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거 앨런 포 단편선 ㅣ 열린책들 테마 컬렉션 : 호러
에드거 앨런 포 지음, 김석희 옮김 / 열린책들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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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검은 바탕에 금색 선이 한 바퀴 둘러져 있고, 가운데 해골 하나가 놓여 있습니다. 그 둘레를 까마귀들이 맴돌아요. 옆쪽으로 깃털과 열쇠와 눈이 작게 박혀 있는데, 겁을 주려고 만든 표지 같지는 않았습니다. 무언가를 조용히 잠가 둔 상자에 가까웠어요. 판형은 한 손에 들어올 만큼 작은데 하드커버라 손목에 제법 실립니다. 이 조합이 묘했습니다. 서둘러 넘기기 어렵게 만들어 둔 물건 같아요.


열린책들에서 내놓은 <테마 컬렉션>의 호러 편입니다. <드라큘라>, <프랑켄슈타인>과 함께 묶여 나왔고 번역은 김석희 선생이 맡았어요. 아서 래컴의 삽화가 곳곳에 들어가 있는데, 「구덩이와 진자」에 붙은 재판관들과 촛불 그림은 본문보다 먼저 눈에 들어왔습니다. 수록작은 열두 편이고, 역자는 후기에서 이 책의 취향이 공포 쪽과 논리 쪽으로 갈린다고 적어 두었습니다. 읽어 가다 보면 그 말이 맞다 싶으면서도, 두 갈래의 뿌리가 같은 자리에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셔가의 붕괴」는 사건이 시작되기까지 꽤 오래 걸립니다. 서술자는 친구의 저택 앞에 서서 기분이 가라앉는 것을 느끼고, 그 이유를 붙들고 늘어져요. 창문 몇 개의 위치를 달리 배치하면 이 느낌이 사라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호수에 비친 저택을 내려다보며 확인까지 해 봅니다. 결과는 반대였습니다. 더 가라앉았지요. 그러면서 이런 문장을 적어 둡니다. 공포에 바탕을 둔 감정에는 그런 역설적인 법칙이 적용된다는 것을 나는 오래전부터 알고 있다. 첫 장에서 이미 답을 내놓은 셈입니다. 무서움의 출처가 저 집 바깥에 있지 않다는 뜻이지요.


뒤로 가면 어셔가라는 말이 건물과 핏줄을 함께 가리킨다는 설명이 나옵니다. 그러니 집이 무너진다는 말은 처음부터 사람이 무너진다는 뜻이었어요. 정면 지붕에서 시작된 균열이 벽을 타고 지그재그로 내려와 탁한 물속으로 사라진다는 대목은 두 번 읽었습니다. 다시 만난 로더릭을 그리는 장면에서는 거미줄처럼 성긴 머리카락과 이상하게 빛나는 눈이 먼저 나오고, 반가워하다가 금세 식어 버리는 태도가 이어집니다. 오래 알고 지낸 사람인데 처음 보는 사람 같다는 감각을 포는 정확하게 붙잡아 냈어요.


「구덩이와 진자」는 첫 문장부터 결이 다릅니다. 나는 아팠다, 로 시작해요. 앞의 작품이 여러 장을 들여 만든 분위기를 이 작품은 한 문장으로 지나갑니다. 종교재판의 선고를 듣는 장면에서 출발해 감각이 하나씩 꺼져 가는 과정이 이어지는데, 재판관들의 얇고 흰 입술 같은 것이 잠깐 남았다가 그것마저 흐려집니다. 정신을 잃었다가 돌아오는 대목을 이 소설의 중심으로 봤습니다. 돌아오는 과정 자체가 고통이어서, 그는 차라리 무감각 쪽으로 다시 내려가고 싶어 해요.


눈을 떴을 때 이 사람을 붙든 두려움의 정체가 공백이라는 점은 눈여겨볼 만합니다. 볼 것이 아무것도 없을지 모른다는 짐작이 그를 떨게 만들어요. 이어지는 장면에서 그는 완전한 어둠 속에서 벽에 표시를 하고 걸음을 세어 감방 둘레를 재기 시작합니다. 소용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잽니다. 나중에 그 계산이 두 배 가까이 틀렸다는 사실이 드러나는데, 왼쪽에 벽을 두고 출발했다가 오른쪽에 두고 끝냈기 때문이었어요. 어둠이 사람의 감각을 어떻게 비틀어 놓는지를 포는 이런 방식으로 증명합니다. 죽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기가 갇힌 공간의 크기를 끝까지 알고 싶어 하는 마음이, 이 책에서 가장 사람다운 자리라고 느꼈습니다.


「검은 고양이」의 서술자는 내일 죽습니다. 믿어 달라고 부탁하지 않겠다며 먼저 선을 긋고, 훗날 자기보다 냉정한 누군가가 이 일을 평범한 인과로 정리해 버릴 거라고 예고해요. 실제로 그런 인물이 책 뒤쪽의 「모르그가의 살인」과 「도둑맞은 편지」에 등장하니, 열두 편이 서로 손을 잡고 있는 구성입니다. 어린 시절 동물을 유난히 아꼈다는 회상으로 시작해 술과 함께 무너지는 과정이 이어지는데, 사건 자체는 옮기기 어려운 내용이라 여기서는 접어 둘게요.


다만 한 대목은 적어 두고 싶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행동을 설명하면서,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오히려 하게 되는 충동이 사람 안에 있다고 말합니다. 금지가 동기가 되는 마음이지요. 이 논리는 「구덩이와 진자」에서 희망이 고통을 키우던 구조와 같은 자리에서 나옵니다. 불이 난 집 벽에 남은 고양이 형상을 두고 화학적인 설명을 붙이는 장면도 결이 비슷해요. 머리로는 납득이 되는데 마음이 따라가지 않습니다.


아쉬운 점도 적어 둡니다. 서술자들이 지나치게 많이 설명해요. 감각을 전부 잃었다고 해 놓고 그 상태를 아주 정밀하게 묘사하는 식이라, 논리를 따지며 읽으면 걸리는 자리가 생깁니다. 1840년대 문장이라 수식도 길고요. 속도가 붙는 책은 아닙니다.


이 도서는 북유럽 카페를 통해 받았습니다. 서평단으로 신간을 여러 권 만나다 보면 빠르게 읽고 정리하는 습관이 붙는데, 이 한 권에는 그 방식이 통하지 않았어요. 무게와 두께가 먼저 속도를 늦추라고 말하는 쪽에 가까웠습니다.


바람이 서늘해지고 해가 일찍 떨어지는 계절에 잘 맞는 책이었어요. 요란하게 겁을 주는 이야기들이 아니어서, 조용한 시간에 한 편씩 꺼내 읽기에 알맞습니다. 다 읽고 나면 금색 테두리를 한 번 쓸어 보게 되는 마감이기도 하고요.


무서운 이야기를 기대하고 펼쳤다가, 자기 마음을 끝까지 들여다보려 한 사람들의 기록을 읽게 되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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