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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세의 행복 - 오래 건강하게 산 어른들에게 배우는 삶의 기술
정세희 외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26년 8월
평점 :
"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표지에서 먼저 눈에 걸린 건 색이었어요. 짙은 남색 위에 산호색 동심원이 손으로 그은 듯 몇 겹 겹쳐 있고, 아래쪽으로는 초록 세로선이 물결처럼 깔려 있습니다. 백 세라는 말 옆에 으레 놓이는 누런 빛깔이 없더군요. 다 지나온 삶을 정리해 보여주는 표정이 아니라, 아직 진행 중인 쪽에 무게를 둔 배색이었습니다. 아래쪽에 인물 사진 없이 열다섯 사람의 이름만 나란히 적혀 있는 것도 기억에 남습니다.
<100세의 행복>은 중앙일보 기자 세 명이 백 명 가까운 장수 어른을 직접 만나 기록한 책입니다. 냉장고를 열어보고 양복 주머니와 가방 속까지 들여다봤다고 하니, 인터뷰라는 말보다 관찰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취재였겠습니다. 마음, 몸, 관계, 삶의 주도권이라는 네 개의 부에 열다섯 편이 담겼고, 한 편이 끝날 때마다 그 사람이 지켜온 원칙 다섯 가지가 붙습니다. 보통 크기에 보통 두께라 부담 없이 넘어가는 분량이고, 실제로도 편안하게 읽혔어요.

첫 편의 시작이 솔직해서 좋았습니다. 뭘 먹어야 100세까지 건강할 수 있을까, 하는 물음을 앞세우고 105세 철학자의 냉장고를 털러 갑니다. 특별한 음식이 나올 줄 알았다는 기대까지 그대로 적어두었더군요. 그런데 냉장고에서 나온 건 미리 썬 양파와 당근, 시금치와 깻잎무침 정도였습니다. 아침 식단은 수십 년째 똑같습니다. 우유 반 잔, 호박죽 반 접시, 계란 반숙, 찐 감자, 드레싱 없는 채소샐러드에 제철 과일. 바꿀 이유가 없고 아침에 시간을 많이 쓰고 싶지 않다는 게 이유였습니다.
"20대 땐 맨날 똑같은 거 먹으면 무슨 맛일까 했어요. 그런데 습관이 참 무서워요. 내 것이 돼버리면 지루하지도 질리지도 않고, 그 이상의 것이 생각나지 않아요. 그러니 불만이 없죠."
절제를 미덕으로 설명하지 않는다는 점이 이 대목의 미덕입니다. 그냥 습관의 속성을 말하고 있어요. 그렇다고 고정된 규율로 버티는 것도 아닙니다. 위가 약해진 뒤로는 커피를 한 잔에서 반 잔으로 줄였고, 공복을 길게 두는 요즘 흐름과 달리 저녁은 일부러 늦게 먹습니다. 공백이 길면 칼로리가 모자라 지친다는 게 본인의 설명이었습니다. 몸이 보내는 신호에 맞춰 평생 지킨 습관도 고쳐 쓰는 사람의 태도가 여기서 읽힙니다. 몸이야 늙었다면 늙었겠죠, 그런데 인간적으로 늙었는가 물으면 달라진다는 말도 같은 자리에서 나옵니다. 백 년을 살아보니 노인이 된다는 건 스스로 늙어서가 아니라 주변 사람들이 먼저 만들어버리는 일이었다는 관찰은, 그 뒤로도 오래 남았습니다.

재미있는 건 4부에 실린 93세 조선 기술자 편에서 거의 같은 구조를 다시 만난다는 점이에요. 비서가 그의 건강 비결로 규칙적인 생활을 꼽으면서 철학자 칸트에 버금간다고 했다는데, 아침상이 실제로 평생 고정입니다. 사과 3분의 1쪽, 버터와 잼 바른 모닝빵에 하몽 한 조각, 콘플레이크와 우유 조금, 계란 하나. 스무 살에 유럽에서 빵 맛을 알고 난 뒤로 바꾸지 않았다고 합니다. 호박죽과 모닝빵이라는 전혀 다른 상차림이 같은 원리로 굴러가고 있었어요. 아침에 무엇을 먹을지 고민하는 데 판단력을 쓰지 않는다는 것. 에필로그 제목이 '장수는 유전이 아니라 시스템'인 이유가 서로 다른 두 집의 밥상에서 겹쳐 보입니다.
이 어른의 이야기에서 제 예상을 빗나간 대목은 다른 곳에 있었습니다. 1960년대에 세운 경제개발계획을 직접 만든 당사자인데, 이제 그것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합니다. 곰탕도 60년 우려 먹으면 맛이 안 난다고요. 자기 최대 업적을 스스로 낡았다고 진단하는 사람의 말투에는 미련이 없었습니다. 실버타운 이야기도 뜻밖이었어요. 해외 고객 미팅과 강연으로 여전히 바쁜 사람이 그곳에서는 자기 이력을 철저히 숨겼다고 합니다. "이곳에서만큼은 보통 사람, 평범한 사람이고 싶었다"는 문장 하나가 앞의 화려한 이력을 전부 상대화합니다. 병원에 다녀오는 줄 안 동료들 사이에서 몸 약한 어르신으로 불렸다는 대목에서는 웃음이 났고요. 낯선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을 슬쩍 식사 자리에 부르는 게 요즘 낙이라는데, 이유는 짧습니다. 다 같이 잘 살면 좋으니까.

그런데 이 책에서 제일 오래 붙잡고 있었던 편은 3부에 있습니다. 1924년생 어머니와 1946년생 아들의 이야기인데, 서술 방식이 앞과 완전히 다릅니다. 아들의 1인칭으로 시작하고, 첫 문장이 먼저 죽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고백입니다. 요양원 입소 신청서를 세 번 썼고 세 번 다 찢었다고 해요. 그를 무조건 효자로 세우지 않는 것이 이 챕터의 미덕입니다. 그도 79세 노인이었고, 1년 만에 몸무게가 10kg이나 빠질 정도로 힘에 부쳤으며, 노인네가 노인네를 부양하는 것이라고 자기 처지를 그대로 말합니다. 아내와 함께 365일 긴장 상태였다는 서술도 숨기지 않습니다.
그 집을 지탱한 것도 결국 반복이었습니다. 매일 아침 6시, 거실의 옷걸이에는 옷 대신 가사판이 걸립니다. 아들이 대형 달력 뒷면에 유행가 서른다섯 곡을 하나하나 베껴 적은 것이고, 어머니가 다음 것을 찾으면 아들이 태극기 봉 끝으로 가사를 짚습니다. 기억이 희미해질 때도 노래만큼은 남아 있었다고 해요. 잠들기 전에는 화투판을 펼쳐 같은 그림을 맞추며 옛이야기를 나눕니다. 그 사이 섬망 증세가 누그러졌고 아들의 기력도 돌아왔습니다.
"하도 시달려서 이대로는 못 살겠다 싶을 때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어요. 노래가 아니었다면 벌써 스트레스받아서 죽었을 테니 노래가 나를 살린 거죠."
요양원 입소를 앞둔 저녁, 데이케어센터에서 돌아온 어머니의 첫 물음이 "복희야, 너 점심은 먹었냐?"였다고 합니다. 세 그릇이나 배부르게 먹었다고 선의의 거짓말을 하면 그제야 마음이 놓인다는 듯 좋아하셨다고요. 백 살 엄니는 기어코 여든 아들을 또 키워내고 있었다. 책의 이 한 문장 앞에서 돌봄의 방향을 한쪽으로만 생각해온 제 짐작이 헐거워졌습니다.
아쉬움도 없지는 않았어요. 죽을 때까지 일하겠다는 말이나 역할을 놓지 않으면 나이를 잊는다는 제목은 든든하게 읽히지만, 그 태도가 가능하려면 일정을 챙겨주는 사람과 선택할 수 있는 거처 같은 조건이 어느 정도 받쳐줘야 합니다. 부양 부담이 곧 생계 문제로 이어지는 집이라면 노래 교실에 주 세 번 나가는 일조차 쉽지 않을 테고요. 책이 노노부양의 현황을 별도 기사로 얹어 개인의 사연을 사회 현상으로 넓혀둔 점은 신뢰가 갔지만, 거기서 한 걸음 더 들어가 조건의 차이를 짚어줬다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반대로 말하면, 그만큼 이 책이 개인의 습관 쪽에 집중하기로 한 선택이 분명하다는 뜻이기도 하겠습니다.

60세 넘어 고독하게 사는 사람은 대체로 이기주의자가 많다는 진단도 한참 들여다봤습니다. 한 세기를 건너온 사람의 관찰이니 가볍게 넘길 말은 아니지만, 관계가 끊기는 이유가 사람 됨됨이만은 아닐 겁니다. 이 대목은 동의보다 질문으로 남겨두었어요.
서평단으로 여러 책을 만나다 보면 읽고 나서 정리가 빠른 책과 한동안 곁에 두게 되는 책이 갈리는데, 이 한 권은 후자였습니다. 저속노화니 장수 식단이니 하는 말이 넘치는 요즘에, 백 세를 넘긴 당사자들의 선택이 정작 그 유행과 어긋나는 장면이 여러 번 나오는 것도 이 도서의 정직한 지점이라고 봅니다. 결국 남는 건 거창한 비결이 아니라 아침마다 되풀이되는 사소한 일들이었어요. 밥상 하나, 노래 한 곡, 화투 한 판.
계절이 바뀌는 자리에 이 책을 읽은 게 맞춤이었던 것 같습니다. 아침 바람이 서늘해지고 해 지는 시각이 눈에 띄게 당겨지는 요즘, 오래 산다는 말이 조금 다르게 들립니다. 남은 시간을 늘리는 일보다 그 시간에 무엇을 되풀이할지가 먼저라는 걸, 백 세 어른들의 평범한 아침상이 조용히 알려줍니다.
오래 살기 위해 산 사람은 없었고, 되풀이할 것이 있었던 사람들이 오래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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