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환의 아이 : 상
치넨 미키토 지음, 민경욱 옮김 / 더픽션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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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잠든 사람의 꿈속으로 의사가 걸어 들어갑니다.


이 한 줄만 보고는 반신반의했어요. 이런 설정은 대개 결말에서 편의대로 비틀리니까요. 그런데 상권을 다 읽는 동안 이 소설은 한 번도 자기 규칙을 어기지 않았습니다.


원인도 치료법도 없는 희귀질환 '이레스'. 같은 날, 도쿄 서부에서, 네 명이 동시에 잠에 빠집니다. 일본 최대 규모의 신경·정신질환 전문병원에 근무하는 신경내과 의사 시키나 아이가 그중 세 명의 주치의를 맡아요. 세 명. 네 명이 아니라. 나머지 한 명은 왜 아이한테 오지 않는지, 그 질문이 상권 내내 따라다닙니다.


제1장 제목이 '드넓은 몽환의 하늘'입니다. 첫 번째 환자는 한쪽 눈을 잃은 여성이고, 그의 몽환 세계는 조종석이에요. 하늘을 향해 있던 사람이 하늘을 잃었을 때 그 사람 속에 남는 풍경이 어떤 모양인지를, 작가는 설명하지 않고 그냥 공간으로 보여줍니다. 저는 여기서 이 소설의 문법을 이해했습니다. 세계의 형태가 곧 그 사람이 가장 붙들고 있던 것이라는 문법. 그러니까 꿈속을 돌아다니는 일이 그대로 진료가 됩니다.


두 번째 환자는 변호사입니다. 살인 혐의를 받은 남자의 무죄를 주장했던 사람이고, 그의 세계는 당연하게도 법정이고요. 조종석 옆에 법정이 놓이니 규칙이 우연이 아니라는 게 분명해집니다. 게다가 이 변호사 쪽에서 현실의 연쇄살인으로 슬쩍 다리가 놓여요. 이때부터 소설이 두 겹으로 굴러가기 시작합니다. 안에서는 영혼을 찾고, 바깥에서는 범인을 찾고.


제가 다른 페이지보다 천천히 정독하면서 보았던 부분은 조종석이 나오는 대목이었어요.


사람이 잠들어 있는 동안 속에 남아 있는 게 결국 자기가 제일 잘하던 일의 풍경이라는 것. 그게 이상하게 오래 걸렸습니다. 마흔 몇 해쯤 살고 나면 주변에 자기 조종석에서 내려온 사람이 꽤 많아져요. 하던 일이 없어졌거나, 몸이 안 따라주게 됐거나, 자리에서 밀려났거나. 겉으로는 다들 멀쩡히 출근하는데 속에는 그 조종석이 아직 그대로 있겠구나 싶어서, 많은 생각이 들게 하는 부분이었습니다. 소설은 그걸 불쌍하다고 말하지 않아요. 그냥 그 사람 세계가 그렇게 생겼다고 보여줄 뿐인데.


세계관을 떠받치는 말들은 오키나와에서 왔습니다. 영혼을 뜻하는 마부이, 마부이를 몸으로 되돌리는 의식인 마부이구미, 그리고 몽환의 세계마다 나타나는 기묘한 존재 쿠쿠루. 이 단어들이 이국적인 장식으로만 쓰이지 않는 게 좋았어요. 주인공의 할머니가 오키나와의 영능력자 유타였다는 설정과 맞물리면서, 의학과 주술이 서로를 밀어내지 않고 같은 진료실 안에서 이야기를 이어갑니다.


아이라는 인물도 캐릭터 성격을 보면, 23년 전의 사건을 품고 사는 사람입니다. 그 기억이 환자의 꿈속을 걸을 때마다 발밑에서 올라와요. 남을 구하러 들어간 세계에서 자기 상처를 마주하게 되는 구조라, 진료 장면 하나하나가 그대로 주인공 이야기가 됩니다.


응원하는 마음 반, 답답한 마음 반이었습니다. 자기 것도 감당 안 되는 상태로 남부터 꺼내러 들어가는 사람이거든요. 그런데 그게 나무랄 일인가 싶기도 했고요. 저도 회사에서 제일 힘들 때 오히려 남의 일을 더 떠맡은 적이 있는데, 도망인 걸 알면서도 그 편이 버티기 쉬웠으니까. 아이한테 잔소리하고 싶다가도 결국은 이해하게 됩니다.


맛보기로 하나 꼽자면 잠든 환자 곁에 아무것도 못 하고 앉아 있는 장면들이에요. 화려한 꿈속 모험보다 이 정적인 장면들이 오래 남았습니다. 낫게 할 수 없는 사람 옆에 매일 앉는 일이 어떤 마음인지를, 소설이 상권 내내 조용히 묻는 거 같습니다.


후반부 끊김이 상당히 얄궂습니다. 하권을 빨리 보고 싶게 만드는, OTT 드라마 엔딩 같은 느낌이 들어요. 다음 편 궁금해서 결국 한 편 더 누르게 되는 그 기분 아시죠. 저는 상권 마지막 장을 덮자마자 그 밤에 하권을 폈습니다. 피곤에 쩔어 월요일병 생기지 않는 날이면 그래도 좀 더 늦게 자는 편이라서요. 그리고 인물들이 자기 감정을 말로 꽤 길게 풀어내는 편이라, 건조한 미스터리를 좋아하시면 촉촉하다고 느끼실 수 있습니다.


읽는 때는 여러 날 이어서 시간을 낼 수 있을 때가 좋습니다. 띄엄띄엄 읽으면 환자별 세계가 서로 겹쳐 보이기 시작하거든요.


치넨 미키토가 2020년 일본 서점대상 후보에 올린 작품이고, 국내에는 이번에 처음 나왔습니다. 두께는 보통 소설책보다 제법 두툼한 편이고 그게 상하권으로 두 권이에요. 받아 들었을 땐 좀 부담스러웠는데 막상 읽으면 속도가 붙습니다. 표지 두 장이 나란히 놓였을 때 한 장면으로 이어지도록 설계돼 있어서 꽂아두는 재미도 있고요.


범인이 누구인가보다 그 사람이 왜 그럴 수밖에 없었는가가 더 궁금한 분이라면 맞으실 겁니다. 설정을 끝까지 지키는 이야기를 좋아하시는 분도요. 서점에서 상권만 집을까 망설이고 계시다면, 그냥 두 권 다 데려오세요. 상권 마지막 장의 그 끊김은 생각보다 견디기 어렵습니다.


요즘처럼 밤공기가 선선해지면 두꺼운 책 한 질이 괜히 반갑더라고요. 창문 조금 열어두고 읽기 좋은 계절입니다. 하권 이야기는 다음 글에서 마저 풀어보겠습니다.


쉽게 무너지지 않는 꿈에 갇힌 사람들에게, 데리러 가겠다고 말하는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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