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파민 과잉 시대, 당신의 뇌가 무너진다 - 디지털 기기의 유혹과 과잉 자극은 어떻게 뇌를 오작동시키는가
리처드 사이토윅 지음, 김광국 옮김 / 알레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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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책이 도착한 날, 상자를 열자마자 무게가 먼저 전해졌습니다. 504쪽에 판형도 커서 한 손으로 들고 읽을 만한 책은 아니었어요. 북유럽 카페를 통해 받은 책인데, 첫날은 그냥 책상 위에 세워두기만 했습니다. 이건 며칠 안에 후루룩 넘길 책이 아니라, 시간을 두고 천천히 걸어 들어가야 하는 책이라는 감이 들었습니다.


표지 이야기를 먼저 하고 싶습니다. 청록색 종이 질감 위에 스마트폰 한 대와 석판이 나란히 놓여 있고, 화면 쪽으로 흑백의 두개골이 겹쳐 보입니다. 원제가 라는 걸 알면 이 배치가 단번에 읽힙니다. 석기시대의 뇌가 화면의 시대에 놓여 있다는 말이지요. 표지 아래 검은 띠에는 "가장 섬뜩하지만 그만큼 희망적이다"라는 추천 문구가 실려 있는데, 다 읽고 나서 보니 섬뜩함과 희망의 배합이 저 문장과 거의 같았습니다.


저자 리처드 사이토윅은 조지워싱턴대학 신경과 교수이고, 공감각 연구로 이름이 알려진 신경과학자입니다. 이 책에서 그가 붙잡고 있는 개념은 진화적 불일치입니다. 수렵채집 환경에 맞춰 오랜 시간 다듬어진 뇌가, 알림과 무한 스크롤로 설계된 환경에 그대로 놓였다는 것. 그래서 집중이 흐트러지는 일은 개인의 의지 문제가 아니라 설계와 구조의 문제라는 쪽으로 논의가 흘러갑니다. 첫 장의 제목이 '설계된 중독'인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제가 가장 오래 붙들려 있던 대목은 원함과 좋아함을 갈라놓는 부분이었습니다. 저자는 뇌 안에 두 개의 회로가 따로 돌아간다고 정리합니다. 도파민이 움직이는 욕망-보상 회로는 범위가 넓고 무의식적으로 작동해서 쉽게 불이 붙습니다. 반면 오피오이드 펩타이드가 관여하는 쾌락-만족 회로는 범위가 좁고 켜기가 어렵고 금세 식습니다. 원하는 일은 끝없이 가능한데 좋아하는 일은 잘 되지 않는 구조인 셈이지요. 스탠퍼드 연구진이 관찰한 바에 따르면 성인들은 화면을 20초도 채 붙들지 못하고 앱과 사이트 사이를 옮겨 다녔고, 다른 조사에서는 하루 화면 접촉 횟수가 4만 번에 이르는 사례까지 확인됩니다. 잠결에도 화면을 만진다는 문장을 읽을 때는 잠시 손을 멈췄습니다.


이 회로 이야기가 개인의 결함으로 읽히지 않도록, 저자는 곧바로 사회 쪽으로 시야를 넓힙니다. 브릭먼과 캠벨이 말한 쾌락의 트레드밀, 소득은 올라가도 행복 순위는 제자리이거나 뒤로 밀리는 미국의 역설, 광고가 욕망의 끝없음을 어떻게 이용하는지가 이어집니다. 위를 향한 비교가 행복을 깎아낸다는 설명 다음에 놓인 어머니의 짧은 한마디는 조금 다른 결로 남았습니다. 다리가 아직 있다는 식의, 아래를 보며 버티는 문장이었어요. 40대 후반쯤 되면 이런 문장이 왜 필요한지를 설명 없이 알게 됩니다.


'정적은 필수 영양소다'라는 장은 이 책의 온도가 가장 따뜻해지는 곳입니다. 필수 영양소란 몸이 스스로 만들어내지 못해 반드시 밖에서 들여와야 하는 것이라는 정의를 가져와, 저자는 정적을 그 목록에 올려놓습니다. 정적은 여유 있는 사람의 취향이 아니라 결핍의 문제라는 이야기입니다. 유기농에는 예민하면서 머릿속으로 들어오는 것에는 무심한 태도를 그는 디지털 정크푸드라 부르고, 악보의 쉼표를 뜻하는 음악 용어를 빌려와 우리 하루에서 사라진 것이 무엇인지 짚습니다. 서구의 시선이 사물에만 머무는 동안 일본의 '마'는 사이의 공간 자체를 보아왔다는 대목, 사비와 와비, 시부이 같은 말들이 정적을 중심으로 하나의 별자리처럼 놓이는 대목에서 이 장은 신경과학책의 문법을 잠시 벗어납니다. 음과 음 사이의 침묵을 말한 아이작 스턴의 문장도 여기 있습니다.


처방은 소박합니다. 고독은 가진 상태이고 외로움은 모자란 상태라는 구분을 세운 뒤, 저자는 신호등 앞, 줄을 선 몇 초, 계단을 오르는 동안처럼 하루에 흩어져 있는 30초짜리 틈을 그냥 비워두라고 권합니다. 휴식은 게으름이 아니라는 것, 짧은 멈춤이 학습과 수행을 실제로 끌어올린다는 것, 그 사이에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가 일한다는 것이 근거로 붙습니다. 숲과 관련한 수치들도 구체적입니다. 15분 정도의 숲 노출로 혈압과 코르티솔이 내려가고, 45분 정도면 인지 기능 쪽 변화가 관찰되고, 한 달간 녹지에서 시간을 보낸 사람들의 기분 변화는 몇 시간씩 이어졌다고 합니다. 영국이 녹지 접근성을 넓힌 뒤 정신과 치료가 줄었다는 자료까지 오면, 정적이 취향이 아니라 공공의 문제라는 말이 설득력을 얻습니다.


뒤쪽의 사회학습 장은 이 책에서 가장 목소리가 높아지는 자리입니다. 프뢰벨이 1852년에 '어린이의 정원'이라는 이름을 만들었다는 이야기로 시작해, 독일 유치원에서 아이들이 여섯 살 무렵에야 읽고 쓰기를 배우는 풍경, 숲에서 스스로 놀이를 만들어내는 아이들, 열두 살까지 디지털 기기를 들이지 않는 발도르프의 원칙이 차례로 나옵니다. 기술을 늦게 접한 아이가 결국 더 능숙해진다는 리처드 하우스의 관찰, 실리콘밸리 경영자들이 정작 자기 아이에게는 열 가지가 넘는 기기 규칙을 두었다는 대목이 나란히 놓입니다. 그리고 곧 불편한 숫자가 옵니다. 저소득층 아이들의 화면 시간이 부유한 집 아이들보다 훨씬 길다는 자료, 학군이 13억 달러를 들여 아이패드 6만 5천 대를 사들였다가 남긴 결과, 화면 시간을 줄여달라는 학부모 요청이 대부분 거절되었다는 기록. 디지털 격차가 결국 기술을 누가 통제하는가의 문제로 바뀐다는 이 장의 지적은, 사교육 이야기로 늘 시끄러운 우리 쪽에 옮겨놓아도 그대로 들어맞습니다. 손글씨가 타이핑보다 기억에 더 잘 남는다는 연구, 예전 세대보다 소근육이 약해진 아이들에 대한 현장 교사들의 증언은 그래서 단순한 향수로 읽히지 않았습니다.


다만 저는 이 책에 몇 가지 의심도 함께 품고 덮었습니다. 진단의 규모와 처방의 크기가 잘 맞지 않습니다. 산업 전체가 설계한 중독을 500쪽에 걸쳐 논증한 뒤에 개인에게 건네지는 것은 30초의 멈춤과 숲 산책인데, 이 간격을 저자가 충분히 메웠다고 보기는 어려웠어요. 숲 관련 연구가 실험실 지표에서 건강 효과로 넘어가는 구간도 조금 성급하게 느껴졌고, 발도르프는 논쟁적인 학교인데도 이 책에서는 거의 반론 없이 그려집니다. 미국과 독일의 사례가 중심이라 우리 교육 환경으로 바로 옮기기 어려운 부분도 있습니다. 서두에 증상 목록이 길게 이어지는 편집도, 두께에 눌리기 쉬운 독자에게는 진입 문턱이 될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그래도 이 책을 권하고 싶은 마음이 남습니다. 집중이 예전 같지 않다는 자각을 능력이나 나이 탓으로 돌리고 있던 분이라면, 이 책은 그 자책을 상당 부분 걷어내 줍니다. 아이 손에 기기를 언제 어떻게 쥐어줄지 매번 흔들리는 부모에게도 판단의 근거를 여러 개 남겨줍니다. 화면 밖에서 무언가를 만들거나 손으로 쓰는 일을 오래 미뤄둔 사람에게는, 그 일을 다시 시작해도 된다는 허락처럼 읽힐 대목이 분명히 있습니다.


9월로 넘어오면서 저녁 공기가 눈에 띄게 순해졌습니다. 창을 열어두고 이 책의 정적 장을 다시 펼치니, 정적이 필수 영양소라는 말이 비유가 아니라 처방전처럼 들렸어요. 두꺼운 책이니 서둘러 읽지 않으셔도 됩니다. 하루에 몇 쪽씩, 알림을 잠시 꺼둔 채로 읽으면 이 책은 자기 이야기를 스스로 증명해 보입니다.


흐트러진 집중력을 의지의 실패가 아니라 뇌와 환경의 불일치로 다시 읽게 해주고, 정적과 손의 감각을 회복의 출발점으로 돌려놓는 두꺼운 안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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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고 노력하는 사자성어 명언필사 : 성장편 - 단단한 말이 단단한 나를 만든다
김한수 지음 / 하늘아래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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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필사책 표지에 들판이 있는 건 처음 봤습니다. 연둣빛 언덕과 밭이 층층이 겹치고 그 위에 작은 집 몇 채, 꽃이 핀 나무, 새 한 마리가 판화처럼 눌러 찍혀 있어요. 아래쪽은 은은한 연노랑이라 전체가 한낮의 들판처럼 밝습니다. 그 맨 위, 표지에 적힌 한 줄이 이렇습니다. 단단한 말이 단단한 나를 만든다.


책은 보통 크기에 보통 두께예요. 손에 쥐면 부담이 없고, 펼쳐 놓으면 한 항목이 정확히 두 쪽으로 떨어집니다. 왼쪽에 해설, 오른쪽에 필사 지면. 이 짝이 끝까지 흐트러지지 않아서, 오늘 어디까지 했는지 헤아릴 필요가 없습니다.


해설 지면의 짜임이 마음에 들었어요. 성어를 한글과 한자로 올린 뒤, 글자마다 훈을 끼워 넣습니다. 이합집산이라면 흩어지고[離] 모이며[合] 모이고[集] 흩어짐[散], 이렇게요. 뜻이 조립되는 과정이 눈에 먼저 들어옵니다. 이어서 직역, 넓어진 의미, 실제로 쓰이는 맥락까지 세 걸음으로 설명이 붙는데 어조가 시종 담백합니다. 감동을 주려고 애쓰는 문장이 없어요.


그런데 실려 있는 말들의 결이 예상과 달랐습니다. 남의 충고를 흘려듣는 태도를 가리키는 마이동풍, 제 밭에만 물을 끌어들이는 아전인수, 하나를 얻고 또 하나를 바라는 등롱망촉, 바람 앞의 등불 같은 풍전등화, 모였다 흩어지는 인연을 말하는 이합집산, 우열을 가리기 어려운 백중지세. 사람을 밀어주는 말보다 사람을 세워 두고 멈추게 하는 말이 많습니다.


'성장편'이라는 부제와 이 목록이 살짝 어긋나 보인 건 사실이에요. 배움과 노력을 격려하는 성어를 기대하고 펼친 독자라면 조금 의아할 수 있습니다. 다만 며칠 넘겨 보고는 편집자의 셈이 짐작됐습니다. 마흔을 훌쩍 넘긴 나이에 무엇이 부족해서 못 자라는 경우는 드물어요. 대개는 알고도 반복하는 태도 때문이니까요. 마이동풍 옆에 붙은 무심불경의 풀이가 그래서 오래 남습니다. 마음이 없으면 아무리 중요한 말을 해도 효과가 없다. 상대에게 하는 말인 줄 알았는데, 읽다 보면 듣는 자리에 스스로를 앉히게 됩니다.


아전인수 항목에는 다른 곳과 달리 '한자의 발견'이라는 코너가 놓였어요. 我라는 글자가 창과 같은 무기를 들고 있는 모양인데, 몸을 구부려 자신을 드러낸다는 데서 '자신'의 뜻을 얻었다는 설명입니다. 자기를 세우는 글자에 무기가 들어 있다는 사실이 조용히 걸립니다. 이런 곁가지 코너가 항목마다 이름을 바꿔 가며 나오는 편집도 지루함을 덜어 줍니다.


오른쪽 지면은 성격이 다릅니다. 성어를 제목처럼 올리고 그 아래에 세계 명언 한 대목, 다시 그 아래로 필사 줄이 이어져요. 하석상대 지면에는 조지 버나드 쇼의 이름으로 이런 문장이 실려 있었습니다. "급하게 문제를 해결하려 하면 오히려 더 큰 문제를 만든다. 중요한 것은 신중히 상황을 파악하고 최선의 방법을 선택하는 것이다." 회사에서 급한 일과 중요한 일을 구분하지 못해 치른 대가를 떠올리면, 이 문장은 필사보다 반성 쪽에 가깝습니다.


금상첨화 지면에서는 진정한 아름다움이 이미 완벽한 것에 있지 않고 사랑의 손길을 거쳐 완벽해진다는 문장을 만났습니다. 널리 알려진 문구라 원 출처를 제가 확인하진 못했지만, 비단에 꽃을 더한다는 성어와 나란히 두었을 때 뜻이 훨씬 부드럽게 풀립니다. 이 짝짓기가 이 도서의 진짜 솜씨라고 봅니다.


필사 지면 아래에는 네 글자가 흐린 회색으로 깔려 있어서 그대로 덧쓰면 됩니다. 종이가 얇아 다음 장이 살짝 비치는데, 저는 그 흔적이 오히려 좋았어요. 어제 쓴 것이 오늘 뒤에 남아 있는 느낌이라서요. 한자가 부담스러운 분도 훈음이 아래에 달려 있어 막히지 않습니다. 시험 준비하는 중고생 아이가 있는 집이라면 어른이 먼저 펼쳐 두고 슬쩍 옆에 밀어 놓기에도 좋은 한 권입니다.


서평단으로 여러 권을 만나다 보면 읽고 정리하는 일이 어느새 속도전이 되곤 합니다. 손으로 옮겨 적는 책은 그 속도를 강제로 눌러 줘서, 이번에는 마감보다 문장 쪽에 마음이 더 붙어 있었습니다.


9월로 넘어오니 낮의 열기는 남았어도 저녁 공기가 먼저 물러납니다. 이맘때 책상에 오래 앉기가 한결 수월해지지요. 하루 열 분 남짓, 네 글자와 명언 한 줄을 옮겨 적는 시간으로 가을 초입을 열어 보는 것도 괜찮겠습니다.


응원보다 경계에 가까운 말들을 손으로 옮겨 적으며, 알고도 되풀이하던 태도를 조용히 점검하게 하는 필사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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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베이킹
김다인(머니바게트) 지음 / 모티브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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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투자 관련 책을 펼칠 때 살짝 주춤하게 되는 이유가 있습니다. 숫자가 많고 용어가 낯설고, 무엇보다 늦었다는 말을 듣게 될 것 같아서요. <머니베이킹>은 그 예상과 조금 다른 자리에서 말을 걸어옵니다.


표지부터 그렇습니다. 크라프트 봉투에 담긴 바게트 세 개가 100달러 지폐로 돌돌 감겨 있는데, 돈 이야기를 하겠다는 선언 같기도 하고 이건 결국 굽는 일이라는 예고 같기도 했습니다. 금빛과 베이지로 정리된 색감이 화려한 쪽으로 가지 않아서, 표지를 마주한 첫 인상은 의외로 차분했어요. 판형도 두툼하거나 얄팍하지 않은 보통의 두께라 마음이 놓였습니다. 작정하고 공부하듯 붙들지 않아도 될 것 같은 무게니까요. 북유럽 카페를 통해 서평단으로 받은 도서입니다.


띠지에 적힌 한 줄이 이 한 권의 방향을 다 말해줍니다. 이제는 '느린 부자'가 가장 확실한 부자가 됩니다. 20년간 IT 회사에서 근로소득으로 달려온 저자가 자본소득으로 눈을 돌린 뒤에 얻은 결론이라는 걸 알고 읽으면, 저 문장의 무게가 조금 달라집니다.


가장 오래 눈길이 간 대목은 40대를 정면으로 호명하는 챕터였습니다. 저자는 위로를 서둘러 꺼내지 않아요. 이미 40대라면 솔직하게 말하겠다고 운을 뗀 뒤에 "30대에 시작하는 것보다는 불리하다"고 먼저 인정합니다. 그러고 나서야 50대에 시작하는 것보다는 훨씬 유리하다고, 40대에는 아직 20년이 있고 그 20년은 복리가 힘을 발휘하기에 충분한 시간이라고 말을 이어갑니다. 순서가 이렇게 놓여 있으니 뒤에 오는 격려가 헛돌지 않습니다.


이 챕터에서 저자가 40대의 강점으로 꼽는 건 소득 수준만이 아닙니다. 재무적 판단력이 성숙해서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낭비인지 구분할 줄 안다는 서술이 있는데, 그 문장 앞에서 잠깐 멈췄습니다. 30대에는 명품 가방이나 비싼 차에 돈을 쓸 수 있지만 40대에는 미래를 위한 투자가 더 절실하다는 것을 피부로 느낀다는 이야기가 따라붙는데, 이건 계산이 아니라 체감의 영역이라 반박하기가 어려웠어요.


숫자도 겁을 주는 방식으로 쓰이지 않습니다. 월 50만 원부터 시작해 소득이 오를 때마다 조금씩 늘려가면 된다고, 처음부터 완벽할 필요 없다고 못을 박습니다. "시작하는 것 자체가 가장 중요하다"는 문장이 이 파트 전체의 뼈대입니다.


책의 중간, 복리를 나무에 비유하는 챕터는 이 도서에서 가장 좋았던 자리였습니다. 씨앗을 심으면 처음 몇 년은 눈에 띄는 성장이 없고 땅 밑에서 뿌리가 내리는 시간이라는 설명인데, 저자는 그 구간을 지루하고 답답하다고 그대로 씁니다. 이거 제대로 자라는 거 맞아, 하는 의심이 든다는 대목까지 적어두었어요. 그러고는 3년 투자해 원금 대비 25% 수익을 보고 은행 이자랑 별 차이 없다며 포기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붙입니다. 그 3년이 뿌리를 내리는 시간이었는데 포기하는 순간 뿌리째 뽑히는 것이고, 다시 다른 곳에 심고 또 3년을 기다리다 또 뽑으면 10년이 지나도 자산은 제자리라는 결론입니다. 이 챕터에 굵게 박힌 문장이 "복리 투자의 진짜 적은 시장 폭락이 아니라 투자자의 조급함이다"인데, 시장을 탓하기 쉬운 자리에서 화살을 자기 쪽으로 돌린 셈입니다.


같은 챕터의 거름 비유도 오래 남았습니다. 20대는 물만 줄 수 있었다면 40대는 양질의 비료를 한가득 줄 수 있으니, 시작은 늦었어도 영양 상태가 좋아 성장 속도가 빠르다는 이야기예요. 늦음을 부정하지 않으면서 늦음의 조건을 다르게 읽어주는 방식이라, 위로치고는 꽤 단단합니다.


물론 읽으면서 고개를 갸웃한 부분도 있었습니다. S&P 500의 지난 150년을 근거로 20년 이상 보유한 사람 중 손해 본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고 단정하는 대목인데, 저자도 연 8~10% 수익률이 현실적인가라는 의문을 스스로 꺼내며 과거 30년 연평균 수익률과 실질 수익률을 근거로 답을 준비해두긴 했습니다. 다만 지난 150년이 앞으로의 20년을 보증해주는 건 아니라는 생각은 끝까지 남았어요. 월 100만 원을 30년간 굴리면 약 22억이 된다는 계산도 그렇습니다. 세금 문제는 뒤쪽 파트에서 따로 다루지만, 이 대목의 숫자 자체는 환율이 흔들리지 않고 소득이 30년간 끊기지 않는다는 상당히 이상적인 조건에 기대고 있습니다. 그 조건이 얼마나 깨지기 쉬운지는 월급을 받아본 사람이라면 알고 있고요.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연금저축펀드와 IRP, ISA를 다루는 절세 파트가 오히려 더 실용적으로 읽혔습니다. 수익도 복리지만 세금도 복리라는 지적, 근로소득자는 세금 구조를 잘 모른다는 대목은 수익률 표보다 당장 손에 잡히는 이야기였습니다.


책의 끝자락은 다시 오븐 앞으로 돌아옵니다. 반죽을 하고 발효를 시키고 기다려야 하며 중간에 오븐을 열면 빵이 망가진다는 비유로 시작해, 지금 40대라면 70대가 지금 만들어지고 있다는 문장으로 이어집니다. 오븐 앞에서 조급해하지 마라, 문을 열지 마라, 그냥 기다려라. 명령형이 이어지는데도 몰아붙이는 느낌이 없었던 건 그 앞에 놓인 목표의 재정의 때문일 겁니다. "투자의 궁극적 목표는 100억 부자가 되는 것이 아니다. 돈 때문에 싫은 일을 하지 않아도 되는 삶, 내 시간을 되찾는 삶, 그것이 진정한 목표다." 반(半) 파이어를 완전한 은퇴로 두지 않고 월급에만 의존하지 않아도 되는 상태, 싫으면 그만둘 수 있는 용기로 정의한 대목도 이 도서의 정서를 대표합니다.


서평단으로 여러 책을 만나면서, 읽는 동안은 좋았는데 덮으면 남는 게 없는 경우를 종종 겪습니다. 이 한 권은 그렇지 않았어요. 대단한 기법을 배우지는 않았지만, 늦었다는 감각을 다루는 방식 하나는 확실히 얻었습니다. 40대의 시간을 부족한 잔여로 세지 않고 거름을 줄 수 있는 시기로 세는 관점이요. 투자 경험이 거의 없어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막막한 분이라면 입문서로 충분하고, 이미 몇 년째 계좌를 들여다보며 조급해지는 중이라면 오히려 뒤쪽 파트부터 펼쳐도 좋겠습니다.


9월로 넘어오니 저녁 공기가 확실히 달라졌습니다. 여름 내내 그대로인 것 같던 것들이 실은 조용히 자리를 옮기고 있었다는 걸, 계절이 바뀔 때 알게 되지요. 눈에 보이지 않는 동안에도 뿌리는 내려가고 있다는 이 도서의 이야기가, 하필 이 시기에 잘 어울렸습니다. 빵의 크기는 지금 정해진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조급해하지 않기로 마음먹는 것도 결국 오늘의 몫이겠습니다.


늦었다고 말하는 대신 지금 무엇을 줄 수 있는지 묻는, 40대를 위한 담백한 장기 투자 안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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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랄 맞을 용기 - 세상이 당신의 선을 넘으려 할 때, 기꺼이 ‘지랄맞을’ 용기를 내십시오
조영훈 지음 / 모티브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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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표지를 받아 들고 한동안 인물의 얼굴만 봤습니다. 검은 곱슬머리에 양쪽 귀를 손가락으로 막았는데 표정이 화난 쪽은 아니에요. 그냥 안 듣기로 정한 얼굴이죠. 그런데 이마에는 주황색 종이비행기가 정확히 꽂혀 있습니다. 귀는 막았지만 날아오는 말을 다 피하지는 못했다는 뜻으로 읽혔어요. 세상의 말을 안 듣고 사는 사람이 아니라, 다 들리는데도 자기 자리를 지키려는 사람의 그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굵고 둥근 서체가 험한 제목을 오히려 담백하게 눌러 주고 있고요.


<지랄 맞을 용기>는 사실 제목만 보고 조금 망설였던 책입니다. 마흔을 훌쩍 넘긴 사람에게 세게 나가라고 부추기는 자기계발서일까 싶었어요. 표지 문구도 세상이 당신의 선을 넘으려 할 때 기꺼이 용기를 내라는 쪽이니까요. 판형이 손에 편하고 두께도 부담 없어서 일단 펼쳤는데, 첫 챕터 몇 장을 지나면서 예상이 어긋났습니다.


밥줄 앞에서의 용기를 다룬 장의 도입부가 그랬어요. 저자는 자본과 권력 앞에서 신념을 굽히는 사람들 이야기를 먼저 꺼냅니다. 그들이 굽히는 이유는 상대가 실제로 생계를 좌우하는 권한을 쥐고 있기 때문이라고 짚고, 카너먼과 트버스키의 손실 회피 개념까지 끌어와 인간이 원래 잃는 일에 극심한 공포를 느끼도록 설계되었다고 설명합니다. 그러고 나서 이렇게 적어 둡니다.


"돈 앞에서는 누구나 작아질 수밖에 없다는 것, 그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일지도 모릅니다."


용기를 권하는 책이 첫머리에서 용기 내지 못한 쪽을 먼저 감싸 주더군요. 그 순서 덕분에 방어할 필요 없이 책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베토벤 편은 그래서 더 담담하게 읽혔어요. 궁전에 머물게 해 주고 최고급 악기를 선물하고 매년 거액을 조건 없이 보내던 후원자가 어느 날 점령군 장교들 앞에서 연주를 지시합니다. 거절의 대가로 그는 막대한 경제적 타격을 입었고, 저자는 그 대가를 숨기지 않고 적어 둡니다. 다른 후원자와 수입원이 남아 있었으니 기반 전체가 무너진 것은 아니라는 단서까지 스스로 달아 놓았어요. 영웅으로 부풀리지 않는 이 정직함이 이 책의 미덕이라고 봅니다. 이후 그가 남긴 편지의 핵심은 짧습니다. 당신이 나의 시간과 기술에 돈을 지불할 수는 있어도 나의 영혼과 존엄성까지 소유할 수는 없다는 것이죠.


이 대목에서 저자가 붙인 해설이 오래 남았습니다. 직장을 때려치우거나 갑자기 상대에게 욕하라는 말이 아니라고 분명히 못 박아요. 지불받은 값은 노동력과 시간, 전문적 기술에 대한 정당한 대가이지 인격과 존엄을 마음대로 구겨도 좋다는 면벌부가 아니라는 문장. 그리고 당장 모든 것을 뒤로하고 뛰어들 수는 없더라도 마음속에 흉상을 부숴버릴 망치 하나쯤은 품고 살아야 한다는 권유. 실제로 부수라는 게 아니라 부술 수 있다는 감각을 잃지 말라는 뜻으로 들려서, 오래 일한 사람의 현실에 닿는 말이었습니다.


결이 완전히 다른 챕터도 있어요. 억까를 다룬 장의 사마천 편입니다. 여기서 용기는 목소리를 높이는 형태로 나타나지 않습니다. 사형을 면할 길이 사실상 하나뿐이었던 상황, 당대 지식인들이 궁형보다 자결을 미덕으로 여겼던 분위기, 모두가 그의 자결을 의심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차곡차곡 쌓아 놓고, 그가 세상의 상식을 배반했다고 서술합니다.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는 사람은 누구나 한 번 죽지만 어떤 죽음은 태산보다 무겁고 어떤 죽음은 새털보다 가볍다는 말이 있고, 가장 참기 어려웠던 것은 품은 뜻을 다 펴지 못하고 죽는 일이었다고 적혀 있어요. 망가진 몸을 끌고 다시 책상 앞에 앉은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십여 년 뒤 130권, 52만 자가 넘는 기록이 완성됐고, 그를 벌한 권력은 스러졌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아쉬운 대목도 있었어요. 챕터마다 결말로 갈수록 어휘의 온도가 올라갑니다. 압도적이라는 말, 맹렬하다는 말, 세상이 무릎 꿇을 것이라는 표현이 반복돼서 후반부에서는 조금 몰아붙이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위로를 기대하고 집어 든 독자라면 숨이 찰 수도 있겠다 싶었어요. 또 하나는 형식 자체의 한계인데, 이 책에 모인 스물넷은 결국 결과가 자신을 증명해 준 사람들입니다. 견딤이 성취로 회수되지 않은 삶은 어디에 놓아야 하는지에 대한 답이 충분히 나오지는 않아요. 다만 그 질문에 책의 마지막 인물이 부분적으로 대답하고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마지막 자리는 에디트 피아프예요. 이 편은 화려한 성취 이야기가 아닙니다. 어머니에게 버림받은 유년, 어린 시절 잃었던 시력, 두 살에 떠난 첫아이, 사랑하는 사람의 비행기 사고, 통증 치료로 시작된 약물 의존, 마흔 몇에 병든 노파처럼 보였다는 몸. 저자는 그가 파리 벨빌의 가로등 밑에서 태어났다는 유명한 일화를 그대로 옮기지 않고 실제 출생 기록을 밝혀 바로잡습니다. 각막염의 원인에 대해서도 다른 견해를 각주로 달아 두었어요. 그런 태도가 있어서 뒤에 이어지는 감동적인 장면도 믿고 읽게 됩니다.


1960년 올랭피아 극장, 깡마른 체구에 검은 드레스를 입고 위태롭게 서 있던 사람이 반주가 시작되자 후회하지 않는다고 노래합니다. 사람들이 준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자신에게는 다 마찬가지라고, 과거를 불태워 버렸으니 모든 것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겠다고요. 흉터를 부끄러워하지도 변명하지도 않고, 동정 어린 시선을 걷어내고 자기 삶의 주도권을 되찾은 목소리였다고 저자는 씁니다. 첫 장에서 자본 앞의 주도권으로 시작한 책이 마지막에 운명 앞의 주도권으로 닫히는 구성이었어요.


여섯 개의 장을 지나며 지랄맞음이라는 말은 세 가지 얼굴을 갖게 됩니다. 관계를 끊고 나오는 쪽, 남아서 견디는 쪽, 이미 부서진 다음에 다시 시작하는 쪽. 그리고 책이 마지막에 도착한 곳은 저항이 아니라 긍정이었습니다. 도비라마다 붙은 한 줄 해설이 태도에서 정신력으로, 다시 긍정으로 옮겨 가는 흐름과도 맞아떨어져요.


서평단으로 여러 책을 만나다 보면 읽는 내내 고개만 끄덕이게 되는 책이 있고, 읽고 나서 자기 자리를 한 번 돌아보게 만드는 책이 있습니다. 이 도서는 후자에 가까웠어요. 굽힌 적이 있어 스스로를 오래 탓해 온 사람이라면 첫 장의 저 문장 하나만으로도 짐을 덜 수 있을 것 같아요. 반대로 요즘 참는 일이 습관이 되어 어디까지 양보했는지 셈하기 어려워진 분들에게는 중간의 챕터들이 자기 기준을 다시 그려 보는 자리가 될 겁니다. 목소리를 키우는 법을 배우려고 펼치면 조금 어긋날 수도 있어요. 이 한 권이 말하는 용기는 소리의 크기보다 선을 아는 일에 가깝습니다.


여름 끝이라 아침저녁 공기가 조금 달라졌습니다. 한 해의 절반을 이미 견뎌 낸 시기이기도 하고요. 이맘때 이런 책을 만난 게 나쁘지 않았습니다. 남은 계절을 지나는 동안 마음 한구석에 망치 하나쯤 넣어 두고 살아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굽혔던 자신을 먼저 이해시켜 준 다음, 지켜야 할 선이 어디였는지 조용히 짚어 주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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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 ㅣ 21세기 시선으로 읽는 동양고전
박찬근 지음 / 청년정신 / 2026년 8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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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표지가 먼저 말을 걸었어요. 흰 바닥에 회색으로 크게 앉힌 書經 두 글자, 그 위에 낡은 고서 몇 권을 쌓아 올린 것 말고는 장식이 거의 없습니다. 3천 년 전 통치의 교과서라는 이름값을 생각하면 좀 더 위엄을 부려도 될 텐데 여백을 넓게 비워 뒀더군요. 아래쪽에 작게 적힌 한 줄이 리더의 품격을 만드는 16가지 물음이었으니, 이 책이 어떤 자리에 서려는지는 표지에서 이미 짐작이 됐습니다.


208쪽, 손에 쥐기 좋은 크기입니다. 두께로 사람을 주저앉히는 고전이 아니어서 첫 장을 넘기는 데 별다른 준비가 필요하지 않았어요.


<서경>은 요·순·우·탕·문왕·무왕의 말과 군신 사이의 논쟁을 모아 둔 경전이고, 세종이 집현전 학자들과 밤새 붙들었고 정조가 왕도정치의 뼈대를 세울 때도 곁에 두었던 책입니다. 저자 단산 박찬근 선생은 35년간 한학을 연구하고 강의해 온 분인데, 채침의 서집전을 바탕 텍스트로 삼아 이 방대한 경전을 春夏秋冬 네 계절, 열여섯 개 장으로 다시 짰습니다. 봄에 리더의 조건을 심고, 여름에 땀 흘려 실천하고, 가을에 결산하고, 겨울에 스스로를 갱신하는 순서예요. 계절에 고전을 얹은 발상이 처음에는 편집상의 장식처럼 보였는데, 읽어 갈수록 이 배치가 내용을 붙잡아 주는 쪽으로 작동합니다.


봄 부의 네 번째 장에서 걸음이 느려졌어요. 표제가 호문즉유, 묻기를 좋아하면 여유로워진다는 뜻입니다. 상나라를 세운 탕왕이 천하를 얻은 직후에 오히려 편안하지 못했고, 그 흔들림을 읽은 신하 중훼가 진언을 올리며 임금의 덕 가운데 하나로 꼽은 것이 바로 묻는 태도였다고 해요.


"묻기를 좋아하면 넉넉해지고, 자기 생각만을 고집하면 작아진다."


넉넉함을 뜻하는 유裕라는 글자를 저자가 열어 보이는 대목이 특히 좋았습니다. 옷 의와 골짜기 곡이 겹쳐 있어서, 품이 넉넉해 무언가 담을 여지가 있는 옷이면서 동시에 모든 물을 받아들이는 깊은 계곡이라는 겁니다. 질문을 던지는 순간 모른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고, 그 인정이 빈자리를 만들고, 그 빈자리로 남의 지혜가 흘러든다는 설명이었어요. 넉넉함이 비워 둠으로써 얻어지는 것이라는 문장으로 단락이 닫힙니다.


반대편에 놓인 글자가 자용自用입니다. 스스로를 쓴다는 뜻인데, 남의 경험을 배제하고 제 판단만으로 결정하는 태도를 가리켜요. 자기만 쓰는 사람은 자기 시야각만큼만 세상을 본다고, 저자는 담담하게 적어 둡니다. 연차가 쌓이면 묻는 일이 어색해집니다. 모른다고 말하는 게 무능의 자백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오니까요. 그런데 이 장은 정반대로 말해요. 리더는 지혜를 혼자 만들어내는 사람이 아니라 흩어진 지혜가 모여드는 자리가 되는 것이라고요.


이 장의 「서경 깊이 읽기」는 먹줄 이야기입니다. 목수가 굽은 나무 위에 튕겨 곧은 금 하나를 남기는 그 검은 실인데, 아무리 뒤틀린 나무도 먹줄 앞에서는 제 굽음을 숨기지 못한다고 합니다. 곧음의 기준이 자기 밖에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죠. 임금에게 그 먹줄은 간언이고요.


"조직의 굽음은 늘 꼭대기에서 자란다. 아무도 먹줄을 대지 않아서."


이 문장 앞에서 잠깐 손을 멈췄습니다. 높이 오른 사람일수록 곧은 소리를 듣기 어렵고, 아랫사람은 윗사람의 굽음을 보고도 먹줄을 대지 못한다고 해요. 대는 순간 미움을 살까 두렵기 때문이라고요. 그러니 좋은 리더는 스스로 먹줄을 부른다는 것, 제 굽은 곳을 말해 달라고 청하는 한마디가 곧 간언을 따르는 일이라는 것. 회의실에서 침묵이 흐를 때 그것을 동의로 읽어 온 시간들이 함께 떠올랐습니다.


가을 부로 넘어가면 결이 한층 서늘해집니다. 문을 여는 장이 죄당짐궁, 허물은 제가 진다는 뜻이에요. 탕왕 재위 중에 극심한 가뭄이 들었고, 점괘가 사람을 제물로 바쳐야 한다고 나왔을 때 탕왕은 그렇다면 자신이 제물이 되겠다고 답합니다. 상림으로 나가 머리카락과 손발톱을 자르고 흰 띠풀로 스스로를 묶어 제물의 모양으로 하늘에 고했다는 기록인데, 저자는 여기서 한 걸음 물러서요. 사실의 기록인지 상징적 서술인지 우리는 알 수 없다고 먼저 밝히고, 이 장면이 여러 고전에 함께 남은 이유를 진위가 아니라 각인의 강도에서 찾습니다. 고전을 다루는 손길이 조심스러운 자리라 신뢰가 갔습니다.


이 장의 마무리가 이 책에서 가장 오래 붙들린 대목입니다.


"허물이 드러났을 때 책임지는 것은 오히려 쉽다. 남들이 보고 있으니 어쩔 수 없이 진다. 정작 어려운 것은 아무도 모르는 허물을 스스로 용서하지 않는 일이다."


책임이라는 말을 그동안 너무 헐하게 써 왔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드러난 잘못을 인정하는 일은 어차피 피할 수 없어서 하는 것이고, 저만 아는 실수를 덮지 않는 쪽이 훨씬 값이 비싼 일이라는 겁니다. 정약용을 인용한 대목도 이 결을 따라갑니다. 허물을 제 것으로 삼는 일은 고통스럽지만 의지로 할 수 있는데, 공을 제 것으로 삼지 않는 일은 더 깊은 자기 극복을 요구한다고요. 칭찬받고 싶은 마음을 내려놓아야 하니까요. 자랑하지 않을 때 비로소 내면이 평안해진다는 문장이 뒤에 붙어 있는데, 이 한 줄은 위로처럼 읽혔습니다.


다만 읽으면서 걸리는 지점도 있었어요. 이 책이 세워 둔 모범은 대체로 최종 결정권자의 자리에서 나온 것입니다. 영조는 재해가 들면 수라상의 반찬 수를 줄일 수 있었고, 유성룡은 벼슬에서 물러나 <징비록>을 쓸 수 있었고요. 그런데 조직의 중간에 낀 자리는 사정이 좀 다릅니다. 허물을 혼자 지겠다고 나선 순간 무엇이 어디서 어긋났는지 규명할 기회가 그대로 닫혀 버리는 경우가 적지 않아요. 자책이 구성원의 책임감을 높인다는 저자의 관찰은 옳다고 보는데, 그 효과가 자리의 높이에 따라 달라진다는 이야기까지는 이 책이 나아가지 않는 듯합니다. 물어서 잘된 사례가 세종에서 이순신으로 이어지는 배열도, 묻는 일이 결정을 늦추거나 책임을 흐리게 만드는 국면은 비켜 갑니다. 고전을 오늘로 옮겨 오는 책이라면 한 번쯤 짚어 줄 만한 대목이었다고 생각해요.


가을 부를 닫는 장은 개과불린입니다. 잘못을 고치는 데 인색하지 않다는 뜻인데, 봄 부에서 만났던 중훼가 여기서 다시 등장해요. 같은 신하가 같은 진언에서 꼽은 덕목이 책의 앞과 뒤를 묶는 셈입니다.


"잘못을 고치는 데 인색하지 않으셨고, 선을 따르기를 물 흐르듯이 하셨다."


고칠 개改가 자기 기己와 칠 복攴이 합쳐진 모양이라는 풀이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스스로를 두드려 바꾸는 일이니 고침에는 폭력의 이미지가 숨어 있다는 것이죠. 그래서 어렵다고 해요. 리더가 잘못을 고치기 힘든 이유를 저자는 둘로 나눕니다. 잘못을 인정하면 권위를 잃는다는 착각, 그리고 이미 그 방향으로 많은 자원이 들어갔다는 현실. 쏟아부은 것이 아까워 틀린 길을 계속 간다는 진단은 요즘 조직에서도 그대로 통합니다. 왕안석의 개혁이 그렇게 무너졌다고 짚으면서 저자가 붙인 구분이 날카로웠어요. 잘못을 고치는 데 인색했던 것이 아니라 잘못을 잘못으로 인정하는 데 인색했던 것이라고요.


반대편에 세종의 공법이 놓입니다. 새 세법을 만들면서 자기 안을 밀어붙이지 않고 전국의 관리와 백성 십칠만여 명에게 가부를 물었고, 찬반이 갈리자 전면 시행 대신 일부 지역에서 먼저 시험해 문제가 드러나면 손봤다는 과정이 정리돼 있어요. 오늘날의 시범 사업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완성된 법을 내린 게 아니라 고쳐 가는 법을 함께 만든 것이라는 서술, 그리고 개과불린이 한순간의 결단이면서 오래 고쳐 나가는 끈기이기도 하다는 마무리가 좋았습니다.


이 장의 결론은 순서에 있습니다. 검신이 앞에 있어야 개과가 뒤따른다는 것. 자신을 살피지 않는 사람에게는 고칠 잘못조차 보이지 않는다는 것. 남에게는 완비를 구하지 말고 자신을 단속하기를 미치지 못한 듯이 하라는 이윤의 말이 그 뿌리로 놓여 있어요. 사람은 이 저울을 대개 거꾸로 듭니다. 남의 작은 흠은 크게 보면서 제 큰 허물은 어쩔 수 없었다며 넘기니까요.


완성이 리더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고침이 리더를 만든다.


책 전체를 한 문장으로 줄이면 아마 이 대목일 겁니다. 열여섯 개 장을 지나오며 갖춰야 할 덕목의 목록을 받아 든 독자에게, 저자는 그 모든 것을 완벽하게 갖춘 사람은 없다고 인정해 줘요. 그리고 고쳐라, 물처럼 흘러라라고 답합니다. 이 순서가 이 책의 따뜻한 지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각 장 끝에는 「나를 향한 질문」이 다섯 개씩 놓여 있습니다. 답을 이미 정해 두고 형식만 갖춘 물음이 아니었는지, 회의에서 먼저 말하는 사람인지 마지막에 말하는 사람인지, 곁에 제 굽은 곳을 말해 줄 사람이 있는지를 되짚게 하는 항목들이에요. 이 장치 때문에 이 책은 하루에 몰아 읽는 쪽보다 한 장씩 끊어 읽는 편이 나을 것 같습니다. 세 장을 이어 읽었을 때는 마무리의 형식이 반복되는 게 눈에 들어왔는데, 하루에 한 장씩 두고 읽으면 그 반복이 오히려 리듬으로 작동하겠더군요.


서평단으로 여러 권을 만나다 보면 읽고 정리하고 넘어가는 흐름에 익숙해지는데, 이번 한 권은 그 흐름을 조금 붙들었어요. 읽는 사람을 평가하는 자리에 세우는 책이라서요. 조직을 이끄는 분들에게 유용할 내용이 분명히 많지만, 직함과 무관하게 제 판단으로 무언가를 결정하고 그 결과를 감당해야 하는 사람이라면 어디서든 걸리는 대목이 나옵니다. 어려운 한문 때문에 동양고전을 멀리 뒀던 분들께도 문턱이 낮은 편이에요. 원문과 독음과 직역이 나란히 배치돼 있어서 한자를 모르고도 막힘없이 읽힙니다.


늦더위가 아직 남아 있지만 아침 공기가 하루가 다르게 달라지는 무렵이네요. 마침 이 책의 가을 부가 리더의 유산, 수확과 결산을 다룹니다. 한 해의 절반을 넘긴 자리에서 무엇을 거뒀고 무엇을 고쳐야 하는지 셈해 보기에 계절이 맞춤합니다. 서늘한 바람이 도는 저녁에 한 장씩 천천히 읽어 나가기 좋은 한 권입니다.


3천 년 전 임금들의 언어로 오늘의 제 자리를 되짚게 하는 책, 완벽함이 아니라 고칠 용기를 리더의 조건으로 놓은 <서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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