 건 동결을 실행하는 주체입니다. 마크는 부서장이고, 게다가 오너의 아들입니다. 아버지가 아들과의 관계를 생각해 재량권을 내주는 장면이 분명히 적혀 있어요. 그 위치가 아니었다면 이 실험은 시작도 못 했을 겁니다. 중간에 끼인 실무자가 자기 판단으로 프로젝트를 세워둘 수 있는 조직이 국내에 얼마나 될지 생각하면 답이 쉽게 나오지 않습니다. 고객이 이틀 만에 요구 대부분을 내려놓는 전개도 이야기로는 매끄럽지만, 우리 발주 관행에 대보면 다소 수월해 보입니다. 하루 단위 처방이 결국 개인의 규율로 돌아오는 점도 아쉬웠어요. 옆자리에서 부르고 전화가 걸려오는 상황 자체를 개인이 통제할 수 없다는 게 그 아침 장면의 핵심인데, 그 부분은 다소 비껴갑니다. 이런 의문을 안고 읽는 편이 오히려 이 책과 잘 맞는 방식일 것 같기도 합니다. 소크라테스식으로 질문을 던지는 책이니까요.


마음에 오래 남은 문장은 이론 쪽이 아니었습니다. 아들의 계획을 들은 아버지가 감명받으면서도 성공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계산하는 대목의 끝에 이런 서술이 놓여 있습니다. 그들에게 시간이 더 있기를 바랐지만, 그에게 가장 부족한 게 바로 시간이었다고요. 흐름을 다루는 책의 정서적 바닥에 결국 시간의 부족이 놓여 있는 배치가 잘 짜여 있습니다. 방법을 알아도 늦게 알면 소용이 없다는 사실, 그리고 알았을 때 남은 시간이 얼마인지는 아무도 보장해주지 않는다는 사실. 성과 이야기를 하는 책에서 예상하지 못했던 위로를 여기서 받았습니다.


읽고 나서 달라진 건 거창하지 않습니다. 손에 잡고 있는 일의 개수를 세어보게 됐어요. 그게 이 책이 요구하는 첫 단계이기도 하고요. 프로젝트 목록이 자꾸 늘어나기만 하는 부서를 맡고 있다면 중반부의 동결과 풀 키트 대목을 천천히 보시면 좋겠습니다. 경영서라는 말에 손이 안 가는 분도 소설이라 생각보다 잘 넘어갑니다. 실적을 재촉받는 자리에 있으면서 정작 왜 안 되는지 설명하기 어려웠던 사람에게는, 그 곤란함을 말로 만들어주는 도서 한 권이 될 겁니다. 서평단으로 읽어온 책 가운데 일하는 방식을 이렇게 직접 건드린 경우는 드물었습니다.


처서가 지났는데 낮의 열기는 아직 그대로입니다. 그래도 저녁 공기가 조금씩 물러나는 게 느껴지고, 곧 하반기 계획을 다시 세우는 시기가 옵니다. 밀린 것들을 한꺼번에 붙들고 속도를 올릴 궁리를 하기 쉬운 계절이죠. 그전에 목록을 한 번 줄여보는 쪽이 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더 빨리 일하는 방법을 찾던 손에 쥐어진, 붙든 일의 개수를 줄이라는 답. <더 골3 흐름의 법칙>은 성실함과 성과가 어긋나는 이유를 아주 담담하게 계산해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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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재 없음 - 인재는 어디서 일하려 하는가
오용석 지음 / 경이로움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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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표지 가운데에 사원증 하나가 걸려 있습니다. 파란 목걸이 줄에 매달린 카드는 이름도 부서도 비워둔 채, 대신 "인재는 어디서 일하려 하는가"라는 문장만 담고 있어요. 제목은 <인재 없음>이라고 딱 잘라 말하는데, 표지 아래쪽에 적힌 한 줄은 곧바로 그 선언을 되돌립니다. '인재'가 없는 게 아니라, '인재가 머물 이유'가 없는 것이다. 회의실에서 수없이 반복되는 한숨을 제목으로 앞세우고 그 한숨의 방향을 슬쩍 돌려세우는 구성이라, 첫 장을 펴기 전부터 저자가 어느 편에 서 있는지 짐작이 됐습니다.


저자 오용석은 삼성중공업 인사기획팀을 거쳐 SAP Korea의 기업문화총괄로 일하는 20년 경력의 HR 실무자입니다. 이력만 보면 컨설팅 언어로 가득한 책일 것 같았는데, 읽어보니 결이 조금 달랐어요. 숫자와 이론이 자주 등장하지만 그 숫자들이 결국 가리키는 곳은 사람이 아침에 자리에 앉아 겪는 아주 평범한 몇 분입니다.


가장 먼저 마음을 붙든 건 이직의 이유를 다루는 앞부분이었습니다. 회사를 고를 때 사람들이 첫손에 꼽는 항목은 늘 연봉입니다. 잡코리아 설문에서도 신입과 경력직 모두 그랬다고 해요. 그런데 직원 유지 쪽으로 시선을 옮긴 조사에서는 일에 대한 만족감이 1위로 올라오고 높은 연봉은 다섯 번째로 내려앉습니다. 저자는 여기에 함정이 있다고 짚습니다. 회사를 선택하는 기준과 회사를 떠나기로 결심하는 계기가 애초에 같은 항목이 아니라는 것이죠. 연봉은 내년 액수를 대략 계산할 수 있는 정적인 조건이니 당장 짐을 싸게 만들지 못하지만, 매일 마주하는 결핍과 성장의 정체는 즉각적인 결심을 부른다고 설명합니다.


그 뒤에 놓인 문장이 오래 남았습니다. 높은 근속률이 안정의 증거는 아니라는 대목이에요. 직원이 남아 있는 이유가 만족과 성장이 아니라 관성, 불확실성, 대안 부족이라면 그 조직에서는 언제든 급격한 이탈이 일어날 수 있다고 합니다. 우리 회사는 오래 다닌 사람이 많다는 말을 자랑처럼 꺼내는 자리를 여러 번 지나온 사람이라면, 이 진단 앞에서 잠시 표정이 굳을 것 같아요. 남아 있음과 머물고 싶음이 전혀 다른 상태라는 사실을, 이 책은 데이터로 조용히 확인시킵니다.


3장으로 넘어가면 이야기가 개인 쪽으로 좁혀집니다. 심리적 안전감을 다루는 자리에서 저자는 아무리 좋은 제도와 파격적인 복지를 갖추더라도 이것이 결여되면 성과는 모래성처럼 무너진다고 씁니다. 조직문화의 거장 에드거 샤인이 말한 두 가지 불안, 변하지 않으면 도태된다는 생존 불안과 새 시도 앞에서 느끼는 학습 불안을 소개한 뒤, 리더가 압박으로 생존 불안을 키우는 쪽보다 학습 불안을 낮추는 편이 훨씬 효과적이라고 정리하지요. 그리고 이런 문장이 따라옵니다.


"학습 불안이 해소될 때 구성원은 자신의 실수를 방어하는 데 쓰던 에너지를 내려놓고 성과 창출을 위한 실험을 시작한다."


방어에 쓰이는 에너지라는 표현이 유난히 구체적으로 다가왔습니다. 어느 조직에나 실제 업무가 아니라 나중에 문제가 생겼을 때 자신을 설명하기 위해 미리 준비해두는 일들이 있잖아요. 그 준비에 들어가는 시간과 마음의 총량을 계산해본 사람은 아마 드물 겁니다. 구글의 프로젝트 아리스토텔레스가 2년간 180개 팀을 뒤져 얻은 결론도 이 지점과 맞닿습니다. 학벌이나 전문성, 심지어 점심을 함께 먹는지 여부까지 250개가 넘는 변수를 넣었더니, 팀 성과를 가른 것은 구성원의 면면이 아니라 그들이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였다고 해요. 실수를 드러내도 보복당하지 않는다는 확신이 있는 팀은 이직률이 낮았고, 그 팀의 아이디어가 실제 사업에 채택될 확률은 두 배 이상 높았다고 합니다.


티모시 클라크가 정리한 네 단계도 곱씹을 만했습니다. 팀에 속해 있고 존중받는다는 믿음에서 시작해, 질문하고 실수해도 보호받는 신뢰, 기여할 기회를 얻고 그 가치를 인정받는 단계를 지나, 기존 방식에 의문을 제기하는 도전 단계에 이른다는 흐름이지요. 경력이 길어지면 앞의 두 단계는 이미 통과했다고 여기기 쉬운데, 정작 발이 묶이는 곳은 마지막 문턱입니다. 회의실에서 하고 싶은 말을 삼킨 채 나온 날들의 정체를 이 표는 꽤 정확하게 설명해줍니다.


저자가 이 지점에서 리더의 인성이나 배려로 답을 몰지 않는 것이 좋았어요. 심리적 안전감은 시스템으로 보장되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에어비앤비가 인사팀 대신 직원경험팀을 두고 업무 과정의 불안 요소를 데이터로 추적하는 사례, 링크드인이 커리어 경로를 시각화해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는 막막함을 구조적으로 걷어내는 사례가 이어집니다. 현장에 필요한 약속으로는 구성원을 전문성 있는 파트너로 대우하는 실질적 존중, 사고가 났을 때 누구의 잘못인지보다 시스템의 어느 부분이 문제였는지를 파헤치는 비난 없는 피드백, 그리고 명문화된 그라운드 룰을 꼽습니다. 심리적 안전감이 리더의 기분에 좌우되지 않도록 규칙으로 못 박아야 한다는 문구는 짧지만 서늘했습니다. 그 기분에 하루의 온도가 결정되는 부서를 우리는 이미 알고 있으니까요.


권한 위임을 다룬 장은 이 책에서 가장 목소리가 단단해지는 대목입니다. 업무 방식은 실무자에게 맡기면서 예산과 인력 운용 권한은 놓지 않는 관행을 두고 저자는 이렇게 씁니다.


"실질적 자원 결정권이 없는 위임은 책임만 있고 권한은 없는 반쪽짜리에 불과하다."


이어지는 진단은 더 직설적입니다. 한국 기업에서 단순 반복 업무는 전결 규정대로 처리되지만 주요 의사결정은 여전히 최종 결재선을 거치고, 중간 리더가 판단하고 결정하는 사안이 거의 없다는 관찰이지요. 그 결과 실무자는 문제의 본질을 파고들기보다 보고서 꾸미기에 매몰되고, 현장 맥락을 담당자보다 모르는 최상위 결정권자가 자신의 과거 경험에 빗대어 결론을 내리는 순환이 반복된다고 합니다. 보고서 꾸미기라는 다섯 글자는 부연이 필요 없을 만큼 정확했습니다.


다만 뒷부분에서 한 번 걸음이 멈췄어요. 수평적 문화는 안락한 파라다이스가 아니라는 절입니다. 직급이 역량을 보증하지 않는 환경에서 준비가 덜 된 사람에게 위임은 자유가 아닌 방치가 된다고 저자는 솔직하게 인정합니다. 수평 문화를 옹호하는 책이 그 문화의 가혹함까지 적어둔 셈이니 서술은 정직합니다. 그런데 그 방치의 자리에 놓인 사람을 어떻게 건져 올릴지에 대한 이야기는 글로벌 기업의 단계적 위임을 소개하는 정도에서 마무리됩니다. 오래 일해온 사람 중에도 결정의 무게를 져본 경험이 거의 없는 이들이 많고, 그 공백은 개인의 게으름 탓으로 돌리기 어려운 구조의 산물일 텐데요. 프로의 세계라는 규정만으로는 조금 성급하게 넘어간 느낌이 남았습니다. 물론 이 책이 조직 설계자를 향한 책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자연스러운 초점 이동일 수도 있겠습니다.


몰입을 다룬 마지막 흐름에서 이 도서의 주장은 한 문장으로 좁혀집니다. 리더가 먼저 할 일은 무언가를 새로 얹는 쪽이 아니고, 구성원이 매일 부딪히는 걸림돌을 하나씩 확인해 덜어주는 쪽이라는 이야기예요. 배달의민족의 월요일 오후 출근, 직방의 가상 오피스, 휴넷의 주 4일 근무제 같은 국내 사례가 붙어 있어 훨씬 가깝게 읽혔습니다. 두나무가 무이자 주택자금 대출로 주거 불안을 덜어준다는 사례는 이 땅의 직장인에게 유독 실감이 클 것 같고요. 결국 조직문화란 행복을 만들어내는 일이라기보다 그 앞을 막고 선 것들을 치우는 일이라는 저자의 정의가, 앞의 모든 논지를 하나로 묶어냅니다.


보통 판형에 보통 두께라 부담 없이 넘길 수 있었고, 그동안 읽어온 조직문화 관련 도서들이 대체로 이상적인 그림에서 멈췄던 것과 비교하면 이번 한 권은 실행의 언어에 더 오래 머무는 편이었어요. 경영자와 HR 담당자를 향해 쓰인 안내서인데, 실제로는 팀 하나를 맡고 있거나 위와 아래 사이에서 결정을 전달하는 위치에 선 사람이 더 많은 밑줄을 그을 것 같습니다. 조직을 바꿀 권한이 없다고 느끼는 자리에서도, 자기 팀의 회의 한 시간에는 여전히 쓸 수 있는 문장들이 꽤 남아 있습니다.


늦더위가 아직 물러가지 않았지만 저녁 공기의 결이 조금씩 바뀌는 시기입니다. 하반기 조직 개편과 평가 이야기가 슬슬 오르내리기 시작하는 무렵이기도 하지요. 이맘때 이 책을 펴두면 제도 하나를 새로 만들 궁리보다, 우리 팀이 매일 넘어지는 지점이 어디인지 먼저 적어보게 될 것 같아요. 걷어낼 것을 찾는 계절로 8월의 끝은 나쁘지 않아 보입니다.


사람이 떠나는 자리는 연봉 협상 테이블이 아니라 매일의 평범한 장면이고, 그 장면을 손보는 일이 조직문화라고 말하는 실무자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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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헤세의 인생 수업 ㅣ 메이트북스 클래식 31
헤르만 헤세 지음, 강현규 엮음, 이선미 옮김 / 메이트북스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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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책이 얇습니다. 문고판이라 한 손에 감기고, 가방 어느 틈에 넣어도 존재를 주장하지 않아요. 표지 위쪽 절반은 흑백 사진입니다. 안경을 쓴 노년의 헤세가 의자에 앉아 펼친 책장을 든 채 어딘가를 보고 있는데, 시선이 카메라를 살짝 비껴 나가 있어서 보는 쪽이 먼저 조용해집니다. 아래쪽은 살구빛 주황이고요. 흑백과 주황이 위아래로 갈라지는 그 경계선이 이 한 권의 성격을 미리 알려주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헤르만 헤세의 인생 수업>은 헤세가 평생 써온 여러 작품에서 삶에 관한 사유를 골라 여덟 개의 장으로 다시 엮은 도서입니다. <데미안>과 <싯다르타>처럼 익숙한 작품부터 <크눌프> <방랑> <요양객>처럼 이름만 들어본 작품까지 폭이 넓습니다. 한 주제가 두 쪽 안에서 끝나는 구성이라 순서대로 읽어도 되고, 손에 잡히는 대로 펼쳐 한 편만 읽고 덮어도 무리가 없습니다. 가볍고 얇다는 조건이 이 편집 방식과 잘 맞아떨어집니다.


가장 오래 붙들고 있었던 건 2장의 방랑 이야기였습니다. 크눌프를 다룬 대목에서 어린 시절의 작은 집과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리던 마당이 나오는데, 그것을 그리움이라 부르지 않고 마음속에 가장 깊게 박힌 가시라고 씁니다. 그는 평생 떠돌며 그 시간을 되찾으려 했지만, 걸어온 모든 길이 실은 고향에서 점점 멀어지는 길이었다고 적혀 있어요. 고향은 돌아갈 장소가 아니라 멀어지는 그리움이다, 라는 제목이 그래서 조금 아프게 읽힙니다. 우리가 그리워하는 대상이 어떤 지명이 아니고 다시는 만날 수 없는 과거의 자기 자신이라는 설명 앞에서는 고개를 끄덕이게 됐습니다. 명절마다 고향에 다녀오고도 허전함이 남는 이유를 이렇게 정리해준 글은 처음이었습니다.


바로 다음 장에는 저녁노을이 나옵니다. 왜 길을 떠나느냐는 물음에 그는 답하지 않고 먼 노을을 바라보기만 하는데, 그 빛 속에 어제 만난 여인의 눈동자와 잊어버린 친구의 이름, 희미해진 고향의 흙냄새까지 담겨 있다고 합니다. 자기 삶도 저 노을처럼 저물어 가고 있음을 직감하면서도 두렵지 않았다는 대목이 좋았어요. 잃어버린 것들이 사라진 게 아니라 지금 자신을 감싸는 빛 속에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지요. 사십 대 후반이라는 자리에서 읽으면 이 위로의 방식이 꽤 실감 있게 들어옵니다.


6장은 고통을 다룹니다. 표지 아래쪽에 큼직하게 박힌 "고통은 세상을 투명하게 꿰뚫어보는 렌즈다"라는 문구가 이 장에서 나온 말입니다. 아픔이 없는 길은 없고 상처 없는 발바닥은 어디에도 없다는 문장, 평온하기만 한 삶은 멈춰버린 시계와 같다는 비유가 이어지는데, 그중 하나가 유독 길게 남았습니다. "고통은 내 몸을 조여오는 쇠사슬이지만, 그 고통을 문장으로 옮기는 순간 나는 그 쇠사슬을 끊고 자유로워진다." 앓는 몸과 그것을 바라보는 정신을 둘로 나누고, 자기 신음까지 하나의 문장으로 기록하는 사람의 태도입니다. 견디는 힘이 어디서 나오는지를 이렇게 담담하게 적어놓으니 오히려 설득이 됩니다.


다만 읽으며 걸린 지점도 있었습니다. 이 장에서는 쓰는 일로 자신을 구출한다고 말하는데, 8장으로 가면 깨달은 자는 굳이 설명하지 않는다고, 오직 자신의 삶 자체가 침묵의 증언이 되기를 바란다고 적혀 있어요. 말을 붙들어 자유로워진 사람과 말을 내려놓겠다는 사람이 한 권 안에 나란히 앉아 있는 셈입니다. 서로 다른 작품에서 길어온 사유를 묶었으니 자연스러운 결과일 수도 있고, 평생 쓰는 사람으로 살았던 이의 양쪽 진심으로 볼 수도 있겠습니다. 편역서라는 형식이 주는 아쉬움이라면 이런 대목에 엮은이의 짧은 안내가 한 줄쯤 붙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덟 개 장의 흐름은 분명한데, 장 안에서 같은 결론이 여러 번 반복되는 구간도 몇 군데 보였습니다.


그럼에도 마지막 장이 이 책을 붙들어줍니다. 사람들이 자유를 갈망하면서도 그 자유가 데려오는 막막함과 책임은 두려워한 나머지, 무리에 섞여 시키는 대로 사는 편안함과 자유를 맞바꾼다는 진단이 나옵니다. 그리고 진정한 자유란 선택한 길 위에서 겪는 기쁨과 슬픔, 그 결과까지 온전히 껴안는 일이라고 못을 박습니다. "자신의 운명을 네 스스로 책임지는 것, 그것이 자유인만이 누릴 수 있는 고독한 특권이다." 자유 뒤에 고독하다는 말을 붙여둔 그 정직함이 오래 걸립니다. 조직 안에서 오래 일해온 사람이라면 이 문장 앞에서 잠깐 숨을 고를 것 같습니다.


바로 다음 쪽이 그 서늘함을 다독여줍니다. 진정한 보물은 아무도 눈길을 주지 않는 보잘것없는 골목길이나 마른 샘터에 묻혀 있다고, 신은 웅장한 대성당보다 낮은 나무 밑동에 더 자주 머문다고 씁니다. 성실하게 자기 몫을 짊어지고 걷는 삶에 특별한 마법이 깃든다는 말이니, 크게 이룬 것 없이 하루하루를 건너온 시간에 대한 응원으로 읽어도 될 듯합니다. 요즘 자주 오르는 미니멀리즘이나 조용한 퇴장에 관한 이야기들과도 어딘가 맞닿아 있습니다.


서평단으로 만나는 책은 대개 읽는 속도를 스스로 정하지 못하는데, 이번엔 그 제약이 오히려 도움이 됐습니다. 헤세 전집을 처음부터 읽어낼 엄두가 나지 않아 미뤄두었던 사람에게는 지도를 대신할 안내서가 되고, <데미안>을 이미 여러 번 넘겨본 독자라면 흩어져 있던 문장들이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지는 감각을 새로 얻게 됩니다. 얇고 가벼운 판형이니 오래 곁에 두기도 좋겠습니다.


8월 끝자락의 늦더위가 아직 남아 있지만 저녁 공기의 결이 조금 달라졌습니다. 해가 지는 시각도 눈에 띄게 앞당겨졌지요. 노을이 길어지는 이 시기에 저녁 빛에 관한 챕터를 다시 펼치면, 잃어버렸다고 여겼던 것들이 아직 어딘가에 남아 있다는 말이 조금 더 믿어집니다. 가을로 넘어가는 며칠 동안 이 한 권을 손에 두려 합니다.


헤세가 평생 붙들었던 질문을 여덟 갈래로 정리해, 방황과 고통을 성장의 통로로 다시 읽게 해주는 얇고 단단한 문고판 입문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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된다! 하루 만에 끝내는 나노 바나나 AI 이미지 만들기 - 최신 나노 바나나 2 라이트 반영! 0원으로 만드는 고퀄리티 AI 이미지 ㅣ 된다! 업무 능력 향상 200%
김세은 지음 / 이지스퍼블리싱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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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손에 들었을 때 먼저 느낀 건 가벼움이었습니다. 컴퓨터 교재라고 하면 책상 한쪽을 묵직하게 차지하는 두께를 떠올리게 되는데, <된다! 하루 만에 끝내는 나노 바나나 AI 이미지 만들기>는 그런 부담이 없어요. 흰 여백 위에 노랑과 보라가 크게 부딪히고, 껍질을 반쯤 벗긴 3D 바나나가 제목 위에 얹혀 있는 표지도 한몫합니다. 필요한 것만 골라 담고 나머지는 덜어낸 책이라는 인상을 먼저 받았고, 다 읽고 난 뒤에도 그 인상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표지에 적힌 '0원으로 만드는 고퀄리티 AI 이미지'라는 한 줄이 이 책의 성격을 요약합니다. 다만 저를 붙잡은 건 무료라는 조건보다 실패를 다루는 방식이었어요. 두 번째 장에서 저자는 결과가 실망스러운 이유를 도구의 한계에 두지 않습니다. 프롬프트 구조를 잘 짰는데도 그림이 엉뚱하게 나온다면 대화에서 어긋난 지점이 있다고 봐요. 그러니 잘 만드는 법을 앞세우기 전에 덜 실패하는 법을 먼저 놓았습니다. 부정어를 쓰지 말라는 조언이 첫 번째로 오는데, 하지 말라는 말을 늘어놓을수록 AI는 무엇을 만들어야 하는지 대신 무엇을 피해야 하는지에 매달린다는 설명이 뒤따릅니다. 과일 정물 두 장을 나란히 놓고 결과를 비교한 지면을 보면 굳이 더 설명할 필요가 없어요.


읽으면서 오래 눈이 머문 곳은 'AI가 이해하기 힘든 추상어'를 정리한 대목입니다. 크다는 말이 어떤 기준 대비인지, 맛있다는 표현이 윤기인지 바삭함인지 촉촉함인지를 하나하나 되묻는 식으로 여섯 항목을 세워 뒀어요. 대신 쓰라고 권하는 표현은 따뜻한 햇살이 비치는, 선명한 고대비의, 표면에 매끄러운 윤기가 흐르는 같은 말들입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는 청초하다거나 고급스럽다는 말로 충분히 통했던 것들이 옮겨지지 않는 경험을, 저는 회의실에서도 자주 겪어 왔습니다. 상대가 실행할 수 있는 언어로 말을 바꾸는 일은 결국 같은 훈련이더군요.


수식어를 다룬 절의 결론은 이렇게 정리됩니다. "결국 수식어의 양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통제권'의 문제입니다." 화려하게 쓰는 것도 절제하는 것도 목적에 따라 고르는 선택이라는 뜻이죠. 실제로 콘셉트 이미지에는 신비로운, 경이로운, 시네마틱한 같은 말이 좋은 도구가 되고, 상세 페이지용 제품 컷에는 측면 자연광이나 흙 질감처럼 물리적인 단어만 남기라고 권합니다. 해바라기 화병을 두 방식으로 만들어 붙인 지면에서 차이가 눈으로 확인됩니다.


지시를 잔뜩 욱여넣었을 때 무엇이 무너지는지 보여주는 사례도 인상적입니다. 북유럽풍 거실에 크로와상과 베리, 김이 오르는 머그컵, 갈색 표지의 펼쳐진 책, 말린 튤립, 파란 잉크 펜과 은색 포크까지 담아 달라고 했더니 말린 꽃이 생화로 바뀌고, 갈색 표지가 파란색이 되고, 펜은 사라지고 포크는 두 개로 늘어났습니다. 문장이 길어질수록 AI는 앞부분에 힘을 쏟고 뒤로 갈수록 느슨해진다는 진단이 붙는데, 그래서 카메라 구도를 프롬프트 맨 앞에 두라는 뒤쪽 지침과 자연스럽게 이어져요.


세 번째 장은 이 책에서 가장 잘 만든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사과나무 아래 벤치에 앉은 인물이라는 하나의 장면을 일곱 가지 구도로 반복해 보여주는데, 피사체가 그대로여도 카메라 위치가 바뀌면 사진의 성격이 완전히 달라진다는 걸 말로 설명하지 않고 이해시켜요. 뒷모습만 담은 백 뷰의 여백과 45도로 내려다본 아이소메트릭 컷의 미니어처 같은 느낌이 특히 대비됩니다. 구도마다 영문 키워드를 여러 개씩 표로 묶어 둔 점도 실무에서 바로 꺼내 쓰기 좋겠습니다.


아쉬움도 있습니다. 한국어 형용사가 사람에게는 감각적으로 전달되지만 AI에게는 기준이 모호해진다고 짚은 뒤, 더 정교한 결과를 원하면 영어로 말을 걸라고 권하는 흐름은 조금 걸렸어요. 학습 데이터의 대부분이 영어라는 근거는 납득이 되고 번역을 거치는 3단계도 어렵지 않지만, 한국어로 생각하고 한국어로 브랜드 무드를 잡는 사람에게는 남는 숙제가 있습니다. 우리말 표현을 어떻게 다듬으면 의도가 살아남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한 절만 더 있었다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부정어를 피하라는 원칙도 모델 세대가 올라가면서 어디까지 유효할지는 각자 확인해 볼 일이겠고요.


일곱 번째 장은 실습서가 대개 생략하는 자리에 마련돼 있습니다. 요즘 이 시장에서 중요한 건 얼마나 잘 만드느냐보다 얼마나 안전하게 만드느냐라는 이야기를 저자는 분명하게 합니다. 상업물에 AI 생성 이미지임을 고지했는지, 실존 인물과 닮은 얼굴을 쓰지 않았는지, 타 브랜드의 로고나 패키지가 섞이지 않았는지를 확인하는 체크리스트가 실려 있고, 이미지 안에 AI가 만든 글자를 그대로 쓰면 폰트 저작권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경고도 붙습니다. 올해 초부터 시행된 AI 기본법의 생성 표시 의무를 한국, 미국, 유럽으로 나눠 정리한 부분은 종이책에 담기 어려운 내용인데, 원고 시점 기준이며 이후 바뀔 수 있으니 최신 정보를 확인하라는 단서를 저자가 먼저 달아 뒀습니다. 그 솔직함이 오히려 신뢰를 줬어요.


책의 끝자락은 도구 이야기로 닫히지 않습니다. 기술이 발전해도 어떤 이미지를 만들지 결정하는 감각과 판단은 사람의 몫이라는 문장, 브랜드의 철학과 고객에게 전할 메시지를 이해하는 일은 여전히 사람이 해야 한다는 대목에서 마음이 조금 놓였습니다. 미드저니와 어도비 파이어플라이를 직접 거명하며 여러 도구를 비교해 자기 워크플로를 만들어 보라고 권하는 것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자기 책이 다룬 도구에 독자를 묶어 두지 않는 태도니까요. 작은 가게를 꾸리며 상세 페이지 사진을 외주로 맡기기가 부담스러운 분이라면 서른 개 프로젝트만으로도 값을 하겠고, 새 기술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한 발 밀려나는 기분이 드는 분에게는 마지막 장의 저 문장들이 더 오래 남을 것 같습니다.


서평단으로 만나는 책은 대체로 읽고 정리하는 데서 끝나는데, 이번 한 권은 읽는 동안 손이 자꾸 화면으로 갔어요. 배운 대로 문장을 고쳐 넣어 보고, 나온 결과를 보고 다시 문장을 줄여 보는 과정 자체가 이 도서를 읽는 방법이었습니다.


여름의 끝자락, 아침 공기에 서늘한 결이 섞이기 시작하는 시기에 이 책을 덮었습니다. 계절이 넘어가는 자리에서는 무언가를 새로 배워 두고 싶어지는데, 하루 만에 끝낸다는 제목을 곧이곧대로 믿지 않아도 좋습니다. 표지와 목차가 약속한 만큼은 확실히 손에 남는 책이었어요.


프롬프트를 다루는 기술서로 시작해, 결국 만들 것을 정하는 사람의 눈으로 끝나는 실용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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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시 6년 실패, 중소기업 김 대리는 어떻게 6년 만에 22억을 벌었나
김동면(겨울잠) 지음 / 모티브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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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포장을 벗기자마자 주황색이 먼저 들어왔어요. 지면 절반을 차지하는 숫자와 웹툰 톤의 웃는 얼굴, 오른쪽 위로 치솟는 화살표까지, 서점 매대에서 눈에 안 띌 수가 없는 표지입니다. 솔직히 이런 얼굴을 한 책 앞에서는 한 발 물러서게 되는 편입니다. 마흔 후반쯤 되면 몇 년 만에 얼마를 벌었다는 문장을 꽤 여러 번 지나쳐 왔으니까요.


그런데 표지 아래쪽에 작은 칸이 셋 있습니다. 캔들 차트가 있고 금괴와 코인이 있는데, 맨 왼쪽 칸은 노트에 뭔가를 적고 있는 손이에요. 이 배치가 이 도서의 성격을 미리 일러주는 것 같았습니다. 판형은 140×210, 328쪽. 손에 들면 무겁지 않고 활자도 시원해서 읽는 속도가 금방 붙습니다.


1장을 여는 첫 문장이 "나는 평범한 사람이다."입니다. 저자는 공무원 시험을 6년 준비하다 접었고, 친구들이 대기업 승진 이야기를 할 때 스물일곱에 중소기업 신입으로 출발했다고 적어둡니다. 그래서 더 집요하게 물었다고 해요. 나 같은 사람도 재현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가, 특정 시기에만 통하는 일회성 전략은 아닌가, 운이 좋아서 된 것이라면 따라 해도 소용없는 것 아닌가. 스스로에게 던진 이 세 개의 물음이 사실상 책 전체의 설계도 역할을 합니다.


답을 찾은 자리가 수험 시절이었다는 점이 흥미로웠습니다. 합격하는 사람들에게는 공통된 공부법이 있었고 특별한 머리보다 검증된 방법을 얼마나 꾸준히 반복했느냐의 차이였다는 것. 그 관찰을 그대로 투자로 옮겨 500권 넘는 책을 읽고 요점을 손으로 옮겨 적어 열 페이지짜리 노트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저자는 그 물건을 초라하다고 표현해요. 볼펜 자국이 번지고 귀퉁이가 닳았고 어떤 면은 밑줄이 너무 많아 원문을 알아보기 힘들 정도라고요. 실제 노트 사진도 책에 실려 있는데, 삐뚤빼뚤한 손글씨로 채워진 스프링 노트를 보고 있으니 22억이라는 표지의 숫자보다 이쪽이 훨씬 오래 눈에 남았습니다.


이 노트가 실제로 작동하는 장면이 2장 끝에 나옵니다. 2022년, 미국 연준이 금리를 급하게 올리던 국면이었고 계좌에는 -32%가 찍혀 있었어요. 저자는 그 돈의 내력을 굳이 적어둡니다. 한 달 20만 원으로 살며 2년 동안 모은 돈, 부모에게 손 벌리지 않으려 도시락으로 버틴 점심, 모임에 나가지 못한 주말들이 녹아 있는 돈이었다고요. 지금이라도 팔면 이 정도만 잃는다는 생각과 내가 뭘 잘못 판단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번갈아 오가는 밤을 그대로 옮겨놓았습니다. 이 대목의 문장들이 짧고 건조해서 오히려 상황이 잘 전해집니다.


새벽 두 시에 그가 꺼낸 것이 그 노트였습니다. 첫 장에 옮겨 적혀 있던 문장은 저자 본인의 말이 아니라 워런 버핏의 두 줄이었다고 해요.


"Rule No.1: Never lose money. Rule No.2: Never forget Rule No.1."


처음에는 그냥 글자였다고 씁니다. 이 솔직함이 좋았어요. 몇 장을 더 넘기자 직접 손으로 적어둔 하락 기록이 나옵니다. 닷컴버블 -49%, 금융위기 -57%, 코로나 -34%. 그리고 매번 회복했다는 한 줄. 자기가 겪는 -32%가 예외적 재난이 아니라 역사 속에서 반복돼 온 일상이었다는 자각으로 그 밤을 넘깁니다. 절의 결론도 담담합니다. 버틸 수 있었던 이유가 배짱이 세서가 아니었다고 하면서, 공포 속에서 손이 움직이게 만드는 것은 반복해서 쌓아둔 공부였다고 정리해요.


다만 이 장을 덮으면서 걸리는 지점이 하나 있었습니다. 저자가 그날 밤 위안으로 삼은 근거는 S&P 500의 98년치 데이터, 그러니까 지수를 사서 오래 들고 있었을 때의 확률입니다. 그런데 정작 그를 흔든 것은 지수보다 더 깊이 빠진 개별 종목이었고, 같은 장 앞쪽에는 확신이 있다면 분산하지 말고 집중하라는 조언이 따로 놓여 있어요. 지수의 복원력과 개별 종목의 복원력은 성질이 다릅니다. 20년 보유 시 손실 확률 0%라는 숫자를 집중 투자의 버팀목으로 쓰는 구간이 이 책에서 논리적으로 가장 얇아 보였습니다. 여유 자금이 있으면 더 사라는 권유도, 하락이 몇 해 이어질 때 그 자금을 계속 마련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싶어 고개를 완전히 끄덕이기는 어려웠고요.


그럼에도 이 한 권을 끝까지 붙들게 한 건 5장이었습니다. 시작이 사직서 이야기예요. 써놓고 제출하지 않은 채 책상 서랍에 넣어두었는데, 언제든 꺼낼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출근길이 달라졌다고 합니다. 6년 전과 지금이 같은 회사 같은 자리인데 완전히 다른 사람이라는 문장에서, 이 책이 파는 것이 돈 자체라기보다 선택권이라는 게 분명해집니다. 회사를 다니는 것도 그만두는 것도 자기 결정이 된 순간 이상하게 일이 더 잘됐다는 대목은 여러 번 읽었습니다.


더 마음에 남은 쪽은 달라지지 않은 것들이었어요. 아침에 커피를 내리는 일, 출근길에 음악을 듣는 일, 주말에 가족과 밥을 먹는 일. 10억일 때도 20억일 때도 이것들은 그대로였다고 저자는 적어둡니다. 처음에는 조금 당황스러웠다는 고백까지 붙여서요. 20억을 만들면 삶이 드라마처럼 바뀔 줄 알았는데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먹는 것도 사람을 대하는 방식도 그대로였으며 오히려 과시하고 싶은 욕구는 줄어들었다고 합니다. 수백 권의 책에서 발견한 공통점을 그는 진짜 부자들은 조용하다는 한 줄로 요약해요. 표지에 22억을 가장 크게 박아둔 책이 안쪽에서는 이런 말을 하고 있다는 게 조금 아이러니하긴 합니다. 출판의 현실을 생각하면 저자를 탓할 일은 아니겠지만요.


복리는 시간이 만든다고 쓴 대목도 기억해 둘 만합니다. 처음 몇 년은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 것 같았고 모으고 공부하고 투자해도 통장 숫자는 더디게 변했으며 그 시간이 제일 힘들었다는 서술. 화려한 수익률 사이에 이런 문장이 끼어 있어서 이 도서가 조금은 정직해 보였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이 안내서의 실행 로드맵은 스무 살 초반부터 서른 중후반까지를 겨냥하고 있습니다. 마흔 후반의 자리에서 그 표를 그대로 따라갈 수는 없어요. 대신 남는 것이 있습니다. 흔들릴 때 꺼내 볼 자기 기준을 손으로 만들어두라는 것, 그리고 그 기준은 눈으로 읽어서는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것. 나이와 상관없이 통하는 조언이고, 지금 사회에 나가는 세대에게 건네기에도 부담이 없습니다. 서평단으로 여러 권을 읽다 보면 숫자를 앞세운 책이 자주 오는데, 표지의 크기와 본문의 무게가 반대로 놓인 경우는 흔치 않아서 이번 도서는 기록해 둘 만했습니다.


늦더위가 한풀 꺾이고 아침 공기가 조금씩 서늘해지는 시기입니다. 저자는 마지막 장에서 펜을 들고 책을 펼치라고, 봄은 온다고 적어두었더군요. 계절로 치면 아직 봄은 멀지만, 겨울을 준비하는 일은 원래 이맘때 시작하는 법입니다. 뭔가를 손으로 적어보기에는 나쁘지 않은 계절이에요.


22억이라는 숫자보다, 그 숫자를 버티게 해준 열 페이지짜리 낡은 노트가 오래 남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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