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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생각하기를 포기한 자는 가장 완벽한 노예가 된다 ㅣ 시대철학 3
그리고리 예피모비치 라스푸틴 지음 / 비원 / 2026년 8월
평점 :
"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표지에 적힌 지은이 이름을 두 번 봤습니다. 그리고리 예피모비치 라스푸틴. 출간일은 2026년 8월이고요. 인세는 어디로 송금하는 건지 잠깐 궁금해졌는데, 띠지에 박힌 문장을 읽고는 그런 농담이 쑥 들어가더군요. "사람들은 그를 믿은 것이 아니다. 자신들이 절망 속에서 붙잡고 싶은 기적을 믿은 것이다."
비원에서 나온 시대철학 시리즈의 세 번째 책입니다. 시리즈라고 해도 권마다 다루는 인물과 주제가 따로인 구성 같아서, 앞 권을 안 봤어도 이 책 하나로 읽는 데 걸리는 건 없었어요.
판형은 손에 쥐기 편한 작은 크기입니다. 가방에 넣어도 표 안 나는 핸드북두께인데 내용은 영 가볍지가 않아서, 무게중심이 좀 이상한 책이라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프롤로그 첫 단락에서 글쓴이는 라스푸틴을 악마라 부르는 기존의 말들을 신뢰하지 않는다고 먼저 선을 긋습니다. 무너지는 제국 바깥에서 침입한 재앙이라기엔 이미 안에서부터 곪아 있던 자리에 스며든 하나의 증상에 가까웠다고요. 로마노프 왕조가 그를 불러들인 게 아니고, 스스로 생각하기를 그만둔 순간 그의 자리가 저절로 마련됐다고 말하는 편이 정확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문장이 나옵니다. 어떤 시대는 광인을 낳지 않는다, 다만 광인이 앉을 의자를 미리 비워둘 뿐이다.
의자를 미리 비워둔다는 말.
책의 논지는 여기서 거의 다 나온 셈인 거 같아요. 삼켜지는 자들에겐 공통점이 있는데 판단을 오래전에 멈췄다는 것이고, 판단이 멈춘 자리에 관습이, 관습이 무력해진 자리에 불안이, 불안이 임계점을 넘은 자리에 누군가의 확신에 찬 목소리가 들어선다는 흐름입니다. 그 목소리가 옳은지 그른지는 중요하지 않고, 흔들리지 않는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지배가 시작된다고요. 흔들리는 자들 앞에서 흔들리지 않는 자는 언제나 신처럼 보이는 법이라는 문장이 뒤에 붙는데, 이건 궁정 얘기로만 읽히지가 않았습니다.

다른 페이지보다 천천히 정독하듯 읽었던 부분은 아스피린 대목이었어요. 황태자 알렉세이의 몸에서 피가 멎지 않을 때 궁정에 불려온 건 당대 유럽에서 가장 훈련된 의사들이었고, 1899년에 나온 아스피린은 근대 이성의 상징이었다고 합니다. 일부 의학 사학자들이 관절 통증을 호소하는 혈우병 환자에게 이 신약을 처방했을 가능성을 제기한다는 서술이 이어지고, 사실이었다면 혈소판 응집을 억제하는 그 약이 출혈을 더 악화시키는 독이 되었을 것이라는 설명이 붙습니다. 당대 최고 지성들이 신뢰한 신약이 도리어 독약이 될 수도 있었던 셈이라고요.
낡은 정답을 신봉하는 자들은 그 정답이 자신의 목을 조르고 있다는 사실조차 알아채지 못한다는 문장으로 이 장면을 받습니다. 저는 이 대목에서 회사 생각이 좀 났습니다. 십 년 전에 만든 양식, 그때는 최선이었던 절차, 지금은 아무도 왜 그렇게 하는지 모르는데 아무도 안 건드리는 것들.
상식이 왜 이렇게 끈질기게 우리를 붙드는지에 대한 설명도 서늘했어요. 편하기 때문이라고요. 상식을 따르는 한 결과에 책임지지 않아도 되고, 다들 그렇게 한다고 말하면 되고 원래 그런 거라고 말하면 된다는 겁니다. 상식이 개인의 판단을 집단의 익명성 속으로 녹여준다는 표현이 나오는데, 잘못돼도 나 혼자 잘못한 게 아니고 실패해도 나 혼자 실패한 게 아니니까요.

책임은 나누고 판단은 없는 회의. 제가 앉아 있던 자리들이 떠올랐습니다.
그렇다고 상식을 버리라는 얘기로 몰고 가지는 않습니다. 상식을 도구로 대하라고 권하는 쪽이에요. 도구란 필요할 때 꺼내 쓰고 어긋나면 내려놓고 다른 걸 찾는 것인데, 신봉은 도구를 목적으로 착각하는 태도라고요. 자신이 도구를 쥐고 있다고 믿지만 실은 도구가 그들의 정신을 쥐고 있다는 문장이 장 제목을 받아주는 식입니다. 이런 식으로 세게 밀어붙였다가 한 번 잡아주는 리듬이 책 전체에 깔려 있어서, 읽는 동안 멀미가 나지 않았습니다.
2장은 온도가 달라집니다. 사람에게는 저마다 감추고 싶은 밑바닥이 하나씩 있고, 그 방을 지나치는 습관이 오래되면 어느 순간 방의 주인이 내가 아닌 그 방 자체가 되어버린다는 도입이에요.
로마노프 왕조의 가장 치명적인 비밀이 황태자의 혈우병이었다는 사실을 여기서 다시 꺼냅니다. 제국은 이 사실을 철저히 숨기려 했고, 은폐하려 할수록 비밀이 왕조의 심장을 더 강하게 조여왔다고요. 감추어진 결핍이 더는 의학의 문제가 아닌 제국 전체의 명운을 가르는 약점이 되었고, 결국 그 틈새로 한 사람이 스며들어 제국의 영혼을 거머쥐었다는 정리입니다. 감추는 자는 언제나 감춤의 대가를 치르고, 그 무게는 처음엔 작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눈덩이처럼 불어나 결국 감춘 것보다 훨씬 큰 것을 무너뜨린다는 대목이 뒤따르고요.
걱정에는 겉으로 드러난 이유와 그보다 깊은 이유가 있다는 설명도 있었습니다. 돈이 걱정되면 정말 돈만의 문제인지, 관계가 불안하면 정말 그 사람만의 문제인지 한 겹 더 벗겨볼 필요가 있다고요. 그 아래엔 무너져도 돌아갈 곳이 없다는 두려움이나, 결국 아무도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주지 않을 것이라는 오래된 예감이 있을 수 있다고 합니다. 걱정의 옷을 한 겹씩 벗겨보면 그 안에는 대개 훨씬 어리고 훨씬 상처받은 자신이 앉아 있다는 문장에서, 마흔 후반 아재도 별수 없이 조용해집니다.

여기서 결핍을 직시한다는 게 없애자는 뜻이 아니라고 분명히 해둡니다. 없앨 수 있는 게 아니고 없애려 애쓸수록 삶 전체를 지배하게 되니, 그 자리에 이름을 붙여주고 나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일이라고요. 인정하는 순간 결핍은 나를 뒤에서 조종하던 자리에서 물러나 내 앞에 놓인 하나의 사실이 되고, 사실 앞에서는 대응이 가능하다는 설명. 이 구분이 제일 쓸모 있었어요.
자신의 결핍을 아는 사람은 그걸 채워주겠다고 다가오는 얼굴 앞에서 조금 더 오래 머뭇거릴 수 있다고 합니다. 머뭇거림은 나약함이 아니라 자신을 지키는 가장 조용한 근력이라고요.
권력을 정의하는 대목도 좋았습니다. 지위도 재산도 완력도 아니고 결핍의 지도를 손에 쥔 자에게 주어지는 조용한 특권이라는 것. 그런데 바로 브레이크를 걸어요. 이 지도가 타인을 지배하는 도구로만 쓰이는 걸 경계한다고, 지도의 진짜 쓸모는 자유에 있다고 못을 박습니다. 목차 어투만 보면 조종술 강의처럼 보이는데 본문은 계속 이런 식으로 방향을 되돌려놓습니다.
5장에 가면 아예 독자 쪽으로 몸을 돌립니다. 하루에도 수십 번 남에게 정답을 묻는다고, 타인의 시선에 부합하는 선택일까 세상이 정해둔 궤도에서 벗어나는 건 아닐까 홀로 걸으면 비웃지 않을까 하는 물음들 밑바닥에는 하나의 목소리가 흐른다고요. 누가 나 대신 결정해주었으면,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을 나 혼자 짊어지지 않았으면 하는 목소리.
그리고 이 습관이 무서운 이유를 짚는데, 결과가 나쁠 때가 아니라 결과가 좋을 때라고 합니다. 결과가 나쁘면 상대를 원망하며 자기 자리로 돌아올 기회를 얻지만, 좋으면 그 결정을 내려준 사람의 안목에 더 매달리게 된다고요. 한 번의 성공적인 조언은 열 번의 예속을 부른다는 문장. 그다음부터는 스스로에게 묻는 대신 그 사람 얼굴을 먼저 떠올리고, 그 사람이 없는 자리에서는 결정을 미루거나 회피하기 시작한다고 합니다. 얹혀 가는 삶은 편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훨씬 더 피로하다고요. 자기 자리가 아닌 곳에 앉아 있는 사람이 가장 오래 아프기 때문이라는 설명이 붙습니다.
이 부분은 직장 다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얼굴 하나쯤 떠올릴 것 같습니다.
다만 정답을 구걸하지 않는다는 게 아무에게도 조언을 구하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라고 선을 그어둡니다. 여전히 묻고 책을 읽고 다른 사람 경험에 귀를 기울인다고요. 대신 물음의 성격이 달라졌다고 합니다. 예전에는 나 대신 답해달라는 물음이었고, 지금은 내가 놓치고 있는 각도를 알려달라는 물음이라고. 앞쪽은 결정권을 넘기고 뒤쪽은 결정권을 지킨 채 시야만 넓힌다는 구분인데, 사소해 보여도 삶에서는 엄청난 차이를 만든다는 말에 고개가 끄덕여졌어요.
오답을 견디는 근육 이야기도 기억에 남습니다. 우리가 정답을 구걸하는 건 게을러서가 아니라 오답이 무섭기 때문이고, 오답이 무섭지 않은 사람은 남의 답지를 훔쳐볼 이유가 없다고요. 그러니 훈련은 정답을 잘 찾는 능력을 기르는 쪽보다 오답을 담담하게 감당하는 태도를 기르는 쪽에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합니다. 작은 오답을 자주 겪는 사람이 큰 정답에 가까이 가는 걸 여러 번 봤다는 문장도요.
의외로 마음에 들었던 건 이 책이 역사를 함부로 주무르지 않는다는 점이었습니다. 1차 세계대전 러시아군을 다룰 때도 개전 초기의 혼선과 보급 문제를 짚은 다음, 전쟁 내내 낡은 전술만 고집한 건 아니라고 덧붙여요. 1915년 대후퇴 이후 전술과 조직을 다시 정비했고 1916년 브루실로프 공세에서는 새로운 전술로 커다란 성과를 거뒀다고요. 라스푸틴의 영향력을 말할 때도 그렇습니다. 황후가 그의 의견을 황제에게 전달한 건 사실이지만 니콜라이 2세가 군사적 결정마다 그의 축복을 구했던 건 아니고, 실제 작전 결정의 상당 부분은 참모총장 알렉세예프가 맡았으며 황제가 그의 뜻과 반대로 움직인 경우도 적지 않았다고 적어둡니다. 영적 위안을 구한 것과 군사적 판단권을 넘긴 것은 다른 이야기라고 구분하면서요.

이런 자리에서 슬쩍 과장하고 넘어가면 읽는 사람 입장에서 나머지 주장도 믿기 어려워지는데, 그걸 안 하네요.
솔직하게 걸린 부분도 있었습니다. 목차와 본문의 온도 차이예요. 목차는 온통 명령형입니다. 도덕이라는 족쇄를 끊어내라, 자비 없는 공포를 심어라, 더 미친 광기로 압도하라. 이것만 보면 라스푸틴의 수법을 따라 하라는 책인가 싶어지는데, 막상 본문은 자기 밑바닥을 들여다보라는 조용한 권유에 훨씬 가깝습니다. 프롤로그에서 이미 이 책은 라스푸틴을 옹호하려고 쓰이지 않았고 미화할 생각도 없다고 못을 박아두기까지 했고요. 서점에서 목차만 훑어본 사람은 이 책을 완전히 다른 책으로 오해할 수도 있을 거 같아요.
지은이 표기도 계속 걸렸습니다. 본문의 화자는 라스푸틴을 바깥에서 들여다보며 "나는 그를 하나의 거울로 세워두고 싶다"고 말하는 시선이라, 인물 본인의 회고로 읽히지는 않아요. 콘셉트라는 건 알겠는데 저 같은 독자는 첫 페이지 열 때까지 좀 헷갈립니다.
그래도 프롤로그에서 제일 마음에 든 문장은 이거였어요. 이 여정의 끝에서 어떤 정답도 건네지 않을 것이라고, 정답을 건네는 순간 자신 역시 또 다른 라스푸틴이 되기 때문이라고요. 대신 함께 질문을 오래 붙들어보자고 청합니다. 질문을 오래 붙드는 힘, 그것이 결국 스스로 생각하는 사람의 유일한 자산이라는 말.
자기계발 서가에 놓인 책이 정답을 안 주겠다고 선언하는 게 재미있었습니다.
소장 가치로 보면 책장에 꽂아두고 한 챕터씩 다시 꺼내 볼 만한 책 같아요. 챕터마다 독립적으로 끝나는 구성이라 순서대로 안 읽어도 되고, 무엇보다 문장이 짧고 단단해서 아무 데나 펼쳐도 읽힙니다. 다만 편안한 독서를 기대하고 집으면 좀 당황할 수 있습니다. 첫 페이지를 덮는 독자가 조금은 불편해지기를 조용히 바란다고 본인이 미리 경고를 해두는 책이니까요.
읽는 내내 재미있었습니다. 백 년 전 궁정 이야기가 회의실 이야기로 계속 번지는 게 신기했어요.
5장 끝에 이런 당부가 있습니다. 오늘 저녁에는 아주 작은 한 가지라도 좋으니 남에게 묻지 않고 스스로 정해보기를 바란다고, 그렇게 정한 밤은 어제와는 다른 잠으로 이어질 것이라고요. 대단한 결단도 아니고 저녁 메뉴 정도여도 된다는 뜻으로 읽혀서, 이건 해볼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바람이 제법 서늘해졌네요. 아침에 얇은 겉옷 하나 걸치게 되는 이맘때에, 남의 답지 훔쳐보던 습관 한 겹 벗겨보라는 책을 만난 건 나쁘지 않은 타이밍인 거 같습니다. 여기 나온 것들 하나씩 실천해 봐야겠어요. 일단 오늘 저녁부터 제가 정해보겠습니다. 물론 집에서 최종 승인은 따로 받아야겠지만요.
광인은 시대가 낳는 게 아니고 비워둔 의자에 앉을 뿐이라는 문장에서 출발해, 남의 정답에 기대는 내 습관까지 조용히 들춰내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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