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주문 당일 도착의 경제학 - 유통, 물류를 알면 비즈니스가 보인다
엄지용.신승윤 지음 / 시원북스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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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검정 바탕에 형광 초록. <오늘 주문 당일 도착의 경제학>은 표지부터 신호등처럼 눈에 들어옵니다. 위쪽에 건물 몇 채와 초록 트럭이 얹혀 있어서 경제서라기보다 도시의 단면을 그린 도판처럼 보이기도 했어요. 띠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시장을 움직이는 진짜 힘, 돈의 흐름은 물류에서 시작된다. 손에 들어 보니 크기도 두께도 평범해서, 분야만 보고 짐작했던 것보다 훨씬 편하게 넘길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북유럽 카페를 통해 받은 도서입니다.


프롤로그에서 저자들이 던지는 진단은 짧고 분명합니다. 더 많이 팔고 더 빠르게 배송하고 더 넓은 시장을 점령하면 된다는 외형 성장의 문법이 힘을 잃고, 그 자리를 최적화가 채우고 있다는 것이죠. 단위 경제성, 수익성 있는 물류, 데이터 기반 의사 결정 같은 말들이 이어집니다. 업계 바깥에 있는 사람에게도 어딘가 익숙한 이야기입니다. 성장률 숫자로 버티던 시절이 저물고 나면, 남는 질문은 결국 어떻게 남길 것인가 하나로 좁아지니까요.


책의 중반, 대형 마트 새벽배송을 다룬 장이 이 책의 성격을 가장 잘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2026년 대형 마트와 SSM의 새벽배송을 허용하는 유통산업발전법 개정 추진 안건이 고위당정협의회를 통과했다는 소식에 업계가 활기를 띠었고, 개정안 소식이 전해진 날 이마트 주가가 8.5% 급등해 52주 신고가를 기록했다는 대목까지는 그럴듯한 성장 서사입니다. 이마트와 롯데마트 점포를 합치면 쿠팡이 구축한 물류 센터 수보다 많다는 숫자도 설득력이 있습니다.


그런데 저자들은 곧바로 현장의 온도를 가져옵니다. 취재에 응한 관계자들은 하나같이 새벽배송은 과정 중 하나일 뿐이라며 신중했다고 해요. 신선 식품 풀필먼트 기업의 한 임원은 오프라인 쇼핑에 최적화된 공간에 새벽배송 물류 센터의 옷을 입히면 엄청난 비효율이 발생한다고 말합니다. 냉장·냉동 탑차를 위한 독도 없이 마트 주차장을 써야 하는 상황을 두고 "이건 도심 곳곳의 지하철역을 그대로 MFC화한다는 발상이랑 다를 게 없어요."라고 덧붙이는데, 이 비유 하나로 상황이 그려집니다. 저자들의 정리는 이렇습니다. "법이 바뀌어 문이 열려도, 문 뒤에 있는 매장 구조 자체가 새벽배송을 위해 설계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미국 월마트를 참고 사례로 끌어온 방식도 좋았습니다. 매장을 물류 거점으로 쓴다는 아이디어 자체가 아니라, 그 아이디어를 실행하려고 매장 설계부터 인력 배치, 픽업존 구조, 긱워커 플랫폼까지 처음부터 다시 만들었다는 점을 짚습니다. 국내 사례로 넘어오면 결이 달라집니다. 이마트 매장을 거점으로 삼은 퀵커머스가 다섯 달 만에 전국망을 갖췄지만, 본업과 병행하게 된 매장 직원과 픽업존 상품을 배달하는 라이더의 이해관계가 어긋나 있었다는 것이죠. 픽업존이 지하나 2층에 있으면 라이더들 사이에서 다신 콜 안 잡는다는 반응이 나온다는 문장에서, 조직 안에서 일이 늘어나는 방식을 아는 사람이라면 대체로 고개를 끄덕일 거예요.


편의점으로 넘어가면 같은 문제가 더 좁은 공간에서 벌어집니다. 강남구와 관악구 현장에서 만난 아르바이트 직원의 말이 특히 오래 남았습니다. 카운터를 보면서 배달 주문을 수락하고 라이더가 오기 전까지 피킹과 패킹을 마쳐 별도 공간에 진열해야 한다면서, "배달 알림 소리에 점점 정신이 혼미해져요."라고 하더군요. 점주는 중개 수수료가 20%를 넘어 남는 게 별로 없다고 하고, 라이더는 단가 낮고 부피 예측이 어려운 편의점 콜을 기피합니다. 세 주체 누구도 확실히 이득을 보지 못하는 구조인데, 서비스는 계속 확대됩니다.


이 장을 못처럼 박는 숫자가 있습니다. 퀵커머스를 시행한 이마트 점포의 98.2%가 전담 인력 없이 기존 업무와 병행했고, 그 결과 78.1%가 휴게 시간이 줄었다고 답했다는 조사입니다. 여기에 결정과 실행 사이의 거리라는 진단이 붙고, 본사가 확장을 결정하고 플랫폼이 서비스를 발표하지만 그 결정을 새벽 4시에 실행하는 건 점포의 야간 알바와 점주라는 문장으로 이어집니다. 윗선에서 내려온 결정과 그것을 몸으로 받아내는 자리 사이의 거리는, 업종을 바꿔 놓아도 비슷하게 벌어져 있을 것 같습니다.


책의 마지막 장으로 갈수록 서술의 무게가 사람 쪽으로 기울어요. 쿠팡 물류 센터를 다룬 대목에서 저자들은 두 장면을 나란히 놓습니다. 한쪽에서는 고강도 노동에 대한 고발이 이어지고, 다른 한쪽에서는 그 현장에 들어가려는 일용직 지원 경쟁이 치열합니다. 근무 신청 앱에서 출근 확정을 받기가 어려워 쿠켓팅이라는 신조어까지 생겼다고 하죠. 왜 다시 그 문을 두드리는지 물었을 때 돌아온 답이 세 가지로 정리되는데, 문턱이 없다는 점, 정산이 정확하다는 점 그리고 사회 보장 제도를 활용하려는 계산입니다. 커뮤니티에서 가장 활발히 공유되는 주제가 실업 급여 수급을 위한 근무 일수 맞추기라는 설명에서, 산업 이야기가 고용 이야기로 넘어갑니다.


실업 급여를 받은 뒤 현장에 복귀한 분의 말이 이 책에서 가장 정확한 문장이었던 것 같아요. 급여만 생각하면 노동 강도에 비해 벌이가 너무 적은 일이라고 하면서, 취업 준비 자금을 모으려고 업무 일수 맞추기에 집중했다고 합니다. 그러다 보니 힘든 업무로 뺑뺑이를 돌아도 참았죠. 통계 몇 줄보다 이 한마디가 상황을 더 잘 설명합니다.


도로 위의 장면은 방향이 반대입니다. 2025년 택배 없는 날을 두고 쿠팡 대리점 협력사들이 참여 반대 기자 회견을 열었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쉬라고 만든 제도를 거부하는 이유는 단가 하락과 휴일 뒤에 밀려오는 물량이었습니다. 한 퀵플렉서는 쌓인 물량을 한꺼번에 무리해서 처리할 바에 기존 루틴대로 일정을 소화하는 게 낫다며, 고객 주문과 결제를 막는 게 아니라면 택배 없는 날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말합니다. 휴식을 권리로 규정해도 수요를 그대로 두면 부담이 뒤로 미뤄질 뿐이라는 지적이라, 제도를 만드는 쪽에서 먼저 읽어야 할 대목으로 보였습니다.


저자들이 정직하다고 느낀 지점은 자기가 앞에서 제시한 숫자를 스스로 흔든다는 데 있습니다. 주 5일 이하로 일하는 기사 비율이 62%라는 데이터를 소개해 놓고, 몇 쪽 뒤에서는 가족 명의로 백업 기사를 등록해 두고 실제로는 주 7일 내내 단독으로 일하며 수익을 다 가져가는 이중 계정 관행을 전하면서, 그 데이터에 착시가 반영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다는 현장의 시각을 붙입니다. 업계 자료를 그대로 옮기는 책이라면 하지 않을 선택이겠죠.


다만 에필로그에서는 조금 걸리는 데가 있었습니다. 혁신은 기술로 시작할 수 있지만 완성은 사람이 한다는 결론, 변화의 중심에는 언제나 현장과 사람이 있다는 문장은 따뜻하고 저자들의 진심도 느껴집니다. 그런데 앞 장에서 만난 사람들은 혁신의 주인공이라기보다 시스템의 빈틈 위에서 각자 유리한 계산을 하며 버티는 쪽이었어요. 실업 급여를 목표로 근무 일수를 맞추고, 가족 명의 계정으로 주 7일을 감당하는 선택은 희망의 언어로 감싸기가 어렵습니다. 저자들이 이 간극을 모를 리 없는데도 마무리에서 다시 사람을 답의 자리에 놓았으니, 그 사람들이 왜 그렇게까지 계산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한 걸음 더 밀고 나가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남았습니다. 이 책의 약점이라기보다, 4장까지 다 읽은 독자에게 남는 숙제에 가깝겠습니다.


읽는 내내 익명 표기가 절마다 A, B, C로 다시 돌아가는 탓에 누가 어느 자리에서 한 말인지 잠깐씩 되짚어야 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현장 취재가 촘촘한 책일수록 이런 부분이 아쉽게 느껴지네요.


쿠팡과 네이버의 배송 경쟁이 궁금해서 집어들었다면 2장이 충분한 답을 줄 겁니다. 제 경우에는 뒤로 갈수록 생각이 다른 데로 갔어요. 회사에서 새 사업을 결정하는 자리에 있는 분이라면 결정과 실행 사이의 거리라는 표현 앞에서 잠깐 멈추게 될 테고, 고용 형태가 흔들리는 시대를 지나고 있는 사람이라면 대기업 정규직이 오랫동안 지향점이었던 시대가 저물고 있다는 진단이 남의 이야기로 읽히지 않을 겁니다. 서평단으로 여러 책을 받아 읽어 왔지만, 산업의 구조를 설명하면서 그 구조 안에 서 있는 사람의 얼굴까지 같이 보여주는 책은 흔하지 않았습니다.


찬 바람이 돌기 시작하는 계절입니다. 이맘때가 되면 주문 건수도 늘고 배송 물량도 함께 불어난다는데, 새벽에 움직이는 트럭과 캠프의 컨베이어를 한번쯤 떠올려 봐도 좋겠습니다. 클릭 한 번의 편리함이 그냥 오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이 한 권이 차분하게 알려줍니다.


당일 도착의 속도를 만드는 것은 기술만이 아니며, 그 속도를 매일 새벽 감당하는 사람들의 구조까지 함께 보게 만드는 현장 기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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